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심은데 콩나고, 핱(heart) 심은데 핱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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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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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손에 오렌지가 있다고 쳐봅시다.
제가 이 여리고 여린 아이유 같은 팔로
오렌지를 최선을 다해서 짜면
뭐가 나올까요?
오렌지 과즙이 나오겠죠?
이 아이유같은 팔을
열심히 벌크업해서 사과를 한 손으로
짜낸다고 생각해볼게요.
그럼 뭐가 나올까요?
사과즙이 나옵니다.
너무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죠?
오렌지를 짰는데 사과과즙이 나오진 않죠,
사과를 짰는데 오렌지 과즙이 나올 수가 없겠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는 누구나 친절하고 예의바르게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가 혹은 내 삶의 환경이
나를 꽉 짜듯이 조여오기 시작하면 얘기가 달라져요.
시험 때문에 스트레스 받거나, 친구와 다투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은 압박의 순간이 찾아오면,
내 안에 무엇으로 채워져있는지가 흘러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런 순간에 여러분의 입에서
욕설이나 불평, 짜증섞인 비난이 튀어나온다면
그것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쓴 물로 가득차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왜 말을 조심해야하는지,
어떻게 하면 말을 조심할 수 있는지를
나눠보겠습니다.
1. 말을 조심해야하는 이유
1. 말을 조심해야하는 이유
1) 많이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것이기 때문
1) 많이 알고 있다는 건 그만큼 책임이 막중한 것이기 때문
먼저, 오늘 본문말씀 가장 첫머리에서
저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가르치는 사람인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제가 되려고 해서 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가르치는 선생일을
쪼금 했었습니다.
저도 몰랐었는데
고모부께서 시키신 과외선생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르치는게 너무 재미있어요.
전도사님은 누군가를 가르칠때
세상 그렇게 행복하고 도파민이 막
터져나오는 사람이라는 걸
의도치 않게 발견하게 되었죠.
그런데 한 번은,
전도사님이 잘못 가르쳐 준 것 때문에
굳이 안 틀려도 될 시험 문제를 틀려서
상심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때 잠시 브레이크가 걸렸던 것 같아요.
아 이거 가르치는 일 이거
우습게 보면 안 되겠구나…
내 말 실수 하나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한 학생의 대학 합격여부가
갈라질 수도 있겠구나.
그때부터 가르치기 전에
항상 팩트체크를 다시 하고,
전도사님도 가르치기 위해서
다른 유명한 선생님들 강의를 다시 들었었어요.
야고보서 저자가 선생이 되려고 하는 사람이 많아서는
안 된다고 했었던 이유는
가르침에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인거에요.
가르침이라는 것이 사실 뭐 대단한게 아니라,
나는 알고 있고, 누군가는 모르고 있을때
정보를 얘기해주면 그게 가르침인거죠.
내 친구가 모르고 있는 정보에 대해서
야, 너 그것도 몰라? 이건 ~~~잖아
라고 하는 것도 넓게 보면 가르침인거죠.
그런데, 내가 기껏 어떤 정보를 가르쳐줘서
내 친구가 그대로 행동했는데,
내 정보가 잘못된 거였어요.
그러면 상황이 굉장히 민망하겠죠.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하는 겁니다.
말은 굉장히 신중해야하는 겁니다.
나는 그런 줄 알고 무심하게 툭툭 내뱉지만,
누군가는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야고보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다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누구든지,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는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을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온 몸을 다스릴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거죠.
말 한 마디만 잘 다스려도
당신은 온전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2) 말은 불이요, 불의의 세계이기 때문
2) 말은 불이요, 불의의 세계이기 때문
그래서 야고보서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혀는 불이요, 혀는 불의의 세계입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지체이지만, 온 몸을 더럽히며,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지르고, 결국에는 혀도 게헨나의 불에 타버립니다.
내가 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누군가의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버리기도 하고,
내 스스로가 온 몸을 더럽히기도 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안타깝게도
악의를 갖지 않고 있어도
말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어요.
