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인물이야기-15. 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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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에스더 4장 10~17절(구약 754쪽)
설교제목: 성경인물이야기-15. 에스더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을 모르드개에게 전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가 명령한 대로
다 행하니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 서로를 축복합시다.
“잘 오셨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가득히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에스더라는 인물에 관해 살펴보려 합니다. 에스더가 성경에서 차지하고 있는 특별한 점이 있는데요. 잘 아시다시피 우리 가진 성경은 66권의 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 중에서 여성 인물의 이름을 딴 책이 딱 2권이 있습니다. 룻기와 에스더가 그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와 가부장적인 문화를 고려할 때, 여성 이름을 딴 성경의 책이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룻과 에스더라는 여성은 당시에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음을 말해주는데요. 어떻게 그들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될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에스더라는 여성에 한해서 이를 살펴보려 합니다.
에스더가 살았던 시대는 페르시아 제국이 세계를 주름잡고 아하수에로 왕이 페르시아를 다스리던 때였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만든 영화 ‘300’에서 특이한 복장을 하고 ‘짐은 관대하다’라는 대사로 인상 깊게 등장한 왕입니다. 영화에서는 좀 과정된 모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요. 그는 실제로 페르시아의 역사에서 ‘크세르크세스 1세’로 기록되는데요. 페르시아 제국의 4번째 황제였습니다. 또한, 그는 페르시아 역사에서 가장 큰 영토를 가졌고요. 페르시아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업적만 놓고 보면 우리 역사 속에서 광개토 대왕과 비슷한 인물입니다.
이는 에스더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임을 뜻합니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가 보이는 행동은 그의 힘에 걸맞지 않고 다소 유치함이 드러납니다. 그는 6개월 간 나라의 신하들을 불러서 큰 잔치를 벌입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6개월의 큰 잔치 후에 제국의 모든 백성을 초청하여 왕궁의 정원에서 또 일주일간 잔치를 벌입니다. 이에 흥이 오른 아하수에로 왕은 자신의 아내였던 왕비 와스디의 미모를 백성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서요. 와스디에게 치장하고 사람들 앞에 나오라고 합니다. 그러나 와스디가 이를 순순히 따르지 않자. 아하수에로 왕은 이 일에 격분하면서요. ‘페르시아 제국의 모든 여인은 자신의 남편을 존경하라’는 법을 만들어버립니다. 또 와스디를 왕비에서 폐위시킵니다.
이를 통해 아하수에로 왕이 어떤 인물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유치한 인물인데요. 자신이 가진 힘을 통해 자신을 매우 뽐내려 했던 인물이고요. 자신의 뜻에 반대하는 것을 못 겯디는 성품의 사람입니다. 마치 성숙하지 못한 아이가 위협적인 칼을 쥔 모양세 인데요. 이런 아하수에로 왕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를 대단한 인물로 여기기보다는 매우 하찮은 인물로 여기게 됩니다. 이로부터 생각하는 것입니다. 힘을 가진 사람이 존경을 받는 것이 아니라 쥔 힘에 걸맞는 행동과 삶을 이루는 사람이 존경받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담임목사님이 종종 이런 얘기를 하셨는데요. ‘노인이 아니라 어른이 되고 싶다.’라고요. 나이를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한 삶을 살아야 어른 되는 것이지요.
한편, 와스디 왕비의 폐위로 그 자리를 대신할 왕비 콘테스트가 열립니다.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서 미인들이 선발되어 왕궁에 몰려들게 됩니다. 여기에 선발된다는 것은 인생역전을 이룰 특별한 기회를 얻는 것인데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의 옆에 서게 된다는 것은 자신 또한 어마어마한 힘을 누리게 됨을 뜻하지요. 아마도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모든 여성의 이목이 이러한 왕비 콘테스트에 몰려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시 모든 여성은 너나 할 것 없이 선발되어서 왕궁으로 가기를 원했을지 모릅니다. 여기에 오늘의 주인공 에스더도 선발되어 왕궁으로 향하게 됩니다.
