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해가 떠오를 때 2025 0930 말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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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60장 행군 나팔 소리에 / 354장 주 앙모하는 자
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에 정의와 치유, 그리고 자유의 기쁨을 가져오시는 유일한 소망입니다.
서론: 긴 밤의 끝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서론: 긴 밤의 끝에서 새벽을 기다리며
(차분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시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길고 어두운 밤을 뜬눈으로 지새워 본 적이 있으십니까? 해결되지 않는 문제, 육신의 질병, 관계의 아픔으로 잠 못 이룰 때, 밤은 유난히 길게 느껴집니다. 창밖은 여전히 칠흑 같고, 과연 아침이 오기는 할까 하는 절망감이 엄습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세상의 불의는 끝이 없는 것 같고, 내 삶의 어둠은 걷히지 않을 것 같아 영적인 무기력에 빠집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 말라기 시대의 백성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70년간의 포로 생활에서 돌아왔지만, 약속된 영광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전한 가난과 억압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냉소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이렇게 항변했습니다. "정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말 2:17),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입니다"(말 3:14).
바로 이 칠흑 같은 불평과 불신의 어둠을 향해,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마지막 말씀을 통해 장엄한 새벽의 도래를 선포하십니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며, 그날에는 모든 것이 역전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마지막 날에 일어날 극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똑같은 '해'가 떠오르지만, 어떤 이에게는 모든 것을 태우는 심판의 불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생명을 살리는 빛이 됩니다. 오늘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떠오를 이 신비하고 아름다운 '의로운 해'가 과연 무엇이며, 그 해가 떠오를 때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지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해는 정의의 빛을 비추고, 치유의 온기를 품고 있으며, 자유의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본론: 의로운 해가 가져오는 세 가지 선물
본론: 의로운 해가 가져오는 세 가지 선물
1. 첫 번째 선물: 정의의 빛이 어둠을 이긴다 (1절, 3절)
1. 첫 번째 선물: 정의의 빛이 어둠을 이긴다 (1절, 3절)
하나님의 날은 먼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정의의 빛'으로 임합니다. 1절과 2절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교만하고 악한 자들은 용광로 불 속 '지푸라기'처럼 뿌리와 가지도 남지 않고 완전히 불타버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최종적인 공의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그날은 심판의 불이 아닌 '의로운 해'(שֶׁמֶשׁ צְדָקָה, 쉐메쉬 츠다카)가 떠오르는 날입니다. 여기서 '의로움'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츠다카'(צְדָקָה)**는 '정의', '공의', '올바름', '무죄 선언'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이 해는 단순히 어둠을 밝히는 빛이 아니라,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정의의 빛'**입니다. 이 빛은 세상의 모든 불의와 거짓을 폭로하고, 어둠 속에서 신음하며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쳤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네가 옳았다"고 선언해주는 '변호의 빛'입니다.
구약의 마지막에서 떠오른 이 '의로운 해'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바로 신약의 새벽을 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요 8:12)이라 칭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 삶으로 보여주셨고, 십자가에서 모든 불의의 값을 치르셨으며, 마지막 날에는 만물을 심판하시는 정의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세상의 불의를 보며 낙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아 답답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의로운 해는 반드시 떠오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마지막 날 당신의 완전한 정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의와 타협하지 말고, 오늘 여기서 작은 정의를 실천하는 빛의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2. 두 번째 선물: 치유의 온기가 상처를 감싼다 (2a절)
2. 두 번째 선물: 치유의 온기가 상처를 감싼다 (2a절)
이 의로운 해는 차가운 정의의 빛만 비추는 것이 아니라,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습니다.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우리가 '광선'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카나프'(כָּנָף)의 원래 뜻은 '날개'(wing)입니다. 우 마르페 크나페이하. 따라서 이 구절을 직역하면 "그의 날개들 안에 치유가 있으리라"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미지입니까? 햇살이 마치 거대한 날개처럼 뻗어 나가는 모습과 동시에, 어미 새가 연약한 새끼를 자신의 날개 아래 품어 보호하고 체온으로 감싸주는 친밀하고 인격적인 치유의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시편 기자가 노래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그런데 이 '카나프'라는 단어에는 놀랍고도 구체적인 두 번째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바로 '옷의 모퉁이, 옷자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민수기 1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겉옷 '카나프'(옷 모퉁이)에 '치치트'(옷술)를 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 옷술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고 순종하게 하기 위한 시각적인 상징이었습니다.