성경은 아니지만,
어느 한 지혜로운 책에는
이렇게 적혀있기도 해요.
사람은 가끔 악의없이 말실수를 하는 수가 있다.
말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악의가 없어도
누군가의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버릴 수 있다는거죠.
우리가 생각없이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누군가는 인생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전도사님도 그렇게 실수했던 경험이 있어요.
전도사님은 개인적으로 성형을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나의 낮아진 자존감을 썩어 없어질
외모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인 것처럼 보여서
안 좋아해요.
전도사님 눈에 보기에도 별로 안 좋고요.
그래서 태연을 덕질하다가 그만두기도 했었죠.
그런데 고등학교때,
전도사님하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느날 보니까 코를 성형한거에요.
그 친구가 코를 성형한 시기가
그 친구가 막 외모에 관심을 가지던 시기였어요.
살도 빼고, 옷에도 관심을 갖고,
남들한테 드러나는 외모에 엄청 집중하더라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코성형수술을 해서
제가 그냥 툭 내뱉었죠.
야, 하나도 안 어울려,
성형한 코가 진짜 예쁘다고 생각하냐?
진짜 아름다움은 내면에서 나오는거야.
근데 그 친구가 사고가 났었더라고요.
그래서 코뼈가 부러져서
성형을 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많이 다쳤더라고요.
제 혓바닥을 성형하고 싶었습니다.
악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친구에게 진짜 아름다움은
외모에서 오는게 아니라는 걸
꼭 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크나큰 실수를 했죠.
그 뒤로 그 친구가 저 만나면
괜히 멋쩍어하고, 눈치를 보고,
저랑 얼굴을 마주보는 걸 꺼려하더라고요.
사고난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누군가의 눈치까지 보게
제가 그렇게 만든거죠.
이처럼 말은 그냥 뚫린 입이라고
막 떠든다고 해서 말이 되는게 아닙니다.
말에는 책임이 따르게 되어 있어요.
또한 말은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의 인생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버릴 수도 있어요.
심지어 말 때문에
나의 온 몸이, 내 존재 자체가
더러워집니다.
그리고 결국 내 혀도 불에 타버리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말을
어떻게 하면 조심할 수 있을까요?
2. 어떻게 하면 조심할 수 있는지?
2. 어떻게 하면 조심할 수 있는지?
1) 듣기만 해도 된다.
1) 듣기만 해도 된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누구든지 듣기는 빨리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고, 노하기도 더디 하십시오.
듣기는 빨리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라,
쉽게 말하면 잘 들으라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 만큼이어도
참아보는거에요.
말 끊으면서 말하는 사람들 있죠?
전도사님도 성질이 급해서 그럴 때가 종종 있는데,
정말 안 좋은 습관입니다.
끝까지 다 듣고 그 다음에 천천히 말해도 아무 문제 안 생겨요.
그러니까 하고픈 말이 있어도 일부러 더디하십쇼.
그리고 잘 들어주세요.
전도사님의 형이 전도사님이랑
아예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항상 집에 있으면 떠드는 건
전도사님이었어요.
하루 왠종일 떠드는 동안
그걸 다 들어주는 사람은 형이었어요.
진짜 답답했죠.
그래서 한 번은 형한테 말도 했었어요.
아니, 듣고만 있지 말고 형도 형 얘기를 쫌 해라.
답답하게 왜그러고 있냐.
그때 형은 항상 이렇게 대답했어요.
허허. 뭐.
아오 답답해…ㅋㅋㅋㅋㅋ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난 뒤에
두 사람의 인격이
하늘과 땅의 차이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형은 그저 듣기만 했어요.
항상 누군가의 말을 들어주기만 했어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남들보다 훨씬 훌륭한 인격을 갖추게 된거죠.
그리고 저는 그렇게 바보같이 답답하게
듣기만했던 그 형을
아직까지도 존경하고, 앞으로도 그럴겁니다.
