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새벽기도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9 views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누가복음 19:1-10(신약 127쪽)
설교제목: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심리/상담 학자 중에 한성열 교수님이라는 분이 있어요. 그가 제가 종종 즐겨보는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간증하는 것을 들었는데요. 그가 중학교를 갈 무렵에는 시험을 쳐서 학교를 입학했는데요. 당시 서울쪽에서 공부 좀 한다는 친구들은 ‘경기중학교’를 갔어요. 그도 경기중학교를 가고 싶어 했고 갈 실력도 있었어요. 그런데 국민학교 5학년 때, 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기 시작해서 병원에 갔더니 ‘자반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어요. 의사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안 된다고 무리해서 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어요. 그 결과로 목표했던 중학교를 가지 못했고 그에 따른 실망감이 컸어요. 그래서 목사님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이른바 미션 스쿨이라고 기독교계 중학교에 입학을 해요.
아버지가 목사님이셔서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했는데요. 나름대로 헌금도 잘 하고 예배도 안 빠지고 열심히 했는데요. 자신은 뜻밖에 생긴 병 때문에 공부도 못하고 원하는 학교도 가지 못하니깐 하나님에 관한 원망과 오해만 커져갔어요. 더욱이 미션 스쿨이라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은 사랑이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반발심이 생겼다고 해요. 그렇게 삶이 절망적이라고 느끼며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언제나 벽을 치고 살아다가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돼요. 그가 심리/상담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것이 그 일 때문이었다고 해요. 어느 날은 교감 선생님이 자기에게 와서는 꼭 안아주시면서요. 이렇게 말씀하시더래요. ‘성열아 너 아직도 마음이 아프구나’ 이 말을 듣는데, 그 동안의 원망과 절망이 눈녹듯이 녹아내렸다고 해요.
그러면서 깨달았다고 해요.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떤 충고나 지식이나 조언 따위가 아니고요. 상대의 아픔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것 곧 마음을 알아주는 것에 있다는 거에요. 그리고 심리/상담 전문가인 한상열 교수님이 보기에 예수님 또한 이와 같은 공감을 잘 해주시는 분임을 이야기하는데요. 그 증거로 오늘 우리가 읽은 삭개오의 이야기를 했어요.
잘 아시는 것처럼, 삭개오는 세리장이었어요. 세리는 오늘날로 말하면, 세금징수원인데요. 당시에 세리는 사실 민족의 반역자로 여겨졌어요. 왜냐하면, 세리의 역할은 로마 제국을 대신해서 같은 민족들에게서 세금을 거둬서 로마 제국에 바치는 것이었어요. 공무원과는 다른 것이죠. 마치 우리가 일제의 식민지배를 받을 때, 친일파처럼 같은 민족의 등골을 빼먹는 존재들이 바로 세리였고요. 그 세리의 우두머리가 바로 삭개오였던 것이지요. 그러니 친일파와 같은 세리를 더 나아가서 세리의 우두머리였던 삭개오를 좋아할 사람은 없지요. 오히려 벌레보듯이 경멸했죠.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님이 보인 반응을 주목해야하는데요. 5절에 보면,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예수님은 ‘삭개오’라고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지요. 이것을 한상열 교수님은 이렇게 해석해요. 이름을 부르는 것은 그와 친구를 맺겠다는 뜻이지요. 다시 말해서, 당시 사람들이 세리를 대하는 태도와는 다른 태도를 취하겠다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세요. 유대인들에게 함께하는 것은 매우 가까운 관계를 뜻했어요. 그들은 아무나하고 식사하지 않았고요. 같은 민족 또는 매우 가까운 관계에서만 함께 했어요. 신약성경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가 바울이 이방인을 데리고 나타나자 식사자리에서 슬그머니 빠지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죠. 이렇게 식사하는 것도 쉽게 곁을 내어주지 않는데, 집에 머무르는 것은 더욱더 생각하기 쉽지 않았죠. 그런데 예수님은 삭개오를 매우 가까운 사람처럼 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요. 앞서 한상열 교수님이 학창시절에 교감선생님을 통해 경험했던 공감과 퍽 닮아 있지요. 어떤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요.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당하고 외면받고 어쩌면 외로웠을 세리장 삭개오의 마음을 공감해 주시는데요.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며 친구로 여기시고 함께 집에 머무를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를 품어 안으시죠.
