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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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사도행전 1:8(신약 187쪽)
설교제목 :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삶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이번 주에 청년들과 함께 사도행전을 공부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남겨진 사도 곧 예수님의 증인들의 행적에 관한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인데요. 이 책의 핵심내용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에 담겨 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복음이 예루살렘을 넘어 땅끝 곧 온 세계로 전파됨을 보여주는데요. 실제로 사도행전의 구조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로 또 당시 땅 끝으로 여겨진 로마로까지 복음이 전파되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의 주된 역할을 한 인물로 베드로와 바울이 등장을 하는데요. 그래서 사도행전의 전반부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요. 후반부는 바울의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베드로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고친 사건이 있죠. 찬양으로도 만들어진 그 유명한 ‘은과 금 내게 없으나 내게 있는 것을 너에게 주니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이야기 함으로 치유의 기적을 행했던 일이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극적으로 감옥을 탈출하였던 일 등이 전반부에 나오고요.
사도행전 9장에서는 스데반을 죽게 만들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람이 되고요. 사도행전 13장부터 1차 전도여행을 시작으로 3차례의 전도여행을 펼치고요. 이에 더해서 비록 죄수의 신분이긴 하였으나 로마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로 사도행전의 이야기가 예루살렘에서부터 당시 땅끝이라 할 수 있던 세계의 중심 로마로까지 복음이 전파되어지는 이야기로 끝이 나는데요.
전설에 따르면 이래요. 베드로는 복음을 전하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게되는데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릴 수 없다고 하여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고요. 바울 역시 로마에서 목이 잘려 죽음을 맞이하게 돼요. 사도행전에는 그와 같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서 복음이 사도들의 노력으로 온 세계를 뻗어서 나아갔다는 것으로만 생각할 수 있는데요. 사도들은 사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걸고 실제로 대부분의 복음 전파자들이 베드로 또는 바울과 비슷한 모양으로 순교를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살피면서 저는 청년들에게 물었어요. 여러분은 만약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댓가가 비참한 죽음이라면,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말이지요. 이에 대해서 청년들은 대체로 정직하게는 그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는 답을 했어요. 저는 이것이 정직한 말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사실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쩌면, 내가 예수를 믿고 더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하는 것은 적어도 이 일이 내게 손해를 준다는 생각보다는 그래도 나의 삶의 긴 역사속에서 보건데 이득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요.
단적인 예로 제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신앙생활 덕분이고, 현재 목사로 교회에서 일하면서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예수를 믿은 덕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반대로 내가 그동안 열심히 예수를 믿었음에도 삶에 아무런 진전도 없고 아무런 유익도 없었다면, 제가 계속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아마도 그것은 어렵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요.
이번 주 월요일 새벽에도 비슷한 얘기를 나눴지만요. 시편의 시인들이 내가 원하는 것은 한 가지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전에 살면서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사실은 쉽게 이해되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했는데요.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무엇가를 끝임없고 구하고 우리의 삶에 도움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이지요. 반대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이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에 관한 또는 우리의 소원에 관한 간절한 바람에서 비롯됨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보면, 인간적인 마음에서 그저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아무런 유익도 기대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해 나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해요. 제가 전에 공부하기로는 우리의 뇌는 기본적으로 손해보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해요. 왜냐하면, 그것은 생존에 관계되어서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면, 내가 먹을 음식을 남에게 다 내어주면 나는 생존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에요. 그와 같은 사람들은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일찍이 다 죽었고 어떤 의미에서 이기적이라고 할 수 이는 사람이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 자자손손들이 오늘날까지 대를 이어온 것이므로 우리는 유전적으로 혹은 뇌에 깊이 각인되어 손해보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에요. 그것이 인간이 나쁘다기 보다는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 역사 속에 나타곤 했다는 거에요. 그들이 이렇게 말해요. ‘너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 혹은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을 내어거는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죠. 그것이 오래된 인간의 본성과는 맞지 않지만, 인간을 초월하게 했고 인간이 그저 생존만을 원하는 동물 이상의 존재를 넘어서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저는 베드로와 바울의 복음 전도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는 사실은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보여져요. 왜냐하면, 목숨걸고 복음을 전하다 실제로 죽기까지 하였으니까요.
어떻게 이러한 삶이 가능했을까요? 오늘 성경구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8(신약 187쪽)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남겨진 제자들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끝에 이르기까지 전파될 것을 말씀하시는데요.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다시 말해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지 않으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땅끝까지 이르러 전파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숨을 내걸고 복음전파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 여기에 있었던 것이지요.
