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26 새벽기도회: 히브리서 13:17-21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8 views
Notes
Transcript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하게 하심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주께서는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저희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십니다. 그러나 낮고 낮은 이 땅에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을 깨달을 수 있게 성령님을 보내시니 무한한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주님의 자비와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주님을 알기 위하여 이 자리로 나아갑니다. 세상의 지혜가 아닌, 세상에서는 어리석다고 말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가장 보배로우니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말씀을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주께서 교회로 보내신 직분자에 대해서 말씀을 듣기 위하여 나아갑니다. 이 직분자를 저희가 어떻게 받아야 하며 주님이 보내신 직분자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오늘도 함께하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히브리서 13:17-21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3:17–21 NKRV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우리가 모든 일에 선하게 행하려 하므로 우리에게 선한 양심이 있는 줄을 확신하노니 내가 더 속히 너희에게 돌아가기 위하여 너희가 기도하기를 더욱 원하노라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를 함께 읽겠습니다. 오늘은 31조를 읽겠습니다. 제가 제목을 읽으면 합독하겠습니다.
제31조 교회의 직분자들에 관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와 장로와 집사의 직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규정된 대로, 기도하는 가운데 선한 질서를 따라서 교회의 합법적인 선거에 의하여 선출되어야 함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부정한 방법으로 밀고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그의 소명이 주님께로부터 왔다는 분명한 증거를 갖게 되고 그럼으로써 소명의 확신을 갖기 위하여,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말씀의 사역자들은 그들이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 권위와 권한이 서로 동등한데,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유일하신 보편적 감독이시며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거룩한 규례가 훼손되거나 배척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사람은 교회의 말씀 사역자들과 장로들을 그들의 직무로 인해 특별히 존경하여야 하며, 가능한 한 그들과 화평하고 원망과 다툼이 없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특별히 직분자 선출을 위해 함께 기도하기 위하여 이번 주에 모였는데, 벌써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고, 부디 하나님의 뜻을 기도와 우리의 투표를 통해 찾아가는 복된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먼저 듣고 함께 장로 선출을 위해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네덜란드 신앙고백서는 교회의 직분자들에 대한 고백입니다. 먼저는 직분자가 어떻게 선출되어야 하는지 가장 근원적인 원리에 대해서 고백합니다. 우선 “기도”할 것을 고백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직분자 선출은 세상의 투표와 같이 우리의 뜻을 반영하고, 우리가 원하는 지도자를 뽑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국회의원을 뽑고 대통령을 뽑는 이유는 우리나라를 다스릴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 지도자의 공약이 실현되길 바라는 것과 우리의 뜻이 반영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교회의 직분자 선출도 이렇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이 말하고 있듯이 직분자 선출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분자 선출에 있어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직분자 선출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에게 보내주신 직분자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예배하며 찬송하기 위함입니다. 직분자 선출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교회를 다스리고 계시며 보호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이 직분자 선출 또한 찬송의 재료이며, 이것에 우리는 기도로 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확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합법적인 선거, 즉 인간의 뜻이 반영되지 않기 위하여 어떠한 부정한 방법이 동원되서는 안됩니다. 직분자 선출에서 우리가 선거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이유인 것입니다. 특별히 장로교회는 장로교인들의 투표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함을 믿기 때문에 우리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직분자는 곧 하나님의 부르심에 해당됩니다. 여기에는 우리의 이해나 이성적 합리성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과정으로 직분자를 선출합니다.
