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맞는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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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에 맞는 은혜

본문: 요한복음 11장 1-10절

찬송: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말씀의 문을 열며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간절히 부르짖었는데 하늘이 침묵하는 것 같을 때.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급한데 하나님께서 지체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늦으십니까?" "사랑하신다면서 왜 바로 도와주지 않으십니까?"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의 가족도 똑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나사로와 그의 두 누이 마르다, 마리아. 이들은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예수님께서도 특별히 사랑하신 가족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그들의 집에 머무르실 만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가족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오라버니 나사로가 심하게 병들었습니다. 의원을 찾아가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두 자매는 예수님을 떠올렸습니다. '주님이 계시다면! 주님만 오시면!' 하지만 예수님은 지금 유대인들의 위협 때문에 요단강 건너편에 계십니다.
그래도 전갈을 보냈습니다. 오늘 본문 3절입니다.
요한복음 11:3 NKRV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빨리 오십시오'라는 말도, '고쳐주십시오'라는 요청도 없습니다. 예수님이 처한 위험한 상황을 알기에 그저 조심스럽게 상황만 알립니다.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습니다." 이 한마디에 그들의 모든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바로 달려가실 줄 알았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즉시 출발하실 줄 알았습니다. 오히려 지금 머무는 곳에서 이틀이 더 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답답한 상황이 모두 주님의 계획이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 어떻게 우리에게 임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랑하시되 지체하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11:5–6 NKRV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
본문 5-6절 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사랑하신다면서 가지 않으신다? 사랑하신다면서 이틀이나 더 머무르신다? 도대체 이게 무슨 사랑입니까? 우리가 아는 사랑은 급히 달려가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제쳐두고 빨리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랑하시는데도 가지 않으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전갈을 보낸 그날부터 아마 문 앞을 계속 바라보았을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거야. 오늘 저녁쯤 오실 거야.' 하루가 지났습니다. '내일은 오시겠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혹시 전갈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은 건 아닐까?'
그런데 그 사이에 나사로는 숨을 거두었습니다.
'하루만 더 버텼더라면...’ '주님이 하루만 일찍 오셨더라면...' '아니, 차라리 우리가 나사로를 모시고 주님을 찾아갔더라면...'
후회와 원망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섭섭함도 있었을 것입니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가까이 계셔야 할 주님이 멀리 계셨습니다. 전혀 딴 사람처럼 느껴질 만큼 냉정하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4절에 예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물론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을 병이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예수님은 더 큰 그림을 보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에는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더 큰 영광을 위한 통로였습니다.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살리는 더 큰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즉시 가셨더라면 병든 나사로를 고치셨을 것입니다. 그것도 큰 은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틀을 더 기다리셨습니다.
지체가 사랑 없음이 아니라 오히려 더 큰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간절히 부르짖었는데 하늘이 침묵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건 아닐까?'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건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그런데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듣고 계십니다. 사랑하고 계십니다. 단지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우리가 생각한 때보다 더 좋은 때에 주시려고 계획하고 계실 뿐입니다.
우리 눈에는 지체로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정확한 타이밍입니다. 단 1분 1초도 빠르지 않고, 1분 1초도 늦지 않습니다.
병을 고치는 은혜보다 죽음을 이기는 은혜가 더 큽니다. 작은 응답보다 큰 응답이 더 좋습니다. 빠른 은혜보다 때에 맞는 은혜가 더 완전합니다.
하나님의 지체하심도 사랑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가시는 하나님

이틀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이 입을 여십니다. "유대로 다시 가자."(7절)
제자들이 깜짝 놀랐습니다.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8절)
제자들의 걱정이 이해됩니다.
얼마 전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급히 요단강 건너편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곳으로 가신다고요? 나사로가 있는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불과 3킬로미터입니다. 위험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놀랍습니다.
요한복음 11:9 NKRV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낮에는 해가 떠 있습니다. 빛이 있습니다. 그래서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걸어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일할 수 있습니다. 안전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내게는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있다. 그 시간 안에서는 안전하다. 아직 내 때가 남아 있다. 가도 괜찮다."
10절에서 예수님은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밤에는 빛이 없고 어둡습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 넘어질 수 있고 위험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의 때가 아닐 때 가면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내 때에 움직이면 실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때를 따라 가면 안전합니다.
예수님께는 명확한 시간표가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가 정확히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사흘까지는 시신 주변에 머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나흘이 지나면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소망이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아무도 소망을 가질 수 없는 그 순간에 가셔서, 완전히 죽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정확한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는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늦어 보입니다. '이제는 끝났다' 싶을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바로 그때가 일하실 때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망이 사라진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의 소망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혹시 지금 응답이 보이지 않습니까? 기도했는데 아무 변화가 없습니까?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 같습니까? '이제는 정말 끝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까?
그런데 아닙니다.
하나님께는 정확한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반드시 오십니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오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대로, 내 방법대로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조급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의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낮에 다니는 사람은 실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어두워 보여도 하나님의 빛이 있습니다. 위험해 보여도 하나님이 함께하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찾아 오십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모두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리고 가장 좋은 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병을 고치는 은혜보다 죽음을 이기는 은혜가 더 큽니다. 작은 응답보다 큰 응답이 더 좋습니다. 빠른 은혜보다 때에 맞는 은혜가 더 완전합니다.
그 은혜를 신뢰하십시오. 그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리고 빛 가운데 행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는 결코 늦지 않습니다. 때에 맞게 임합니다.
"때에 맞는 은혜"를 경험하시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좁은 생각으로는 주님의 넓은 계획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눈에는 지체로 보이지만, 주님께는 정확한 때입니다. 작은 것을 구하는 우리에게 더 큰 것을 주시려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지금 응답이 늦어지는 것처럼 느껴지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간절히 기도했는데 침묵하시는 것 같아 힘들어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위로를 주시고 소망을 주옵소서.
주님의 지체하심도 사랑이라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주님의 때가 가장 완벽하다는 것을 신뢰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그 때까지 빛 가운데 행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성도들 되게 하옵소서.
때에 맞는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를 인도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중앙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게 하시고, 주님의 때를 신뢰하며 빛 가운데 행하는 교회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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