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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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3학기 개학 추석으로 인해 10/12일: 3학기 목장개강예배
터키단기선교
골든타임 9월 2차 거리전도 / 오후 4시
10월 복음반 신청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다시 기도, 두번째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흔히 영적이다라고 말할 때 무엇을 떠올리십니까? / 뭔가 고요하고, 평안하고, 안정적인 모습을 떠올릴 것입니다. / 마치 명상이나 요가에서 나오는 이미지와 느낌 있잖아요. / 창 밖으로는 숲이 보이는 어느 깔끔한 집에서 깔끔한 흰 옷을 입고, 눈을 감고 명상하는 그러한 모습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영성은 전혀 다릅니다. / 사실 오늘 본문은 굉장히 당황스럽니다 / 야곱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인데, 굉장히 격렬하고, 땀이 튀고, 야곱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 게다가 야곱은 이 만남으로 인해 평생을 절뚝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격렬한 만남의 자리가 야곱이 평생 변화된 자리가 됩니다 / 성경은 말합니다. “이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성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영적인 만남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만남의 자리가 있나요?
하나님을 단순히 믿는 것을 넘어 실제로 하나님을 대면한 경험이 있으십니까? / 여러분의 삶의 방향을 완전히 틀게 된 만남이 있으십니까?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요? / 그것을 알 수 있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을 만났다면 하나님을 홀로 만나야 하고, 복을 받기 위해 만나야 하고, 약함에서 만나야 합니다.
1. 하나님을 만남 : 홀로 만남
1. 하나님을 만남 : 홀로 만남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야곱에게는 쌍둥이 형 에서가 있었습니다. /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야곱은 형 에서를 속이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먼 곳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 그곳에서 야곱은 오랜 세월동안 지내며, 가정을 이루고, 꽤 부요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 야곱은 자신의 가족과 종들,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 그런데, 한가지 소식을 듣는데, 형 에서가 400명의 무리를 이끌고 자신을 향해 오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 야곱은 에서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 생각해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당할 야곱이 아니죠 / 야곱은 늘 그렇듯 계획을 짭니다 / 자신의 가축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서 차례대로 에서에게 보내는 것이죠 / “이것은 내 주인 에서를 위한 선물입니다” / 그러면서 화를 누그러뜨리는 겁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무리를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 만약 에서가 한 쪽을 치면, 다른 한 쪽은 그틈을 타서 도망가려는 것이죠.
그러다가 24절을 보면, 날이 저물어 어둠이 내리고, 야곱은 홀로 남게 됩니다 / 그 많던 가족들과 종들, 자신이 일군 재산들과 떨어져 완전히 혼자 남아 있는 것이죠
어두컴컴한 곳에 홀로 남게된 야곱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 그런데, 그렇게 홀로 있을 때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자, 이게 오늘 함께 살펴보기 원하는 첫번째입니다 / 참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홀로,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태 신앙이고, 모교회에서 어린시절부터 오랫동안 신앙생활했기 때문에, 교회가 집 같고, 만나는 사람도 가족 같은 것이죠.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학교나 직장 때문에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가게 되면, 더 이상 교회에도 나가지 않고, 신앙에 관심을 잃게 됩니다. / 왜 그런 것일까요? / 이 사람의 믿음은 살아온 환경에 의해 관습적으로 형성된 문화적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 개인적인 믿음이 아닌 것이죠 / 홀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죠 / 고등학교 때까지는 신앙생활을 합니다 / 역시 모태신앙이고, 부모님에 의해서 어떻게든 교회에 나오긴 했습니다 /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생활로 들어가면 신앙에서 급속도로 멀어집니다. / 왜 그런 것일까 / 이 사람의 믿음은 부모님에 의한 믿음이었지, 홀로 하나님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러한 경우도 있습니다 / 고향을 떠나 도시로 올라와서 이름이 있는 대형교회나 트렌디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인데요. / 뭐든게 새롭죠 / 고향 교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세련된 시설과 예배당과 전문적인 찬양, 감동적인 설교, 사람들은 멋지고 매력적입니다 / 자신이 이러한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런데,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해서 교회를 떠나게 되면, 비슷한 교회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를 다니다가 더이상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됩니다. / 신앙으로부터도 멀어지죠 / 왜 그런 것일까요? / 이들의 믿음은 감정적이고, 심리적이었던 것이지, 결코 개인적 것이 아니였기 때문입니다. / 군중과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말할지는 모르지만, 결코 홀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오랜만에 만난 친척분이 있었는데, 요즘 교회에 열심히 나간다고 해서, 어디 교회를 출석하고 있는지 물으니깐 / 굉장한 자부심으로 내가 이 교회에 다니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하더라고요. / 누가 말해도 다 아는 유명한 대형교회였는데요 / 저는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계속 교회가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 유명한 교회, 대형교회가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서 성장하고 있는 교회를 응원하고, 정말 귀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열정의 휩쓸려 어떤 신앙 그룹에 속해있을 수는 있지만, 그게 개인적인 믿음이 아닐 수 있다라는 것이죠. / 일대일로 하나님을 만난 경험없이 얼마든지 그러한 생활을 할 수 있다라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이 점검하길 원하는 것은 이겁니다. / 여러분이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 대면하지 못했을 수 있다라는 것이죠. / 우리는 흔히 이 경험을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라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인격적인 만남, 개인적인 신앙이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 24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야곱은 홀로 있었는데, 누군가가 끼어들고, 방해하고 간섭합니다. /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개인적인 만남입니다.
