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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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계시록 5:11-12(신약 404쪽)
설교제목 :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한 주님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지난 주에 저는 청년들과 요한계시록을 함께 공부했습니다. 요사이 저는 청년들과 한 주에 성경책 한 권을 정해서 통독하고 공부해 가고 있는데요. 지지난 주에는 사도행전을 공부했고요. 지난 주는 요한계시록을 공부하였습니다. 그래도 사도행전을 공부할 때까지는 청년들이 나름 성경을 읽고 생각했던 것이나 궁금했던 것에 관한 질문이 오고 갔는데요. 금주에는 요한계시록을 읽고서는 한결같은 반응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공감이 되십니까? 사실 저도 이번에 청년들과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기 위해서 여러 차례 요한계시록을 읽었는데요. 여러 번 읽으면서도 참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요한계시록은 다른 성경책과는 달리 어떤 이야기가 담긴 글도 아니고 매우 다양한 그림을 담고 있는 책에 가까운데요. 그 각각의 그림은 어떤 상징을 담고 있어서요. 그 상징을 이해하지 못하면, 사실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령, 요한계시록에는 용이라는 상상의 동물도 나오고 해를 품은 여인도 나오는데요. 그것이 상징하는 바를 이해하지 않으면, 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성경에 나오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마치 미술관에서 추상미술의 그림을 보는 것과 같은데요. 낙서처럼 보이거나 기하학적인 도형들을 그리거나 여러 색깔을 마구 흩뿌려놓은 것 같은 그림을 보면서요. 대체 왜 이런 알 수없는 그림을 작품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제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요. 사실 요한계시록이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분명하고 단순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악의 세력을 심판하시고 마지막 날에 하나님의 통치가 완전히 임하게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많은 상징적이 그림들은 이러한 이야기를 다양한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용과 해를 품은 여인도 같은 맥락인데요. 간단하게만 말씀드리면, 이 용은 사탄을 상징하는 것이고요. 여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는데요. 이 여인이 품고 있는 해 또는 이 여인이 낳게 되는 사내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하여서 여인이 낳은 사내 아이로 말미암아서 용이 쓰러지게 되는데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메시지를 해를 품은 여인과 용의 모습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기록의 목적을 이해하면, 요한계록을 좀더 잘 이해할 수 있는데요. 당시 초대 교회의 상황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을 수도 있고 고난에 처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은 무신론자 취급을 받았는데요. 왜냐하면, 당시 로마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은 세상에 신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입장 곧 다신론의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기독교인은 다신론의 입장을 거부하고 세상의 신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유일신론의 입장을 가짐으로 인해 세상에서 배척을 당했고요. 그것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할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와중에서 요한은 종말에 있을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하나님께서 이미 사탄에게서 승리하셨고 그분의 통치가 이 땅에 임하면, 우리는 그 승리를 맛보게 될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당시 핍박받는 초대 교인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믿음 잃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요한계시록을 읽어나간다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여러 상징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하게 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은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께서는 악을 심판하시고 승리를 가지고 오신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과 같은 시리즈에서 반복되는 이야기이고 강조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각각의 이야기 속에는 매우 많은 상징적인 그림이 들어있는데요. 이는 당시 초대 교인들이 처한 상황으로 인해서 이 문서가 아무나 쉽게 내용을 이해할 수 없도록 만들 것에 있습니다. 일종의 암호문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자칫 요한계시록의 내용이 공공연히 세상에 드러났을 때, 안 그래도 위협을 받고 핍박을 받던 기독교인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그 내용은 사실 당시 세상의 지배자였던 로마제국의 멸망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은 로마제국을 상징하는 것이고요. 잘 아시는 666이라는 숫자 또한 당시 로마 황제의 이름에서 비롯된 숫자입니다. 이것은 마치 일제식민지 하에 있던 우리의 선조들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비롯한 여러 항거운동을 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위험성을 지니는 것이지요.
이제 이런 배경을 통해 요한계시록을 읽어보시면, 그래도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이 읽을 때보다는 조금은 나을 것입니다. 물론 여전히 복잡한 암호문과 같은 상징이 곳곳에 있지만요.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이야기가 마치 신천지를 비롯한 사이비에서 선전선동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공포를 불러오고 두려움을 심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요.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하나님은 승리하시고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이는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평화를 누리게 됨을 소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살아가야 함을 교훈 받고요. 하나님이 참으로 진정한 신이시고 세상을 온전케 회복하실 분임을 소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제가 요한계시록에 관해서 공부하면서 특별히 주목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 장면이 있는데요.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11~12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습니다.
요한계시록 5:11-12(신약 404쪽)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요. 하늘 보좌에 앉은 어린 양을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와 수만의 천사들이 찬송하고 경배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4생물은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 세계를 뜻하는 것이고요. 24장로는 이스라엘의 12지파와 예수님의 12제자를 더한 것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깐 하늘 보좌에 앉은 어린 양은 하늘의 천사들과 땅의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표들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온 세계로부터 예배받는 존재입니다. 예상하시겠지만 그 어린 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이 존귀한 존재임을 말해주는 것인데요. 특이한 점은 보좌에 앉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동물이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왕이라면 힘과 권세와 능력이 강한자를 뜻하는데요. 하늘의 왕 곧 신이라면, 그에 걸맞는 동물이 어린 양은 아닐 것입니다. 실제로 이렇게 신을 상징하는 동물로 어린 양을 택하는 경우도 성경이 유일한데요. 이러한 유약해 보이는 어린 양 심지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을 성경은 또는 기독교는 온 세상 만물의 경배를 받을 존재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 특이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또한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신은 그를 섬기는 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할지 몰라도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히려 자신을 희생시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으로 품으시는 분임을 말해주는데요. 참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신이 힘없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하셨으니 그 희생이 얼마나 크고 감사한 일입니까. 그 은혜를 기억하는 것 또 바로 이와 같은 분을 경배하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의 예배인 것이지요.
주일을 맞이하면서, 오늘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를 다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죽기까지 내어 주신 분이십니다. 능력이 모자라거나 약한 존재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세상을 혼돈케 하는 용과 같은 사탄을 물리치셨음을 이야기합니다. 충분히 힘으로 우리 위에 군림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신 분이 다름 아닌 우리가 믿는 우리가 예배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예배 통해 죽임 당한 어린 양되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과 존귀를 올려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