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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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오늘은 기도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 모이신 분들은 모두 신앙생활을 오래하신 분들이실 거예요. 30-40년 이상 하신 분들도 계실거고 모태신앙으로 70년이 넘게 신앙생활하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한번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 어떤 기도제목을 들고 기도했을 때, 즉각적으로 응답된 경우가 많았나요? 아니면 기다리거나 응답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나요? 질문을 한번 더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 열심히 믿었다고 해서 내 인생이 내 뜻대로 잘 풀렸나요? 아니면 내 뜻대로 된 일이 없었나요 ?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다 내뜻대로 내가 계획한대로 척척척 인도해주셨어요가 아니라 하나님은 항상 나를 꺾으셨던 분이세요. 하나님은 나 좋은 꼴 못보셨던 하나님이세요. 그런데 지나보니까 하나님은 선하시고 참 신실하신 분이세요. 이런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기도는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라고 그랬는데,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라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겠다는 표현인 거예요. 박영선 목사님의 기도라는 책에서 기도를 뭐라고 정의하는가 하면 기도란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는 행위라고 말을 해요. 지난 주 저녁예배 때 제가 설명했지만 기도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일이거든요. 무엇을 고백하는건가 하면 하나님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나를 구원할 수 없고 나는 내 삶을 통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 않습니까? 만약에 우리가 기도를 한다 해놓고, 하나님이 나한테 맞춰주길 바라고 하나님이 나의 시간과 나의 방법대로 움직여주길 바라고 기도를 어떤 소원성취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면 기도를 오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을 무릎꿇게 하고 하나님이 항복하길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무릎을 꿇는 것이고 내가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모든 기도의 행위가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기다리겠다는 겸손한 고백이 되길 소망합니다. 무릎을 꿇고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처분에 나를 맡기는 것 이것이 기도의 본질인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회당장 야이로의 이야기입니다. 야이로는 당시 종교적인 엘리트이자 부자였습니다. 사회적으로도 나름 지위가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12살 된 딸이 있었는데 이 아이가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던 겁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은 사람이고 품위가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식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 앞에서 고상한 부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체면을 내려놓고 혼비백산이 되어서 예수님 앞에 “제발 내 딸을 살려달라고” 간청을 하지요. 예수님이 야이로의 이 간절한 부탁에 응하시고 그 아이에게로 향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뭔가 하면 21절에 보니까 예수님 주변에는 이 야이로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큰 무리가 예수님께로 모여있었고 24절에 보니까 이에 그와 함께 가실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라고 나옵니다. 에워싸 밀었다는 말은 뭐냐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만큼 많은 무리가 예수님 주변에 있었던 겁니다. 자 여기서 야이로의 마음을 잘 생각해보면 지금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은 너무 급하고 초조한데 지금 사람들 때문에 꽉막혀서 앞으로 가지를 못하는 상황인 것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늦어가지고 마음은 막 급한데 차가 꽉막혀가지고 꼼짝없이 갇혀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때 얼마나 속이 터지고 화가 나는지 몰라요. 야이로의 마음이 그런 거예요. 급해죽겠는데 자꾸만 지체가 되는 상황인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야이로의 뚜껑이 열리는 일들이 발생하지요.
25절에 보니까 열두해 동안 혈루병을 앟던 한 여인이 무리 속에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살짝 만졌습니다. 그 순간 이 여인의 병이 나은 거예요. 여인은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었으니까 조용히 사라지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갑자기 멈춰 서시는 것이죠.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세요? 자기에게서 능력이 나간 줄을 아시고 무리 가운데에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그러신 거죠. 그리고 한참을 어떻게 하시냐면 32절에 이 여인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둘러보셨던 겁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얼마동안을 둘러보셨을까 생각해보았을 때, 33절에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이 모든 사실을 아뢰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아마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계셨던 모양이고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도대체 누구냐고, 빨리 자수하라고 소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떨며 나와서 모든 사실을 이야기 하합니다. 제가 예수님께 이러이러한 마음으로 손을 댔고 제 병이 나았습니다.
지금까지도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가 되었습니다. 안그래도 사람들 때문에 한번 시간이 지체 되었는데 이 혈루병 여인 때문에 또 한번 시간이 지체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야이로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가는데, 예수님은 너무 태평한 거예요. 야이로 입장에서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너무 마음이 급한 상황인데 예수님은 전혀 급하지 않은 모습으로 자꾸 이 여인에게 멈추어서서 시간을 지체하는 것이죠. 제가 야이로였다면 거기있던 사람들, 갑자기 나타난 저 괘씸한 여자, 심지어 예수님까지도 너무 야속하고 원망스러웠을 것 같아요. 결국엔 그 여자는 살았습니다. 34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그러지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일어나선 안되는 소식이 들리는데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방금 막 혈루병 여인이 구원을 받고 평안히 제길로 돌아갔는데 예수님이 지체하시는 사이에 내 딸은 죽어버린 것입니다. 야이로가 폭발하지 않았겠습니까? 만약 성도님들이 야이로였다면 어떤 말을 먼저했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급하다고 했잖아!!!”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왜이렇게 다들 천하태평이냐고, 나 급한거 안보이냐고 막 울분을 쏟아내지 않았을까,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기도할 때 어떻습니까? 나는 급해 죽겠는데, 지금 당장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이 당장 뭔가를 말씀해주시길 바라는데 하나님은 묵묵부답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나는 급한데 하나님은 안급한 것처럼 일을 지체하시고 나를 기다리게 만드실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게 하실 때에는 그냥이 없습니다.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기 때문에 기다리게 하시는 것이죠.
