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928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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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3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4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5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6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7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10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4. 로마서 11:1-10 청년 설교 스크립트: 은혜로 남겨진, 희망의 청년 공동체 (25분)
4. 로마서 11:1-10 청년 설교 스크립트: 은혜로 남겨진, 희망의 청년 공동체 (25분)
I. 도입: 왜 우리는 실패와 포기를 이야기하는가? (3분)
I. 도입: 왜 우리는 실패와 포기를 이야기하는가? (3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로마서 11장은 이스라엘 민족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시작됩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스도를 거부했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절규하듯 묻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11:1). 여러분이 삶 속에서 하나님께 던지는 질문, "하나님, 저를 포기하셨습니까?"와 다르지 않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대답과, 우리가 누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합니다.
II. 본론 1: 하나님의 신실하심: 버려지지 않은 확신 (5분)
II. 본론 1: 하나님의 신실하심: 버려지지 않은 확신 (5분)
1. 바울의 증언: 확신에 찬 "그럴 수 없느니라" (11:1-2a)
1. 바울의 증언: 확신에 찬 "그럴 수 없느니라" (11:1-2a)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이 완전히 버려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로 자기 자신을 제시합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11:1).
바울은 이스라엘의 최고 엘리트이자, 한때 교회를 가장 심하게 핍박했던 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구원받아 이방인의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약속과 은혜가 인간의 자격이나 공로에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봉사하고, 얼마나 높은 직분을 가졌으며, 얼마나 큰 성공을 이루었는지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라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전적으로 기반합니다 (11:2).
여러분의 신앙적 열심이 식었을 때나, 혹은 인생의 실패로 인해 깊이 낙심했을 때, 여러분의 감정이나 상황이 하나님의 신실하심보다 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을 절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이 신실하심이야말로 청년의 불안을 초월하는 가장 큰 위로의 근거입니다.
2. 엘리야의 절망과 하나님의 계산 (11:2b-4)
2. 엘리야의 절망과 하나님의 계산 (11:2b-4)
엘리야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때 중 하나였습니다.
갈멜산 대결 :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함께 공개적으로대결을 버렸다.
그리고 그 대결에서 엘이야가 이겼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이 증명이 되었다. 그래서 엘리야가 다시는 거짓 선지자들이 더 이상 백성을 미혹하지 못하게 선지자들을 처형 하였다.
그러면 이 이 후의 상황은 역전되어야 하는것 아닌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들을 섬겼던 당시 왕인 아합과 이세벨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왕비인 이세벨은 오히려 엘이야를 내일 이맘때까지 죽이겠다고 협박을 한다.
엘리야는 자신만 홀로 남아 목숨까지 위협받는다고 절규하며 "나만 남았는데" (11:3)라고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다. 기도도 열심히하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정작 상황과 환경은 바뀌는 것이 없다. 그럴때 우리는 지치기 마련이다.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이 가치가 없어 보이는 것이다. 늘 나는 제자리 걸음인 것 같고,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가치 없어 보인다.
이럴바에는 이시간에 공부를 더 하고 돈을 더 버는게 낮지… 하며 신앙을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다.
하지만, 절망가운데 있는 엘이야에게 하나님이 찾아와 비밀을 알려주십니다.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조차 알지 못했던 이 7천 명의 존재는, 상황이 아무리 악화하고 어려움에 처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당신의 순결한 백성을 남겨두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청년들이 세상 속에서 신앙을 지키느라 고립되었다고 느낄 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숨겨진 계획, 즉 7천 명의 거룩한 공동체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III. 본론 2: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7천 명의 비밀 (8분)
III. 본론 2: 은혜로 택하심을 입은 7천 명의 비밀 (8분)
1. 남은 자의 정체성: 행위가 아닌 은혜 (11:5-6)
1. 남은 자의 정체성: 행위가 아닌 은혜 (11:5-6)
바울은 엘리야의 예를 들어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11:5)고 선포합니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남은 자입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11장 6절은 남은 자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칙을 제시합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이 구절은 여러분이 짊어진 성과 중심적 압박을 완전히 해체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노력하고, 스펙을 쌓고,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 한다 해도,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은 그 행위의 대가가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며 , 여러분의 존재 가치는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은혜에 기반합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습니다.
