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4)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 viewsNotes
Transcript
11 : 16 이 세대를 . ‘세대 msv, generation)’로 번역된 ‘게네안’ 은 ‘한 사랍의 출생 (birth) ’ 혹은 ‘후손 (descent) ’ 이라는 뜻이 있는 ‘게네아(yEVEá)’ 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게네。F 는 한 세대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통일한 시대에 살고 있는 개개인 혹은 전체 사람들 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통일한 기사를 기록한 녹7:31 에서는 ‘이 세대의 사랍’ 으로 묘사하였다. 특히 ‘게네아’ 는 예수님에 의해 자주 사용되었는데 종종 ‘음란한’ (막 8:38), ‘악한’ (12 :45), ‘믿음이 없고 패역한’ (17 : 17) 이란 수식어와 함께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11 : 16 이 세대를 . ‘세대 msv, generation)’로 번역된 ‘게네안’ 은 ‘한 사랍의 출생 (birth) ’ 혹은 ‘후손 (descent) ’ 이라는 뜻이 있는 ‘게네아(yEVEá)’ 에서 유래하였다. 따라서 ‘게네。F 는 한 세대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통일한 시대에 살고 있는 개개인 혹은 전체 사람들 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통일한 기사를 기록한 녹7:31 에서는 ‘이 세대의 사랍’ 으로 묘사하였다. 특히 ‘게네아’ 는 예수님에 의해 자주 사용되었는데 종종 ‘음란한’ (막 8:38), ‘악한’ (12 :45), ‘믿음이 없고 패역한’ (17 : 17) 이란 수식어와 함께부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본문에서도 예수께서는 자신을 메시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기위해서 이 용어를 사용하셨다. 즉 본문은 예수께서 천국으로 초대했으나, 그 초대를 거부한 당시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걷는 말이다.
본문에서도 예수께서는 자신을 메시야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지칭하기위해서 이 용어를 사용하셨다. 즉 본문은 예수께서 천국으로 초대했으나, 그 초대를 거부한 당시이스라엘 백성들을 일걷는 말이다.
11 : 16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πaL8tOLs KaØrl따VOLS Èv T따S <iyOpaLs, 파이디오이
11 : 16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πaL8tOLs KaØrl따VOLS Èv T따S <iyOpaLs, 파이디오이
스 카데메노이스 엔 타이스 아고라이스) . ‘장터 (RSV, market place)’ 로 번역된 ‘아고라이스’ 는 ‘회집 장소 (place of assembly)’ , ‘공회소 (forum)’ 라는 돗을 가진 ‘아고라(야opá)’ 의복수형이다. 당시 ‘아고라 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넓은 광장으로서, 여기에서는 교역(행 17 :5)과 토론(행 17 :17), 재판이 열렸다(1 9 : 38). 특히 본문에서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쓰인 것을 통해
스 카데메노이스 엔 타이스 아고라이스) . ‘장터 (RSV, market place)’ 로 번역된 ‘아고라이스’ 는 ‘회집 장소 (place of assembly)’ , ‘공회소 (forum)’ 라는 돗을 가진 ‘아고라(야opá)’ 의복수형이다. 당시 ‘아고라 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넓은 광장으로서, 여기에서는 교역(행 17 :5)과 토론(행 17 :17), 재판이 열렸다(1 9 : 38). 특히 본문에서 이 단어가 복수형으로 쓰인 것을 통해
57 마태복음 11:7-19
57 마태복음 11:7-19
당시 아이들이 장터들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놀았던 일상의 단변을 엿볼 수 있다.
당시 아이들이 장터들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놀았던 일상의 단변을 엿볼 수 있다.
