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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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4 내가 속히 ... 가기를 바라나… 쓰는 것은
3: 14 내가 속히 ... 가기를 바라나… 쓰는 것은
디모데전서 3 : 14-16
디모데전서 3 : 14-16
포 엘피존 엘데인…엔 타케이) . 본서의 본론부 1 :3-6 : 19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 1:3-3 : 16은 목회자의 근본 직무인 복음 진 리 사수 및 교회의 질 서와 조직 확립에 대한 교훈을
포 엘피존 엘데인…엔 타케이) . 본서의 본론부 1 :3-6 : 19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 1:3-3 : 16은 목회자의 근본 직무인 복음 진 리 사수 및 교회의 질 서와 조직 확립에 대한 교훈을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후반부 4 : 1-6 : 19는 목회자로서 행할 현장 사역에 대한 세부 지침과 권면을 주는 부분이다. 본 단락 3: 14-16은 이러한 본서 본론부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삽입 단락으로서 본 서신의 기록 통기와 교회의 본질 및 복음 진리의 위대성을 요약적으로 밝히며, 내용 전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바울은 본론부의 전반부를 마치고 후반부를 새로 시작함에 앞서 에베소 교회 를 책임 맡고 있는 디모데에게 본 서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킴과 더불어 목회자로서 올바른 교회관과 복음의 심오함을 깨닫게 하여 더욱더 복음을 힘써 전하게 하기 위하여 본 단락을 기록한 것이다.
주는 부분이다. 그리고 후반부 4 : 1-6 : 19는 목회자로서 행할 현장 사역에 대한 세부 지침과 권면을 주는 부분이다. 본 단락 3: 14-16은 이러한 본서 본론부의 전반부와 후반부 사이에 위치한 일종의 삽입 단락으로서 본 서신의 기록 통기와 교회의 본질 및 복음 진리의 위대성을 요약적으로 밝히며, 내용 전환의 역할을 하고 있다. 바울은 본론부의 전반부를 마치고 후반부를 새로 시작함에 앞서 에베소 교회 를 책임 맡고 있는 디모데에게 본 서신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시킴과 더불어 목회자로서 올바른 교회관과 복음의 심오함을 깨닫게 하여 더욱더 복음을 힘써 전하게 하기 위하여 본 단락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본서 전체에 있어서도 전반부와 후반부를 구획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감독과 집사의 자격 요건에 대해 기술하는 1 - 13절과 관련해서도 중요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여기서 바울이 목회에 필요한 감독과 집사의 자격 요건을 언급한 후에 교회의 본질 과 복음 진리의 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피력한 것은 “목회 사역의 성격은 교회의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라는 중요한 신학적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본 단락은 본서 전체에 있어서도 전반부와 후반부를 구획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감독과 집사의 자격 요건에 대해 기술하는 1 - 13절과 관련해서도 중요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여기서 바울이 목회에 필요한 감독과 집사의 자격 요건을 언급한 후에 교회의 본질 과 복음 진리의 위대성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피력한 것은 “목회 사역의 성격은 교회의 성격에 의해 규정된다”라는 중요한 신학적 진리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편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직접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로 속히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이 편지를 쓰고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바울의 언급에서 디모데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노심초사 걱정하는 바울의 마음을 잘 읽을 수있다. 당시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할 수 없었던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한편 본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직접 디모데가 목회하는 에베소로 속히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나 형편이 여의치 않을 것을 염두에 두고 이 편지를 쓰고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바울의 언급에서 디모데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노심초사 걱정하는 바울의 마음을 잘 읽을 수있다. 당시 바울이 에베소를 방문할 수 없었던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으나 이러한 불가피한 사정에 의하여 쓰여진 본서가 많은 세월 동안 교회 조직의 올바른 운영과 목회 지침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불가피한 사정 역시 하나님의 오묘하선 섭리라 할 수 있다.
