새 설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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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 후에” - 우리가 에스라다
오늘 에스라 9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이 일 후에", 이 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리는 새벽, 이 시간을 통해서 에스라를 계속 살펴보았습니다. 에스라서가 집중한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남유다의 멸망 이후, 바벨론에 의하여 흩어졌던 유당니들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우리는 그 사건을 포로귀환이라고 부릅니다. 바로 직전의 본문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라 8장을 살펴보면,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긴 여행을 마치고 도착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했고, 성전에 봉헌물들을 전달했으며, 번제를 드렸습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일 후에"라는 말로 9장이 시작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시간적 순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일이 성취된 바로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 것 같을 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위기의 순간에서 보여준 에스라의 모습을 통해 진정한 영적 리더십이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1. 회복된 것 같지만 여전한 죄의 현실 - 에스라가 마주한 현실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었고, 두 차례에 걸쳐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떠나 있었습니다. 본문 1~2절.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인간의 죄가 얼마나 지독한가, 집요한가를 확인합니다. 아무리 외형적으로 회복되었을지라도, 그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죄악의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이미 자리 잡고 있던 이방 문화와 우상숭배에 너무나 쉽게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특히 그들이 행한 대표적인 죄는 이방인들과의 혼인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가족 간의 결합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는 신앙의 변질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우상을 섬기는 민족과 결합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포기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일에 누가 앞장섰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방백들과 고관들이, 백성의 지도자들이 이 죄에 으뜸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백성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죄악의 선봉에 서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시대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교회가 회복된 것 같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세상의 가치관과 문화에 너무나 쉽게 동화되어 버립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때로는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해야하는 영적 지도자들이 오히려 세속화에 앞장 서고, 그래서 세상에서 교회를 오히려 다른 집단보다 더 타락한 곳으로 여기는 일들이 이제는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인간의 연약함에 한계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정말 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악한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2. 충격과 침묵 가운데 나타난 진정한 리더십 -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반응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줍니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3절) 그는 자신의 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절망했습니다. 이것은 당시 극도의 슬픔과 절망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도 즉시 행동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가 막혀 앉아" 있었습니다. 물론 에스라가 받은 충격이 너무 커서, 기가 막혀 앉아 있었다, 도무지 너무 충격이 커서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저녁 제사 시간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에스라의 영적 권위, 영적 지도자의 좋은 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런 위기의 상황 속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하거나 성급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가슴을 치며 깊이 묵상하는 모습 말입니다. 에스라의 이러한 침묵과 탄식이 사람들에게 더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자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4절) 에스라가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에게 나왔습니다. 그들이 나온 이유는 함께 회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이 에스라의 모습을 보고 각성하게 된 것입니다. 진정한 영적 리더십은 이런 것입니다. 많은 말과 화려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한 마음과 깊은 영적 고뇌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침묵이 외침보다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너무 많은 말이 오고 가는 시대입니다. 목사로서 늘 있는 고민 중 하나가, 점점 말이 많아지는 것 아닌가라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에스라를 통하여 큰 은혜를 누립니다. 지금이야말로 많은 말을 내뱉기보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지금 해야할 일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3. 통렬한 회개 기도의 본질 - 저녁 제사 시간이 되자 에스라는 일어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5절) 에스라의 기도는 통렬한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요약해보면 이렇습니다. 첫째, 우리 조상들의 죄로 인해 우리가 포로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과거의 죄악을 인정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겨우 회복시켜 주셨는데, 우리가 다시 이방과 연합하여 죄악을 저질렀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배신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잠시 은혜를 베푸셨는데, 우리는 그 순간에 또다시 범죄했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죄를 짓는 인간의 본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 앞에 감히 얼굴을 들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면목 없음을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에스라가 자신의 개인적인 죄만 고백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민족의 죄와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그 모든 죄를 자신의 것처럼 가슴에 끌어안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영적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함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에스라의 이런 모습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자신이 두 번째 포로귀환의 중심이 되어, 백성들을 예루살렘으로이끌고 왔을 때, 이는 에스라 7장 10절에서 다짐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지키고, 가르치겠다"는 결단의 결과였습니다. 에스라는 자신이 세운 결심과 결단을 지켰습니다. 그 결단의 열매가 바로 이 통렬한 회개의 기도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의 연약함과 악함을 인정하되 합리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악한 존재들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해지는 이유를 약함에서 찾거나, 약한 것을 악한 것으로 책임을 떠넘기며 우리의 죄를 스스로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에두고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그 순간 제자들은 육신의 한계로 다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막 14장 38절)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길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니, 어쩔 수 없다 이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육신의 연약함, 오늘 말씀과 연결하자면, 우리가 죄의 유혹 앞에 연약한 자들이니, 더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단련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악한 이유를 우리의 연약함으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해서 이렇다라고 합리화하는 경우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체념합니다. 그리고 또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번 한주간도, 죄악 가운데 살다, 겨우 겨우 예배에 나왔습니다. 겨우 겨우 나온 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 더 힘을 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발버둥쳐야 합니다. 그래야 겨우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엄격한 율법적인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과 통치가 우리 삶에 온전히 임하기를 늘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안 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는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에스라가 될 수 있습니다. 에스라서를 읽다보면, 우리는 좋은 지도자를 갈망하게 됩니다. 좋은 지도자를 갖는 나라는, 좋은 지도자를 갖는 공동체만큼 복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겸손하게 인정해야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도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에스라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리더는 외로운 자리입니다. 때로는 하는 일에 비해 과대평가를 받을 수도 있지만, 어떨 때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부담스러운 역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래서 그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한 사람, 리더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어떤 모습의 리더이든, 그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그분과 심정을 통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에스라와 같이 우리 일상에서 영적 리더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가정의 영적 리더로, 직장에서는 직장의 영적 리더로, 학교에서는 학교의 영적 리더로, 교회에서는 교회의 영적 리더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아닌데, 나는 그런걸 할 수 없는데. 그런 마음을 갖는 순간, 하나님은 여러분들을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까지 이어졌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는 오늘도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는 오늘 1절 "이 일 후에"라는 말로 시작되는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아무리 겉이 다 멀쩡할지라도, 속이 무너지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는 것 같을 때, 예상치 못한 시험과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신앙이 드러나는 때입니다. 에스라는 충격적인 현실 앞에서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깊이 묵상하고, 진실한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함께 회개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이 일 후에"의 순간들에서 에스라의 모습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악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지 맙시다. 오히려 그 순간,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약함은 인정하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발버둥쳐서, 그 죄의 길에서 벗어나는 우리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그와 함께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공동체를 품고 기도하는 그 한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며, 우리가 잘 안되는 것은 누구 때문이야, 이런 습관을 버리고, 우리도 에스라처럼 공동체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여기시고, 또 에스라의 결단을 함께 기억합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지키며 가르치는 사람, 민족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눈물로 기도하는 사람, 많은 말보다, 침묵 가운데서도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진정한 영적 리더가 되는 역사를 소망해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에스라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그분과 심정을 통하며,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영적 리더로 승리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