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부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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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12–16 NKRV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들어가면서
사도 바울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바울의 고백에 따라 그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다.
그가 어떻게 위대한 사도가 되었고 그의 사역은 어떠하였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사도 바울의 등장
성경에서 바울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때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는 상황이다.
스데반 집사가 공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그를 죽이고자 성 밖으로 내칠 때 나타납니다.
사도행전 7:58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옷을 벗어서 청년 사울의 발 앞에 둔다
이는 사울이 스데반의 처형 집행자라는 것을 뜻한다
청년 사울(30대로 여겨진다)이 얼마나 유능한지 공회의 의원이면서 처형 집행관에 대제사장으로부터 즉결 심판권을 위임 받은 사람이다.
사울(바울)은 다소 사람이다.
다소는 학문의 도시로서 로마의 수많은 유학생들이 공부하기 위해 모여드는 도시였다.
사울은 여기에 부유한 집안에서 로마 시민권을 갖고 태어난 금수저였다.
그리고 그는 랍비가 되기 위해 교육의 도시인 다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유학을 오게 되었는데 대략 13세 쯤이었다.
그는 바리새인과 랍비의 최고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사람이었다.
사울의 업적(?)
사도행전 8:1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하는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로 생각했다.
율법에 따르면
신명기 21:23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나무에 달린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인데
예수라는 사람이 나무에 달려 죽은 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따를 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니 결코 용납할 수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잘못된 지식과 잘못된 열심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사울의 박해로 인해
결국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사도행전 8:3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런데 사울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도행전 9:1–2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사울은 각지로 흩어진 예수의 추종자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다메섹으로의 여정을 떠났다.
사울의 부르심
사도행전 9:3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하늘로 부터 빛이 그를 비춘다
그리고 그 빛이 그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전한다.
사도행전 9:4–5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는 시력을 잃고 사흘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그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아니었음을 알고 낙담한 상황인 것이다.
지금 까지 내가 헛살았고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라는 낙심과 절망의 순간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 하나님께서 다메섹에 거주하던 아나니아를 통해 그를 다시 부르신다.
사도행전 9:15–17 “15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하나님께서는 아나니아를 통해 사울이 받은 사명에 대해 전해주시고
그의 눈을 고쳐주신다.
우리가 아무리 연약하고 과거가 어떠하든 주님의 손에 붙들린바 되고 하나님께서 다시 나를 불러주시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용서해 주시고 나를 사용하신다고 하니 마음이 어떻겠는가?
사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사도행전 9:20 “20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즉시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다메섹의 유대인들은 많이 놀랐을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온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하니까
사울의 연단
놀라운 것은 바울이 곧바로 사도로 쓰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 다메섹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로 보내신다.
사도행전 9:22–23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사도행전에서는 이 공백기를 명확하게 언급하지 하지 않는다.
그냥 여러 날이 지나매로 표현해서 며칠 정도 지난 것으로만 말하지만 이 날은 3년이다.
이 공백을 갈라디아서에서 밝히고 있다.
갈라디아서 1:17–18 “17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18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방문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와 함께 십오 일을 머무는 동안”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에 갔다고 하였는데
이 아라비아에서 3년을 보낸 것이다.
왜 아라비아 광야에 갔을까?
모세 다윗 엘리야 세례요한 등
하나님께서는 부르신 자들을 광야로 보내는 경우가 있었다.
광야(미드바르) => 말하다는 뜻의 다바르에서 온 단어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곳
다메섹에서의 체험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싣”라는 확신을 주었다면
아라비아 광야는 “내 인생의 부르심은 무엇인가??”를 깊이 붙드는 시간이었다.
인생에는 광야가 있다.
달려만 가야할 것이 아니라, 잠깐 멈춰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있는 것이다.
물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그곳에서 간절히 하나님을 뵈어야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나님의 사명은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광야는 낙심의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준비시키시는 곳이다. 이스라엘의 40년 광야생활이 그러했듯
아라비아의 3년이 지나고 예루살렘으로 간 바울
사도행전 9:26 “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자신들을 잡아 죽이던자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니..
중재자 바나바
사도행전 9:27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은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품음과 공동체의 인정 속에서 그 부르심이 열매를 맺는 것이다.
공동체가 돕지 않으면 사역은 이루어질 수 없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받아주고 서로의 사명을 인정해 주어야 하낟.
그를 왜 부르셨느가?
디모데전서 1:15–16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께서 왜 오셨는가?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바울은 어떤 자인가
죄인 중에 괴수이다.
예수님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자신이 예수를 믿지 않을 뿐더러 다른 사람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 자니까
그런데 왜 바울이 긍휼을 입었습니까?
바울을 오래 참으심을 보여주심으로
이후에 예수님을 믿을 자들에게 본을 삼기 위해서이다.
우리에게 주는 위로
하나님의 부르심은 놀랍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놀랍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바울이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바울이 사용되었다면, 우리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의 과거가 문제 되지 않았듯, 우리의 과거도 문제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죄인 중의 괴수였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지금도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과거의 죄와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그보다 크십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며 우리를 기다리십니다. 결국 긍휼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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