없으나 이러한 불가피한 사정에 의하여 쓰여진 본서가 많은 세월 동안 교회 조직의 올바른 운영과 목회 지침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볼 때 이러한 불가피한 사정 역시 하나님의 오묘하선 섭리라 할 수 있다.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것을 알게하려 합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것을 알게하려 합이니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
179 디모데전서 3 : 14-16
179 디모데전서 3 : 14-16
3: 15 하나님의 집 (oIKω 6EOÛ. 오이코 데우) .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에베소 방문이 지체될경우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본 서신을 집펼한다고 언급한다.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보건대 바울이 에베소를 서둘러 떠나왔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미처 남겨주지 못했던 권위 있는 지침들을 별도로 제공해 주어야만 했으리라는 추정
3: 15 하나님의 집 (oIKω 6EOÛ. 오이코 데우) .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에베소 방문이 지체될경우 디모데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해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본 서신을 집펼한다고 언급한다. 이와 같은 언급을 통해 보건대 바울이 에베소를 서둘러 떠나왔기 때문에 디모데에게 미처 남겨주지 못했던 권위 있는 지침들을 별도로 제공해 주어야만 했으리라는 추정
(Guthrie) 도 그다지 억지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본절은 본서의 기록 동기를 밝히고 있다는 점과는 별도로 바울의 교회관이 잘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 바울은 디모데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교회관을 세 가지로 피력하고 있는데,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집이요 둘째,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셋째,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Guthrie) 도 그다지 억지스러운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본절은 본서의 기록 동기를 밝히고 있다는 점과는 별도로 바울의 교회관이 잘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중요성을 지닌다. 바울은 디모데가 섬기고 있는 교회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자신의 교회관을 세 가지로 피력하고 있는데,그것은 첫째, 하나님의 집이요 둘째,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셋째,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우선 바울이 첫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교회관은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교회이다. 여기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코스’ 는 통상 ‘건물로서의 집’ 이나 또는 ‘그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로서의 가족’ 을뜻한다. 고전 3: 16 이나 뻗전 2:5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 으로, 히 3:5 ; 뻗전 4:17은 ‘하나님의가족’으로 언급한다. 또한 엠 2: 19 이하에서는 이 두 개념이 결합되어 진술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이코’는 이미 4절과 5절, 그리고 12절에서 줄곧 일관되게 가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본절에서도 ‘건물’의 의미가 아니라 동일하게 ‘가족’이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교회는 한 분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는 영적 형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의 가족인 것이다.
우선 바울이 첫번째로 제시하고 있는 교회관은 ‘하나님의 집’으로서의 교회이다. 여기서 ‘집’으로 번역된 ‘오이코스’ 는 통상 ‘건물로서의 집’ 이나 또는 ‘그 건물에서 사는 사람들로서의 가족’ 을뜻한다. 고전 3: 16 이나 뻗전 2:5은 교회를 ‘하나님의 집’ 으로, 히 3:5 ; 뻗전 4:17은 ‘하나님의가족’으로 언급한다. 또한 엠 2: 19 이하에서는 이 두 개념이 결합되어 진술되기도 한다. 그러나 ‘오이코’는 이미 4절과 5절, 그리고 12절에서 줄곧 일관되게 가족의 개념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본절에서도 ‘건물’의 의미가 아니라 동일하게 ‘가족’이란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 교회는 한 분 하나님을 영적 아버지로 모시고 다른 그리스도인들과는 영적 형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하나님의 가족인 것이다.
3: 15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ÈKKÀT)ULa 6EOÛ (WVTOS. 엑클레시아 데우 존토스) . 두번째로 피력된 바울의 교회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이다. 하나님을 단순한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것은 구약 성경을 참고할 때 그다지 낯선 표현이 아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방인이 섬기는 생명 없는 우상과 의도적으로 대조시켜기 위해 자주 여호와 하나님을
3: 15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ÈKKÀT)ULa 6EOÛ (WVTOS. 엑클레시아 데우 존토스) . 두번째로 피력된 바울의 교회관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 이다. 하나님을 단순한 하나님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묘사하는 것은 구약 성경을 참고할 때 그다지 낯선 표현이 아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이방인이 섬기는 생명 없는 우상과 의도적으로 대조시켜기 위해 자주 여호와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 으로 표현하였다(신 6: 15). 그렇다면 이것은 구약 성경에만 국한되는 표현 양식인가? 그렇지 않다. 바울은 살전 1:9에서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섭기며”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명백히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회심하는 것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살아계신 하나님’ 으로 표현하였다(신 6: 15). 그렇다면 이것은 구약 성경에만 국한되는 표현 양식인가? 그렇지 않다. 바울은 살전 1:9에서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섭기며”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이것은 바울이 명백히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로 회심하는 것을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으로 이해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스토트 (J . Stott) 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간략하
한편 스토트 (J . Stott) 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 후에 간략하
게 여호수아의 답변을 제시한다. “사시는 하나님이 너회 가운데 계시사" (수 3: 10). 이러한 선언은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옐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 거할 것이요 너회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와 같은 사상은 성경 언약의 근간을 이루며(출
게 여호수아의 답변을 제시한다. “사시는 하나님이 너회 가운데 계시사" (수 3: 10). 이러한 선언은 단순히 형식적이거나 문학적인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옐 백성들 사이에 맺은 언약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 가운데 거할 것이요 너회의 하나님이 될 것이며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와 같은 사상은 성경 언약의 근간을 이루며(출
25:8 ; 29:45-46 ; 레 26:12 ; 시 114:2 ; 겔 37 :27) 특히 바울의 신학 사상에서도 두드러진다.