예수님이 야이로에게 담담히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하면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말씀하시고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이미 딸은 죽어서 장례가 한창 치뤄지고 있었고 곡하는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아이의 죽음을 애곡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그 아이의 손을 잡아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이 말은 굉장히 다정한 말입니다. 아빠가 딸의 방에 들어가 잠을 깨우듯이 아이야 이제 일어나야지? 이렇게 말씀하시더니 아이가 마치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일어나서 걷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고 놀랐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통 놀라고 놀랐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기적,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때 사람들의 반응인 것입니다. 마치 “이분이 곧 하나님이시구나. 그냥 선지자가 아니었구나” 이런 놀람과 같은 격이었죠. 이 놀랐던 사람들 중에서 가장 놀랐던 사람이 누구였을까요? 바로 야이로였던 것입니다. 무엇에 놀랐을까요? 죽은 자신의 딸을 다정한 말 한마디로 일으키시는 것에 야이로는 충격을 받은 거예요
야이로는 예수님에 대해서 몰랐던 것이 있었습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니 그러면 전능한 줄도 몰랐다면 왜 예수님께 병을 고쳐달라고 했는가” 야이로는 그저 예수님이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정도로만 생각했지 죽음을 뒤집을 수 있는 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야이로는 급했던 거예요. 아무리 병고치는 능력이 있어도 죽기 전에 도착을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그런데 야이로와는 달리 예수님은 여유가 넘쳤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이에요. 죽음도 큰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인거죠.
제가 장염 때문에 새벽에 응급실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운전할 힘은 남아있으니까 운전을 해서 응급실로 가서 죽을 것 같아서 당장 좀 봐주세요 그러는데, 응급실 간호사들이 뭐라고 하냐면 잠깐만 기다려보라는 거예요. 얼마나 미워요. 나는 아파죽겠는데,, 그러고 한참이 지나고서야 링거를 맞고 좀 괜찮아졌어요. 왜이렇게 바로바로 진료를 못받냐면 저는 차타고 제발로 걸어들어왔잖아요. 그런데 응급실에 실려오는 사람들이 있죠. 이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사람들, 응급실에서는 그 사람들이 1번인거예요, 먼저왔고 말고가 1번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가장 위급한 사람이 우선이 되는게 응급실 안에서의 규칙인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어떤 의사가 말한마디로 장염이든, 암이든, 어떤 질병이라도 고칠 수 있다면 혹은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면 아무리 위급하고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라 하더라도 급할 것이 없지 않겠습니까? 죽더라도 다시 일으키면 되고 죽더라도 다시 살리면 되는 거예요. 결국엔 이 사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리 급할게 없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급한 이유는 뭘까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너무 급한 거예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 끝날 것 같은데,,? 이대로만 주님 정말 안될 것 같은데요..?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고 급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전능하신 능력으로 나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다림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게 하십니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깨닫게 하시는 거예요.
. 시편 50편 21절에 보면요, "내가 이 일을 행하여도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와 같지 않다"는 거죠. 그분은 훨씬 더 능력 있는 분입니다. 강한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능력을...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이"라고 말하면서 그분이 전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가 조급해하고 두려워하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죽음도 뒤집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끝장이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조차도 하나님은 뒤집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대문에 여러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겠을 때, 우리가 더욱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구원하실 수 있는 구원자시라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두번째로 야이로가 예수님에 대해서 몰랐던 것은 무엇이냐, 그는 예수님이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지체하지 않으시고 야이로의 딸이 아픈걸 보자마자 손을 얹어주고 나았다 그러면 아마 야이로는 “저 예수라는 존재는 아무래도 대단한 선지자인가보다”하고 딸이 나은 사실에만 기뻐하며 돌아갔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시간을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야이로의 딸만 치료하고 끝이 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시간을 지체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야이로의 영혼을 치료하고 계시는 거예요. 만약 예수님이 지체없이 딸만 고쳐주셨더라면 야이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 있어서는 딸을 살리는 일보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일보다 우리를 죄에게 구원하는 것이 더 우선이었던 것이죠.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고 자꾸만 지체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그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우리를 죄로부터 건져내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로 이끌어내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속이 시원하게 응답해주시기를 원할 때가 있습니다. 다시 더 찾아올 필요도 없게 모든 복을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지요. 만약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에게 응대하셨더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찾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 인생이 내뜻대로 되고, 내가 계획한대로 바람에 돗단 것처럼 되어진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고 영적으로 병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으시죠.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목적하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시편 139편에 보면 다윗이 하나님 앞에 간구합니다. 다윗은 지금 매우 절박한 상황 가운데 있고 적들이 다윗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상황 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통 어떤 기도를 하기 마련이에요? 야이로처럼 지금 당장 해결해주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내 목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막 급한 마음을 호소하고 기도하는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뭐라고 기도하냐면 주님은 내 안고 일어섬을 다 아십니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가주할지라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의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뭐라고 말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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