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4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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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충격적인 표현은 1절 입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한글성경에서는 너희의 싸움이, 다툼이 라고 해석하지만, 
헬라어 원어에서는 훨씬 심각하게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지만, 여전히 반역의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이중성을 고발 합니다. 
그 중에서도 교회 안에서 신자들끼리의 싸움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교회 안에서의 이런 싸움을 단순한 다툼 정도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1절을 다시 보시면 
싸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폴레모스 라는 단어는 대규모 전쟁을 의미 합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미사일이 날라다니는 아주 큰 전쟁입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다툼이라고 번역된 헬라어 마케 라는 단어는 소규모 전쟁입니다. 
소규모 라고 해서 작은 전쟁이 아니라 군사들이 투입되는 전쟁을 의미 합니다. 
그런데 이 두 단어는 교회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입니다. 
야고보는 교회 안에 일어나는 성도들 간의 싸움이 국가간의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 안에서의 분쟁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이 모든 원인을 싸우는 정욕.. 즉, 욕심과 욕망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욕 이라고 번역된 단어의 의미는 육체의 즐거움을 의미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분쟁과 갈등과 싸움을 즐기는 것 처럼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야고보의 이 표현이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소위 뼈를 때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이유든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과 갈등은 우리 안에 죄악된 본성을 즐겁게 하고, 만족케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런 일들로 인해 표면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은 많은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결국 그 안에서는 서로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싸우는 죄악의 본성 때문임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소유에 관한 교회 안에서의 다툼은 우리 안에 있는 욕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소유가 꼭 물질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 관계, 인정받고 싶은 욕구,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 하는 이 모든 욕망을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것이라 포장하고, 싸우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자들을 향하여 2절과 3절에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2절에서 살인을 한다 라는 것은 누군가를 죽인다 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5장 21절에서 부터 26절까지 주님은 형제를 미워하며 욕하는 자들을 향하여 살인한 자라고 말씀 하십니다. 
즉, 무엇인가를 얻고 싶은 욕망이 가득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하여 누군가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저주하며 다투고 싸울 때 
하나님은 그것을 살인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런 자들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그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으신다고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내적 상태와 그것을 표현하는 과정과 결과 모두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과 부합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서 3장 15절에서 이야기 하는 것 처럼 
악한 세상과 귀신의 지혜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을 향하여 간음한 여인들아 라고 합니다. 
이들은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정욕 때문에 교회 안에 분란과 다툼을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누릴 마음이 없다는 것은 세상의 지혜를 택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이루기 위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버리는 자 입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에게 그들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십니다. 
해가 될 만한 것을 사랑하는 자녀에게 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방식입니다. 
하지만 욕망의 좌절을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정욕을 더 크게 키우며 시기와 저주의 마음을 놓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욕망으로 인해 멀어진 자녀를 그냥 버리지 않으십니다. 
6절 입니다. 
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우리는 6절 말씀을 통해 두 가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회개를 통한 용서의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나머지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을 통하여, 세상의 것을 찾고 갈급해하는 우리의 갈라진 중심을 시기 하십니다. 
그 백성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기회를 주십니다. 
우리 안에 가득찬 세상의 욕망과 탐욕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큰 은혜를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욕망과 탐욕을 정당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추악한 욕망을 뽑아내기 위해 고통과 고난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히려 우리에게 고통과 고난은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 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사람에 대한 기본 원칙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욕망과 탐욕이 가득한 자녀를 바로 징계하지 않으시고, 돌이킬 기회를 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태도는 다른 사람이 아닌 먼저 나에게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마음과 태도를 닮아 옆에 있는 성도들에게도 그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줘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복종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자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자 입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항상 서 있음을 기억하고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자 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절대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채우려 하니 이기심과 시기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세상의 것을 채우지 않고, 
주님의 은혜로 채우기를 결단하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를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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