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9: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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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의는 구원에 걸림돌입니다.

#1. 서론
배경, 및 전후맥락
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할 때부터 이방인과 유대인의 관계, 그리고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율법과 언약을 소유하지 않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율법과 언약을 가지고도 실패한 유대인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는지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 정점에 해당하는 부분이 9-11장이다. 바울은 9장 전반부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역사적 사례를 이야기했고, 직전 본문에서는 이방인에 대한 부르심과 선택을 언급했다. 오늘 본문에는 그것을 더 확장해 설명한다.
핵심메시지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주제는 유대인에게 특별한 은혜로 받아들여진다. 하나님이 그들의 조상을 선택하시고 언약을 주셨다. 이방 민족들도 법을 가지고 있었지만, 유대인에게 율법은 유일한 신이신 하나님의 법이기에 구별된 것, 거룩한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선택의 개념을 확장해 설명한다. 하나님의 선택은 단순히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한 효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선포한다. 의의 법, 즉 율법을 소유한 이스라엘은 의에 이르지 못했으나, 이방인들은 믿음을 통해 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2. 본론
(1)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 (바울의 구약 인용)9:25-29
1) 호세아 인용(25-26절)
바울은 호세아와 이사야의 글을 통해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으로 부르겠다”고 말씀하셨고,
호세아 1:10 NKRV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
호세아 2:23 NKRV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 하시니라
또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직전 본문에서 바울은 이방인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대인만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동일한 선택이 이방인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바울은 25-29에서 구약성경을 연속으로 인용한다.먼저 25-26절은 호세아 1:10과 2:23의 인용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호세아의 문맥에 따르면 ‘백성’이라고 불리는 자들은 민족적 개념의 이스라엘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하나님 백성의 합법적 구성원으로 부르심을 받았음을 강조하기 위해 구약을 인용했지만, 사실 인용한 구절들은 이방인의 부르심에는 침묵하는 구절이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언약의 관점에서 구약을 재해석했다. 바울이 구약을 인용하는 이 같은 방식은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완성되고 성취된 것을 통해 구약을 재조명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2) 이사야 인용
이사야 10:22 NKRV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사야 10:23 NKRV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
말씀대로 하나님은 많은 이방인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적은 수만 구원 받게 하셨다.
하나님이 남은 자의 씨를 남기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했을 것이다.
이사야 1:9 NKRV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다.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하나님이 긍휼로 택하신 자만 구원받는다.
-27-29절에는 이사야 1:9와 10:22이 인용되어 있다. 먼저 27절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라는 구절에는 아브라함 언약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이삭에게 하신 말씀(창 22:17), 야곱에게 하신 말씀(창 32:12)과도 동일하다. 즉 바울은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가진 언약의 내용을 이방인에게도 적용시킨다.
27절에서는 ‘남은 자 신학’이 발견된다. 제2성전 유대교 문헌에서 이 표현은 주로 부정적이고 위협적인 방식으로 사용된다.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심판과 파멸을 선포하는 문맥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즉 남은 자를 향한 선지자의 외침은 패역한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바울은 남은 자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특히 27절은 6-8절의 설명을 반복한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모두 그의 자녀가 아닌 것같이, 아브라함 자손이 모래같이 많아질지라도 모두가 언약 자손이 아니라 남은 자가 언약 백성이다. 바울은 이와 같은 주장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과 아브라함의자손이 되는 것은 혈통적 정통성에 기인하지 않는다라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29절에 ‘씨를 남겨 뒀다’라는 표현은 7절의 반복인 동시에 암시하는 바가 있다. 27절에서 바울은 남은 자의 구원을 이야기했는데, 29절에서는 그것을 발전시켜 하나님의 은혜로 설명한다. 소돔과 고모라는 유대 문헌에서 종말론적 심판의 모형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그리고 후기 예언서 역시 이스라엘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를 통해 남은 자를 두셨다. 노아의 시대에는 그와 가족을 남겨두셨고, 출애굽한 백성들 중에 남은 자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게 하셨다. 엘리야에게도 남은 자를 말씀하셨고, 이스라엘의 포로기에도 남은 자를 두시어 회복의 발판을 삼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을 취소하지 않으시고 신실하게 이루신다.
-30-31절 이방인의 의
30절에 이르러 바울은 다시 로마서 전반부(3-4장)에서 언급한 믿음-의 개념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믿음-의를 이방인들에게 적용한다. 바울은 이방인들이 본래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유대인의 관점이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의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죄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율법은 의를 뒷받침해주고 이방인과 그들을 구별하는 근거다. 그런데 바울은 이방인들이 오히려 의에 이르렀고, 유대인들은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한다.