에스더는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모르드개라는 삼촌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에게 에스더는 딸과 같고 에스더에게 모르드개는 아빠 같았습니다. 이것이 에스더라는 인물의 심리를 이해하는 하나의 단서가 되는데요. 어린 시절에 부모 잃고 고아가 된다는 것은 버림받음에 관한 심리적 불안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서 버림받지 않고자 보호자 또는 양육자에게 의존적이거나 과도하게 충성적일 수 있는데요. 이런 거예요. ‘착한 아이 컴플렉스’라는 것이 있는데요. 양육자의 인정과 사랑을 잃어버릴까 봐 거절을 잘 하지 못하고요. 과하게 순응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죠. 물론, 어린 시절에 부모를 잃었다고 모두가 이러한 심리상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를 통해 에스더를 좀 더 이해해 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어쩌면 이러한 심리가 결국, 에스더가 왕비가 되는 것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요. 있다가 살펴보겠지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본문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여지는 데요. 왕비 콘테스트에 선발된 여러 여인 중에서요. 에스더는 그들을 맡아 관리하던 해게라는 내시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릅니다. 다른 여인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을 더 돋보일 수 있을까 하여서 장신구 하나라도 더 달고 뽐내고자 했다면요. 에스더는 내시 해게가 시키는 대로만 치장하고 딱 시키는 것만을 해요. 에스더가 얼마나 순종적인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요. 신기하게도 그 결과는 아하수에로 왕의 사랑을 받고 모든 경쟁자를 물리치고 왕비가 됩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요. 기본적으로 미모가 훌륭해서일 텐데요. 사실 미모라는 것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극적인 차이가 나지 않지요. 가령, 요즘 있기 있는 아이돌 가수만 봐도 다들 외모가 비슷비슷하고 체형이나 스타일에 차이가 좀 있는 정도지 얼굴만 놓고 보면 그렇게 극적으로 대비가 되는 경우는 드물지요. 이처럼,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서 미인들을 선발해서 뽑았으니 어쩌면, 미모의 차이는 아주 미세한 차이에 불과했을지 몰라요. 그러면 나머지 결정적인 요인을 주었던 것은 성격과 같은 내면의 품성이 아니었을까 하는데요. 앞서 말한 것처럼, 에스더는 순종적인 면모를 계속 보여주고 있고요. 이는 폐위된 왕비 와스디와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던 것이죠. 에스더의 이러한 품성은 아마도 그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인 것에서 비롯된 심리상태에 따른 것이 아닌가 해요.
사실 에스더가 왕비가 되는 것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하나님의 도움입니다. 성경의 여러 책 중에서 에스더의 가장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에스더에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그런데도 에스더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데요. 어떻게 알 수 있느냐면, 에스더의 결말이 하나님의 뜻을 향해가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등장하지 않지만, 우연이 일어난 일들 속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또는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에스더는 하나님이라는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음에도 분명 하나님께서 살아 숨 쉬는 책이지요.
저는 이로부터 생각해요. 하나님은 참으로 살아계시고요.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은 그와 다를 수 있어요. 실제로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고요. 때때로 우리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과 고난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와 같은 고통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믿지 못할 수 있고요.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부인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누는 에스더의 이야기를 주목해 보시길 바랍니다. 이른바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컬어지던 유대인인 에스더의 민족의 나라는 오래전에 멸망했고요. 그들은 나라 없는 유랑민으로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요. 그 속에서도 에스더 개인은 일찍이 부모를 잃은 고아였어요. 단지 모르드개라는 삼촌만이 에스더의 유일한 피난처이자 보호막인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미래를 소망하며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런데 그렇게 깜깜한 어둠이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임하는데요. 에스더가 당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의 아내가 되는 것이죠. 그저 우연이라고 에스더가 훌륭해서라고만 말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인 것이죠. 이는 하나님의 도움으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것이 신앙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않은 사람의 차이를 만드는데요. 우리의 삶에 문제가 생기고 절망적인 인들이 언제든 벌어질 수 있죠. 앞서 말했듯이 심지어 예수를 잘 믿어도 말이지요. 그런데, 신앙인은 그 고난과 어려움을 대하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인데요. 물론 기도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수 있지만요. 참 놀라운 것은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고난의 시간을 통과하였고요. 그 문제가 더는 문제가 아닌 것이 되어버리죠. 신앙인은 이것이 결코 우연히 운이 좋아서 일어난 것이라 여기지 않죠. 하나님께서 나를 도우셨음을 고백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니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신앙인의 삶을 세상과는 구별되는 것이죠.