2. 현대 청년의 바알 거부: 세상 속의 7천 명
2. 현대 청년의 바알 거부: 세상 속의 7천 명
7천 명의 중요한 특징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청년들은 어떤 '바알'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습니까?
경쟁의 바알: 세상의 성과 지상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쟁하고 성공해야만 가치가 있다고 속삭입니다. 이 바알에게 무릎 꿇으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잃고 영혼을 살리는 일꾼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복음을 방해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비교의 바알: 소셜 미디어를 통해 남들의 화려한 '밥상'만 보고 내 삶이 초라하다고 절망하며,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과시하려 합니다.
남은 자는 세상이 요구하는 이러한 '바알'을 거부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주되심에만 무릎 꿇는 자들입니다. 남은 자의 역할은 단순히 고립되어 살아남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 감람나무' 되신 그리스도께 잘 붙어서 , 자신의 일터(직장)와 사회에서 세상의 특을 버리고 사람을 살리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감당하는 사명자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이 시대의 7천 명이며, 여러분을 통해 가정이, 일터가, 사회가 변화되는 풍성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IV. 본론 3: 우둔함에서 깨어나기: 택함의 결과와 경고 (5분)
IV. 본론 3: 우둔함에서 깨어나기: 택함의 결과와 경고 (5분)
1. 구하지 못한 자들의 영적 우둔함 (11:7-8)
1. 구하지 못한 자들의 영적 우둔함 (11:7-8)
이스라엘 대다수는 자신들이 구하던 구원을 얻지 못하고 '우둔하여졌다'고 기록합니다. 이 우둔함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복음에 대한 영적인 불감증, 은혜의 언어를 행위의 조건으로 바꾸어 버리는 굳어진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는 것은 , 영적으로 마비되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청년들은 지금 자신의 삶 가운데 영적으로 '우둔해져' 가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확한 명령을 '부탁의 언어' 정도로 가볍게 여기고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 이는 영적인 우둔함의 명백한 징후입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자만하거나, 신앙의 본질을 놓치고 형식에만 갇힐 때, 남은 자라 할지라도 이 우둔함에 빠질 수 있습니다.
2.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옵시고 (11:9-10)
2.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옵시고 (11:9-10)
다윗의 시편을 인용한 11장 9-10절은 이 우둔함의 무서운 결과를 경고합니다. 그들이 애써 얻은 풍요로움(밥상)이 도리어 '올무와 덫'이 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경고는 오늘날 청년들에게도 유효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얻고자 하는 스펙, 명예, 물질적 풍요(밥상)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둔함은 우리를 세상의 무게에 눌리게 하여 등을 굽게 만들고, 영적인 시야를 흐려 복음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남은 자의 삶은 영적 민감성을 유지하며, 세상의 풍요가 올무가 되지 않도록 경계하는 능동적인 선택을 요구합니다.
V. 결론: 남은 자로서의 사명과 소망 (4분)
V. 결론: 남은 자로서의 사명과 소망 (4분)
우리는 로마서 11장을 통해 우리가 버려지지 않았음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남은 자 된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변치 않는 은혜 때문입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부분적인 넘어짐과 우둔함조차도, 이방인인 우리에게 구원이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심오한 계획이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충만함과 풍성함(11:12)을 향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남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합니다. 고독한 엘리야처럼 '나만 남았다'고 절망하지 말고, 주변의 남은 자들을 찾아 소망 가운데 연대하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남은 자'의 사명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영적 우둔함을 깨고 복음의 영향력을 회복하십시오.
직장/학교에서: 세상의 '바알'을 거부하고, 겸손히 봉사하여 그곳을 변화시키는 '특'의 역할을 감당하십시오.
인간관계에서: 은혜로 택함 받았음을 기억하고,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교만한 마음(선민 의식)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주님만 바라볼 때, 우리를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이 아니라 우리의 충만함과 풍성함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이 확신 가운데, 오늘도 믿음 잃지 않고 소망을 붙드는 '은혜로 남겨진 희망의 청년 공동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