레구신 에윌레사벤 휘민 카이 우크 오르케사스데 17 가로되 우리가 너회 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회가 춤추지 않
레구신 에윌레사벤 휘민 카이 우크 오르케사스데 17 가로되 우리가 너회 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회가 춤추지 않
가로되 -항과 우리가-피리 용 용어도 너희 흘 향하여 않고 너 희가 충추지 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가로되 -항과 우리가-피리 용 용어도 너희 흘 향하여 않고 너 희가 충추지 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회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합과 같도다
너회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합과 같도다
우 리가 얘 곡하여도 아니 너회가 가슴올 치지 하였다11 : 17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우리가 애곡하여도 . ‘우리가 · 피리를 불어도’ 로 번역된 ‘에윌레사멘’ 은 ‘피리를 불다’ (고전 14:7) 라는 뜻을 가진 ‘아울레오 (aúÀÉ띠 )’ 에서 유래하였다.
우 리가 얘 곡하여도 아니 너회가 가슴올 치지 하였다11 : 17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우리가 애곡하여도 . ‘우리가 · 피리를 불어도’ 로 번역된 ‘에윌레사멘’ 은 ‘피리를 불다’ (고전 14:7) 라는 뜻을 가진 ‘아울레오 (aúÀÉ띠 )’ 에서 유래하였다.
당시 이스라엘 풍습에 따르면 결혼식에서 피리를 불면 주로 남자들이 거기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한편 ‘애곡하여도’ 로 번역된 ‘에드레 네사멘’ 은 ‘애도하다 ’ , ‘고통과 슬픔으로 비통해 하다 CRSV, wailed)’ 란 뜻을 가진 ‘드레네오 (6pT)vÉω)’ 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장례식에서 여인들의 애곡하는 소리에 맞추어 가슴을 치며 비통해하던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흉내내는 놀이의 광경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절에 묘사된 이 놀이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팀이 계속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맥적으로 볼 때, 본절은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및 그의 투옥에도 아무런 반웅을 보이지 않고 구약에서 거듭 예언된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나 영적으로 완악하여 그것에도 무감각하고 무관심하였던 당시의 유대인들을 비유한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이 비유는 다음절에서 보듯이 금욕적인 세례 요한을 비난하였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예수님도 비난하였던 유대인 들의 바로 이와 같은 유아기적 반항심을 지적하신 것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항상 비 풀어지고 굳은 마음을 가진 ‘유치한 (childish) 아이들’ 같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세대들도 구원의 기쁜소식을 경멸하며 정의와 진리에는 무관심한 반면 쾌락과 권력에는 눈이 어두워 있다는 점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본문에 동장하는 아이들과 별다를 바 없다.
당시 이스라엘 풍습에 따르면 결혼식에서 피리를 불면 주로 남자들이 거기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한편 ‘애곡하여도’ 로 번역된 ‘에드레 네사멘’ 은 ‘애도하다 ’ , ‘고통과 슬픔으로 비통해 하다 CRSV, wailed)’ 란 뜻을 가진 ‘드레네오 (6pT)vÉω)’ 에서 유래하였다. 이것은 장례식에서 여인들의 애곡하는 소리에 맞추어 가슴을 치며 비통해하던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문은 아이들이 어른들의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흉내내는 놀이의 광경의 비유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본절에 묘사된 이 놀이는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한 팀이 계속적으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맥적으로 볼 때, 본절은 세례 요한의 회개 선포 및 그의 투옥에도 아무런 반웅을 보이지 않고 구약에서 거듭 예언된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나 영적으로 완악하여 그것에도 무감각하고 무관심하였던 당시의 유대인들을 