25:8 ; 29:45-46 ; 레 26:12 ; 시 114:2 ; 겔 37 :27) 특히 바울의 신학 사상에서도 두드러진다.
그는 실제로 고후 6: 16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언한 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교회관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큰 도전이 된다. “우리 교회는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의 충만한 엄재를 경험하고 있는가”란 질문은 교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항상 하여야 할 심각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질문인 것이다.
그는 실제로 고후 6: 16에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선언한 뒤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는 구약 성경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교회관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큰 도전이 된다. “우리 교회는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의 충만한 엄재를 경험하고 있는가”란 질문은 교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항상 하여야 할 심각하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질문인 것이다.
3: 15 진리의 기둥과 터 01 니라
3: 15 진리의 기둥과 터 01 니라
세번째로 피력된 바울의 교회관은 ‘진리의 기둥과 터’ 로서의 교회이다. 여기서 ‘진리’ 에 해당하는 ‘알레데이아스’ 의 원형 ‘알레데이아(값JÍ6na) ’ 는 부정 불변사‘아(<i)’ 와 ‘숨기다’ (막 7:24) 라는 뜻의 동사 ‘란다노(Àa얘ávω) ’ 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숨길 것이 없는 진실이라는 의미에서 ‘진리’ 를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 진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엠 4:25 ; 롬 9: 1) 더 많은 경우 기독교에서만 발견되는 구원의 진리를 가리킨다(엠4:21 ; 골 1: 5).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진리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요 1:14.15; 14:6). 여기서도 기독교 특유의 구원의 진리를 가리키나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다.
세번째로 피력된 바울의 교회관은 ‘진리의 기둥과 터’ 로서의 교회이다. 여기서 ‘진리’ 에 해당하는 ‘알레데이아스’ 의 원형 ‘알레데이아(값JÍ6na) ’ 는 부정 불변사‘아(<i)’ 와 ‘숨기다’ (막 7:24) 라는 뜻의 동사 ‘란다노(Àa얘ávω) ’ 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숨길 것이 없는 진실이라는 의미에서 ‘진리’ 를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 진리를 가리키기도 하지만(엠 4:25 ; 롬 9: 1) 더 많은 경우 기독교에서만 발견되는 구원의 진리를 가리킨다(엠4:21 ; 골 1: 5).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진리 그 자체이신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요 1:14.15; 14:6). 여기서도 기독교 특유의 구원의 진리를 가리키나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 자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다.
한편 ‘터’로 번역된 ‘헤드라이오마’는 본래 ‘굳게 하다’, ‘견고케 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 ‘헤드라이오오 (É8patów) ’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건물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대지’ 를 의미한다. 교회에 대해 이러한 의미의 ‘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단이나 복음의 진보를 방해하는 세력들의 공격으로부터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진리를 확고하게 지켜야만 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한편 ‘터’로 번역된 ‘헤드라이오마’는 본래 ‘굳게 하다’, ‘견고케 하다’란 뜻을 지닌 동사 ‘헤드라이오오 (É8patów) ’ 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건물을 견고하게 받쳐주는 대지’ 를 의미한다. 교회에 대해 이러한 의미의 ‘터’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단이나 복음의 진보를 방해하는 세력들의 공격으로부터 교회가 흔들리지 않고 복음의 진리를 확고하게 지켜야만 함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또한 여기서 ‘기둥’으로 번역된 ‘스될로스’ 역시 ‘기둥’ 또는 ‘원주’를 의미하는데, 이 표현이 신약 성경 가운데서는 본절과 갈 2:9과 계 3: 12에서만 등장한다. 교회가 진리의 기퉁이라는 의미는 ‘스될로스’의 역할을 통해서도 암시받을 수 있다. 기퉁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건물의 외양을 높이 드러냄으로써 멀리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교회가 진리의 기퉁이라는 의미는 ‘기퉁이 건물 안쪽에서 건물을 높이 떠받들듯이 교회 역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내세우고 보여주어야만 함’을 의미 한다 (J. Stott>.
