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45) 더러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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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고 지키는 유월절

예수님을 체포한 대제사장을 비롯한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관정으로 끌고 가면서도 자신들이 더렵혀 질 것을 염려하여 관정에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아이러니인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월절’에 먹는 음식을 위하여 철저하게 준비하고 행동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신앙에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모세라는 선지자를 세우셔서 그들은 애굽에서 탈출 시키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애굽의 왕이 계속 방해하는데 이때 하나님이 애굽에 10가지 큰 재앙을 내리심으로 애굽의 왕이 항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9번의 큰 재앙에도 결코 뜻을 굽히지 않았던 애굽의 왕이 마지막 10번째 재앙에 하나님께 무릎꿇고 마는데 그 재앙이 장자의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멸망의 날 하루 전에 모세에게 말씀하셔서 양의 피는 문 주변에 바르면 살 것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대부분의 애굽사람들은 무시했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양을 잡아 문 주변에 피를 발랐습니다.
그날 밤 하나님의 사자가 애굽 전역을 돌면서 문설주에 피가 없는 집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입니다. 애굽 전역은 통곡 소리가 울려 퍼졌고, 애굽의 왕 또한 자신의 왕위를 물려줄 아들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떠나라고 명령합니다.
이것이 유월절 사건이며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후로 매년 이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건을 기억하며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자녀들에게 이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Numbers 9:13 NKRV
그러나 사람이 정결하기도 하고 여행 중에도 있지 아니하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이런 사람은 그 정한 기일에 여호와께 헌물을 드리지 아니하였은즉 그의 죄를 담당할지며
유월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은 백성 중에 끊어지며, 그의 죄를 담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후로 철저히 유월절을 지켜왔습니다.
자신이 백성 중에 끊어질 것과 자신의 죄를 담당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절기를 지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은 형식만 남은 체 신앙의 내용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의식하고 말씀을 기억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집행하고 주관하는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 것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을 나타내는 예고편과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았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흘리신 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유월절의 의미나 내용을 알지도 못하고 그 유월절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자신들의 손으로 죽이면서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관정에는 들어가지 않는 아이러니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제일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엉뚱한 신앙의 열심으로 자신들이 믿는 대상이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를 망각한 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행동을 하는 교인들은 가장 비극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자들의 행동을 보세요. 이들은 자기 나라에서 가장 깨끗하며 가장 지혜롭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인데 로마의 재판장 빌라도가 무슨 일로 예수를 잡아왔냐고 묻자 이 사람이 악인이 아니면 데려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가 죄가 있다면 너희가 데려가서 재판하라고 말하니 자신들은 사형을 내릴 권한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명확하게 예수님이 무슨 잘못이 있는지 말하지 못했고, 재판을 하기도 전부터 이미 사형을 염두하고 재판을 시작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문명이 발전할 때나 발전하지 못했을 때나 똑같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정의롭고 공의로운 것을 너무 기대하지 마세요. 이것이 부당하고 부정하다고 원망하며 애태우지 마세요. 그것이 일반입니다.
만약 내 주변에서 정의나 공의를 발견했다면 그것이 기적이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사람이나 세상은 원래 정의롭지 못한 것이며, 무엇이 정의인지 선한 것인지 진리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사람이나 제도에 너무 기대를 하지 마세요

알지 못하고 행하는 재판

로마법은 현재 사법이나 행적의 뼈대가 됩니다. 대제국이었던 로마는 강력한 군사력과 더불어 법과 행정적 질서로 제국을 유지하였습니다.
로마의 법은 절대적이었고, ‘모든 시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외치는 슬로건이 그들의 자랑이었을 정도로 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로마가 정복하고 다스렸던 나라들에 총독을 파견하여 자신들의 법으로 그 나라들을 다스리는 것이 로마가 제국을 유지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파견된 총독은 ‘빌라도’였는데 이들은 황제가 직접 임명한 임명직으로써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들이 배정받는 나라에서는 그들이 황제의 대리인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신이었으며 정의였고 진리였습니다.
그런 빌라도에게 예수님이 진리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John 18:38 NKRV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여기까지는 그들의 자부심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판결하였습니다.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으면 이제 예수를 풀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John 18:39 NKRV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우리 나라에도 광복절에 죄수들을 특별사면하여 석방해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 때 행했던 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제도입니다. 이때도 이스라엘의 특성에 맞게 유월절에 죄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는데 빌라도가 이것을 거론한 것입니다.
무죄이면 석방이지 왜 특별사면을 언급하였을까요??
그로인해 이제 논점은 예수가 유죄인가 무죄인가 사형인가 석방인가 에서 특별사면 대상이 예수인가 바라바인가로 흐려졌습니다. 정치적으로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이후에 또 빌라도는 죄가 없는 예수를 채찍질 했습니다.
로마 법대로 한다면 예수는 채찍에 맞을 이유가 없습니다. 단지 성난 민심을 잠잠하게 할 방법으로 예수를 채찍질 한 것입니다.
John 19:4 NKRV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아무 죄도 없다고 또 말하면서도 사람들이 이제 빌라도의 모습에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빌라도는 더 궁지에 몰리게 되어 판단이 흐려집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정의가 무엇인지, 선함이 무엇인지
사람은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대통령이고 재판관이고 목사이고 교황이라고 해도 우리는 다 연약한 인간일 뿐입니다.
자신을 과신하고 자기에 대한 확신을 갖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드뭅니다.

바라바를 선택하는 삶

바라바의 선택은 우리에게 매우 유의미한 사건입니다.
요한복음은 그를 ‘강도’라고 말하고,
막 15:7은 민란을 일으킨 자
눅 23:19 살인자라고 소개합니다
이를 종합해보면 바라바는 로마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의 수장이나 핵심인물로 생각됩니다.
그는 로마 군대나 수송차를 급습하여 강탈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 죄로 체포되었을 것입니다.
Mark 15:7 NKRV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Luke 23:19 NKRV
이 바라바는 성중에서 일어난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러라
John 18:40 NKRV
그들이 또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였더라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체계를 위협하는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권력자들과 싸워준 바라바를 선택한 것입니다.
신기하게도 ‘바라바’라는 이름은 바와 아바의 합성어로 ‘바’는 ~의 아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바라바는 로마세력에 해방되는 방법으로 폭력을 선택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바라바는 자기 생가대로 행동한 사람이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한 사람이었습니다.

결론

내 안에 재판이 매일 열립니다.
그 선택의 주체는 정의롭지 못하고 지혜롭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감정과 경험에 지배당합니다.
나의 눈앞에 이익을 위하여 바라바를 놓아줘버립니다.
내 욕심, 습관, 생각, 감정, 두려움, 시기, 질투, 비난, 비방, 판단, 정죄하는 마음 등
이제 내 안에 재판장에서 빌라도를 내리고 예수님을 그 자리에 앉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통치를 따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는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완전한 길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당장에는 손해보는 것 같고, 망해보이는 길로 인도 하시는 것 같지만 결국 그 길이 옳은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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