비유한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이 비유는 다음절에서 보듯이 금욕적인 세례 요한을 비난하였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예수님도 비난하였던 유대인 들의 바로 이와 같은 유아기적 반항심을 지적하신 것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은 항상 비 풀어지고 굳은 마음을 가진 ‘유치한 (childish) 아이들’ 같았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세대들도 구원의 기쁜소식을 경멸하며 정의와 진리에는 무관심한 반면 쾌락과 권력에는 눈이 어두워 있다는 점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애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본문에 동장하는 아이들과 별다를 바 없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 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회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와서 요한이 않고 억지도 야니 마시지도-하얘
18 요한이 와서 먹지 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회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와서 요한이 않고 억지도 야니 마시지도-하얘
저회가 말하기률-하더니 귀신이 을혔다
저회가 말하기률-하더니 귀신이 을혔다
11: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퍼ÀØEv yàp ’ lwáVl끼S μ끼TEtcr6tωv μ껴TE πtVIωv, 엘덴 가르 이오안네스 메테 에스디온 메테 피논). 한글 개역 성경은 ‘왜냐하면 (NIV, for) ’ 이란 뜻을 가진 ‘가르’ 의 번역을 생략하여 문맥적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가르’는 17절과 본절을 연결시키는 이유 접속사이다. 즉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의도하는 것
11: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퍼ÀØEv yàp ’ lwáVl끼S μ끼TEtcr6tωv μ껴TE πtVIωv, 엘덴 가르 이오안네스 메테 에스디온 메테 피논). 한글 개역 성경은 ‘왜냐하면 (NIV, for) ’ 이란 뜻을 가진 ‘가르’ 의 번역을 생략하여 문맥적 의미를 살리지 못했다. ‘가르’는 17절과 본절을 연결시키는 이유 접속사이다. 즉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의도하는 것
이 바로 본절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그가 살았던 곳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며 풍요롭고 편리한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던 광야였다 (3: 1). 광야는 예수님이 사단으로부터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을 받을 만큼 먹을 것이 없고 돌과 모래만 무성한 척박한 땅이었다 (4:3) , 세례요한은 거친 약대 혈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생활을 했으며 (3 :4),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았다
이 바로 본절에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한편 요한은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그가 살았던 곳도 많은 사람이 모여들며 풍요롭고 편리한 도시가 아니라 사람이 살지 않던 광야였다 (3: 1). 광야는 예수님이 사단으로부터 돌을 떡으로 만들어 먹으라는 유혹을 받을 만큼 먹을 것이 없고 돌과 모래만 무성한 척박한 땅이었다 (4:3) , 세례요한은 거친 약대 혈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으로 생활을 했으며 (3 :4), 술은 전혀 마시지 않았다
(녹 1: 15), 요한은 예수님과 달리 사람들의 식사 초대에도 응한 적이 없었다 (9:10). 이런 요한을 보고 사람들은 귀신들렸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6: 16) 자랑 삼아 금식하 면서도(녹 18 :12) 진실된 마음으로 금욕 생활하던 세례 요한을 비난했다. 결국 유대인의 금식은 경건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 많은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세례 요한이 그들의 사치한 잔치에 초대받아도 응하지 않자 유대인들은 가장 모독적인 욕설이라 할 수 있는 귀신들혔다는 말로써 비난했던 것이다(1 2: 24), 유대인들은 장터의 아이들처럼 정말로 유치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사람을 판단했던 것이다.