내 나름대로의 성을 짓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어요 / 그런데, 하나님이 그 벽을 허물고 밀고 들어오시는 겁니다. / 내 삶에서 하나님이 중요해지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가 되기 시작하고, 마음을 열어 신앙 공동체에 속하기 시작합니다. / 이렇게 하나님이 내 개인적인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때, 개인적인 만남과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초대 수상이었던 멜버른 경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정했습니다 / “영국은 기독교 국가이며 우리는 기독교 사회다”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명한 말을 합니다. 어떠한 말을 했냐면,
만약 종교가 인간의 개인적인 영역으로까지 침투한다면, 사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 멜버른 경(William Lamb)
종교가 사회적이고, 가정적이고, 문화적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어느날 실제로 여러분의 개인적인 삶에 침투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건드리시는 것입니다.
그때부터가 씨름이 시작되는 것이죠. / 하나님과의 만남은 그런거에요 / 하늘에서 빛이 비추고, 천사가 내려와 하프소리가 들리는 그런게 아닙니다 / 격렬하고, 땀내 나고, 넘어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낑낑대며 애쓰는 너무나 현실적인 씨름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여러분을 개인적으로 다루시는 때인 것입니다.
그래서, 멜버른 경처럼 교회는 출석하지만, 신앙이 결코 내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해보이지만, 세상에서는 전혀 다를바 없는 사람들이죠. / 믿는 사람이라고는 하는데,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분이 되지 않는 사람 / 물론 교회는 열심히 다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지 못한 겁니다. / 그러다보니 신앙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이 내 삶 가운데 침투해 들어오시더니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 씨름을 걸어오시는 것이죠.
그러면서 변화가 시작되죠 / 이전에는 어떠한 행동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했는데, 갑자기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 죄가 깨달아지기 시작하고, 갈등이 시작됩니다. / 씨름이 시작된 겁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여러분의 삶에 간섭하시고, 방해하시기 시작할 때 / 여러분은 하나님께 붙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 하나님을 대면하게 되는 것이죠.
여러분은 그 하나님을 만나셨습니까?
문화적으로, 부모님이 믿었기 때문에, 환경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 인격적으로, 개인적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나요?
본회퍼 목사님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 “홀로 있을 줄 모르는 사람은 공동체에 속할 수 없고, 공동체에 속할 줄 모른 사람은 홀로 있을 수도 없다”
따라서, 참된 신앙은 부모님이나 문화, 환경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홀로 하나님을 만나 인격적으로 관계 맺는 데서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그 하나님을 홀로 대면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을 만남 : 복을 위한 만남
2. 하나님을 만남 : 복을 위한 만남
두 번째는 하나님을 홀로 만나야 할 뿐 아니라, 복을 위해 만나야 합니다.
자, 이게 무슨 말일까요? /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위해선,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정보가 아닌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야곱과 에서, 두 형제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요. / 안타깝게도 아버지 이삭은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 편애를 한 것이죠 / 이게 불행의 시작인데 / 야곱에게 있어서 이삭의 편애는 깊은 상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과 에서가 자라났고, 이삭은 점점 늙어 눈이 어두워져 앞이 잘 안보이게 됩니다 / 이제 이삭은 자신이 늙었음을 알고, 에서에게 장자의 축복을 주려고 합니다.
