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과 실라를
Notes
Transcript
제목: 바울과 실라를
제목: 바울과 실라를
본문: 사도행전 16장 16-25절
본문: 사도행전 16장 16-25절
찬송: 459장 누가 주를 따라
찬송: 459장 누가 주를 따라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우리는 지난주에 놀라운 은혜를 함께 나누었습니다. 바울이 귀신들린 불쌍한 여종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자유케 해준 이야기였습니다. 그 여인은 오랫동안 귀신에게 사로잡혀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오라" 명령하자 귀신이 즉시 나갔습니다. 복음의 놀라운 능력이 나타난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19절을 보면 "여종의 주인들은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붙잡아 장터로 관리들에게 끌어갔다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자마자 바울과 실라는 붙잡혀서 끌려갔습니다. 좋은 일을 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오늘 우리는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세상에서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충돌하는 두 가치관
충돌하는 두 가치관
본문에 등장한 여종의 주인들을 보면 그들에게 그 여자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돈 버는 기계였습니다. 귀신들려서 점을 치는 것도 그들에게는 상관없었습니다. 돈만 벌어다 주면 됐기 때문입니다.
본문 19절에서 "자기 수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그들의 소망이 뭐였습니까? 바로 돈이었습니다. 그 여종이 귀신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진 것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오직 "이제 돈을 더 이상 못 벌겠구나" 이것만 생각했습니다.
이게 세상의 눈입니다. 사람도 이용할 수 있으면 이용하고, 돈이 되면 뭐든지 하려 합니다. 요즘도 마찬가지 입니다. 돈만 되면 사람을 속이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세상입니다. 심지어 가족도, 친구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얼마든지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달랐습니다. 그 여종이 돈을 벌어주든 말든 상관없었습니다. 그저 귀신에게 사로잡혀 고생하는 한 사람을 보았을 뿐입니다. "이 사람이 자유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여자를 해방시켜 주면 큰 문제가 생길 줄 뻔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복음이 그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돈보다 소중하다. 한 사람의 자유가 경제적 이익보다 중요하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돈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을 따를 것이냐. 우리는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믿고 사는 우리들은 세상과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돈이 최고야, 이익이 우선이야" 하는데, 우리는 "사람이 소중해, 정직이 중요해" 이렇게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농사짓는 우리 성도들님께서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에 농사짓는 그 시기에 딱 맞는 날씨가 허락되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교회는 가야 하는데... 농사일도 해야 하는데..." 이런 고민 한 번쯤은 다 해보셨을 것입니다.
장사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직하게 장사하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처럼 적당히 속이면 돈은 더 벌 것 같고. 이런 갈등 말입니다.
또 이웃들이 뭐라고 합니까? "교회 다녀봤자 뭐 달라지는 게 있습니까? 돈 많이 벌고 배 부르고 등이 따뜻하면 제일이다." 이런 소리를 한번쯤은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복음의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것입니다. 이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복음대로 살려고 하는 한 계속 경험하게 될 일입니다.
복음 받은 자의 각오
복음 받은 자의 각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바울 일행은 네 명이었습니다. 바울, 실라, 디모데, 누가. 그런데 왜 바울과 실라만 붙잡아갔을까요?
바울과 실라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반면 디모데와 누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이 보기에 이 복음이라는 것을 퍼뜨리는 주동자들은 유대인들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만 골라서 잡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복음의 사람들이 세상에서 먼저 미움받는다는 뜻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대로 사는 사람들이 세상의 표적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제자들은 다 말렸습니다. 특히 베드로는 "주님, 그러실 수 없습니다. 거기 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예루살렘에 가시면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해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것을 모르셨을까요? 아닙니다.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시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을 분명히 아셨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참혹할지, 그 아픔이 얼마나 클지 다 아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누가복음 9장 51절 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이 있음을 알고 계셨음에도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고통을 각오하시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6장 24절 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쉽게 말하면 이런 뜻입니다. "나를 따라오고 싶으면 각오해야 한다. 세상이 좋아하지 않을 일들을 감당해야 한다. 그래도 따라올 것이냐?"
또 마태복음 10장 22절 에서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면 미움받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붙잡혀 끌려가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변명했습니까? 억울하다고 소리쳤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끝까지 견디며 조용히 따라갔습니다.
이게 진짜 믿음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구나. 하나님의 뜻이 있울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순순히 따라간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믿음이 필요합니다. 복음 때문에 손해 보는 일이 생겨도, 사람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말입니다.
신앙생활 하다 보면 이런 일들이 생깁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니까 바보 취급받기도 하고, 교회 일 때문에 다른 약속을 못 지켜서 원망 듣기도 하고, 십일조 드리느라 가계가 빠듯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지? 다른 사람들처럼 대충 살면 안 되나?"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복음을 받은 사람의 삶입니다. 예수님도 그 길을 걸으셨고, 바울과 실라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도 그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이 길을 걷는 것이 우리의 특권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이 우리의 영광입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복음은 세상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의 가치관과 세상의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대로 살려고 하면 세상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그 길을 걸으셨고, 바울과 실라도 그 길을 걸었습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돈이 최고야" 할 때, 우리는 "사람이 소중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이익이 우선이야" 할 때, 우리는 "정직이 중요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더라도, 예수님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우리의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복음 때문에 당하는 어려움도 기쁨으로 감당하시고,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의 능력을 증명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바울과 실라를 통해 보여주신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복음을 받은 우리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깨닫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분별력을 주시옵소서. 세상의 가치관과 복음의 가치관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돈과 이익이 우선인 세상에서, 사람의 소중함과 정직함을 먼저 생각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또한 우리에게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복음 때문에 손해를 보게 되어도, 사람들에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아도, 바울과 실라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시듯 굳은 결심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특별히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는 믿음을 주시고,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 때문에 위축되는 성도들에게는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는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우리 중앙교회가 진정 예수의 마음을 품는 교회가 되어, 세상 한복판에서 복음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어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 교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바울과 실라의 믿음을 본받아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