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서 나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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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과 과일즙
과일과 과일즙
여러분 과일 좋아하십니까? 사과, 배, 귤, 포도 등등 세상에 다양한 과일들이 있죠. 과일들이 참 여러가지 맛이 있지만 달고 시고 한 맛이 있고, 과일 특유의 향도 있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과일을 먹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랑 이주혜 전도사님도 가끔씩 쿠팡 같은데서 주문하거나 아니면 저기 다이소 앞에 있는 가게, “자~ 딸기 한 박스 만원~!”하고 귀 떨어지게 소리지르는 가게 아시죠? 거기서 가끔씩 딸기나 포도 같은거 사다 먹기도 합니다.
저는 사실 과일을 별로 안좋아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이유는 모르겠는데, 저희 부모님이 먹어라~ 하고 주시면 먹는데, 굳이 제가 찾아먹고 그러지는 않았던것 같아요. 대신에 저는 과일 주스나, 과일 즙은 또 찾아서 먹었습니다. 막 설탕 타가지고 만든 그런 주스 말고 무슨 한약 팩 같은거에 담긴 즙 같은거나 아니면 생과일로 만든 주스 같은건 어렸을 때 굉장히 좋아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과일을 잘 찾아먹기도 하고, 과일을 짜서 즙으로 만들어먹거나 주스로 먹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여러분 과일 즙은 무엇으로 만들죠? 과일로 만들죠. 어떤 과일로 만들죠? 사과 즙이면 사과로 만들고, 포도즙이면 포도로 만들고 오렌지 주스는 오렌지로 만듭니다. 만약에 오렌지를 하나 딱 들고 그걸 힘껏 쥐어짜면 무엇이 나옵니까? 오렌지 주스가 나오죠. 당연한 겁니다. 오렌지를 쥐어짰는데 사과 즙이 나오거나 포도즙이 나오지 않습니다. 오렌지는 오렌지, 사과는 사과, 포도는 포도 주스나 즙이 나오는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거 알고 계십니까? 사람에게도 마치 과일을 쥐어짜는 것처럼 쥐어짜여지는 고통들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상사한테 한 소리를 듣는다던가, 지나가던 사람이 갑자기 나한테 막 뭐라뭐라 한다던가, 그렇게 우리를 움켜쥐는 것 같은, 나를 괴롭게하는 일들이 살면서 자주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에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화를 내시나요? 아니면 무시하시나요? 아니면 짜증을 내시나요? 욕을 하시나요?
저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화가 많이 나기도 합니다. 짜증이 나기도 하죠. 심지어는 “저 사람 때문에, 내가 화가 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렌지를 쥐어짜면 오렌지 주스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쥐어짜기 때문에, 남들 때문에 우리에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저희 스스로가 그런 감정을 만들어내고, 저희의 마음이 분노와 짜증과 질투와 시기와 미움으로 가득차있으면 쥐어짜이는 순간에, 고난이 닥쳐오는 순간에 그런 감정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과일을 쥐어짜서 즙을 만드는 것처럼 쥐어짜여지는 순간에, 고난이 닥쳐오는 순간에 그리스도가 나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장로들의 전통
장로들의 전통
오늘 본문말씀인 마태복음 15장 말씀이 바로 이런 마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아주 잘 알고 계실 수도 있는 말씀인데요, 1절부터 한번 보시면
그 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예수님께서 게네사렛 이라고 하는 곳에서 병든자들을 고치고 계셨어요. 그런데 그때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예수님이 계신 이 게네사렛이라는 땅으로 찾아옵니다. 이 게네사렛이라는 땅은 갈릴리 호수가 있는 쪽인데, 예루살렘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있습니다.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남쪽이면 여긴 이스라엘 북쪽 지역에 있는데, 그 먼거리를 와가지고는 예수님한테 따지고 들기 시작한 겁니다. “거 당신 말이오! 당신 제자들이라는 사람이 어째서 우리 장로들의 고유한 전통을 망치는거요? 떡 먹을 때 손을 안 씻지 않소!”
당시 유대인들은 떡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할 때에 손을 씻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이건 딱히 성경에 기록된 것은 아니고, 랍비들이나 율법학자들이 성경을 잘 연구해보니까 “우리가 밥을 먹기 전에 하나님 앞에 손을 정결하게 해서 먹어야겠다!”하게 되었고, 이걸 전통으로 지키고 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말씀에 보시면,
(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라고 등장합니다. 이 손을 씻는건 위생적으로 깨끗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새벽기도때 계속해서 레위기 말씀을 통해서 부정하다, 정하다 이야기하는 것처럼 정결하게 하기 위한 의식으로서 지키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바리새인들하고 서기관들이 예수님께 하는 말은 “거 잘 좀 씻고 다니시오!”하는 말이 아니라 “당신네들은 부정한 자들이다!”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네들은 더러운 사람들이다! 라고 말이죠.