고대 사회에서 장자의 축복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라 법적으로 첫째가 대부분의 유산을 물려받는 지위를 얻는 것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큰 아들에게 축복하는 의식을 치루었는데, 공식적인 축복을 선언하는 것이었죠.
근데 에서가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깐, 야곱은 이걸 이용한 겁니다. 에서의 옷을 입고, 염소 새끼의 가족을 손과 목에 붙여서 털이 많은 형 에서처럼 변장을 합니다 / 그리고, 기회를 틈 타 에서의 축복을 가로챕니다 / 이걸 알리가 없는 이삭은 야곱을 에서인줄 알고 축복을 선언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분노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 했고, 이로 인해 야곱은 도망자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생각 안해보셨나요?
도대체 왜 야곱이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금방 들통날 거 알텐데, 왜 굳이 그렇게까지? 도대체 야곱의 동기가 뭐지?
몇 분만 지나도 들통날 일이였고, 속였다 할지라도 유산이 자기에게 올 리가 없죠 / 아무런 소용이 없는 사기극을 위험을 무릅쓰고 저지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야곱이 이해가 가나요? /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한 것일까요?
대답은 이겁니다 / 좀 짠하긴 합니다 / 여러분 야곱의 인생은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 인생의 첫 순간부터 경쟁에서 패배한 인생이었던 것이죠. / 그렇게 둘째로 태어난 것도 서러운데, 아버지 이삭은 첫째 아들 에서만 사랑하는 겁니다. / 야곱은 평생 이것이 그의 결핍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저지른 일이 뭡니까? / 속여서라도 아버지 입술에서 이 말이 너무나 듣고 싶었던 겁니다. / “내가 너를 축복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너는 내게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여러분, 그런데 야곱만 그런 걸까요?
우리 모두는 외부로부터 내가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을 필요로 합니다 / “너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야, 너는 가치 있는 존재야”
어쩌면 우리는 / 이 말을 듣기 위해 그토록 애쓰는 것일 수 있습니다. / 또, 이 말을 듣지 못해서 그렇게 힘든 것일 수 있어요.
우리 모두는 축복을 갈망합니다 / 스스로를 아무리 다독여도 누군가가 나에게 와서 그 확신을 줘야 하는 거에요. / 그래서, 야곱이 이 사단을 벌인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로부터 복을 얻는데 실패한 야곱은 다른 곳에서 그 복을 찾기 시작합니다. / 그래서 만나게 된 여인이 라헬입니다.
여러분, 라헬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 야곱은 생각했습니다 / “라헬이 내 아내가 되어 준다면, 이 아름다운 여인이 날 사랑해준다면, 형편없는 내 삶은 괜찮아질거야” / 하지만, 막상 라헬을 얻고 나서도요. / 아곱의 결핍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그토록 꿈꾸던 이상형을 만나도요. 절대로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야곱은 라헬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바람에 가족을 망가트리게 되고, 이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됩니다.
C.S.루이스는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직업, 훌륭한 배우자, 아무리 좋은 부모를 가졌어도, 그 복은 결코 완전히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잠깐일 뿐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것만 하면 당신은 행복해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 하지만, 우리는 알죠. / 그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는 약속인 것을요.
제가 자주 이야기하는 행복의 비유입니다. / 저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행복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 / 행복은 예쁜 새인데, 그 새를 잡으려고 하면 어김없이 날아 도망간다. / 완전할 것만 같았던 복은 언제나 우리를 피해 날아가 버립니다.
야곱은 그 복을 위해 평생을 씨름해 온 것입니다 / 에서와 씨름하고, 아버지 이삭과 씨름했죠 / 그리고, 외삼촌 라반과 씨름하며 라헬을 얻으려 합니다. / 하지만, 언제나 그 복은 야곱의 손에서 날라가 버립니다.
태어날때부터 발꿈치를 붙들었던 야곱의 인생은 평생 복을 붙들려고 했지만, 언제나 복은 야곱을 피해갔습니다. / 채워지지 않는 갈망 / 야곱은 공허했고, 텅 비어 있엇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신비로운 존재가 나타나 여곱에게 씨름을 걸어 옵니다 / 그리고, 야곱은 밤새 그 사람과 씨름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이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세가지 단서를 보여 줍니다.