또한 여기서 ‘기둥’으로 번역된 ‘스될로스’ 역시 ‘기둥’ 또는 ‘원주’를 의미하는데, 이 표현이 신약 성경 가운데서는 본절과 갈 2:9과 계 3: 12에서만 등장한다. 교회가 진리의 기퉁이라는 의미는 ‘스될로스’의 역할을 통해서도 암시받을 수 있다. 기퉁은 건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건물의 외양을 높이 드러냄으로써 멀리서도 그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교회가 진리의 기퉁이라는 의미는 ‘기퉁이 건물 안쪽에서 건물을 높이 떠받들듯이 교회 역시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내세우고 보여주어야만 함’을 의미 한다 (J. Stott>.
바울은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진리를 견고하게 지지하여 거짓 가르침의 공격으로부터 복음 진리를 사수하고, 진리를 높이 쳐들어 세상에 진리를 알려야 하는 교회의 이중적책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바울은 ‘진리의 기둥과 터’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진리를 견고하게 지지하여 거짓 가르침의 공격으로부터 복음 진리를 사수하고, 진리를 높이 쳐들어 세상에 진리를 알려야 하는 교회의 이중적책무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1 디모데전서 3 : 14-16
181 디모데전서 3 : 14-16
디모데전서 전체의 관점에서 딩전 3 ’ 14-16절은 전 · 후반부가 교차되는 일종의 전환부이다. 이 부분은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쓰게 된 동기를 밝히는 14-15a절과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사역하고 있는 교회 자체의 본질을 간명하게 밝히는 15b절, 그리고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전하고 가르쳐야할 내용의 본질인 복음의 진리를 축약 제시하는 16절로 이루어져 있다.
디모데전서 전체의 관점에서 딩전 3 ’ 14-16절은 전 · 후반부가 교차되는 일종의 전환부이다. 이 부분은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쓰게 된 동기를 밝히는 14-15a절과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사역하고 있는 교회 자체의 본질을 간명하게 밝히는 15b절, 그리고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전하고 가르쳐야할 내용의 본질인 복음의 진리를 축약 제시하는 16절로 이루어져 있다.
바울은 본 서신의 기록 동기를 밝히면서 자연스럽게 디모데가 사역하는 교회의 본질을 말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목회자로서의 소명의 핵이자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궁극적 기반인 복음 진리의 위대성까지 진술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복음이 위대한 것은 바로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16b절에서 이러한 위대한 기독교 복음의 결정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자로서의 삶을 요약 제시한다. 이는 성육신으로부터 숭천까지
바울은 본 서신의 기록 동기를 밝히면서 자연스럽게 디모데가 사역하는 교회의 본질을 말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목회자로서의 소명의 핵이자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궁극적 기반인 복음 진리의 위대성까지 진술하게 된 것이다. 기독교 복음이 위대한 것은 바로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16b절에서 이러한 위대한 기독교 복음의 결정체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자로서의 삶을 요약 제시한다. 이는 성육신으로부터 숭천까지
를 망라하는 것으로 3연 6행으로 된 시의 형식을 벌어 제시되고 있다.
를 망라하는 것으로 3연 6행으로 된 시의 형식을 벌어 제시되고 있다.
한글 개역 성경이나 영역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원문으로 보변 본문은 고도의 정형성과 시적 운율을 가진 명행 대구 구조로 기록되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각행에동장하는 동사는 모두 직셜법 3 인칭 단수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데(~ )’로 끝나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영사는 정관사를 갖지 않는 여격으로 되어 있으며, B를제외하고는 모두 ‘엔 (ÈV ) ’ 이란 전치사를 동반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기독교 복음의 전수로서의 구속자 예수의 삶을 요약 제시하면서 운율과 대응되는 내용 및 부각시키고자 하는 강조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섬세하게 묘사하고자 하였음을 반영한다.
한글 개역 성경이나 영역본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원문으로 보변 본문은 고도의 정형성과 시적 운율을 가진 명행 대구 구조로 기록되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먼저 각행에동장하는 동사는 모두 직셜법 3 인칭 단수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데(~ )’로 끝나는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영사는 정관사를 갖지 않는 여격으로 되어 있으며, B를제외하고는 모두 ‘엔 (ÈV ) ’ 이란 전치사를 동반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기독교 복음의 전수로서의 구속자 예수의 삶을 요약 제시하면서 운율과 대응되는 내용 및 부각시키고자 하는 강조점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그리스도의 위대함을 섬세하게 묘사하고자 하였음을 반영한다.