예수님께서 여기에 어떻게 대답을 하실까요? 먼저 3절말씀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어째서 너희들은 너희들의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요? 이어서 예수님께서 예시를 한가지 드시는데,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갑자기 부모를 공경하고 아니고 하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 내용을 보아하니 이런 겁니다. 곧 있으면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옵니다. 저와 이주혜 전도사님도 각자의 고향집에 내려가서 양가 부모님들과 친척들을 만나뵙고 인사하는 자리에 가려고 하는데요. 얼마전에 저희가 휴가로 일본을 다녀오면서 추석선물로 드릴 것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뭘 샀는지는 아직 비밀인데 영상 올라가면 다들 보셔서 따로 말씀은 안드릴게요.
근데 만약에, 만약에입니다. 저희가 부모님들한테 “저희가 이번에 선물도 가지고 올라갈게요~”라고 말씀을 드렸다고 칩시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그래~ 아이구 고맙다”라고 하시겠죠. 근데 정작 가보니까 저희가 완전히 빈손으로 간거예요. 그랬는데 저희가 “예, 선물은 하나님께 드리고 왔으니 받은거로 치세요. 저희 참 효자 효녀지요?”라고 한다면, 그런 후레자식이 어딨겠어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이겁니다. 말로만 “받은 거로 치세요”라고 하면 그건 받은게 아니라는겁니다. 저희도 명절에 사실 정말 중요한건 선물이나 돈같은 물질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가족간의 오가는 선물 사이에 있는 마음이 중요하잖아요. 선물의 크기나 비용보다 가족간의 오가는 마음과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음도 없이 말로만 “받은 거로 치세요”라고 하면 그건 절대 물질도 마음도 오가는게 아닌 것이죠.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서 꾸짖으십니다. 이사야서 29장 13절 말씀이랑 같은데, “이 백성이 말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마음이 멀다. 사람의 계명으로 사람의 전통으로 사람의 예배 형식으로 가르치지만 마음이 없어서 헛된 예배를 드리고 있구나!”하고 한탄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는 것이 본문말씀 11절 말씀인데요, 함께 읽어볼까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입으로 들어가는 것, 손을 씻지 않고 밥을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 그저 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 말과 행동에 담긴 “마음”이 사람을 더럽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8절 말씀에는 좀더 직접적으로 제자들에게 풀어서 말씀하시죠. 입에서 나오는 것,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마음이 없는 전통
마음이 없는 전통
오늘 함께 읽은 이 본문말씀은 이처럼 마음이 없는 전통과 예배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크게 꾸짖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 말씀이 여전히 적용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교회에도 전통들이 있지요. 예를 들어서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의 전통이 있고, 합심해서 기도할때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 소리를 통하게 해서 모두가 함께 소리내어서 고백하는 기도의 전통이 있고, 아니면 모든 기독교인들이 지키는 성탄절, 부활절과 같은 절기들의 전통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교회의 전통들을 지킬 때에 어떤 마음으로 지키고 계십니까?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사도바울은 골로새서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았으니,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데, 그 안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일들은 “감사의 마음”이 넘치는 가운데서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살리시고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저희는 감사의 마음이 넘쳐야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만약에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사로잡힐까 주의하라 라고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이것이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믿음에 서서 감사의 마음을 넘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철학과 번지르르한 말들로 지키는 것, 즉 “마음이 없이 지키는 전통”은 그리스도를 따르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아니면 마음은 있는데,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전통을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박해하여 멸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전통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지난번에도 살펴본 말씀인데요, 사도바울이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조상의 전통에 대해서 열심이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마음은 있었습니다.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전통만”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을 바라보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해서 멸했다, 내가 하나님께 내 마음을 쏟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 마음을 쏟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그래서 오늘 본문말씀에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어째서 전통을 범하는 겁니까?”라는 질문에 예수님께서 “어째서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전통” 자체는 얼마든지 변하고 바뀔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전통 자체가 아닙니다. 그 전통을 통해서 얼마나 하나님께 마음을 쏟고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신명기 6장 5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 고백이 여러분과 저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전통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서, 하나님 사랑하기에 저희의 마음을 쏟는 저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이 없는 예배
마음이 없는 예배
또 한가지는 마음이 없는 예배가 있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마음이 없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는 헛된 것이다, 공허한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정말로 그렇습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 사람의 행위나 의식이나 장소나 건물 따위가 예배를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께 마음을 집중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우물가에서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이 있죠. 여인이 예수님께 우리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당신들 유대인들의 말은 예배할 곳은 예루살렘, 즉 성전에 있다고 하던데요 라고 하는 말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시죠.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 즉 하나님께 진실되게, 정말로 예배 다운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린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영이시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존재시니, 예배하는 사람은 물질로, 육체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전적인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또한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 거짓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것만이 진정한 예배라는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하십니다. 예배의 모양 자체를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그 예배 가운데 상한 심령으로,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내가 죄인입니다!”