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21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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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설교 제목: 내 인생, 망가진 조각들의 재발견
설교 제목: 내 인생, 망가진 조각들의 재발견
< 서론: 내 인생의 ‘글리치(Glitch)’ 앞에서 >
< 서론: 내 인생의 ‘글리치(Glitch)’ 앞에서 >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어떤 마음으로 오셨나요? 어쩌면 일주일 내내 세상의 속도에 맞추려 애쓰다가, 방전된 배터리처럼 겨우 이곳에 앉아 계신 분도 있을 겁니다.
2025년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의 삶은 마치 끝나지 않는 게임 퀘스트와 같습니다. 남들만큼의 스펙을 쌓아야 하고, 불안정한 미래 앞에서 N잡까지 고민해야 합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집값은 청년들을 절망하게 만들고, SNS를 열면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보며 자존감은 바닥을 칩니다.
우리는 가장 외로운 시대에 살면서도, 마치 “나는 잘 지내고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잘 연결되어 있다”라는 이미지를 억지로 보여주어야 하는 압박 속에 살아갑니다. 바로 이 아이러니 때문에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지쳐갑니다.
이런 삶 속에서 얘기치 못한 문제, 즉 고난이라는 '글리치(Glitch)'가 발생하면, 우리 인생은 통째로 버퍼링에 걸린 것처럼 멈춰버립니다. 갑작스러운 질병, 깨어져 버린 관계, 쓰라린 실패의 경험 앞에서 우리는 묻습니다. "하나님, 왜 하필 저입니까? 제 인생,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죠?"
가장 힘든 것은, 이 고통 속에서 '나만 혼자'라는 생각에 잠식당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앞으로 달려가는 것 같은데, 나만 이 어두운 터널에 갇혀버린 것 같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망한인생'이라는 선명한 낙인이 찍힙니다.
혹시 오늘, 이런 마음의 낙인을 품고 오신 분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걸고 귀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8장은, 우리 인생의 깨지고 고장 난 부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A/S 센터 안내문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인생을 흑백 모니터로 보던 시야를, 4K IMAX 스크린으로 바꾸어주십니다. 망가진 줄 알았던 내 인생의 조각들이 실은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 속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였음을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 본론 1: 고난의 픽셀 너머, 영광의 파노라마를 보라 >
< 본론 1: 고난의 픽셀 너머, 영광의 파노라마를 보라 >
첫째,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이라는 작은 픽셀 너머에 있는 영광의 파노라마를 보라고 초대하십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네 고통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통, 절대로 가볍지 않습니다. 취업 실패의 아픔은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세상을 무너뜨립니다. 하나님은 그 아픔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픔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시야가 너무 좁기 때문에, 고통이라는 깨진 픽셀 하나에 모든 시선을 고정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십니다.
거대한 모니터에 아름다운 풍경 영상이 나오고 있는데, 유독 픽셀 하나가 깨져서 지지직거린다고 상상해보세요. 우리가 그 깨진 픽셀에 코를 박고 있으면, 우리에게 세상은 온통 지지직거리는 불량 화소일 뿐입니다. 하지만 한 걸음, 아니 열 걸음 뒤로 물러나 전체 화면을 보면 어떻습니까? 그 깨진 픽셀 하나는 거대한 파노라마 풍경 속에 있는 아주 작은 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현재의 고난(파데마타)'은 우리 인생이라는 모니터의 깨진 픽셀과 같습니다. 그러나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독사)'은, 그 모니터를 가득 채우고도 남는 압도적인 실체의 파노라마입니다. 그 영광의 스케일이 너무나 거대해서, 우리가 지금 붙들고 아파하는 고통의 픽셀을 완전히 덮어버리고도 남는다는 것입니다.
애벌레는 자신이 고치 안에 갇혔을 때,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모든 것이 녹아내리고 해체되는 그 고통의 과정 속에서 절망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죽음이 아니라, 하늘을 날기 위한 가장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없으면 멋진 나비가 되어 날아 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고난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무너지고 해체되는 것 같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차원으로 날아오르게 하시려는 영광스러운 과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이 땅에서 고난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오히려 고난이 없다고 말 하는 것이 비성경적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23-25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는 이미 구원받았지만 아직 구원 받지 않았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미와 아직의 사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길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말한다.
이건 쉬운 예로 택배를 받기 전에는 “언제 올거야”라는 소망을 가지는 것이다. 그런데 택배를 받으면 더이상 택배에 대한 소망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구원은 “소망 안에서” 누리는 단계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망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우리가 소망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인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말이 쉽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며 인내하는 것은 결코 우리의 힘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머리로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런데 막상 고난가운데 있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라는 것이다.
