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환상과 계시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20 views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2:1-6
“주의 환상과 계시”
찬송가 310장 ‘아 하나님의 은혜로’
2025. 9. 29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주의 환상과 계시”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을 물리치기 위해서, 바울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자랑하기 시작했는데요.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참 어리석은 일이지만, 거짓 교사들이 자꾸만 되도 않는 것을 자랑하면서 바울을 깎아내리니까 바울이 참다참다 자기도 자랑을 하는 거죠. 사실 바울이 안 해서 그렇지, 자랑할 게 엄청 많거든요.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자신이 당한 고난들에 대해서 자랑을 했어요. 감옥에도 많이 갇히고 매도 많이 맞고, 온갖 죽음의 위험을 수도 없이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며 수고하고 있어요. 
    세상 사람이 보기에는 사도가 고난을 많이 당하는 것이 능력이 없어서 그런 거라고 보일 수도 있겠지만, 바울은 그 모든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랑으로 여겨요. 왜냐하면 그 모든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에. 내 힘과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기까지 내가 올 수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이기 때문에, 바울은 고난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겁니다. 
    자, 그런데. 12장으로 넘어가면서 갑자기 환상과 계시에 대한 자랑을 합니다. 육신에 대해서 자랑을 할 때는 약함을 자랑했지만,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그럴 수가 없어요. 고린도교회는 특히나 은사에 대해서 민감하거든요. 만약에 바울이 은사에 있어서도 약함을 자랑한다면, 바울에 대해서 실망을 할 수밖에 없어요. 
    반면에 거짓 교사들은 자기들이 환상을 보고 계시를 듣는다면서 자랑을 많이 해요. 그러니까 바울하고 비교가 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부득불 환상과 계시를 자랑하는 겁니다. 다른 건 다 양보해도, 이 영적인 문제, 은사의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시작합니다.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무익하나마, 지금 내가 자랑을 하는 것이 무익하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부득불 자랑을 한다는 겁니다. 무엇을 자랑합니까? 주의 환상과 계시를 자랑해요. 주의 환상과 계시, 주에게서 오는 환상과 계시죠. 내가 보고 싶다고 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이 나에게 보여주셔야 볼 수 있는 겁니다.
    특별히 바울은 놀라운 환상들을 봤어요. 아니, 단순히 보기만 한 게 아니라, 체험을 했습니다. 자, 2절 봐 볼까요? 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아멘.
    바울이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가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마치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듯이 지금 하고 있죠. ‘내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 이렇게 말을 하지 않고,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 이렇게 다른 사람 이야기 하듯이 말을 해요.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철저히 자신을 감추고 하나님을 드러내기 위해섭니다. 내가 잘나서 체험을 한 것이 아니라, 나는 그냥 일개 백성일 뿐이고, 하나님께서 나같은 아무개에게 놀라운 체험을 허락하셨다. 이것을 드러내기 위해서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이 하는 겁니다. 이해가 되시죠.
    자, 다시 환상의 내용으로 돌아와서요. 바울이 14년 전에 셋 째 하늘에 이끌려 갔어요. 14년 전, 이때가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은데요. 학자들은 대체적으로 바울이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머무르던 때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을 보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회삼하고나서 다메섹에 들어가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고 눈이 다시 보이게 됐죠. 그 뒤에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의 살해위협을 피해서 광주리를 타고 성벽을 내려가 도망을 칩니다. 이 내용이 오늘 본문 바로 위에 고린도후서 11장 33절 내용이죠.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 
    바울이 다메섹에서 도망을 쳤어요. 그 뒤에 어디로 갔냐면, 아라비아로 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메섹으로 갔다가 3년 뒤에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이때 예루살렘에서 바나바의 중재를 통해 사도들을 만나게 되죠. 그리고 그 뒤에는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으로 가요.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은 바울의 고향입니다. 자기 고향으로 돌아간 거예요. 왜 고향으로 돌아갔냐면,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또다시 유대인들의 살해 위협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죽이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도망을 친 겁니다. 
    그리고 고향에서 거의 10년을 머무르게 됩니다. 그 뒤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는데, 이때 바울이 내가 계시를 따라서 올라갔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 내용이 갈라디아서 2장에 기록되어 있어요. 갈라디아서 2장 1절 2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갔는데, 뭘 따라 올라갔어요? 계시를 따라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계시가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바로 그 체험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는 겁니다. 참고로 십사 년 후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고 그랬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십사 년은 바울이 회심하고부터 십사 년을 말하는 겁니다. 회심하고 나서 십사 년 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다는 거예요.