라고 부르짖었던 세리의 기도와 같이 얼마나 진실되고 나의 마음을 쏟아내면서 드리고 있는 지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인지 아닌지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교회에서 예배드리면서 혹시 이 ppt 화면의 가장 첫 슬라이드, 가장 먼저 띄워놓는 화면에 오른쪽 아래에 뭐가 쓰여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기도로 예배를 준비합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모든 예배, 모든 기도회에 똑같이 가장 첫 화면에는 “기도로 예배를 준비합니다”라고 쓰여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입니까? 저희가 기도를 통해서 마음을 가다듬고, 한주간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던 하나님 외의 다른 마음들을 예배당에서 기도로 잠시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갖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을 기도를 통해서 갖자는 뜻으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합니다”라고 띄워놓은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제가 지난 주일에 방송실에서 한번 몇 분이나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계시는지 세어봤습니다. 80분이 와계셨는데, 지휘자님의 오르간 반주가 시작되기 전까지 기도하고 계신분이 5분 정도 계시더라구요. 오르간 반주가 시작되고 부터는 20분 정도 기도를 시작하시는데, 그래도 여전히 절반에 미치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이게 여러분을 막 혼내려도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저도 부족할 때가 많아요. 저는 사역을 시작하고 나서 예배의 소중함을 깨달을 때가 많습니다. 사역을 하게 되면 대게 전도사들은 예배에 집중하기 보다 거의 음향을 만지고 방송 세팅을 하고 ppt 넘기고 하다가 저희의 마음을 그런 지엽적인 것에 빼앗길 때가 너무 많아요. 그래서 사실 여러분들이 저는 굉장히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제가 유학하다가 한국에 잠깐 와서 원주제일교회에서 그냥 일반 청년으로 예배를 드리는 기간에, 예배 드리는게 너무 기쁜 일이라는 걸 그때 다시 많이 느꼈습니다. 찬양하는 것도 좋고, 기도하는 것도 좋고, 말씀듣는 것도 좋고 교회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마음을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 라고 느낄 때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사역을 할 때면 저도 예배에 마음을 집중하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이번 부흥회 때만해도, 사진 찍어야지 방송 음향 만져야지, 정말 감사하게도 ppt는 거의 이주혜 전도사님이 다 해주셔서 편하게 할 수 있었지만, 드럼치고 뛰어 올라가서 성가대 찬양하는거 카메라 잡아야지, 부흥회가 9시 반쯤 끝났는데 수업이 저녁 10시고,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수업을 듣고서 5시에 뛰어올라가서 새벽기도 해야지, 하다보면 예배에 마음을 쏟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자주 보게됩니다.
본문말씀 8-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여러분과 저의 “예배”가 헛된 예배가 되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마음을 쏟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영과 진리로 드려지는 오늘과 앞으로의 예배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음이 없는 믿음 = 하나님을 더럽히는 믿음
마음이 없는 믿음 = 하나님을 더럽히는 믿음
마지막으로 마음이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마음이 없는 믿음이라고 하니까 어감이 이상할 수도 있는데요, 마음이 없는 믿음이라고 하는것은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 마음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믿음의 모양은 있는데 마음이 없는 겁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이걸 사도바울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고 설명합니다. 신앙의 형식은 있는데 사랑하고 순종하는 마음의 능력은 모를 때 마음이 없는 믿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같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그들도 진리를 대적하니 이 사람들은 그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 받은 자들이라
얀네와 얌브레, 구약성경 말고 다른 유대교 전통에서 이 둘은 그 모세가 바로 앞에서 재앙을 불러올 때 그걸 따라했던 마술사들의 이름으로 알려져있는데요, 그 마술사들이 막 능력을 부려서 신기한 일을 행하지만 모세를 대적해서 진리를 대적한 것 처럼, “마음이 부패한 사람”은 “믿음에 대해서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겁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말씀 이후에 하신 말씀중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들, 즉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 중에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 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말로하면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부패한 마음을 가진 자들은 애초에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내 구주로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겁니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사도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인 할례가 사람의 몸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에 믿는 것이 의와 구원에 이르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초적인 것.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없으면, 혹은 부패하고 잘못된 믿음을 가지면 어떻게 됩니까? 단순히 믿음이 없다, 라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성령의 교제를 믿습니다 저희가 아무리 입술로 고백을 한다고 한들, 믿음의 모양을 갖춘다고 한들,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 순종하는 마음, 예수님이 정말로 날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고 믿는 그 마음이 없으면,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입니다.
팔복의 말씀이죠,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입에서 나오는 것들, 즉 저희의 마음이 저희를 더럽히는 마음이 아니라 청결한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이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과 제가, 바로 이 청결한 마음을 가진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저 우리의 조상들이 했으니까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가지고 전통을 지키며, 영과 진리로,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며, 청결한 마음으로 믿어 구원에 이르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기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하여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 전통과 예배와 믿음의 모양과 형식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 즉 주님을 향한 저희의 마음과 이웃을 향한 마음과 형제자매를 향한 마음이 중요한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저희로 하여금 마음으로부터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셨는데, 저희가 연약하고 나약한 마음으로 주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전통만을 지키며, 예배 형식만을 따르며, 마음 없이 믿어온 지난 날의 모습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의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심을 믿사오니, 저희에게 정결한 마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교회의 전통과 예배 형식이 아니라, 믿음의 모양이 아니라,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가장 기쁘게 받으시는 마음의 예배를 드리며,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를 수 있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