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44) 추위를 두려워하지 말고 불가를 내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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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핵심은 베드로의 부인
가장 핵심은 베드로의 부인
베드로는 예수님의 예언처럼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베드로는 누구보다 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부인한데는 요인이 있습니다.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사막의 밤은 매우 춥습니다. 낮에 땅을 녹일 것 같던 해가 지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듯이 매서운 추위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광야에 머물렀을 때에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해를 막아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추위를 피하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밤에 체포되셨고 깊은 밤은 추웠습니다.
18절에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아랫사람들이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 곁에 있던 베드로도 아무런 의심없이 생각없이 함께 그들과 불을 쬤습니다. 그것이 요인이 되었습니다.
25절에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의 질문에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추위는 ‘열’의 부재입니다.
추위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를 거부하고 극복하기를 원하죠. 날씨가 추울 때 불이 가까이 있으면 열기 때문에 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포와 두려움의 제거는 ‘안일함’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나태함이나 그것을 유지하고자 하는 욕심, 타성 등이 찾아오게 됩니다.
베드로는 지금 함께 불을 쬐지 말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추위에 매맞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난처한 처지에 놓였는데 자기는 추위를 피하자고 불 옆으로 가는 것은 이미 말하기도 전에 예수님을 부인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기쁘고 즐거울 때 함께 즐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누군가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그것을 나몰라라 하고 외면한 채 자신만 따뜻하게 살아가려는 태도는 이미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와 같습니다.
예전에 저희 삼촌이 저한테 지갑을 줘보라고 하시고 지갑이 비어있으니 용돈을 넣어주시면서
‘남자는 지갑이 비어있으면 춥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참 기억에 남아요.
그 추위를 피하기 위해서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추위가 두려우니까 즉, 돈이 없는 상황이 두려우니까 함께 돈을 벌기 위해 예수님을 버리는 것입니다. 종이나 아랫사람이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들을 다 그렇게 사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를 파는 유다
예수를 파는 유다
유다가 원래 배신하려고 예수님을 쫓거나 성품이 나쁜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좋은 의도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추위가 자신 곁으로 가까이 왔을 때 자기도 모르게 사람들과 함께 불가에 있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군대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 편에 서서 예수를 팔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아서 어디로 데리고 갑니까??
안나스에게 데리고 갑니다.
이 이름이 낯설겠지만 이 시대 사람들 중에 안나스를 모르는 유대인은 없었습니다. 그는 우리로 이야기하자면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와 종교의 지도자였기에 우리의 대통령보다도 훨씬 더 권한이 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13절에 ‘그 해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인데 예수님을 안나스에게 데리고 간 것
그리고 가야바가 안나스의 사위라는 점입니다.
대통령직을 ‘사위’에게 줄 수 있습니까?? 만약에 선출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고, 세습이라면 아들에게 주어야 하는데 사위가 다음 대제사장이 된 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그리고 예수를 잡아서 먼저 안나스에게 데려간 것은 그가 실질적인 대제사장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안나스와 그의 추종 세력들은 견고한 진처럼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했습니다. 마치 불 주변을 장악한 무리와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순종적이고 호의적인 사람들을 자신들과 함께 불을 쬐게 해줍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추방하여 추위에 얼어 죽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강하게 자신들을 거부한 사람이며, 그들이 불을 장악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백성들에게 선포하였습니다. 그러자 가야바는 마치 예수님이 불 자체를 없애려는 것처럼 거짓으로 백성들을 선동하며 예수를 죽이는 것이 우리 모두가 따뜻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렇게 이들은 권력을 유지하고 자신들을 기득권을 지키려 사람의 목숨도 서슴치 않고 버릴 수 있는 괴물들이 되었습니다.
나도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럴 수 있다
우리도 일상에서 추위를 피해 교회에 왔다가 오히려 추위에 힘들어 하는 순간이 옵니다.
때로는 의지적으로 불을 피해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베드로는 예수님께 예수님이 죽게 되면 자신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겠다는 결의로 대답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사탄아 물러가라’였습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씀해주시는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베드로가 진정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다면 군대들과 맞서 칼로 귀를 자를 것이 아니라 불가에서 나와서 추위에 떨며 예수님을 위해 기도하고,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고 함께 십자가를 졌어야 합니다. 그렇게 했으면 100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방식으로 신앙생활 합니다. 칼 들고 칼부림하며 용감한 척은 다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여인의 물음에는 꼬리를 내리며 부인하고 도망치는 베드로와 닮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바울 사도도 이를 깨닫고 자신은 자신에게 유익하던 불을 버리고 취조받고 십자가 지는 예수님 곁으로 가겠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돌아가지만 결국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곁으로 갔습니다.
우리도 결국에 예수님 곁으로 갈 것입니다.
따뜻함을 쫓아 세상과 타협하고 불의를 보고 눈 감지 마세요.
가난하거나 굶주리는 것을 두려워하여 비겁하게 살지 마세요.
그런 유혹과 따스함을 모두 해로 여기고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님을 얻기를 갈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