이제 이 배경을 가지고 신약의 한 여인을 만나보겠습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던 여인입니다. 그는 가진 재산을 모두 탕진했고, 율법적으로는 부정한 자로 낙인찍혀 사람들로부터 격리된 채 살아야 했습니다. 그의 삶은 칠흑 같은 밤이었습니다.
그때, 그 여인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습니다. 그리고 절박한 믿음 하나를 품습니다.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수많은 무리를 뚫고 나아가, 그녀는 마침내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성경 원문을 보면, 그녀가 만진 '옷자락'을 가리키는 헬라어 단어는 '크라스페돈'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크라스페돈'은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치치트', 즉 '옷술'을 번역할 때 사용한 바로 그 단어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녀가 만진 것은 단순한 옷자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대한 순종의 상징이자, 말라기가 예언했던 바로 그 '치유의 날개', '치유의 카나프'였습니다! 그녀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완벽하게 순종하신 '의로운 해'이신 예수님의 그 순종의 상징을 붙잡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접촉점에서, 예언되었던 치유의 능력이 흘러나와 12년의 고통을 단번에 멈추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위대한 치료자이십니다. 그분은 육신의 질병뿐 아니라, 죄로 인해 깨어지고 상처 입은 우리의 내면을 치유하십니다. 삶의 문제로 지쳐있습니까? 마음의 깊은 상처로 신음하고 있습니까? 오늘 의로운 해이신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혈루증 앓던 여인의 믿음으로 그분의 날개, 그분의 옷자락을 붙잡으십시오. 주님의 따뜻한 임재가 당신의 모든 아픔을 감싸고, 깨어진 삶을 회복시키는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세 번째 선물: 자유의 기쁨이 우리를 뛰게 한다 (2b절)
3. 세 번째 선물: 자유의 기쁨이 우리를 뛰게 한다 (2b절)
이 정의의 빛과 치유의 온기를 경험한 결과는 무엇입니까? 조용한 감사를 넘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의 폭발입니다.
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이보다 더 생생한 기쁨의 묘사가 있을까요? 겨우내 좁고 어두운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송아지를 상상해 보십시오. 봄이 되어 주인이 문을 열어주자, 따스한 햇살과 푸른 초원을 마주한 송아지는 펄쩍펄쩍 뛰고 꼬리를 치며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합니다.
이것은 죄와 절망, 율법과 두려움이라는 '어두운 외양간'에 갇혀 있던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해방되었을 때 누리게 되는 **'자유의 기쁨'**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2, 36).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혹시 당신의 신앙생활이 좁은 외양간처럼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지십니까? 의무감과 죄책감에 갇혀 있습니까? 오늘 의로운 해이신 주님께서 당신을 향해 문을 여십니다. 그분의 정의의 빛 안에서 안전함을 누리고, 그분의 치유의 온기 속에서 회복을 경험하며,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마음껏 뛰며 주님을 찬양하는 자유의 기쁨을 회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의로운 해를 맞이하는 삶
결론: 의로운 해를 맞이하는 삶
말씀을 맺겠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페이지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냉소와 어둠의 긴 밤이 지나면, 마침내 '의로운 해'가 떠오를 것이라는 영광스러운 약속으로 마무리됩니다. 그 해는 불의를 심판하는 정의의 빛을 비추고, 상처를 싸매는 치유의 날개를 펼치며, 우리를 춤추게 하는 자유의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그 '의로운 해'는 이미 이 땅에 떠올랐습니다. 그분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초림은 새벽의 여명이었고, 그분의 재림은 모든 어둠을 삼키는 한낮의 영광이 될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삶이 여전히 칠흑 같은 밤처럼 느껴지십니까? 그렇다면 얼굴을 들어 동쪽을 바라보십시오. 의로운 해이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의 빛이 당신의 어둠을 몰아내고, 그분의 온기가 당신의 상처를 치유하며, 그분의 자유가 당신의 영혼을 춤추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그 빛을 경험한 우리는,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세상을 향해 그 빛을 반사하는 작은 거울로 살아가야 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어둡고 긴 밤과 같은 저희 인생에 '의로운 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정의의 빛으로 세상과 타협하지 않을 용기를 주시고, 주님의 치유의 날개 아래 모든 상처와 아픔이 회복되는 은혜를 주시며,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주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기쁨을 누리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