바울이 사용한 두 동사의 차이에 주목할만하다. 이방인의 경우에는 카탈람바노라는 동사를 통해 의가 얻어진다는 의미가 드러나며, 유대인의 경우에는 프싸노라는 동사를 통해 의에 이르지못한다는 뜻이 전해진다. 다시 말해 카탈림바노는 ‘수여된다’는 의미를, 프싸노는 ‘스스로 이른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방인들은 율법의 행위로 의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를 수요받았다. 반면 유대인들은 의의 법을 추구했지만, 의로움에 도달하지 못했다.
32-33절 유대인의 불의
이사야 8:14 NKRV
그가 성소가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걸림돌과 걸려 넘어지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주민에게는 함정과 올무가 되시리니
이사야 28:16 NKRV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실패한 핵심은 그들이 율법의 의미이자 목표인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 거절한 것이라고 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은 이사야 말씀을 인용한다. 특히 33절은 이사야 8:14과 28:16을 결합한 것이다.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는 맥락에서 등장한다. 바울은 구약 이스라엘의 실패를 다시 한 번 유대인들에게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들의 실패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를 얻은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은 반석이되지만 그분을 버린 자들에게 그분은 거치는 돌이 된다.
동일한 이사야의 구절을 베드로도 인용한다. 베드로전서 2:4-8에도 동일한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베드로는 산 돌, 보배로운 모퉁잇돌, 버려진 돌, 부딪치는 돌,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 등의 용어로 그리스도 예수를 지칭한다. 믿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머릿돌이지만,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다. 환언하자면 누군가는 버린 그 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집을 세우시는 중요한 기초가 된다.
요컨대 예수 그리스도는 믿지 않은 건축자들에게 혹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어 버려진 돌에 불과하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버려진 돌을 산 돌로 바꾸시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머릿돌로 삼으셨다. 유대인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머릿돌 되신 예수님과 함께 지어져가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예수님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 밖에 있는 자들일 수밖에 없다.
-> 구약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이방인인 나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 은혜에 어떻게 감사할까요?
본문 단어/어구 연구 / 문장/문맥연구
로마서 9:25 NKRV
호세아의 글에도 이르기를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사랑하지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
내가 부르리라: 칼레소, ‘;부르다’, ‘호출하다’, ‘선언하다’라는 뜻의 동사 칼레오의 미래 능동직설법 1인칭 단수형. 하나님이 이방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시는 선언적 행위를 나타낸다. 이 동사는 ‘호명하다’, ‘명명하다’, ‘지정하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신약성경에서는 주로존재의 규정이나 관계 전환 상황에서 사용되며, 하나님이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새로운 정체성을 선언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호명이 곧 정체성 부여라는 신학적 명제를 보여준다. 여기서 미래 능동태로 사용되는데, 단순히 미래 사건을 예고하는 용법이 아니라, 반드시 실현될 신적 선언을 나타내는 선언적 미래로 이해할 수 있다.
종속접속사 호스는 레게이(말하다)와 결합해 예언의 인용을 명시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간접인용 도입구로 쓰인다. 인용절의 주동사 칼레소는 ‘부르다’라는 뜻의 동사 칼레오의 미래 능동태 직설법ㅈ 1인칭 단수형으로, ‘내가 부르리라’라는 뜻인ㄴ데, 단순한 의지 표명이 아니라, 예언 성취의 확정 선언을 나타낸다. 내 백성이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와 사랑받지 못한 여인을 사랑한 여인이라/는 각각 남성과 여성 대격 명사구로, 대구를 이루면서 의미를 강화한다. 각 구문에 동일한 단어와 어구가 반복되어 독자들의 주의를 집ㅈ둥시키며 의미를 분명하게 각인시킨다.
로마서 9:28 NKRV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속히: 쉰템논은 ‘줄이다’ ‘단축하’ ‘요약하다’라는 뜻의 동사 쉰템노의 현재 능동태 분사 남성 단수 주격으로, 포이에오의 미래 직설법 포이에세이를 수식하며, 말씀을 행하심이 지체되지 않고 신속히 이루어질 것을 선언한다. 쉰템노는 전치사 쉰(함께)과 ‘자르다’라는 뜻의 통사 템노의 합성어로, 고전 헬라어에서는 시간, 사건, 내용의 축약을 나타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행위가 지체 없이 신속하게 성취됨을 나타낸다. 현재 능동태는 하나님의 말씀 성취가 지속적인 실행 과정임을 강조한다., 쉰텔론과 함께 ‘완결’과 ‘단축’이라는 이중 특성을 나타낸다. 구약배경(사10:23의 변형 인용)을 따라 분사 쉰템논은 단순한 시간 단축이 아닌, 요약적 성취 방식을 강조한다.