한편 에스더가 왕비가 된 이후에 큰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당시 아하수에로 왕의 총애를 받던 이가 있었는데요. 그는 하만으로 총리대신이었습니다. 사람이 끼리끼리 모인다고 하죠. 아하수에로 왕처럼 하만 또한 과시적인 인물이었는데요. 어디 가든 대접받기를 좋아하고 자신이 떠받들어지길 바랐는데요. 아하수에로 왕이 하만을 아꼈기 때문에요. 하만의 바람처럼 그가 궁궐을 출입할 때마다 신하들이 그에게 무릎 꿇고 절하며 마치 경배하도록 명령했어요. 에스더의 삼촌이자 그의 양육자였던 모르드개 또한 궁궐에서 신하로 있었는데요.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기에 하만에게 경배하는 행위를 할 수 없었고 이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화가 난 하만은 악랄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요. 아하수에로 왕의 허락을 얻어서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유대민족을 싸그리 죽이고자 합니다. 이는 ‘아달월 13일’이라는 특정한 달에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서 유대인을 집단학살해도 좋다는 왕의 명령을 발동시킨 것인데요. 이 소식을 들은 모르드개는 큰 슬픔에 빠져서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 쓴 채로 에스더에게 나타납니다. 에스더의 왕비의 지위를 이용해서 이를 막고자 함이었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모르드개의 기대와 달리 에스더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성경말씀 10절과 11절을 같이 읽습니다.
에스더 4장 10~11절(구약 754쪽)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전하기를
11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에스더는 자신이 왕비라고 할지라도 왕의 허락 없이 왕께 나아가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죽을 수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요. 인생의 아이러니를 생각합니다. 에스더가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하나님의 도우심에 따른 것이었지만요. 아마도 에스더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형성된 그의 순종적인 성품 또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에스더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것이 지금은 에스더의 성숙을 방해하며 그의 발목을 잡는 것입니다. 역사 속 아하수에로 왕 정확히는 크세르크세스 1세 역시 비슷했는데요. 그는 가장 큰 페르시아 제국을 이루고 전성기의 페르시아를 이룩했지만요. 오히려 그 힘 때문에 제 목숨대로 살지도 못하고 정적들에게 암살당해 죽게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이 가진 능력에만 매여 있으면 안 되는데요. 그 능력을 뛰어넘어야 더 성숙해지고 이른바 어른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죽을 때가 배워야 하고 변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변화를 이룬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아요. 경험이 적고 가진 것이 많지 않을 때는 그래도 좀 더 쉽게 변화할 수 있을지 모르는데요. 에스더의 경우처럼 성공의 경험이 있고 그것이 오래되었다면, 그것을 넘어서기가 참으로 어렵죠. 그러나 오늘 성경은 에스더가 변화를 겪게 됨을 보여주는데요. 오늘 함께 읽은 성경말씀 13~16절을 같이 읽습니다.
에스더 4장 13~16절(구약 754쪽)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15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 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방금 읽은 성경 구절을 통해 저는 에스더가 변화를 이르게 되는 과정을 두 단계로 보게 돼요. 13절과 14절에 나오는 모르드개의 말은 에스더에게는 뼈아픈 말이지요. 저에게는 이렇게 들리는데요. ‘에스더야, 너가 왕비가 된 것이 너의 실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 때문이 아니냐. 그런데 이제 살만해졌다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를 해서야 되겠느냐.’ 여기서 저는 변화의 첫 단계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에서 시작됨을 봐요. 그것은 자신의 무능력함을 철저하게 깨닫는 과정이지요. 지금껏 내가 살아왔던 삶이 나의 노력과 힘으로 이룩한 것이 아님을 깨닫고요. 주변 사람들의 많은 도움과 하나님의 은혜에 따른 것임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변화를 이루기 위한 정말 중요한 다음 단계가 있는데요. 16절에 보는 것처럼요.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나아가는 것이지요. 물론 16절에 에스더가 기도했다는 얘기는 없고요. 금식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죽음을 각오하는 결단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그런데 에스더가 금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내가 먹어야 사는 존재인데, 먹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다시 말해 생명을 내걸 만큼 간절한 것이 있음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죠.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나의 간절함을 보아달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기도이지요. 결국, 인간의 힘으로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기도인 셈이죠. 이 기도에 이르기 위해서 앞서 보았던 것처럼 단계가 필요해요. 자신의 철저한 무능력을 깨닫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해요.
