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자랑하겠노라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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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1:16-21
“나도 자랑하겠노라”
찬송가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2025. 9. 22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나도 자랑하겠노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폭로하면서 그들의 거짓 가르침에 미혹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말해도 성도들이 정신을 못 차리니까 최후의 방법으로, 자신을 자랑했어요. 고린도후서 11장 1절에 보면 바울이 이런 말을 했죠.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내가 저 어리석은 거짓 교사들처럼 나도 자신을 좀 자랑하려고 하는데, 이것을 너희가 용납하라는 겁니다. 그러고나서 바울이 자신을 자랑했죠.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없다. 말에는 좀 부족할지 몰라도, 지식에 있어서는 뛰어나다. 이렇게 자랑을 했어요.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다시 한번 자신을 자랑하겠다고 말을 합니다. 아직 자랑이 좀 부족해요. 그래서 좀 더 하겠다는 거죠. 자, 오늘 본문 16절 봐 볼까요? 16절 같이 읽습니다. 시작, “내가 다시 말하노니 누구든지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말라 만일 그러하더라도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도록 어리석은 자로 받으라” 아멘.
    지금 이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이 말을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다시 번역을 하면 이런 말입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아무도 나를 어리석은 자로 생각하지 마라. 만일 그렇게 못하겠거든, 나를 어리석은 자로 받아들여 내가 조금 자랑할 수 있게 하라” 이런 말이에요.
    성도들이 바울을 어리석은 자로 여기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나를 어리석은 자로 여긴다면, 까짓것 어리석은 자가 되겠다는 겁니다. 차라리 그냥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마음껏 한번 자랑을 해보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밑에 17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주를 따라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기탄 없이 자랑하노라” 
    내가 이제부터 자랑을 할 건데, 이것은 주를 따라서, 주의 방식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어리석은 자와 같이, 세상의 방식대로 자랑을 하겠다는 겁니다. 아주 그냥 기탄 없이.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자신있게 자랑을 하겠다는 것이죠. 
    자, 그러면 무엇을 자랑하느냐? 18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18절 시작, “여러 사람이 육신을 따라 자랑하니 나도 자랑하겠노라” 
    뭘 자랑합니까? 육신을 자랑합니다. 어리석은 자와 같이, 세상의 방식대로 자랑을 하겠다는 거예요. 세상이 높게 평가하는 것들, 바울도 그런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들을 한번 자랑해보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바울이 자랑을 하기 전에 먼저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19절에 보니까, “너희는 지혜로운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을 기쁘게 용납하는구나” 책망한다기보다는 비꼰다고 보는 게 더 맞겠죠. 너희가 지혜롭다고 하면서 어리석은 자들을 잘도 용납하는구나. 이런 말이에요. 어리석은 자들을 그렇게 용납도 해주고. 참 지혜롭네. 이렇게 비꼬는 거죠. 
    밑에 20절도 같은 말입니다. “누가 너희를 종으로 삼거나 잡아먹거나 빼앗거나 스스로 높이거나 뺨을 칠지라도 너희가 용납하는도다” 
    거짓 교사들이 별의 별 짓을 다 해도 그것을 다 용납해준다는 겁니다. 이것이 지혜롭다고 하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현실이에요. 이거는 지혜로운 게 아니고 멍청한 거죠. 성도들이 멍청해요.
    그래서 바울도, 성도들의 수준에 맞게 똑같이 어리석은 자가 되어서 육신을 자랑하려고 하는 겁니다. 그래야 말귀를 알아먹으니까. 너무 영적인 말로 하니까 안 돼요. 세상적인 말을 좀 해줘야 돼.
    그런데 아무리 바울이 세상적인 방식대로 자랑을 한다 할지라도,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습니다. 세상적인 것도 정도가 있지, 선을 넘으면 안 돼요. 거짓 교사들은 성도들을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빼앗고, 스스로 높이고, 심지어 뺨을 치는 짓을 하고 있거든요. 바울은 이런 짓은 도저히 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21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나는 우리가 약한 것 같이 욕되게 말하노라...” 아멘. 이게 지금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번역을 이상하게 해놔서 이해하기가 어렵죠. 이 말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면 이런 말입니다. “부끄러움으로 말하노니, 나는 너무 약해서 그렇게 할 수 없노라” 나는 너무 약해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뭘 할 수 없다는 거예요? 거짓 교사들처럼 종으로 삼고, 잡아먹고, 빼앗고, 스스로 높이고, 뺨을 치는 그런 짓은 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세상적인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사람인 이상, 그럴 수 있죠.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지켜야 합니다. 상대방이 욕을 한다고 해서 나도 욕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상대방이 속임수를 쓴다고 해서 나도 속임수를 써서야 되겠습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 왕년에 한따까리 했던 분들도 계실 겁니다. 세상적인 방식으로 싸우면, 누구라도 다 이길 자신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면 안 되잖아요.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내 믿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바울은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세상적인 방식을 택했어요. 나를 자랑하는 것. 우리가 보기에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바울에게는 큰 결심을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나를 자랑하고, 자격이 있음을 증명하고, 나를 우러러보게 만드는 것. 바울은 자신이 그렇게도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하는 그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선을 지켰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품위를 잃지 않았어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본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품위를 지키고,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어쩔 수 없이 세상적인 방식을 사용하게 되더라도, 그것을 자제하고 통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나치면 세상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어요. 우리는 세상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람입니다. 이것을 항상 기억하고, 부끄러울 것이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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