이 구절은 종말론적 선언으로, 주어 퀴리오스(주)가 로곤(말씀)을 이루고 앞당겨 이루신다는 것을 선포한다. 포이에세이는 ‘행하다’라는 뜻의 동사 ‘포이에오’의 미래 능동 직설법 3인칭 단수다. 예언 문맥에서 흔히 사용되는 확정적 선언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구속적 개입의 단호한 실현을 예고한다. 현재 능동 분사 쉰텔론과 쉰템논은 동작의 방식을 설명하는 수단 분사로 기능한다. 주께서 말씀을 신속하고도 완전하게 이루실 것을 강조한다. 에피 테스 게스(땅 위에서)는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구로, 주님의 행위가 하늘이 아닌 현실 속에서 완결 될 것을 강조한다.
로마서 9:30 NKRV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얻었으니: 카텔라벤은 붙잡다, 얻다, 파악하다라는 뜻의 동사 카탈람바노의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다. 이 동사는 전치사 카타와 ‘받다’. ‘붙잡다’는 뜻의 동사 람바노의 합성어로 의도적이고 주도적으로 어떤 상태에 도달하거나 점유하는 행위를 묘사한다. 부정과거 시제로 쓰여 이방인들의 의를 얻은 것이 성취된 사건임을 나타낸다. 이 구절에서 카텔라벤은 의를 따르지 않은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다는 반전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즉 이방인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에 예기치 않게, 그러나 확실하게 도달했음을 선언한다.
로마서 9:33 NKRV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걸림돌: 프로스콤마토스는 명사 프로스콤마의 중성단수 속격이다. 프로스콤마는 본래 ‘부딪침’이나 ‘충돌’을 뜻하며, 물리적 장애 뿐 아니라 비유적으로 도덕적, 신앙적 방해, 실족하게 만드는 요인을 지칭하는 데 쓰인다. 특히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앞에서 인간이 걸려 넘어짐을 묘사한다. 여기에서는 복음이 사람들의 기대와 다를 때 일어나는 반응, 곧 메시아에 대한 불신이 실족의 원인이 되는지를 상징하는 핵심 명사다. 메시아에 대한 거부가 인간 책임의 차원에서 실족이라는 결과로 연결됨을 드러낸다.
카쏘스 게그랍타이(기록된 바와 같이)는 성경인용을 도입하는 구문이다. 현재 능동태 직설법 1인칭 단수 (티쎄미)는 내가 두다, 내가 놓다라는 뜻이고, 리쏜 프로스콤마토스(걸림의 돌)와 페트란 스칸달루(실족의 바위)는 하나님이 시온에 두신 것이 걸림과 실족이라는 특성을 내포한 것임을 명시한다. 이 구문은 메시아가 구속사적 거절과 충돌의 지점으로 설정되었음을 암시한다. 카타이스퀸쎄세타이는 미래 수동 직설법으로, 선언적 미래 용법에 따라 종말론적 확신과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선언한다.
(2) 믿음의 결과와 행위의 결과 9:30-33
다수의 이스라엘 사람은 구원에서 멀어졌고, 소수의 이스라엘 사람만 구원받았다.
하나님이 신실하지 않으셔서 이스라엘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받는다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다.
예수님이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인간의 의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며 돈과 쾌락을 추구하던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를 얻었다.
그러나 율법을 따라 의롭게 산다고 자처하던 이스라엘은 의를 얻지 못했다.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자에게 십자가는 패망의 걸림돌이다. 그러나 죄인됨을 고백하는 자에게는 구원의 반석이다.
->왜 이방인들은 의를 얻고, 유대인들은 의를 얻지 못했는가?
->믿음보다 행위를 앞세우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3
옛자아 폐기하기
아무리 비싸고 화려한 냉장고를 샀다 해도, 냉장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고철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구입한 매장에서 불량품 냉장고를 무료로 교체해 주겠다고 하면, 기쁜 마음으로 서슴지 않고 교체할 것이다. 작동이 안되는 냉장고처럼 죄로 찌든 우리 옛 자아는 고유의 기능을 잃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외관상 특별한 장점이나 고급 브랜드임을 자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교체 외에는 답이 없다. 하나님은 삐걱거리는 옛 자아를 새 자아로 교체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얻게 될 새 자아의 값을 대신 치르게 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누구에게든 새 자아를 주겠다고 하신다. 그런데 아무 쓸모도 없게 된 헌 냉장고의 브랜드를 내세우며 원래 쓰던 냉장고를 폐기하지 않겠다고 버티면, 새 냉장고를 들여놓을 자리가 없어진다. 유대인들은 그런 식으로 옛 자아를 고수했고,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많다.
새 자아를 받기 위해서는 옛 자아를 버려야 한다. 물론 옛 자아를 폐기하는 과정에는 고통이 따른다. 내가 그렇게도 자랑하는 브랜드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외관이 아무것도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새 자아를 얻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결단해야 한다. 우리의 옛 자아는 작동하지 않는 냉장고와 같을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일상에서 만난 신앙/이호수 _토기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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