결론을 말하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은 마음에서 목숨을 내걸고 복음전파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은 오래전부터 생존을 위해 손해를 못겨디는 본성으로 살아왔고요. 실제로 그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인간이 본성과는 다른 것을 행할 수 있었던 존재로 거듭나기도 하였는데요. 가령, 사랑함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목숨을 내어걸 수 있었던 것이지요. 성경은 그것이 성령 곧 하나님의 도우심에 따른 것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렇게 성령을 힘입은 삶이 우리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해서 특별한 삶으로 인도하게 되는데요. 달리 말하자면, 베드로와 바울이라는 인물이 특별해서 복음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다기 보다는 그들이 성령을 힘입어서 그와 같은 삶을 살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저는 과연 이러한 삶이 무엇일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요. 이런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미래를 소망하는 삶이라고요.
제가 이번 주에 놀라운 경험을 하였는데요. 저는 이번 주에 천사를 만났습니다. 혹시 우리 성도님들은 천사를 만난 적이 있으신가요? 천사는 어떻게 생겼을 것 같나요? 제가 만난 천사는 이랬어요. 그는 50대 남성이고요. 저처럼 배도 나오고 결혼을 했고 자녀도 있었어요. 사실 제가 만난 건 진짜 천사는 아니고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를 천사라고 하는 까닭은 이러한데요.
성경에서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역사하시는데요. 그래서 천사는 본래적으로는 신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중간자로써 존재하지만요. 천사의 역할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자라면, 제가 만난 사람도 천사라 할 수 있어요. 저는 사역을 하면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었어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관한 문제였는데요. 제가 내향적인 사람이라 관계를 추구하지도 않고 그에 따라 관계를 맺는 것도 서툰데요. 특별히 관계에서 어려운 부분이 이런 거였어요.
때로는 실망하거나 마음이 상할 때가 생기는데요. 이러한 상태에서 이전과 같은 태도로 상대를 대하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이러한 문제가 생기면, 과거와 달리 어색하게 대하게 되고 마주하는 것에 불편함이 생기곤 해요. 그런데 제게 온 천사는 자기 얘기를 하면서 저에게 깨달음을 주었어요. 자신은 과거에 비해서 현재에 많이 변화된 것 같은데, 그것은 주변 사람들 특히 담임목사님과 부모님의 한결같은 사랑과 신뢰에 따른 것이라고 해요. 과거에 자신이 했던 일을 생각하면 부끄러움 투성인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내치지 않고 용납해준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 자신은 성장하고 변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 천사의 이야기였어요.
제가 그 얘기를 듣다가 깨달았어요. 아! 이것은 나 들으라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구나 하고요. 제가 관계의 문제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실망하고 불편함을 준 상대가 미래에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한 상대를 마주하는 것이 힘들었던 것인데요. 그건 내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과거와 달라졌고 계속해서 변화를 겪고 있는데, 내가 왜 상대가 변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고 그것에 따라 상대에 대한 마음음과 태도를 정하고 있었느냐하는 것이죠. 그러면서 앞으로 사역을 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닫힌 마음으로 또는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와 같은 어리석은 판단을 바탕으로 상대를 대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이것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과 관계되어 있다 생각하는데요. 내 생각으로는 현재의 상태가 미래에도 영향을 주어서 내 생각 속에서는 미래가 더 희망있게 판단되어지지 않을 수 있는데요.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고 훌륭하신 분이어서 미래를 더 소망있게 바꿔가실 수 있다고 믿는 거에요. 그 믿음의 바탕이 되어지면, 미래를 소망할 수 있고요. 작은 내 경험과 판단에 의지해서 살아가기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하나님의 하실 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죠. 설령 그것이 내 기대와는 어긋나게 세상에서 말하는 손해를 보는 삶처럼 보인다고 해도요. 그것은 결코 후회가 남지 않을 수 있는 것이죠. 잘 생각해보면, 베드로와 바울을 비롯한 역사속 많은 복음 증거자들이 손해보는 인생을 산 것 같지만, 그들로 말미암아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고요. 그들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바라건대, 저는 오늘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미래를 소망하며, 하나님께 내어 맡김으로 현재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판단에 삶을 맡기지 않고 하나님의 계획을 소망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와 같은 삶을 이룰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