이러한 예수님의 행동에 의해서 나타나는 삭개오의 반응을 한상열 교수님은 주목하라고 하는데요. 6절에 보면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영접했다’라고 해요.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8절에 보면 삭개오는 ‘자신이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로 보상하고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겠다’고 해요. 특별히 여기서 한상열 교수님이 주목하는 부분은 6절에 삭개오가 ‘즐거워했다’는 장면이에요. 사람이 변화하는 것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이 즐거움이라는 것이죠. 이런 거죠. 결국 내 마음을 상대가 알아주면요. 이른바 ‘사는 맛이 나고 사는 재미가 생기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삶의 변화로 이끄는 것이지요.
제가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가 누군가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그의 마음을 먼저 읽는 것이 중요하다라고요. 그런데 많은 경우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로 상대를 판단하고요. 눈에 거슬리는 상대의 행동에 관해서 고치라고 얘기해요. 물론 이를 설득하기 위해서 훌륭한 사람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고요. 또 상대방이 그 문제를 잘 생각해보도록 조리있게 논리적으로 얘기해보기도 하죠. 혹은 이마져도 안 통하면 으름장을 놓는 식으로 경고하거나 때로는 위협하기도 하죠. 그런데 오늘 심리상담 전문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것으로는 변화를 이룰 수가 없다는 거예요. 오히려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충고나 조언이나 명령 등을 멈춰야하죠. 오히려 왜 그가 그와 같은 행동과 그러한 일을 벌이는 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야 하는 것이고요. 이것이 공감이지요.
그런데 공감이라는 것도요.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죠. 내 나름대로는 상대를 이해한다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도해보고 마음도 넓게 가져보려하는데요. 그것이 충분히 훈련되어 있지 않으면, 상대를 충분히 공감하기가 참 어려워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부모 자식 간에요. 참을 인자를 그렇게 새기면서도 사는데, 자주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또는 그 마음을 제대로 읽지를 못해서 미움과 원망 등으로 번져잖아요. 그래서 어쩌면 공감은 생각처럼 쉽지도 않을 뿐더러 평생을 노력하지 않는 이상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해요.
하지만, 저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서요. 또한 보게 되는 것이 있어요. 예수님이 삭개오를 아셨고요.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셨다는 거에요. 물론 삭개오의 입장에서는 삭개오가 예수님께 찾아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요.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기 위해서 삭개오가 사는 동네로 오셨으니까요. 예수님이 삭개오를 찾아가신 것이죠. 저는 여기에 희망이 있다고 봐요.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아시고요. 우리에게 먼저 찾아오시는 분이에요.
예수님께서 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공감해 주시고요. 그것을 통해 우리는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변화를 이루는 것이 또는 변화를 시키는 것이 불가능 할 수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을 통해 또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변화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예수님께 또는 하나님께 변화를 이루기를 구한다면, 우리는 변화를 경험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는 변화를 경험하고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혹시 내 안에 만족스럽지 못한 모습들이나 생각들이 있나요? 혹은 누군가의 변화를 기대하고 소망하고 있나요? 그에게 찾아가서 대단한 말로 엄청난 논리로 위압적인 힘으로 변화를 이룰 수는 없을 겁니다. 짧은 시간 변화하는 것처럼 보여도 잠시 잠깐의 변화에 불과할 수 있죠. 왜냐하면, 그속에는 내가 이해받고 공감받는 즐거움이 없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을 통해 우리는 공감받고요. 변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오늘 변화를 꿈꾼다면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주께서 우리를 변화로 인도하시고요. 우리의 깊은 곳까지 살피셔서 우리에게 공감하시며 우리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늘 나의 변화를 위해서 다른 사람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