(녹 1: 15), 요한은 예수님과 달리 사람들의 식사 초대에도 응한 적이 없었다 (9:10). 이런 요한을 보고 사람들은 귀신들렸다고 말했다. 유대인들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6: 16) 자랑 삼아 금식하 면서도(녹 18 :12) 진실된 마음으로 금욕 생활하던 세례 요한을 비난했다. 결국 유대인의 금식은 경건을 위한 것이 아니고 더 많은 명예를 얻기 위한 것이었다. 세례 요한이 그들의 사치한 잔치에 초대받아도 응하지 않자 유대인들은 가장 모독적인 욕설이라 할 수 있는 귀신들혔다는 말로써 비난했던 것이다(1 2: 24), 유대인들은 장터의 아이들처럼 정말로 유치한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자기들의 편리에 따라 사람을 판단했던 것이다.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얘 말하기를 보라 먹기 를 탑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 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얘 말하기를 보라 먹기 를 탑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 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태복음 11:7-19
태복음 11:7-19
옳다 항융 얻느니라 지혜 는 언하여 행한 일로 二l
옳다 항융 얻느니라 지혜 는 언하여 행한 일로 二l
11 : 19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뼈때뼈 뼈뼈 KaL oLvoπ&미S,안드로포스 파고스 카이 오이노포테스) .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사고와 형식적인 경건 생활에 동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질책까지 하던 세례 요한을 비난했다. 특히 그의 금욕주의를 자기 편의대로 비난하던 유대인들은 또 한편으로 예수를 비난했는데, 그 비난의 내용은 세례 요한의 그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본문의 ‘먹기를 탐하고’ 로 번역된 ‘파고스’ 는 단순히 먹는 것을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너무 많이 먹는 게걸스러운 탐식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포도주를 즐기는’으로 번역된 ‘오이노포테스’ 역시 술을 즐겨하는 정도를 넘어선 ‘많은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는 술주정뱅이’를 가리킨다. 사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 일을 금식하셨고(4: 2), 때때로 식사할 틈도 없이 열심히 사역하셨다(막 3:20). 그럼에도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달리 세리들과 식사를 하셨고(막 9: 10), 가나 혼인 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다(요 2:8 .9). 예수님이 세리들과 함께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죄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구속 사역의 일부였다. 그러나 바라새인들은 그런 예수님을게걸스러운 탐식가 혹은 술주정뱅이로 몰아세우고 (9:11) , 죄인들과 세리들의 친구라고 비난하였다. 자신들과 같지 않으면 모든 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유대인들의 유치한 독단이 그대로 드러나고있다.
11 : 19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뼈때뼈 뼈뼈 KaL oLvoπ&미S,안드로포스 파고스 카이 오이노포테스) .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사고와 형식적인 경건 생활에 동조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질책까지 하던 세례 요한을 비난했다. 특히 그의 금욕주의를 자기 편의대로 비난하던 유대인들은 또 한편으로 예수를 비난했는데, 그 비난의 내용은 세례 요한의 그것과 정반대의 것이었다. 본문의 ‘먹기를 탐하고’ 로 번역된 ‘파고스’ 는 단순히 먹는 것을 즐기는 정도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너무 많이 먹는 게걸스러운 탐식가’를 의미한다. 그리고 ‘포도주를 즐기는’으로 번역된 ‘오이노포테스’ 역시 술을 즐겨하는 정도를 넘어선 ‘많은 술을 습관적으로 마시는 술주정뱅이’를 가리킨다. 사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 일을 금식하셨고(4: 2), 때때로 식사할 틈도 없이 열심히 사역하셨다(막 3:20). 그럼에도 예수님은 세례 요한과 달리 세리들과 식사를 하셨고(막 9: 10), 가나 혼인 잔치에서는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다(요 2:8 .9). 예수님이 세리들과 함께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요, 죄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려는 구속 사역의 일부였다. 그러나 바라새인들은 그런 예수님을게걸스러운 탐식가 혹은 술주정뱅이로 몰아세우고 (9:11) , 죄인들과 세리들의 친구라고 비난하였다. 자신들과 같지 않으면 모든 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유대인들의 유치한 독단이 그대로 드러나고있다.
11: 19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È8LKaL(뻐1'\ i) aO<þta ò:rròTWV ~P'Yωv aψri)s, 에디카이오데 헤 소피아 아포 톤 에르곤 아우테스). 표준 새번역은 본문을 ‘지혜는 그것이 한 일로 그 옳음이 증명된다’로 번역하였다. ‘옳다 함을 얻느니라’로 번역된 ‘에디카이오데’ 는 ‘옳다고 증명되다 (NIV, is proved right)’ , ‘옳다고 밝히다 (NASB,vindicated)’ 는 뜻을 가진 ‘디카이오오 (8LKaLÓω) ’ 의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형이다. 부정과 거가 때때로 격언이나 일반적인 진리를 가리킬 때는 시간적인 의미가 사라지고 객관적인 진리를 말하는 의미를 가진다. 본문도 구약의 잠언과 같은 일종의 격언으로 볼 수 있다.