…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이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쳤더니,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어긋나 버린 겁니다. / 야곱은 이 일로 평생 다리를 절게 되는데요.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세게 쳤다. 강타했다”와 같은 단어를 쓰지 않고, “치매”라는 단어를 썼는데, 히브리 단어의 원어는 “만지다”입니다. / 툭 건드리자, 다리 관절이 날라간 겁니다.
아마 야곱은 놀랐을 겁니다. / 그리고 깨달았겠죠 / “만졌는데, 이 정도라니... 이 사람은 지금 힘을 억제하고 있구나” /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구나,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인가 / 이게 첫번째 단서입니다.
두번째 단서는 26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
“날이 곧 밝아오니 나로 가게 하라” /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구절인데, 이 사람이 왜 이러한 말을 한 걸까요? / 이 말은 “해가 떠오르면, 넌 나를 볼 수 없다”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순간 이 사람이 누구인지 눈치챘을 겁니다. / 그리고, 30절에서 이렇게 말하죠.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여러분, 이게 무슨 말입니까? / 어느 누구도 빛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는 살 수 없다라는 것이죠.
이미 이 사람이 누구인지 드러났지만, 이것이 두번째 단서입니다.
세번째 단서는 이겁니다.
야곱이 묻죠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 “왜 내 이름을 묻느냐” / 왜 이렇게 대답했을까요? / 이런 의미인 겁니다 / “너는 이미 내 이름을 알고 있잖아”
그렇죠. 이 사람은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이제 막 해가 떠오르려 합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렇게 말했어야 하죠 / “이제 저를 그만 놓아주십시오.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자리가 어떠한 자리입니까? 야곱의 인생 전체가 바뀌는 자리죠 / 그가 회심한 자리입니다.
이전에 야곱이었다면, 놓아달라고 했겠지만, 이제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 “아니오. 나는 당신을 놓지 않을 겁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야, 날 밝으면 너 위험해. 죽을지도 몰라. 이제 그만 하자” / 하지만, 야곱은 놓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왜 그런 건까요? / 이런 겁니다 / “괜찮습니다. 설령 죽을지라도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내가 평생 찾던 복, 아버지에게서 찾던 복, 아내 라헬에게서 찾던 복, 평생 사람들과 씨름하며 찾던 복을 그토록 갈망하고 원했지만, 저는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습니다. 당신이야말로 내가 평생을 찾아온 그 복을 가진 분이십니다”
야곱은 땀을 뻘뻘 흘리며 처절하게 깨달았을 겁니다. / “내가 정말 어리석었구나. 내가 아버지에게서 찾았던 인정과 사랑, 라헬의 얼굴에서 찾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구나”
야곱의 인생은 하나님을 복으로 여긴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을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긴 인생이었습니다 / 더 많은 성공과 부, 사람들의 인정, 라헬을 얻기 위해 그의 인생에 하나님은 주변 인물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야곱은 숨을 헐떡거리며 깨달은 것이죠 / “하나님, 그분 자신이 바로 복이다. 그분의 나의 인생의 주인이다. 내가 필요한 건 그분의 사랑이고, 그분의 인정이고, 그분의 복이다”
그래서 야곱은 말하는 겁니다 / “이제 당신을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겁니다. 해가 떠서 죽더라고 상관없습니다. 다리를 평생 절어도 상관 없습니다 / 내가 평생 찾아온 복을 주실 분이 당신인데, 내가 어찌 당신을 놓겠습니까? 나를 축복하실 때까지 당신을 놓지 앟겠습니다”
땀내 나고, 인간 냄새가 풀풀 나는 장면이지만, 이때가 야곱 인생의 클라이막스죠.
어쩌면, 여러분이 평생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를 다녀왔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하나님을 대면하게 될 때, 여러분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 “아, 하나님은 내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니라, 내 인생의 전부구나”
이전에는 “하나님은 왜 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걸까? 하나님은 왜 내가 원하는 학교, 직업, 배우자를 허락하시지 않는 걸까? 왜 나에게 복을 주시지 않는 거지?”라고 고백했다면,
하나님은 대면한 여러분은 이렇게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학교, 직업, 배우자를 만나지 못해도, 실패하고, 낙망해도, 내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가 내 앞에 펼쳐져도, 하나님 저는 괜찮습니다. 당신이 나에게 복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찾던 행복과 만족, 기쁨, 아름다움, 그 모든 것이 당신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예배하고, 기뻐하고, 나의 맘과 뜻 다해 주님을 더 알기 원하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평생 찾아온 복의 근원이신 분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경험과 고백을 해보셨나요? / 여러분은 하나님을 홀로 만나셨습니까? / 복을 위해 그분을 찾으셨나요?
