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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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친상간
근친상간
오늘 함께 읽은 레위기 18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방 사람들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내용입니다. 막 하체를 범하지 말라는 내용들이 가장 많이 나왔는데, 바로 성적인 관계에 대한 규례가 오늘 많이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흔히 근친상간, 이라고 하죠. 부부가 아닌 가족간에, 예를 들어 아들과 어머니라던가, 아니면 아버지와 며느리 라던가, 혹은 가까운 친척간의 성적인 관계를 맺지 말라는 것이 6절부터 18절 까지의 말씀에 등장합니다.
어떤 내용인고 하니, 7절부터 보시면 친모를 범하지 말라, 8절에 계모를 범하지 말라, 9절에 누이를 범하지 말라, 10절에 손녀를 범하지 말라, 11절에 이복 누이를 범하지 말라, 그 이후로 쭉, 고모 이모 숙모 며느리 형수 제수 처형 처제에 대해서 성적인 관계를 맺지 말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오늘날에도 저희가 이런 근친상간이라고 불리는 가족, 친척간의 성적인 관계는 굉장히 나쁘고 불결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 법으로도 저희가 금지하고 있을 만큼 터부시되고 있는 일들이죠. 왜 그럴까요? 왜 이런 것들을 좋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있나요? 오늘날의 과학적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유전적으로 가까운 사람들, 그러니까 부부가 아닌 가족 친척 사이에 아이를 갖게 되면 유전병을 가지게 될 확률이 높다는건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그런 과학적인 이유 외에 도덕적이나 윤리적인 이유로는 딱히 금지할 이유가 없다, 라는 것이 요즘 사람들이 하는 말인데요.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굉장히 가부장적인 이유로 설명합니다. 어머니와 동침하면 안되는 이유는, 7절에 보시면 아버지의 아내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버지의 권한을 훼손하면 안된다는 거죠. 자기 자손과의 동침이 안되는 이유는, 10절에 보시면 그건 가장인 자기 자신의 몸이나 다름 없기 때문에 애초에 동침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누이나 고모 숙모 이모 등등도 마찬가지 입니다. 11절에 보시면 아버지의 아내가 낳은 딸, 이복 누이도 아버지의 자녀기 때문에 동침할 수 없는 겁니다. 이 시대는 여성과 자녀는 ‘가장’인 남성의 소유라고 여겨졌기 때문에 근친간의 동침이 안된다고 말씀하는 겁니다.
간음하지 말라고 들었으나
간음하지 말라고 들었으나
간음하지 말라
그래서 여러분 십계명에서도 등장하는 간음하지 말라, 라는 말씀도, 사실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등장하는 말씀입니다. 간음은 혼전 성관계를 뜻하는 말씀이 아니라, 불륜을 주로 지칭하는 말씀입니다. 여성이 불륜을 저지르면 그건 남편에 대해서 배신하는 것이고, 또 그런 결혼한 여성과 불륜을 맺은 남성은 그 여성의 남편에 대해서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불륜을 저지른 남녀를 모두 죽이라는 말씀을 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말씀 20절 말슴에서도 그래서 “네 이웃의 아내”와 동침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만일 처녀의 아버지가 딸을 그에게 주기를 거절하면 그는 처녀에게 납폐금으로 돈을 낼지니라
또 출애굽기 22장 16-17절에는 혼인하지 않은 처녀와 동침하면 그 처녀의 아버지에게 배상금을 지불하거나, 아내로 삼아라, 라는 말씀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그럼 오늘날에는 이런 가부장적인 사회가 아니니까, 여성과 자녀가 남성의 소유가 아니니까, 오늘날에는 그럼 가족 친척간에 동침을 해도 되는 걸까요? 가장의 권한 때문에 동침을 막은 거면, 그런 가장의 개념이 희미해진 오늘날에는 근친상간이라고 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겁니까? 그냥 결혼하지 않아도 막 성적인 관계를 맺고 다니면 되는 건가요?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이에 대해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다,” 좀더 원문의 해석을 따르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이미 마음에 “그 여인”과 간음한 것이다”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전의 근친간의 동침은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의 권한을 침범하면 안되기 때문에, 아버지, 남편, 아들의 권한을 침범하면 안되기 때문에 그런 것을 금지했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그 여인과 간음한 자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무슨 뜻입니까. 레위기 시점에서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남성의 권한을 해치치 말라, 라고 하는 것이었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꼭 남자에게 죄짓기 때문만이 아니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면, 그 여자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가족간에 부적절한 관계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가정에 음욕을 품는 것, 또한 꼭 음욕뿐만 아니라 분노, 시기, 질투, 미움, 갈등의 마음을 품는 것 모두가 가정의 불화를 일으키는 겁니다.