11: 19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È8LKaL(뻐1'\ i) aO<þta ò:rròTWV ~P'Yωv aψri)s, 에디카이오데 헤 소피아 아포 톤 에르곤 아우테스). 표준 새번역은 본문을 ‘지혜는 그것이 한 일로 그 옳음이 증명된다’로 번역하였다. ‘옳다 함을 얻느니라’로 번역된 ‘에디카이오데’ 는 ‘옳다고 증명되다 (NIV, is proved right)’ , ‘옳다고 밝히다 (NASB,vindicated)’ 는 뜻을 가진 ‘디카이오오 (8LKaLÓω) ’ 의 부정과거 수동태 3인칭 단수형이다. 부정과 거가 때때로 격언이나 일반적인 진리를 가리킬 때는 시간적인 의미가 사라지고 객관적인 진리를 말하는 의미를 가진다. 본문도 구약의 잠언과 같은 일종의 격언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 ‘지혜(소피 아)’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홍미롭게도 본문의 지혜는 의인화 (personifica tion) 되었다. 구약 잠 8 : 22-36에서도 지혜가 의인화되어 등장하며, 거기에서의 지혜는 ‘로고스(logos) ’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서그스 (Suggs) 는 본문에서 마태가 예수님을 ‘성육신하신 지혜’ 로 보는 ‘지혜 기독론 (Wisdom Christology)’ 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전 1 :24). 결국 본문에서 역시 ‘지혜’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지혜(소피 아)’는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홍미롭게도 본문의 지혜는 의인화 (personifica tion) 되었다. 구약 잠 8 : 22-36에서도 지혜가 의인화되어 등장하며, 거기에서의 지혜는 ‘로고스(logos) ’ 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서그스 (Suggs) 는 본문에서 마태가 예수님을 ‘성육신하신 지혜’ 로 보는 ‘지혜 기독론 (Wisdom Christology)’ 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한다(고전 1 :24). 결국 본문에서 역시 ‘지혜’는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사를 기록한 녹 7:35 에는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표준 원문 (Textus Receptus) 과 KJV는 누가복음을 따라 본문의 ‘행한 일로(에르곤)’ 를 ‘자녀들로 (TÉKVωV, 테크논)’ 란 표현으로 변경시켰다. 그러나 본문과 누가복음은 강조점에 따른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이러한 본문 변조는 의미가 없다. 누가복음은 지혜이신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사를 기록한 녹 7:35 에는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라고 되어 있다. 그리고 표준 원문 (Textus Receptus) 과 KJV는 누가복음을 따라 본문의 ‘행한 일로(에르곤)’ 를 ‘자녀들로 (TÉKVωV, 테크논)’ 란 표현으로 변경시켰다. 그러나 본문과 누가복음은 강조점에 따른 차이를 보이고 있으므로 이러한 본문 변조는 의미가 없다. 누가복음은 지혜이신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정당성을 인정받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이사도행전과 더불어 선교적인 차원에서 쓰여진 것을 감안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예수의제자들을 부각시킨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자신의 행위와 사역으로 자신이 지혜이시며 메시야이심을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이란 앞서 마태복음 8 . 9장에서 하셨던 사역을 가리킨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되심은 다른 누구에게서가 아니라 예수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복음이사도행전과 더불어 선교적인 차원에서 쓰여진 것을 감안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는 예수의제자들을 부각시킨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반면에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자신의 행위와 사역으로 자신이 지혜이시며 메시야이심을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행하신 사역이란 앞서 마태복음 8 . 9장에서 하셨던 사역을 가리킨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되심은 다른 누구에게서가 아니라 예수 자신의 행동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