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3장
Notes
Transcript
아토피
아토피
제가 초등학교 4학년 쯤에 제천으로 이사가기 전까지는 서울에서 살았습니다. 아버지가 서울 광진구에 있는 중곡교회라고 하는 교회를 담임하셨을 때 그 교회 사택에서 살았던 것이 기억이 나는데요, 제가 서울에서 살고 있었을 때 아토피가 굉장히 심하게 있었습니다. 얼마나 심했냐면 팔 안쪽을 하도 긁어서 항상 피가 나고 딱지가 앉고, 특히나 엉덩이 쪽을 너무 심하게 긁어서 피부 전체가 다 짓물러서 똑바로 앉거나 눕지도 못하고 빨게벗고 엎드려서 선풍기로 말려야 했을만큼 굉장히 심하게 앓았었어요.
저희 부모님도 제 이런 아토피 때문에 걱정이 참 많으셨는데, 참 신기하게도 시골인 충북 제천으로 아버지가 목회지를 옮기셔서 시골로 내려가니까 아토피가 싹 사라지더라구요. 물론 여전히 좀 영향이 있어서 제가 아직도 무의식적으로 좀 긁어서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특히 밤에 잘 때 긁기도 해서, 제가 자다가 벅벅 긁고 있으면 이주혜 전도사님이 “안돼!”하고 손을 탁 잡으면, “우잉~”하면서 긁는 걸 멈추고 다시 “커어어억”하면서 코 골면서 잔다고 해요.
이처럼 어느 병이든 마찬가지지만 피부병이 가지는 불편함과 고통이 참 사람을 괴롭게 하기도 하는데요, 오늘 본문말씀인 레위기 13장도 바로 그런 피부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장입니다.
나병, 짜라아트
나병, 짜라아트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그를 곧 제사장 아론에게나 그의 아들 중 한 제사장에게로 데리고 갈 것이요
본문말씀 2절부터 보시면 사람이 만약에 (1)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2) 뾰루지가 나거나 (3) 색점이 생겨서 (4) 나병같은 것이 생기면, 제사장에게 그 사람을 데려가라, 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바로 이 나병이라고 하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짜라아트”라고 하는 단어인데요, 이 병은 저희가 오늘날에 한센병, 아니면 문둥병이라고 부르는 피부가 문드러지는 병, 피부가 썩는 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짜라아트 라고 하는 질병은 사실 그런 문둥병만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이 시대에는 현미경이 없었기 때문에 저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같은 것을 진찰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비슷한 질병들을 묶어서 “짜라아트,” 나병이라고 번역한 이 병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어떤 것들이 나병인가 살펴보면요, 아까 읽은 2절에 피부에 돋는 것, 부스럼이나 뾰루지나 얼룩이 생겼을 때,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
만약에 털이 희고 피부가 우묵하게 들어갔으면, “나병”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나병을 부정하다, 라고 여겼구요.
제사장은 진찰할지니 그 병이 피부에 퍼졌으면 그를 부정하다 할지니라 이는 나병임이니라
만약에 조금 애매~해서 지켜봐야겠다, 하고 7일간 두번까지 격리해서 살펴보다가 8절에 그 병이 점점 퍼지게 되면 “나병,” 부정하다, 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이 12-13절을 보시면 아예 온몸이 희게 되면 “정하다”라고 하는데, 반대로 생살이 보이게 되면 부정하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20절 말씀에는 종기가 생겼다가 나은 후에 만약에 희고 붉은 점이 생겨서 털이 희고 다른 피부보다 우묵하게 들어갔으면 이것은 나병이고 부정하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다른 말씀들도 대부분 이렇게 비슷하게 등장합니다. 공동적인 특징은 희고 붉은 점이 생기고, 흰 털이 생기고, 그 점 부분이 다른 피부보다 우묵하게 들어갔으면, “짜라아트” 나병이고, 부정하다 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아마 무좀 같은 것도 해당이 될 것같아요.
아니면 사람 피부가 아니라 아예 의복에도 나병과 비슷한 것이 보이면 부정하다라고 여겨졌습니다. 아마 곰팡이 같은 것이었겠죠. 이처럼 저희가 알고 있는 한센병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특징들이 있는 질병을 모두 “짜라아트” 나병으로 여겼습니다.
