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6장 12-23절(내 안의 한계를 넘어)

로마서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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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예수를 믿는 것을 예수와의 연합 이라고 합니다. 
믿음은 연합입니다. 
지식이나 감정적으로 나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아버지 이신 하나님과의 연합을 어떻게 이루어내셨는지를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주님은 의의 도구로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삶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13절 입니다.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 또한 우리의 눈과 손과 생각과 발과 입과 몸이 죄와 결별해야 합니다. 
죄에게 내어주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라는 것은 
자발적인 헌신과 자발적인 제공을 의미 합니다. 
우리의 삶을 
죄가 아닌 하나님께 의의 무기로 자발적으로 맡기는 것이 
우리의 선택으로 가능해 졌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누가 우리의 삶을 주도하며, 통치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하여 나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 됩니다. 
돈을 위해, 자리와 명예을 위해, 자존심을 위해, 욕망을 위해 살아간다면 
내 삶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은 
죄와 불의 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몸의 사욕과 불의의 무기에게 죄로 내어주지 않고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 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통치자, 주권자 이심을 고백하며, 
우리의 삶의 목적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가는 자가 그리스도인 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자를
 죄에 대하여 죽은 자 라고 정의 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절대로 / 죄가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과 마음을 주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습관화 하라고 명령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런 복음의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에게 예수의 충만이 있고,
예수의 죽으심에 따라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은자로 살아가야 하는데 
여전히 우리의 중심에는 나의 나된 것이 살아 주인 노릇 하며 죄의 길로 끌고 갑니다. 
 복음은 죄와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줍니다. 
15절 입니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문제는 복음에 있지 않고, 복음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죄와 싸우려 하지 않습니다. 
죄를 안 짓고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이것은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다니고, 직분과 봉사가 우리의 믿음을 확증하고, 성장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복음의 왜곡이며, 복음의 변질 입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은 
적당히 죄를 짓고, 나를 위해 살아도 회개 한번이면 된다고 안심시켜 주는 능력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 우리의 죄를 뒤치다꺼리 해주는 그런 은혜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의 종으로 살게 하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복음 앞에 선다는 것은 
나의 눈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채우고, 나의 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나의 입술로 하나님의 진리와 감사와 축복과 찬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의 손이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와 치유와 도움의 손길로 사용되는 것이며, 
나의 몸은 하나님의 노동력이 되어, 하나님의 땀으로 축축해져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의 모든 지체들이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는 것은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멀리하고, 십자가의 복음을 붙들고, 그것을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것의 배후, 원동력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기 때문 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를 나에게 적용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것은 
나의 실력과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 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죄를 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은혜를 망각하는 순간 우리에게 교만이 피어나고, 끌어 당기는 죄에 끌려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을 상실한 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질문합니다. 
16절 입니다.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바울은 지금 너희가 누구에게 순종하느냐 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누구에게 순종하고 있습니까? 무엇을 따르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는 자 입니다. 
17절 입니다. 
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교훈의 본 이라는 것은 틀을 의미 합니다. 
액체로된 물질을 넣어 어떤 모양을 가지게 만드는 틀 인데 /쉽게 붕어빵 기계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틀에 밀가루 반죽과 팥이나 슈크림을 넣고 가열하면 붕어빵이 나오는 것 처럼 
그리스도 라는 틀에 
복음과 우리의 중심의 순종을 넣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과 인격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훈의 본은 하나님의 자녀가 가지는 가치관, 인격, 신앙과 삶의 골격 이며, 
그리스도의 형상의 극치 입니다. 
반대로 19절에서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것 같이 라고 합니다. 
죄와 불의를 집어 넣으면 
그리스도의 인격이 아닌 거짓, 방탕, 욕심, 욕망 의 죄가 찍혀서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두가지 교훈의 본 과 죄의 본의 출발점은 모두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다시 17절 말씀을 보시면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라 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죄와 불법을 향하고 있는 지 는 삶의 결과물로 증명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순종과 헌신은 사람의 말과 가르침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전까지 불결함과 불법의 종으로 우리의 지체를 내어주어 불법을 저질렀다면, 
그래서 세상에서 가치 있다는 것들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을 가지기 위해 집착하며 살았다면 
이제는 의도적으로, 또한 다시 복음 앞에 서서 
나의 지체를 의의 종으로 내어주어 거룩함에 이르러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더 이상과 물질과 욕망과 더러운 것들이 찍혀 나오지 않고, 
하나님의 형상과 거룩한 열매가 찍혀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이러한 자들을 항하여 순종의 종, 의의 종, 하나님의 종이라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들이 맺는 열매는 거룩함 입니다. 
22절 입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하나님의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한 순종은,
거룩함이라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의의 종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것은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기쁨을 누리라는 강력한 권면 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의 강력한 권면 앞에 
내 삶을 하나님의 의와 거룩의 열매를 맺는 일에 귀를 기울이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에 나의 삶이 사용되고 있지 않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항상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열매 맺는 자, 우리의 모든 선택이 오직 하나님을 선택하며,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헌신이 가득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순종을 원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지는, 어떤 순종의 모범을 배우기를 원하시는 지는 사실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순종의 중요성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순종을 너무 쉽게 생각 합니다. 
일단 한번 해보고 안되면 말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은 순종, 원치 않는 것은 거부 하면 되지 라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 순종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 만큼 중요한 것이 얼마나 순종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을 순종하는 것은 쉽습니다. 
나를 아껴주고 생각해주고, 위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 쉽습니다. 
그런데 나를 적대시 하고, 미워 하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원치 않고, 순종하기 쉽지 않으며, 하기 싫어서 피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순종의 대상이라면, 
우리에게 순종의 모범 또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주님은 어떻게 하나님께 순종하셨습니까? 
자신의 생명을 십자가에 내어 놓으시면서 순종을 이루셨고, 완성하셨고,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고난과 고통과 죽음을 앞두고, 하기 싫어, 이건 아닌거 같애, 이해할 수 없어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두려움 가운데 잠잠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죄의 잔을 마시고, 고통 가운데 그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순종을 요구하실 때 가겠다고, 하겠다고 할 사람이 있습니까? 
저도 목사이지만, 가고 싶지 않습니다. 
못하겠다고 할 것 같습니다. 
굳이, 왜, 도대체 왜 이렇게 까지 하시는지, 왜 내가 가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따질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도 순종하세요~왜 순종 못합니까? 라고 못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면 순종하는 것이 쉽습니까? 
알아도 하지 못하는 것, 오히려 알기 때문에 가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순종을 남한테 강요하고, 나의 순종과 다른 사람의 순종을 비교 하는 것이 아니라, 
두렵고, 가기 싫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순종입니다. 
그래서 순종없는 믿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순종의 모범,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으로 부활과 생명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모범을 따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순종을 원하십니까?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두렵고 떨리며, 마음이 무겁고, 때로는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의 의와 거룩을 위해 
주님이 걸어가신 순종의 길을 목숨을 걸고 걸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순종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곧 믿음의 결단입니다. 
말로만 순종을 이야기 하지 않고,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그리스도의 인격이 삶의 열매로 맺어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과 복음은 이 땅에서의 마침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여전히 세상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며, 별볼일 없는 가치 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가장 큰 능력이 되는 이유는
 더 이상 죄에 끌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하나님의 권세이며 능력 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마귀는 여전히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런 마귀의 공격에 방어하고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고 공격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 절박함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명예와 영광은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살아가지 않고, 순종의 종, 하나님의 종, 의의 종으로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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