먼저 모든 동사가 수동태로서 ‘데’로 끝난다는 것은 운율을 염두에 둔 것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부터 숭천까지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보여준다.A를 예로 들자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 란 능동태의 표현을 쓸 수도 있었으나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다’란 수동태의 표현을 쓴 것은 성육신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섭리와 이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바울은 본문에 나오는 모든 동사를 신적 수동태로 씀으로써 그리스도의 삶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에의해 진행된 특별한 삶이었음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먼저 모든 동사가 수동태로서 ‘데’로 끝난다는 것은 운율을 염두에 둔 것임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부터 숭천까지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졌음을보여준다.A를 예로 들자면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셨다’ 란 능동태의 표현을 쓸 수도 있었으나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셨다’란 수동태의 표현을 쓴 것은 성육신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섭리와 이에 대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바울은 본문에 나오는 모든 동사를 신적 수동태로 씀으로써 그리스도의 삶이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에의해 진행된 특별한 삶이었음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다음으로 전치사 사용을 통한 강조의 효과를 살펴보자. 바울은 ‘장소’와 ‘방법’을 나타내는 전치사 ‘엔’ 을 B만을 제외하고 본문에서 5회나 사용하였다. B에서 전치사가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B에 적합한 전치사는 ‘엔’ 이 아니라 ‘프로스 (πp어 )’ 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치사 ‘프로스’ 를 사용하였다면 그 자체로써 운율을 깨뜨릴 뿐 아니라 이어 나
다음으로 전치사 사용을 통한 강조의 효과를 살펴보자. 바울은 ‘장소’와 ‘방법’을 나타내는 전치사 ‘엔’ 을 B만을 제외하고 본문에서 5회나 사용하였다. B에서 전치사가 사용되지 않은 이유는 B에 적합한 전치사는 ‘엔’ 이 아니라 ‘프로스 (πp어 )’ 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치사 ‘프로스’ 를 사용하였다면 그 자체로써 운율을 깨뜨릴 뿐 아니라 이어 나
오는 단어는 ‘앙겔로이스’ 란 여격이 아니라 ‘앙켈루스 (à:Y'YEÀO여)’ 란 목적격으로 쓰여야하고, 그렇다면 여격이 사용된 나머지 다른 부분과의 조화가 깨졌을 것이다. 그러나 B에서전치사 사용을 자제한 가장 큰 이유는 B를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 할 수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 내용은 모두 그리스도 지상 공생애에 있어서 결정적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B는 천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던 초대 교회의 일부 신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일 뿐 사실상 다른 사건들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볼수 있다. 즉 A의 성육신 사건, A’의 예수의 무죄성, B' 의 복음 확산, C의 믿음의 대상되심, C' 의 승천하심에 비하면 천사들에게 보이심으로 신성을 인정받았음을 나타내는 B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초대 교회에는천사들에 의하여 신성을 인정받은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신자들이 상당수 있었으므로 바울이 이 사건을 기록은 하되 전치사 사용을 자제함으로써 다른 사건보다 덜 중요함을 암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역설적으로 B를 제외한 다른 부분이 복
오는 단어는 ‘앙겔로이스’ 란 여격이 아니라 ‘앙켈루스 (à:Y'YEÀO여)’ 란 목적격으로 쓰여야하고, 그렇다면 여격이 사용된 나머지 다른 부분과의 조화가 깨졌을 것이다. 그러나 B에서전치사 사용을 자제한 가장 큰 이유는 B를 상대적으로 약화시키려는 의도 때문이라 할 수있다. 본문에 등장하는 여섯 가지 내용은 모두 그리스도 지상 공생애에 있어서 결정적 사건들이다. 그러나 이 가운데 B는 천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던 초대 교회의 일부 신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일 뿐 사실상 다른 사건들에 비해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 것으로 볼수 있다. 즉 A의 성육신 사건, A’의 예수의 무죄성, B' 의 복음 확산, C의 믿음의 대상되심, C' 의 승천하심에 비하면 천사들에게 보이심으로 신성을 인정받았음을 나타내는 B의 중요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초대 교회에는천사들에 의하여 신성을 인정받은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신자들이 상당수 있었으므로 바울이 이 사건을 기록은 하되 전치사 사용을 자제함으로써 다른 사건보다 덜 중요함을 암시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는 역설적으로 B를 제외한 다른 부분이 복
음의 보다 결정적 내용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음의 보다 결정적 내용임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기록 내용에 있어서 A-A’, B-B’, C-C’에 각기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A-A’에는 ‘육신-영’, B-B' 에는 ‘천사들-만국’, C-C' 에는 ‘세상-영광’ 이 각기 대응을 이루는 것이다. 즉 육신과 영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육체를 입으셨으나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영이심을 보여주며, 천사들과 만국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이 각각 증명되고 전파되는 대상을 보여주며, 세상과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하늘에
