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린 그분을 바라볼 때 시작되는 은혜 2025 0929 슥12: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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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찔린 그분을 바라볼 때 시작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서론: 우리는 어떻게 진짜로 변할 수 있을까?
서론: 우리는 어떻게 진짜로 변할 수 있을까?
(차분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회개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그러나 돌아서면 또 넘어지고, 똑같은 죄를 반복하는 자신을 보며 깊은 무력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나는 왜 변하지 않을까? 내 회개는 진짜가 아닌가?"
이것은 우리의 결단이 부족해서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의지가 약해서일까요? 성경은 진짜 변화, 진짜 회개는 우리의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다면 진짜 회개는 도대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포로 생활에서 막 돌아와 절망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들은 무너진 성전을 보며 미래를 비관했습니다. 바로 그들에게, 스가랴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일어날 놀라운 회복의 비전을 선포합니다.
그런데 그 회복은 정치적인 승리나 경제적인 번영으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온 민족이 함께 통곡하고 애통하는, 전무후무한 '영적 대각성'을 통해 시작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위대한 영적 부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구원의 로드맵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진짜 회개'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구원의 3단계 공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①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부어주심으로 시작되어, ② 십자가를 향한 시선의 완전한 전환을 거쳐, 마침내 ③ 영혼을 뒤흔드는 진정한 애통에 이르는 여정입니다. 이 은혜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본론: 구원에 이르는 3단계 공식
본론: 구원에 이르는 3단계 공식
1단계: 하나님의 주도권 - '은총의 영'이 부어지다 (10a절)
1단계: 하나님의 주도권 - '은총의 영'이 부어지다 (10a절)
진짜 회복의 여정은 '내가' 결심하는 것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놀랍게도 "내가... 부어 주어"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동으로 시작됨을 선포합니다.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여기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이라는 말에는 회개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히브리 원어로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심령'으로 번역된 단어는 하나님의 '영'(רוּחַ, 루아흐), 즉 성령님 자신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영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는 '은총'(חֵן, 헨)입니다.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호의입니다. 둘째는 '간구'(תַּחֲנוּנִים, 타하누님)입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부르짖는 절박한 탄원입니다.
이것을 연결하면 무슨 뜻이 됩니까? 참된 회개는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첫째로 우리가 얼마나 큰 은혜가 필요한 죄인인지를 깨닫게 하시고, 둘째로 그 은혜를 구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는 간구의 마음을 주실 때 비로소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메마르고 완고한 심령에 성령의 단비가 내려야만, 비로소 회개의 싹이 틀 수 있는 것입니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회개는 믿음의 결과이지, 믿음의 전제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우리를 찾아올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회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혹시 지금 회개가 힘들고 마음이 완악하게 느껴지십니까? 더 강하게 결단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먼저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 바로 성령을 부어주셔서 제 마음을 깨뜨려 주십시오."
2단계: 시선의 전환 - '찔린 그분'을 바라보다 (10b절)
2단계: 시선의 전환 - '찔린 그분'을 바라보다 (10b절)
하나님의 은혜의 영이 부어지면, 우리의 시선이 마침내 바른 곳을 향하게 됩니다.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행위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구약의 사건이 바로 모세 시대의 놋뱀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려 죽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신 유일한 해결책이 무엇이었습니까?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고, 그것을 '쳐다보는 자는 모두 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처방이었습니다. 뱀에 물렸는데, 뱀의 형상을 쳐다보면 산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됩니까? 그러나 사는 길은 단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장대 위의 놋뱀을 '바라보는' 것뿐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 사역을 설명하시면서 바로 이 사건을 직접 인용하셨습니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 자신이 바로 인류의 죄(뱀)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장대) 위에 높이 들리신 '놋뱀'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스가랴가 예언한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그것은 단순히 십자가를 쳐다보는 행위가 아닙니다. 불뱀에 물린 자가 자신의 지식이나 노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장대 위의 놋뱀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을 때 살았던 것처럼, 죄로 죽어가는 우리가 나의 의를 포기하고,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 높이 들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이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눈을 여시면, 우리는 그 십자가 위에서 '나 때문에' 찔리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바로 나의 교만, 나의 거짓말, 나의 음란함이 그분을 찌른 창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진짜 회개는 내 죄의 목록을 들여다볼 때 시작되지 않습니다. 진짜 회개는 내 죄 때문에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정면으로, 그리고 믿음으로 바라볼 때 시작됩니다.
3단계: 진정한 반응 - 독자를 잃은 것처럼 애통하다 (10c-14절)
3단계: 진정한 반응 - 독자를 잃은 것처럼 애통하다 (10c-14절)
나의 죄 때문에 찔리신 그분을 제대로 바라본 결과는 무엇입니까? 감당할 수 없는 애통입니다.
10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고대 사회에서 아들을, 특히 모든 소망이 담긴 독자나 장자를 잃는 슬픔은 인생에서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요, 모든 희망이 끊어지는 절망을 의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회개의 애통은, "아, 내가 잘못했구나" 정도의 가벼운 후회가 아닙니다.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독생자가 죽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터져 나오는, 내 존재를 뒤흔드는 깊은 슬픔입니다.
그리고 이 애통은 집단적인 행사가 아닙니다. 12절부터 보면 다윗 족속, 나단 족속, 레위 족속... 모든 가문이, 심지어 남편과 아내가 '따로' 애통한다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이것은 회개가 얼마나 개인적이고 실존적인 사건인지를 보여줍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나, 부모님의 신앙에 기댈 수 없습니다. 내가 직접 십자가 앞에 홀로 서서, 나의 죄 때문에 찔리신 주님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리의 회개 기도는 어떻습니까? 남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골방에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찔리신 주님을 끌어안고 독자를 잃은 부모처럼 통곡하는 그 개인적인 애통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론: 십자가를 바라볼 때 흐르는 눈물
결론: 십자가를 바라볼 때 흐르는 눈물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짜 회개의 여정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시작됩니다. 그 성령은 우리의 눈을 열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게 하시고, 그 시선의 전환은 마침내 우리의 굳은 마음을 깨뜨려 진짜 애통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슬픔 속에 머물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 통곡의 골짜기를 지나면 어떤 약속이 기다립니까? 바로 다음 장인 스가랴 13장 1절입니다.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주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우리가 흘리는 애통의 눈물은,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샘으로 이어집니다.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죄책감이 변하여 용서의 확신이 되는 곳이 바로 십자가 앞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 이상 자신의 힘으로 회개하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구하십시오. "하나님, 제게 은총과 간구하는 영을 부어주소서. 십자가가 진짜 실재로 보이게 하소서."
그리고 바라보십시오. 다른 곳을 보지 말고, 오직 당신을 위해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메마른 당신의 심령에 눈물의 샘이 터지고, 그 눈물이 당신을 씻어 새롭게 하는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희의 힘으로는 결코 참된 회개에 이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이 시간, 저희 각 사람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시옵소서. 무뎌진 저희의 영의 눈을 열어, 나를 위해 찔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시고, 그 십자가 앞에서 독자를 잃은 듯한 애통의 눈물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든 죄와 더러움이 씻겨지고, 주님 주시는 참된 회복과 기쁨을 누리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