특별히 오늘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선출된 직분자에게 우리가 어떤 모습과 태도를 갖추어야 하는지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 거룩한 규례가 훼손되거나 배척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사람은 교회의 말씀 사역자들과 장로들을 그들의 직무로 인해 특별히 존경하여야 하며, 가능한 한 그들과 화평하고 원망과 다툼이 없어야 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즉, 직분자로 선출된 자를 우리는 그들이 직무를 수행하는 것에 있어서 차질이 없게 하기 위하여 그들을 존경하며, 그들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말로만 “우리의 믿음으로 선출된 직분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직분자”라고만 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정말 우리의 투표를 통해서 선출한 직분자라면 그에 마땅하게 우리가 그를 존경하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신앙고백은 바로 이 부분을 오늘 본문을 인용하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는데,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어떤 희생을 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순종”을 통해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전체를 읽으시면 아시겠지만, 히브리서 기자는 성도들을 향하여 모두 예수님의 피로 거룩하게 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선언합니다. 우리 주님은 죄 없는 어린 양으로서 단 한번의 완전한 희생 제사를 대제사장으로서 드리셨습니다. 그런데 이 희생은 단순히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읽진 않았지만, 11-12절을 보시면 그 희생의 장소를 특별히 언급합니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여기서 ‘성문 밖’, 즉 ‘진영 밖’이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구약에서 성문 안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곳, 즉 성전과 성소였고, 성문 밖은 부정한 더러운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하시려스스로 거룩한 성 밖으로 나아가, 불결한 곳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전체에서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서도 의도적으로 구약의 대제사장과 예수님을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사역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1절과 12절은 직관적으로 알기가 힘든 구절입니다. 이 말의 뜻은 무엇이냐면,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성문 밖에서 짐승을 잡아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서 뿌렸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나머지 육체는 불살랐기에 짐승의 고기는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10절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는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백성들은 성문 밖에서 잡은 짐승의 고기를 먹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신약의 성도는 성문 밖에서 잡은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고기는 다름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이기 때문입니다. 성문 밖에서 예수님께서 죽으셨고, 우리는 그 예수님의 희생의 은덕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죽으신 성문 밖은 세상이 죄인 취급하며 버린 자리이며, 수치스러운 자리입니다. 이곳에서 죽으신 놀라운 희생입니다. 그리고 13절은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이 말을 더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도 그분께 나아가 진영 밖으로 나아가, 그분이 받으신 치욕을 짊어집시다.”입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옛 유대 전통의 안락한 전통고 제사를 버리고, 예수님처럼 세상이 인정해주지 않는 길, 때로는 세상으로부터 조롱받고 비난받는 그 길을 걸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원칙적인 희생적 삶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희생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은, 이제 우리도 그분이 보내신 제사장으로서 그분의 희생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부르심입니다.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신분의 변화와 정체성이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고 우리를 핏값으로 사신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희색적 삶은 15-16절에서 명확하게 말하고 있듯이, “찬양의 제사”와 “선행과 나눔”으로 구체화가 됩니다.
그리고 추가로 “순종”이 바로 희생적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직분자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7절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 모두 마음 한켠에는 이러한 마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왜 굳이 사람에게 우리가 순종해야 합니까? 저는 하나님께만 순종하고 싶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순종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는 자, 즉 직분자에 대한 순종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여기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직분 그 자체에 순종할 것을 말하고 있진 않습니다. 17절에서 말하듯이 성도들을 인도하는 직무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직무를 직분자가 수행하기에 우리는 직분자에 대한 순종으로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직분자에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아주 명확하고 간단합니다. 지도자들은 “위대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돌보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 이 축복문에서 예수님을 “위대한 목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7절은 지도자들이 “영혼들을 위해 깨어있다”라고 말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목자가 밤새 양 떼를 지키기 위해 잠을 자지 않고 위험으로부터 경계하는 모습을 뜻합니다. 바로 이 지도자에게 순종하는 것이 곧 예수님의 목양 사역에 우리가 동참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나의 생각, 나의 주장, 나의 고집을 내려놓는 자기희생의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가 양이 되게 온순할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양은 눈과 귀도 어두워서 길을 제대로 찾지도 못하는데, 성격은 또 얼마나 괴팍한지 고집이 쎄다고 합니다. 우리를 향해 양으로 비유하시는 것은 이러한 양의 습성을 이스라엘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희생이 없다면 진정한 순종이 불가능합니다. 순종은 우리의 이성적인 합리성에 기반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해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성경은 나 자신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나를 맡기며 그분의 말씀에 따르는 것이 순종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이 순종의 희생이 부담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에게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불변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8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인간 지도자들은 연약하고, 실수하며, 때로는 우리를 실망시킬 수도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을 교회 안에서 비일비재하게 많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그들의 믿음을 본받고 순종하라는 7절과 17절의 명령 사이에 8절이 위치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 지도자는 변하거나 생명을 다해 떠날 수 있지만,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이신 예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보내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되, 우리의 눈은 오직 이 지도자를 보내신 예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완전한 희생을 굳게 믿을 때, 우리는 그분을 위해 어떤 희생이라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희생은 찬양과 선행으로,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돌보는 직분자에게 순종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직분자에 대한 순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제사장이시며 목자이신 예수님의 희생을 본받는 거룩한 삶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해선 안 되고, 왜 그래야 하는지, 곧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성문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분의 희생을 본받아 우리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그분께서 세우신 교회의 질서와 직분자에게 순종함으로 직분자의 사역을 지지하며 화평을 이루는 것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서가 고백하듯이 직분자 선출은 우리의 뜻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며 직분자는 하나님께서 교회로 보내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 직분자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거룩한 제물로 서는 우리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통해 직분자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을 주시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직분자를 저희가 선출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직분자를 아멘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저희가 이 직분자의 사역을 지지하고 순종함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을 본받는 삶을 실천할 수 있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이 직분자에게 순종하게 하심으로 저희를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을 경험하는 복된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