    그때 계시를 본 거죠. 그리고 다시 그때로부터 14년이 흘러서 바울이 고린도후서를 쓴 겁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14년 전에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 이렇게 쓴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 되시죠?
    제가 이해를 돕기 위해서 바울의 행적을 짤막하게 설명을 드렸는데요. 어쨌거나 바울이 주의 환상과 계시를 봤어요. 그런데 그 내용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겁니다. 셋째 하늘은 천국을 말해요. 오늘 본문 4절에서는 낙원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4절 같이 읽어볼까요? 4절 시작,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아멘.
    바울이 셋째 하늘,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어떤 음성을 들었어요. 그런데 그 음성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었어요.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바울이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아들었다 해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말인 거죠. 
    그리고 뿐만 아니라, 바울은 자신이 셋째 하늘에 영혼만 갔는지, 아니면 몸과 영혼이 함께 갔는지도 알지를 못했어요. 그래서 2절과 3절에 똑같은 말을 써놨죠.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그의 영혼이 몸 안에 있는 상태로 몸과 영혼이 셋째 하늘로 올라갔는지. 아니면 몸 밖에 있었는지, 그의 영혼이 몸 밖으로 나와서 영혼만 올라갔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이런 말입니다. 
    결국에 바울은 아는 것이 없어요. 분명히 엄청난 체험을 했는데, 확실하게 아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예전에 고린도전서를 설교할 때도 말씀을 드렸었지만, 여러분, 천국은 우리가 살아서는 볼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곳이에요. 바울은 특별히 하나님의 은총으로 천국을 체험하고 왔지만, 직접 체험을 해놓고도 제대로 모르잖아요. 
    자기가 영혼만 갔는지, 아니면 몸과 영혼이 같이 갔는지도 모르고. 거기서 들은 말도 표현을 하지를 못해요. 왜냐하면 천국은 이 땅에 속한 존재에게 아직 허락되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여러분 혹시 천국 간증하는 영상 같은 거 보시면 그거 다 무시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갔더니 어떻게 생겼고, 거기 누가 있고, 누구는 없고. 이런 영상 유튜브에 많이 있는데요. 다 가짭니다. 바울 같은 사람도 천국을 제대로 설명을 못하는데, 도대체 누가 설명을 할 수 있겠어요? 헛된 것에 미혹되지 마시고 성경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안에 천국이 있어요. 
    다른 사람의 어떤 간증이나 자랑에 휘둘리지 마시고, 성경이 들려주는 참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6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을 해요. 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아멘.
    바울이 셋째 하늘에 간 것 말고도 자랑할 것이 많거든요. 병자들을 고치고, 귀신들을 쫓아내고, 심지어 드로아에서는 죽은 유두고도 살려냈어요. 엄청난 간증거리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혹시라도 누군가가 내 말을 듣고 지나치게 생각할까봐. 나는 이렇게 말했는데, 그것을 왜곡해서 듣고 과장되게 소문을 퍼트릴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환상과 계시에 대한 말을 더 하지 않고, 그만두겠다는 것입니다. 이게 그 말이에요.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참말을 하더라도 그것을 왜곡해서 듣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럴 수 있어요. 그 사람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내가 잘못 듣고 다르게 생각할 수 있어요. 또 반대로, 내가 한 말을 다른 사람이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그런 문제가 일어날 수가 있어요. 여러분, 그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답을 바울이 알려주고 있습니다. 두려워하여 그만두노라.
    다른 사람의 영적인 일을 듣기를 즐겨하지 말고, 나도 남들에게 말하기를 즐겨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간증이 우리에게 유익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어요. 왜 나는 저런 체험을 못할까? 실망하게 될 수도 있고, 또는 질투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와 똑같은 문제가 우리에게 일어나는 거예요. 2천 년 전에 바울이 그토록이나 고치고 싶었던 문제가 지금 우리에게 똑같이 일어나는 겁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돼요. 
    사랑하는 여러분, 말씀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의 환상과 계시는 우리가 받을 수도 있고, 못 받을 수도 있어요. 이것은 우리 신앙생활에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거면 모두에게 다 주시겠죠. 
    눈에 보이는 어떤 대단한 체험을 우리가 사모할 수는 있겠지만, 거기에만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성경의 참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오해하지 말고,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도록 날마다 묵상하고 묵상하여서 조금씩 조금씩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