3. 하나님을 만남 : 약함 속의 만남
3. 하나님을 만남 : 약함 속의 만남
그렇다면, 세번째입니다 / 여러분은 그분을 약함의 자리에서 만나셨습니까?
이 씨름에서 승자는 누구일까요? / 놀랍게도 성경은 야곱이 승리했다고 말합니다 / 그런데, 야곱이 강해서가 아니죠 / 야곱은 약함을 통해 승리합니다 / 이게 무슨 말일까요?
우리말 성경은 씨름이라고 되어있지만, 영어성경은 레슬링입니다. / 제가 레슬링을 해본적은 없지만, 레슬링을 할 때 온 몸의 근육이 쓰인다고 하죠. / 그래서, 3분만 해도 탈진하고 맙니다 /
목자리트릿.
그런데 야곱은 날이 새도록 하나님과 레슬링을 한 겁니다. / 상상이 가나요?
여러분 하나님은 왜 이런 고통스러운 방법을 쓰셨을까요?
그냥 짠하고 나타나서, “놀랐지? 나는 하나님이야” 그러면서, 너의 인생이 뭐가 잘못되었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설명할 수도 있는거잖아요.
그런데, 굳이 왜 이 고통스러운 레슬링을 3분도 아니고, 밤새도록 하게 한 것일까요?
만약 제가 야곱이었다면, 하나님이 그냥 나타나서 편하게 설명주었다면, 절대로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물론 많은 설교와 책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야말로 내 인생의 전부이고,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 에어컨 나오는 도서관 책상에 앉아서가 아니였습니다 / 삶에서의 실망과 좌절, 실패, 수치, 나 자신에 대한 끝없는 실망, 숨을 헐떡거리며, 중심을 잃고 이리로 넘어지고, 저리로 넘어지는 땀내 나는 삶의 씨름의 현장에서였습니다. / 그곳이 아니였다면 저는 깨닫지도 못하고, 배우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야곱이 승리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씨름의 현장에서 약해지도록 약해진 야곱이 “당신이 나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한 건 “하나님, 저는 지금껏 잘못 살아왔습니다”라는 고백이죠.
야곱은 자신의 약함을 인정함으로써 승리한 것이고, 회개함으로써 승리한 겁니다. / 이게 역설이죠. / 하나님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 네가 이겼다. 왜냐하면 네가 스스로 완전한 실패자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절게 됩니다 / 약함을 통해 승리했지만, 하나님을 대면한 이후 야곱은 평생 약함을 달고 절뚝거리는 인생을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 모습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을 보여주는 완벽한 모습이라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만난 그리스도인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거듭난 자들의 특징이 뭐에요? / 이전에는 기세등등했는데, 하나님을 만난 이후론 뭔가 모르게 힘이 빠져 있죠 / 나사가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
예전에는 그렇게 약해보이지 않으려고 자신을 방어하고, 다른 사람들에 칭찬과 비판에 민감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이후로는요. / 자신의 약함을 어김없이 인정합니다. / 변명하지 않아요 / 내가 약하다는거, 내가 절뚝거린다는거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내가 평생 찾았던 복, 부모님께 듣고 싶었던 인정의 말, 사람들에게 듣고 싶었던 인정의 말,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듣고 싶었던 말, 하지만, 사람에게서 받는 인정과 사랑은 언제나 한계가 있고, 우리에게 완전한 만족을 가져다 주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말을 하나님에게서 듣는다면요? / “세상이 너를 뭐라하든 나는 너를 세상 무엇보다도 사랑하고 기뻐한다” / 야곱은 그 축복을 받은 겁니다. / 누가 뭐라하든 흔들리는 않는 확신과 정체성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체면을 지킬 필요가 없는거죠 / 얼마든지 실패를 인정할 수 있습니다. / 얼마든지 약해질 수 있습니다. / 그런데 여러분 눈치 채셨나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절뚝거리지만, 우리 마음에서는 기쁨의 노래가 흘러 나옵니다 / 절뚝거리지만, 그 인생에는 춤이 있습니다. / 약하지만, 행복합니다 / 네. 여러분 그래요. /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은 강한 것입니다. / 약한만큼 강해지는 것이죠.
