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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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혜와 평강
제목: 은혜와 평강
본문: 빌레몬서 1장 1-3절
본문: 빌레몬서 1장 1-3절
찬송: 221장 주 믿는 형제들
찬송: 221장 주 믿는 형제들
임재의 기도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여러분, 편지를 받아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요즘은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연락하지만, 옛날에는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 봉투를 뜯기도 전에 보낸 사람의 이름을 보면 가슴이 뛰기도 하고, 때로는 두렵기도 합니다. 빌레몬도 그랬을 것입니다. 편지를 받았는데, 보낸 사람이 ‘바울’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한 영적 아버지, 그토록 존경하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편지를 열어보니 첫 마디가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입니다. 이것은 당시 흔한 인사말이었습니다. 그런데 빌레몬서를 끝까지 읽어보면, 이 인사말이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이 편지에서 빌레몬에게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라고 요청합니다. 은혜 없이는 용서를 할 수 없고, 평강 없이는 화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빌레몬서 1장 1-3절 은 짧지만, 전체 편지의 열쇠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은혜가 있어야 용서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은혜가 있어야 용서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1, 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라고 말합니다. 로마 사람들은 바울을 로마의 죄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죄수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감옥에 있지만, 그것조차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은 그 어두운 감옥에서도 “은혜와 평강”을 선포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바울 자신이 은혜를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래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교회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그 순간 바울은 은혜를 알았습니다. 자기 같은 죄인을, 핍박자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도 은혜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은혜의 인사 뒤에 어떤 무언가를 빌레몬에게 요청합니다. 8절을 보면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에게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로서, 빌레몬의 영적 아버지로서 그냥 명령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9a절을 보면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고 말합니다. 바울 왜 사랑으로 간구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은혜 때문입니다. 바울은 속이 상해있는 빌레몬에게 명령이 아닌 간구로, 또 권위가 아닌 사랑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로 말합니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유익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이 오네시모라는 종은 주인의 돈을 훔치고 도망친 무익한 종이었습니다. 로마 법으로는 사형에 처할 수도 있는 중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이제는 유익하다”라고요. 어떻게 이런 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은혜로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오네시모를 만나 복음을 전했고, 오네시모는 회심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탕자의 이야기 등장합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을, 아버지가 멀리서부터 달려가 끌어 안았습니다. 아들이 변명할 틈도 주지 않고,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용서는 은혜를 기억하는 자의 반응입니다.
이제 들판의 벼가 추수가 되고 시금치 씨앗을 뿌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씨앗을 심을 때 땅이 기름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자라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종자를 가져와도 척박한 땅에서는 싹을 틔울 수가 없습니다. 용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라는 기름진 토양이 없으면, 용서는 싹을 틀 수가 없습니다.
살다보면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몰라줘서 속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괜히 그 사람을 만나면 서운하고 밉게 보일 때가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같은 죄인을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자녀 삼으시고,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습니다.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용서할 수 있습니다.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용서하며 사는 저여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평강이 있어야 화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평강이 있어야 화해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제 본문 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은혜만 말하지 않고 이어서 평강도 말합니다. 왜 평강이 필요할까요? 용서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했지만 여전히 어색하고 불편한 경우가 있습니다. 용서는 했지만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평강이 필요합니다.
평강은 히브리어로 ‘샬롬’입니다. 샬롬은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온전함이고 회복입니다. 깨진 관계가 치유되고, 상처가 아물고, 다시 온전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은 단순히 겉으로 화해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부터 온전하게 회복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17절에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라고 요청합니다. 혹시 1절을 기억하실까요? 1절을 보면 바울은 빌레몬을 ‘동역자’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복음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사람,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파트너입니다.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빌레몬, 너와 내가 동역자라면, 오네시모도 그렇게 받아들이라.”였습니다. 은혜와 평강이 근본적인 관계를 바꾼 것입니다.