형이 하는 말은 입닫고 순종이에요.
잘 듣기만 했을 뿐인데,
누군가로부터 큰 신뢰를 얻게 된 것이죠.
2) 잘 들어줘야 한다.
2) 잘 들어줘야 한다.
들어주기만 해도 성공이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깊은 물과 같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낸다.
잘 들어줘야 합니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듣는다는 건,
그 사람의 말의 뒷편에 숨겨져 있는
그 사람의 감정을 읽어낸다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하는 말을 그냥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 저 말을 하는 의도는 뭘까?
저 말을 하는 사람의 감정은 어떤 감정일까?를
고민하며 듣는 것입니다.
지난 번 설교 때 말했었죠.
전도사님의 부모님은
전도사님이 의사 아니면 목사가 되기를
굉장히 많이 강조하셨었다고요.
그때의 진규가 슬기롭지 못해서
왜 나한테 꿈을 강요해! 라고 대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진규가 슬기로웠더라면,
그 말 뒤에 감춰진 부모님의 마음을 봤을거에요.
세상에서 보란듯이 성공했으면 하는 마음과
신앙적으로 올바로 서기를 소망하는 부모님의 마음을
봤을겁니다.
그딴식으로 살거면
집에서 나가! 라고 하는 부모님의 말
뒷편에 감춰진 감정을 읽었더라면
진짜 집을 나가는게 아니라, 행동을 바꿨을거에요.
이게 잘 듣는거에요. 이게 경청이에요.
사람의 생각과 마음 속에 있는 깊은 물을
길어 올리는게 경청이죠.
3)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근본을 바꿔야 한다.
3)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근본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들어주는 건 빠르게 하고,
말하는 건 더디하는 사람,
말하는 사람의 말 뒷편에 있는
그 마음을 잘 캐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어요.
우리의 근본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무화과나무가 올리브 열매를 맺거나, 포도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짠 샘은 단 물을 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진심이 없는데,
우리가 짠 물을 내는 샘인데,
단 물을 낼 수가 없겠죠.
아무리 묵묵하게 들어줘도,
그 사람의 마음과 의도를 파악해도,
내가 아무리 말을 줄이고 줄여도,
내 마음에 사랑이 없어서 진실되지 못하면
아무짝에 쓸모 없다는거에요.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진실하기 위해 힘써야한다는 것입니다.
진실한 마음은 내 마음대로
내가 스스로 가스라이팅한다고
될 수 없죠.
전도사님이 늘 강조하는거지만
마음의 문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내 마음대로 하는게 아닙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하는거죠.
“하나님, 내가 오늘 하루 만나게 되는 모든 사람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내가 오늘 대화하는 사람들의
입술의 말만 듣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의 소리를 캐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께 진심어린 마음을 구하고,
그 마음으로 듣고, 말하며,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언어로 드러내는 우리 산성교회 청소년부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되게 로맨틱한 고백이에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너는 나고, 나는 너라고,
우리는 사랑으로 연합한 하나의 공동체라고
고백하는 말이에요.
우리가 방금 읽은 이 아름다운 고백이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첫 인간의 언어입니다.
그 이전에도 뭐 남자 혼자 뭐 중얼거리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주느라
뭐라뭐라 떠들든 말은 했겠죠.
그런데,
그런 말들은 하나도 기록된 것이 없고,
이 사랑의 고백이 성경 안에 최초로 등장한
인간의 언어로 나와 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헐뜯고, 상처주고, 저주하라고
언어를 주신 것이 아니라는겁니다.
서로를 세워주고, 사랑을 표현하고,
아름다움을 노래하라고 ‘말’을 주신거에요.
놀랍지 않나요?
저는 우리 청소년부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으로 가득차서
이런 사랑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를 위해서는 내가 말을 스스로 아끼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콩심은데 콩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심은데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옵니다.
하나님께 사랑의 마음을 주시길,
진심어린 마음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먼저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입술의 말로
누군가의 인생을 세워주는 사람,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