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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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1:21-33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2025. 9. 26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거짓 교사들처럼 자신도 육신을 자랑하는 내용을 담은 단락입니다. 육신을 자랑하는 것이 참 어리석은 일인데, 그 어리석은 일을 한번 하는 거죠. 아무리 좋게 말을 해도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하니까, 세상적인 방식으로 한번 말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해요.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아멘.
    바울은 자신이 너무나 약해서 거짓 교사들처럼 성도들을 속이거나 빼앗거나 울궈먹는 짓은 할 수가 없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하지만 자랑을 하는 일에 있어서는 나도 담대하게 자랑을 해보겠다는 겁니다. “나도 담대하리라” 나도 담대하게 한번 자랑을 해보겠다는 거예요.
    자, 무엇을 자랑합니까? 22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아멘.
    바울이 세 가지의 자랑을 하는데요. 이 세가지는 모두 혈통에 관한 자랑입니다. 히브리인,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의 후손. 모두 혈통에 대한 내용이에요. 
    아마도 거짓 교사들이 이 세 가지를 굉장히 강조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히브리인이다. 이스라엘인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이러면서 사도는 이런 혈통적인 조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믿음에 혈통이 중요합니까? 믿음에 혈통이 어딨어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믿으면 똑같이 그리스도인이지, 혈통이 뭐가 중요합니까? 우리는 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자맵니다. 혈통은 아무 의미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도가 되는 것도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믿음으로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세우셔야지 사도가 되는 것이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혈통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그런데도 거짓 교사들이 자꾸 혈통을 강조하니까 넘어가는 거예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사도가 예수님과 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믿음도 더 좋고, 사도로서 뭘 해도 더 잘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이 생기는 거죠. 
    예를 들어서, 이런 거예요. 떡갈비를 만든다고 할 때, 한국사람이 잘 만들까요, 아니면 아프리카 흑인이 잘 만들까요? 누가 봐도 한국사람이 잘 만들 것 같죠. 아무래도 한국사람이 떡갈비가 더 익숙하고 많이 먹어봤으니까. 
    고린도 성도들이 보기에도 그런 겁니다. 누가 사도에 더 어울리느냐고 했을 때, 아무래도 기독교의 본토인 이스라엘 사람이 더 사도에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여러분, 한국사람이라고 해서 떡갈비 다 잘 끓입니까? 우리가 떡갈비를 먹기나 많이 먹어봤지, 실제로 떡갈비를 만들어본 사람이 얼마나 있어요? 만들어본 사람 얼마 없을 걸요? 만드는 것은 아프리카 흑인이 더 잘 만들 수도 있는 거예요. 요리는 누가 더 요리를 잘하고, 누가 더 간을 잘 보느냐에 달린 것이지, 혈통이나 민족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겁니다. 
    사도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이 부르심을 받았느냐의 문제이고, 그 사람이 충성하느냐의 문제이지, 혈통이나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혈통에 자꾸 관심이 쏠려요. 바울의 입장에서는 복장이 터집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말이 안 통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울이 자신의 육신적인 것을 자랑하는 거예요.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이렇게 세 번, 혈통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똑같이 대답을 합니다. 나도 그들처럼 혈통에 있어서 꿇릴 없다.
    자, 그런데. 이 뒤에 바울이 네 번째 질문을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대답을 해요. 자, 오늘 본문 23절이죠. 23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아멘.
    앞에 세 번은 혈통에 대하여 말을 했다면, 네 번째는 사명에 대한 말을 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그리스도의 일꾼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랬죠.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충성하며 사명을 지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앞에 세 번은 나도 그러하다고 대답을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대답을 해요.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그리스도의 일꾼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바울이 정신 없는 말로 대답을 하는 겁니다.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거짓 교사들과 바울이 혈통적으로는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사명에 있어서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거짓 교사들도 그리스도의 일꾼인 것은 맞아요. 추천서도 있고, 나름대로 말씀도 연구하고 해서 사도의 직분을 갖고있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사도라고 해서 다 똑같은 사도가 아니에요.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이 말이 어떤 말이냐면, ‘내가 그들보다 뛰어나다’, 이런 정도의 말이 아닙니다. ‘나야말로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다’ 이런 말이에요. 
    그러면서 자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일꾼인 이유를 쭉 나열을 합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당한 고난들에 대해서 나열을 해요.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다. 이렇게 자기가 당한 고난들을 말해요.
    또 밑에 24절부터 28절까지 계속 그 내용이에요.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 강도의 위험, 동족의 위험, 이방인의 위험, 시내의 위험, 광야의 위험, 바다의 위험, 거짓 형제 중의 위험.... 수도 없이 많은 고난과 역경을 당한 겁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과 거짓 교사들의 차이점이에요. 참된 그리스도의 일꾼은 그리스도를 위한 헌신과 희생이 따르는데, 바울은 수많은 고난 가운데서도 기꺼이 헌신과 희생을 감수했어요. 바울은 오히려 이러한 고난들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들은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죠. 자랑거리라기보다는 망신거리라는 말이 더 어울려요. 남들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입니다. 지금이야 이런 것들이 대단한 간증거리지만, 체면을 중시하는 헬라인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수치거리들이에요. 
    자신을 포장하고, 좋은 것을 내세워도 모자랄 판에, 내가 실패한 것들을 말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런데 바울은 이것들을 있는 그대로 오픈합니다. 
    바울은 거짓 교사들처럼 육신을 자랑하지만, 차원이 다른 자랑을 해요. 육신이 잘난 것을 자랑하지 않고, 육신의 고난을 자랑해요. 
    바울은 이것을 약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30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을 해요. 30절을 다같이 읽어볼까요? 시작,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아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내가 고난을 당한 것, 내가 실패한 것, 이 모든 것이 나의 연약함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이 연약함을 바울은 감추지 않고 자랑합니다. 남들은 육신의 강함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육신의 약함을 자랑해요. 
    여러분, 바울은 왜 육신의 약함을 자랑할까요? 그 이유는 약함이야말로 참된 사도를 판가름하는 본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구나 잘나갈 때는 당당하게 자랑을 하지만, 정작 고난과 역경을 만나면 포기하고 맙니다. 
    포기하는 사람은 참된 사도가 아닌 거예요. 오늘 본문 33절을 보면, 바울이 다메섹에서 광주리를 타고 도망친 일을 고백하죠. 사역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물러나야 되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사명을 포기해서는 안 돼요. 한번 부르심을 받았으면 끝까지 감당해야 되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바울과 같이 손에 복음을 들고, 끝까지 그리스도의 일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배의 사명, 전도의 사명, 봉사의 사명, 주님이 주신 여러분의 사명들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지켜서 여러분의 인생에 귀중한 자랑거리들을 많이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위하여 일하다가 실패한 일들, 전도하다가 거부당한 일들, 믿음생활 지키다가 비즈니스에서 손해 본 일들... 그 모든 일들이 우리에게 더욱 아름답고 찬란한 신앙의 자양분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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