< 본론 2: 내 신음을 가장 완벽한 언어로 번역하시는 사랑 >
< 본론 2: 내 신음을 가장 완벽한 언어로 번역하시는 사랑 >
고난의 가장 깊은 곳에 이르면, 우리는 종종 기도하는 법을 잊어버립니다. 교회에 와서도 괜찮은 척, 믿음 좋은 척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립니다. 아무에게도 내 진짜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서조차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눈물만 흘릴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침묵과 눈물의 자리에서,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6절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여러분, '말할 수 없는 탄식'이라는 이 표현이 담고 있는 하나님의 심장을 느껴보십시오. 아이가 불덩이 같은 열에 시달리며 끙끙 앓고 있을 때, 곁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부모는 아이보다 더 아픈 마음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신음합니다. 성령님의 탄식이 바로 이와 같습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성령님은 우리의 고통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지켜보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 안에서 우리의 심장이 찢어지는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똑같이 느끼십니다. 우리가 너무 아파서 내뱉는 의미 없는 신음 소리가, 성령님에게는 가장 절박한 기도의 언어로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음이 곧 성령님의 신음이 되고, 우리의 눈물이 성령님의 눈물이 되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깊은 탄식으로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의 심장 소리입니다!
마치 최고의 동시통역사 같습니다. 우리는 '고통'과 '절망'이라는 서툰 언어로 "아... 하나님..." 하고 신음할 뿐이지만, 성령이라는 가장 완 "아, 하나님. 지금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가 너무 지쳐서 무너져 내리기 직전입니다. 그의 마음을 붙들어 주시고, 이 고난을 이겨낼 하늘의 힘을 부어주시고, 마침내 당신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라고 가장 완벽한 '하늘의 언어'로 통역하여 올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단 한 순간도 혼자서 아파한 적이 없습니다. 침묵 속에서 흘렸던 여러분의 모든 눈물방울을 성령께서 모아 가장 강력한 기도로 바꾸어주셨습니다.
< 본론 3: 깨진 조각으로 명작을 만드는 모자이크 아티스트 >
< 본론 3: 깨진 조각으로 명작을 만드는 모자이크 아티스트 >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깨지고 흩어진 인생 조각들로 하나의 명작을 만드시는 위대한 모자이크 아티스트이십니다.
28절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자이크 예술 작품을 보신 적 있습니까? 가까이서 보면 그저 의미 없이 깨진 색유리 조각, 날카롭고 쓸모없어 보이는 파편들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손에 들리면, 그 깨지고 날카로운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아가며 하나의 위대한 그림을 완성합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모자이크 아티스트와 같으십니다. 그분은 우리 인생의 모든 조각들-성공의 조각, 기쁨의 조각뿐만 아니라, 실패의 조각, 상처의 조각, 배신의 조각, 심지어는 내 죄로 인해 생긴 부끄러운 조각까지도-하나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 모든 것을 그분의 위대한 손 안에서 '합력하여(쉬네르게이, Synergy)', 즉 시너지를 일으키게 하셔서, 마침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닮게 하는 '선(善)'이라는 명작을 만들어내십니다.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도 바울의 삶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바울의 인생은 그야말로 최악의 재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 데 앞장섰던, 증오와 살기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아티스트이신 하나님은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서 가장 부끄럽고 날카로운 조각, 즉 '교회를 핍박했던 죄인'이라는 그 조각을 가장 중심에 놓으시고,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빛을 비추셨습니다.
그 결과 어떤 작품이 나왔습니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도,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깊이 증거하는 위대한 복음 전도자가 탄생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가장 큰 약점과 수치를, 오히려 가장 큰 강점과 간증으로 바꾸어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쉬네르게이'입니다.
< 결론: 당신은 실패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행 중인 작품입니다 >
< 결론: 당신은 실패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행 중인 작품입니다 >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내 딸아. 네 인생의 깨진 픽셀에만 집중하지 말고,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영광의 파노라마를 기대하렴. 네가 혼자 신음하는 것 같을 때, 실은 내가 네 안에서 너보다 더 아파하며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단다. 그리고 네가 실패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조각들, 내가 지금 그것들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있단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실패를 모아놓은 결과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에서 진행 중인 위대한 작품입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는 결코 실패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황금 사슬'(29-30절)이 여러분의 시작과 끝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결단합시다. 오늘 이 시간, 남들에게도, 심지어 하나님에게조차도 숨기고 싶었던 내 인생의 가장 부끄럽고 아픈 조각 하나를 정직하게 꺼내어 하나님께 드립시다. '하나님, 이 조각 때문에 제 인생은 망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믿고, 이 깨진 조각을 위대한 모자이크 아티스트이신 주님의 손에 올려드립니다. 이 조각을 통해 주님의 작품을 만들어 주옵소서.'
이렇게 우리의 깨진 조각을 믿음으로 내어드릴 때, 하나님은 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소망의 주님을 붙들고 믿음의 발걸음을 다시 내딛는, 하나님의 자랑스러운 걸작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