생명이 빠지는 것
생명이 빠지는 것
이런 특징을 가진 질병을 “짜라아트”라고 규정하고 부정하다 라고 여기는 것은, 단순히 이 병이 나빠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병이 사람들이 보기에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질병이 그의 피부를 삼키리니 곧 사망의 장자가 그의 지체를 먹을 것이며
욥기 말씀에 보시면 질병이 피부를 삼켜서, 사망의 장자가 지체를 먹을 것이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말씀은 곧 이 나병이라고 하는 것은 몸에 죽음이 퍼지는 것으로 여겨진 것입니다.
그리고 특히 이것이 온 몸에 퍼졌을 때는 정하다, 생살이 생기면 부정하다 라고 여겨지는 것은, 이 병이 완전히 다 진행되서, 천천히 치유가 되고 있으면 사람이 정한데, 천천히 병이 진행되고 있으면 부정한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몸을 좀먹는 병, 사람의 생명력을 빠져나가게하는 병이 활성화 되고 있을 때, 이 사람을 부정하다, 라고 여긴 것입니다.
나병같은 죄
나병같은 죄
오늘날의 저희들에게도 바로 이 짜라아트 같은 병이 있습니다. 바로 죄라고 하는 병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라고 하는 말씀처럼, 정말 문자그대로 저희의 피부를 썩게하는 병은 아닐지 몰라도, 인간의 죄는 사람의 영혼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무시무시한 병입니다. 특히 이 죄를 내버려두고 계속해서 죄를 짓도록, 죄가 활성화되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부정한 것일까요.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그러나 마가복음 1장 말씀에서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엎드리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외칠 때, 예수님께서 치유해주신 일이 있습니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는 예수님께 고백하며 낫기를 원할 때, 치유되기를 원할 때, 예수님께서 저희를 깨끗하다, 악인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이다, 라고 여겨주십니다.
오늘 함께 기도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저희의 영혼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죄를 끊고, 고백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게로 돌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엄밀한 진찰
엄밀한 진찰
특히 이 나병에 관해서는 제사장이 아주 엄밀하게 진찰하게끔 했는데요, 4-6절이나 26-28절, 32-34절의 경우에는 한 7일동안 격리시킨다음에 지켜보고서 부정한지 정한지 결정하라고 지시합니다.
이는 사람이 부정하다, 정하다 라고 이야기할 때 절대 섣부른 판단을 할 것이 아니라 신중하게 살펴서, 심지어 7일 격리한다음에 애매하면 또 격리시키라는 말씀도 등장합니다. 그만큼 이 부정하다, 정하다를 정하는 것은 “어? 너 피부병이야? 너 부정하네!”라고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이스라엘 공동체를 위해서 잘 판단하여 정하라는 말씀입니다.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18장 말씀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만약에 누군가 죄를 범하면 처음에는 그사람과 1대1로 가서 권면해라 라고 말씀하시구요, 만약에 안들으면 한 두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확증하게 해라, 그래도 안들으면 교회에 말해서 권고하고, 그래도 안들을 경우에는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다르게 말하면 최대한 그렇게 쫓아내듯이 안하게 하기 위해서 잘 권면하고, 잘 살피라는 말씀인 것이죠.
오늘 함께 기도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렇게 성급하게 남을 판단하지 않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두번 세번 더 살피고, 만약에 잘못된 것을 보면 그것을 잘 돌이킬 수 있도록 권면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엄중하게 나병을 진찰했던 제사장들과 같이 만안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공동체 안에 병든 지체가 있다면 함께 기도하고, 만약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지체가 있으면 함께 권면하여 하나님 앞에 거룩한 공동체를 이뤄나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정결을 위한 부정
정결을 위한 부정
이렇게 나병으로 여겨져서 부정하게 여겨진 사람들은 이스라엘 진영 밖, 나중에는 성문 밖으로 쫓겨나서 거기서 따로 지내야 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그러나 이건 아주 내쫒으려고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결국엔 정결하게 하려고, 회복하게끔 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다음장인 14장에서 나병환자들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이 등장하게 되는데요.
특히 저희들에겐 바로 그렇게 나병환자 마냥 성문 밖으로 보내져서 고난을 받으신 분이 계시죠.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고난을 받으셨다, 우리도 함께 짊어지고 나아가자 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성문 밖에서 고난받으심을 통해서 성문 밖으로 보내진 나병환자와 같은 이들을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편안한 삶에 안주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나병환자들과 같이 성문 밖에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과 같이 많은 이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죄를 고백, 회개
엄밀한 진찰, 함께 권면하고 기도하는 공동체
성문 밖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성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