피차 사랑하라
피차 사랑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골로새서 3장에서 사도 바울은 아내는 남편에게, 남편은 아내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부모가 자녀에게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가족은 서로가 피차 복종하여 예수님께 하듯이 사랑하고 화목한 가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입니다. 꼭 음욕일 필요도 없이,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이제 곧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다가옵니다. 가까운 가족부터 먼 친척까지 한 자리에 모여서 가족간의 사랑과 정을 나누는 시간인데요, 괜히 정치 얘기 꺼냈다가 서로 싸우지들 마시고, 며느리 왔다고 음식 만들기부터 시킬 생각부터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찾아오셨구나 하는 마음으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는 믿음의 가정을 세우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자녀 번제, 동성 관계, 수간
자녀 번제, 동성 관계, 수간
본문말씀 21절부터 23절 까지는 또 다른 부적절한 행위를 말씀하시는데요. 21절에는 자녀를 몰렉에게, 이방 신에게 희생제물로 바쳐서는 안된다 라는 말씀이 등장하고, 22절과 23절은 동성관계, 남자와 남자 끼리의 동침을 하지 말아라, 짐승과 동침하지 말아라 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 세 구절은 하나님께서 이방 민족의 풍습을 보고 따라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저희가 수요예배 때 한창 앗수르 제국에 대한 말씀을 전할 때도 앗수르 제국에서 이렇게 자녀를 희생제물로 드리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주 가증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했었죠. 그와 마찬가지로 동성관계와 짐승과의 성관계의 경우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대 시대의 근동에서 이방 신들을 섬기던 사람들의 마술적인 의식이나 예배 의식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24-25절 말씀에 이방 민족들이 이런 풍습으로 말미암아서 그 땅이 더러워졌다, 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방 민족, 즉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은 이런 자녀를 번제로 드리거나 동성, 짐슴과의 성적인 관계를 포함한 이런 행위들을 땅을 풍요롭게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그건 가증한 것이고 도리어 그 땅을 더럽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25절 말씀에 그 땅도 그 가나안 백성들을 토해내버리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26절부터 하나님께서 그 땅 주민들의 풍습을 따라하지 마라, 이 가증한 일들을 행하면 백성중에서 끊어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땅을 거룩하게
땅을 거룩하게
저희가 레위기에서 주로 많이 등장하는 것이 정결함과 부정함, 거룩함과 더러움에 대해서 많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땅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이야기하십니다. 백성들이 죄를 짓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만 더럽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사는 땅을 더럽히는 것이고, 끝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네 신을 벗어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은 그 땅 전체가 거룩한 곳입니다. 함부로 더럽힐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과 함께 그 땅이 함께 거룩해질 때만이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 있는 장소가 된다는 것이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
만안교회가 세워진 이 만안의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역대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악한 길에서 떠나고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것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만안 땅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찾는 믿음의 역사가 일어나서 이 만안 땅이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땅으로 고쳐지는 역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방 땅의 가증한 문화를 따랐던 가나안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거룩한 백성들이 이 땅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 앞에 거룩한 백성들로서 많은 이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과거와 미래
과거와 미래
본문말씀 3절 말씀을 보시면 “이집트 땅의 풍속”과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를 따르지 말라, 그러니까 너희가 앞서서 있었던 곳과 앞으로 갈 곳의 풍속을 모두 따르지 말라는 말씀을 전하고 계시죠.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4-5절 말씀에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서 행하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이 사실 오늘 본문말씀의 가장 핵심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로부터 해방되어서 가나안땅으로 가고 있는 “도중”에 있습니다. 과거인 이집트로부터 미래인 가나안 땅에 이르기까지, 지금은 광야라고 하는 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는 것이죠.
그중에 많은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특히 민수기에서는 백성들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는 중에 죄를 범하고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고 하는 과정들을 겪으면서 한 세대가 완전히 바뀌고서야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죄의 과거와 미래의 천국 사이
죄의 과거와 미래의 천국 사이
저희들의 삶이 바로 지금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시점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모르고 죄인으로서만 살아왔던 과거, 마치 이집트의 종되었던 백성들처럼 죄의 종되었던 과거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 새 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토록 지내게될 미래 사이에서 저희는 광야에서 큰 우여곡절을 겪은 백성들과 같이 삶의 많은 사건들에 놓여지면서 인생 여정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
이 과거와 미래 사이에 저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5절 말슴처럼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지켜서 그것을 행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우리를 죄로 물든 과거에서 구원하시고, 미래의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람,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시는 와중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를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며 살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소망합니다.
기도
기도
피차 복종하고 사랑함으로 화목한 가정을 세우기
거룩한 백성을 통해 만안 땅을 거룩하게
과거와 미래 사이 하나님의 법도와 규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