잘 생각해 보세요. 언제 기도하게 되는지를 말이지요. 하나님 앞에 우리가 엎드리고 하나님께 나오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잖아요. 하나님 밖에는 다른 도움을 얻을 수 없다는 믿음으로 나오는 것이잖아요.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사실 기도의 자리로 나올 수 없죠. 그래서 기도는 철저한 겸손으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인데요.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는 것이지요.
에스더의 기도는 어떤 결과로 이어졌을까요? 우리 대부분 성도님들은 이미 답은 알고 계시지요. 에스더는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는데요. 늘 자신의 보호자들의 뜻을 따르며 수동적이고 순종적으로 행동했던 그가요.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능동적인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고요. 지혜롭게 사악한 하만의 음모를 막게 되지요. 에스더라는 이름의 뜻은 별인데요. 그 변화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별과 같이 빛나는 존재로 영향력 있는 인물로 기억되게 됩니다.
에스더의 이야기에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내용이 핵심인데요. 어떻게 유약했던 에스더가 민족을 구원하는 인물이 될 수 있었는지를 잘 설명해주는 내용이지요. 결론은 에스더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에스더에는 하나님의 이야기가 전혀 나오지 않지만요. 에스더가 보여준 모습은 철저히 자신의 무능력을 인정하고 목숨을 내어 걸며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이었지요. 이렇게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인생은 변화될 수 있고 그 원동력이 기도에 있음을 에스더는 교훈해 주고 있어요.
끝으로 제 얘기, 하나를 드리고 마치려 합니다. 제가 지난주에 놀라운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 주일 새벽기도회 시간과 청년부 모임과 청소년부 예배에서도 나눴었는데요. 혹시 우리 성도님들은 천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까? 제가 지난주에 천사를 만났습니다. 이상한 눈빛으로 보지 마시고요. 끝까지 들어보세요. 제가 만난 천사는요. 50대 남성이고 저처럼 배도 좀 나오고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었어요. 참고로 이렇게 설명하니까 다들 서동완 장로님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던데요. 아닙니다. 사실 제가 만난 것은 진짜 천사는 아니고 사람인데요. 제가 이분을 천사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천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존재이지요. 제가 만난 분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기에 제가 천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았어요.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제게 들려줬어요. 긴 이야기이지만 제가 이해한 것으론 이래요. 현재 자신은 과거에 비해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데, 그 변화는 담임목사님과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자신의 언행이 부끄럽고 실수가 많았다고 하면서요. 그런데도 담임목사님과 부모님은 한결같이 자신을 대해주고 품어주어서 지금과 변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제가 그 얘기를 듣다가요. 이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들으라고 하시는 말씀이구나를 깨달았어요. 제가 교회에서 일을 하다가 보니까요. 여러 사람을 만나는데요. 사람과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참 어렵더라고요. 갈등이 없는 이전 상태로 그를 마주대한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목회자인 저에게 이것이 매우 안 좋은 태도인데요. 왜 나는 이럴까가 늘 고민이었는데요. 천사의 말을 통해 깨닫게 되었어요. 아마도 제가 사람은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사람일수록 그러한 확신이 더 커졌는데요. 과거부터이랬는데 앞으로 바뀌겠어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천사는 말해주었어요. 믿고 기다려주면 변화한다고요.
그러면서 깨닫게 되었어요.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고요. 다만, 그 변화는 스스로 이루기가 어려워서 도움이 필요하다고요. 오늘 에스더의 이야기는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구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변화를 이룰 수 있음을 알게 해줘요. 또한, 그러한 변화가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임을 알게 돼요. 바라건대, 오늘 우리도 변화된 삶을 이룰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 변화를 위해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