우리는 죄인이지만, 사랑받는 자입니다. / 겸손하지만 담대한 자죠. / 야곱이 패배함으로 승리했듯이 우리도 패배함으로 승리했습니다.
[반주]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도 약함을 통해 승리하셨다라는 거 아십니까?
애초부터 이 씨름은 말도 안되는 씨름이죠 / 같은 체급끼리 붙어야 씨름이 되는거지, 야곱과 하나님이라니요 / 전능자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 그런데, 25절입니다.
자기(하나님)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여러분, 이게 무슨 말이죠? / 전능하신 하나님이 스스로 힘을 억제하신 겁니다 / 스스로 약해지신 것이죠. / 얼마든지 하나님은 야곱을 짓누를 수 있었지만, 스스로 약해지심으로 야곱을 축복하신 것입니다.
도망자 야곱, 속이는 자 야곱, 어리석인 야곱을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도 야곱과 다르지 않습니다.
전능자와 맞서려 하고, 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그분만이 주실 수 있는 복을 다른 곳에서 찾는 오늘 우리 모두는 야곱입니다.
하지만, 수세기 후 갈보리 언덕에 어둠이 내리고,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약해지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전능자의 무게, 공의와 거룩과 정의의 무게가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 야곱이 받아야 했던 무게가 예수님을 짓눌렀던 것이죠
이미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 무게를 감지하고, “하나님,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죠 / 하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복을 얻기 위해 자기 생명을 걸었지만,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서 바울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복을 받게 하심이라고.
또, 요한복음은 말합니다. /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고, 믿음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 여러분이 그토록 찾았던 복, 사랑과 인정의 목소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복을 소유했다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 인생이 아무리 잘 풀린다해도, 여전히 절뚝거리며, 겸손하게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또 반대로 여러분의 인생이 무너지고 절망과 고통가운데 절둑거린다 할지라도, 여러분은 여전히 노래하며 여전히 춤 출 수 있습니다. / 왜냐하면, 비록 나는 이 어려운 고난 앞에 약해지지만, 하나님을 여전히 나와 함께 하셔서, 약함을 통해 나를 강하게 세우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른 곳에서 복을 찾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이십니다 / 더 이상 가장해서 복을 받을 필요 없습니다 / 더 이상 남과 비교하며, 내가 아닌 모습으로 변장해서 복을 받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홀로 나아가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 “하나님, 저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복을 찾았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붙들며 살아왔는데, 여전히 공허하고, 여전히 만족이 없습니다. 이제 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주시고, 축복해 주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근거로 하나님을 붙들 때, 하나님은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 찬양
🎵 찬양
빛으로 임하신 주 / 나의 어둠을 비추시네
내 안의 연약함 모두 씻어 주시고
나를 귀히 여기사 안으시네
내 삶에 임하신 주 / 모든 두려움 덮으시네
주 나의 모든 것 주님만 의지하리
눈을 들어 주님만 바라보리
주님을 예배하는 것 / 주님을 기뻐하는 것
나의 맘과 뜻 다해 / 주님 더 알기 원하네
주님을 사랑하는 것 / 주님을 갈망하는 것
나의 유일한 소망이라
V-C-V-C-C-(8)-C-C
🙏 통성 기도 제목
🙏 통성 기도 제목
복이신 하나님을 놓치지 마십시오.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예수님을 영접하시길 초대합니다.
영접기도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입니다 / 저의 죄를 용서해 주세요 /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 이제 예수님을 / 저의 구원자와 주님으로 믿고 따르기 원합니다 /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봉헌기도
🌾 봉헌기도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며 살아가려 하지만,
씨름 가운데 무릎 꿇게 하시고,
우리의 약함 속에서 참된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고, 추구하고, 따라가는 인생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우리의 삶과 마음을 담아 드리는 예물을 받으시고,
이 헌신이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주님만을 의지하고 따르겠다는 믿음의 고백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전부를 맡겨 드리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축도
🙌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하나님을 홀로 만나기 원하고, 복을 위해 만나고, 약속에서 만나기를 원하는
이곳에 모인 청년들에게 항상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