그리고 16절에서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자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평강입니다. 단순히 용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에서 형제의 관계로 바뀌는 것, 이것이 샬롬이며 온전한 회복입니다.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려면 접착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접착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양쪽을 꼭 눌러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히 붙습니다. 용서는 접착제와 같고, 평강은 그 압력과 같습니다. 평강이 없으면 용서해도 다시 갈라지게 됩니다.
또한 용서는 도초에서 비금으로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비금과 도초 사이에는 바다입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한번 건너가려면 배가 없으면 어려웠습니다. 쉽게 건너려면 다리를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리만 놓으면 될까요? 아닙니다. 기둥이 필요합니다. 평강은 그 다리를 든든하게 만드는 기둥입니다. 평강이 없으면 용서의 다리는 흔들리고 결국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용서는 했는데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면, 용서는 했는데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평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 샬롬이 필요합니다. 로마서 5장 1절 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과의 평강이 먼저입니다.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가 회복될 때, 사람과의 평화도 가능합니다.
에베소서 2장 14절 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분이 십자가에서 깨진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를 회복하셨습니다. 그 평강을 받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화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으로 화합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은혜와 평강은 공동체의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은혜와 평강은 공동체의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제 본문 2절을 읽겠습니다.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바울이 빌레몬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할 일이 있다면, 빌레몬에게만 편지를 보내면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압비아와 아킵보, 그리고 빌레몬의 집에 있는 교회에게도 함께 편지합니다. 왜 그럴까요?
은혜와 평강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동체 전체가 함께 지켜보고, 함께 격려하고, 함께 기뻐해야 하는 일입니다.
압비아는 아마도 빌레몬의 아내였을 것입니다. 아킵보는 두 사람의 아들로, 골로새서 4장 17절 에서 바울은 그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교회의 사역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교회가 모였습니다.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 없었기 때문에, 부유한 성도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이 편지를 듣기 원했습니다.
용서는 개인의 결단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일입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때, 압비아도 함께 받아들여야 합니다. 아킵보도 그를 형제로 대해야 합니다. 집에 모이는 모든 성도들이 그를 환영해야 합니다. 교회는 용서의 증인이자, 화합의 보증인입니다.
만약 가족 중 한 사람이 다른 가족에게 잘못했을 때, 당사자들만의 문제일까요? 아닙니다. 온 가족이 함께 아파하고, 함께 회복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화해했을 때, 온 가족이 함께 기뻐합니다. 혹시 가정에서 식구들끼리 서운한 일이 있다면 먼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평강으로 화해의 손을 내미십시오. 가족은 서로에게 은혜와 평강을 나누는 첫 번째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함께 은혜와 평강을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한 사람의 용서를 온 교회가 격려하고, 한 사람의 화해를 온 교회가 기뻐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5절 은 이렇게 말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한 지체가 아프면 온 몸이 아프고, 한 지체가 회복되면 온 몸이 기뻐합니다.
은혜와 평강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누리고 함께 나누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중앙교회가 서로에게 은혜와 평강을 흘려보내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세 가지의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은혜가 있어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그 큰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평강이 있어야 화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샬롬, 온전한 회복의 평강이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화해하며 화합할 수 있습니다.
은혜와 평강은 공동체가 함께 누립니다. 용서와 화해는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지켜보고 격려하는 일입니다.
이제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평강을 기억하면서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삶을 함께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우리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잊고 살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을 용서하시고, 자녀 삼으시고, 이 자리까지 인도하신 그 큰 은혜를 잊고, 작은 일에 분노하고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합니다.
주님,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 은혜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받은 용서를 기억할 때, 우리도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관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우리 중앙교회를 은혜와 평강이 흐르는 공동체로 세워 주옵소서. 한 사람의 용서를 온 교회가 격려하고, 한 사람의 화해를 온 교회가 기뻐하는, 그런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의 관계 속에서 은혜와 평강을 나누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