한편, 기록 내용에 있어서 A-A’, B-B’, C-C’에 각기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A-A’에는 ‘육신-영’, B-B' 에는 ‘천사들-만국’, C-C' 에는 ‘세상-영광’ 이 각기 대응을 이루는 것이다. 즉 육신과 영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육체를 입으셨으나 죄가 전혀 없으신 완전한 영이심을 보여주며, 천사들과 만국은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이 각각 증명되고 전파되는 대상을 보여주며, 세상과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하늘에
서도 영접받았음을 상호간의 대구를 통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서도 영접받았음을 상호간의 대구를 통하여 보여주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디모데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전반부 제 1-3장은 목회자의 근본 직무가 복음 진리의 사수 및 교회의 질서와 조직 확립임을 일단 밝히고, 이어서 후반부 제 4-6장은 그같은 목회자로서의 근본 직무 수행을 위한 세부 지침과 권면을 주는 부분이다. 바울은 이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교차되는 바로 본문에서 교회의 궁극적 기반 복음의 핵심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구성된 3연 6행의 시로써 축약하여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잘 알다시피 디모데전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전반부 제 1-3장은 목회자의 근본 직무가 복음 진리의 사수 및 교회의 질서와 조직 확립임을 일단 밝히고, 이어서 후반부 제 4-6장은 그같은 목회자로서의 근본 직무 수행을 위한 세부 지침과 권면을 주는 부분이다. 바울은 이처럼 전반부와 후반부가 교차되는 바로 본문에서 교회의 궁극적 기반 복음의 핵심이신 그리스도의 삶을 극도로 절제된 언어로 구성된 3연 6행의 시로써 축약하여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3: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앞선 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교회관을 피력함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선포한 바 있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에서는 복음 진리에 대해 압축적으로 요약 제시하고 있다. 즉 15절에서 언급했던 바 있는 ‘진리(알레데이아스)’ 곧 ‘복음의 진리’가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3: 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앞선 15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교회관을 피력함을 통하여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선포한 바 있다. 이에 이어지는 본절에서는 복음 진리에 대해 압축적으로 요약 제시하고 있다. 즉 15절에서 언급했던 바 있는 ‘진리(알레데이아스)’ 곧 ‘복음의 진리’가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선언을 하기에 앞서 바울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 라고 탄성을 발함으로써 이오묘한 진리의 위대함을 감격적으로 선포한다. 여기서 ‘경건’으로 번역된 ‘유세베이아스’는 일반적으로 ‘영혼의 거룩한 상태’를 뜻하는데,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대로 여기서는 좀더 적극적인의미 곧 ‘활동적인 경건, 경건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참되게 하나님께 헌신하는것, 경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비밀(뷔스테리온)’로 표현한 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그것은 다름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어 당신을 눈에 보이는 존재로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상의 모든 교회가 지지
이러한 중요한 선언을 하기에 앞서 바울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 라고 탄성을 발함으로써 이오묘한 진리의 위대함을 감격적으로 선포한다. 여기서 ‘경건’으로 번역된 ‘유세베이아스’는 일반적으로 ‘영혼의 거룩한 상태’를 뜻하는데, 모든 학자들이 동의하는 대로 여기서는 좀더 적극적인의미 곧 ‘활동적인 경건, 경건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을 참되게 하나님께 헌신하는것, 경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것을 ‘비밀(뷔스테리온)’로 표현한 것은 무슨 연유에서인가? 그것은 다름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시어 당신을 눈에 보이는 존재로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그분을 알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지상의 모든 교회가 지지
하고 전파하는 진리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비밀이자 신비’ 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Lock).
하고 전파하는 진리란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비밀이자 신비’ 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Lock).
3: 16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3: 16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영광 가운데서 올리우셨음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