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노하시는 복이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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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사도신경
찬송
찬송
425장 /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기도
기도
성경봉독
성경봉독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4 뭇 백성의 눈이 이 일을 좋게 여기므로 온 회중이 그대로 행하겠다 한지라
5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7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웃사와 아히오는 수레를 몰며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11 여호와께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12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이르되 내가 어떻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하고
13 다윗이 궤를 옮겨 자기가 있는 다윗 성으로 메어들이지 못하고 그 대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가니라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서론
서론
13장
언약궤, 증거궤라고도 불리는
하나님의 궤를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두 번에 걸쳐 나온다.
13장에서는 안타깝게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
15장에 가서야 한번 더 시도하여 예루살렘으로 옮기게 됨
어제 말씀을 나눈 것처럼
역대기서는 한마디로 성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스라엘 민족과 이스라엘 왕국의 정체성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성전’에 있음을 보여주고
그 ‘성전’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과거를 되돌아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미래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바로 역대기서이다.
이제 13장부터 성전에 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거룩한 전, 거룩한 집이라 불리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 때문이다.
성전이 성전인 이유는
그 건물이 화려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곳에서 제사와 예배가 있기 때문도 아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만약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성전이 아니다.
이러한 성전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의 궤, 즉 언야궤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바로 이 하나님의 궤가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자
하나님 임재의 약속이 주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본론
본론
역대기서는 하나님의 궤가 무엇인지 그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그것이 어떤 용도와 의미를 가지는지
어떻게 기럇여아림에 있는지
이러한 설명을 건너 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 하나님의 궤에 대해 6절에서 단 한 줄 설명하고 있다
6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바알라 곧 유다에 속한 기럇여아림에 올라가서 여호와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시므로 그러한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았더라
여호와께서 두 그룹 사이에 계신다.
두 그룹 사이에 임재하신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의 궤라고 부른다.
이것이 하나님의 궤에 대한 설명의 전부이다.
역대기서를 기록한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모세오경부터 사무엘서, 열왕기서까지의 구약 성경의 이야기를
이미 다 잘 알고 있다고 여기고 있음
우리도 잘 알고 있음
간략하게 설명을 해 보자.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시내 광야 시내산에서 만나신다.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마땅히 지켜 행할 계명을 주신다.
십계명과 율법을 하나님이 친히 두 돌판에 적어 모세에게 주신다.
그 돌판을 가리켜 증거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증거판을 보관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상자를 만들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궤, 증거궤, 언약궤라 부름
또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성막을 만들게 하신다.
그 성막의 중심에 성소와 지성소
성소 = 거룩한 장소
지성소 = 지극히 거룩한 장소
이 지성소 안에 바로 이 하나님의 궤를 두라고 하심
왜 이 언약궤가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언약궤를 만들게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다.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증거궤, 즉 언약궤 위의 덮개를 가리켜 특별히 속죄소라고 부른다.
그 덮개에는 그룹이라 불리는 날개가 있는 일종의 천사 형상을 양 쪽에 두고
서로 마주보게 해 놓았다.
그 두 그룹 사이, 증거궤 위, 속죄소에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시겠다 약속하심
그래서 이 언약궤가 성막과 성전의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언약궤가 왜 다윗의 시대에 기럇여아림에 있는가?
그 이유는 사무엘서에 잘 나와 있다.
광야 시대가 끝나고 성막은 가나안 땅 실로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전쟁 때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에 대한 욕심으로
언약궤를 전쟁터로 갖고 나온다.
언약궤가 있으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전쟁에서 패하고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 이후 언약궤는 아스돗을 비롯한 블레셋 땅에 머물다
언약궤를 통해 일어나는 역사와 재앙을 감당하지 못한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다시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려 보내고
벧세메스를 거쳐 기럇여아림까지 오게 된 것이다.
언약궤
다윗의 선대 왕이었던 사울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다윗은 이 언약궤에 대한 마음을 계속 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왕이 되고 이스라엘이 정치적 군사적으로 안정을 이루게 되자
이 언약궤 옮기는 일을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다윗은 이 일을 자기 혼자만의 관심사로 여기지 않았다.
왕실의 일로만 여긴 것도 아니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해야 할 국가적인 일이라 여겼다.
그래서 1-3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1 다윗이 천부장과 백부장 곧 모든 지휘관과 더불어 의논하고
2 다윗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좋게 여기고 또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면 우리가 이스라엘 온 땅에 남아 있는 우리 형제와 또 초원이 딸린 성읍에 사는 제사장과 레위 사람에게 전령을 보내 그들을 우리에게로 모이게 하고
3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매
다윗은 언약궤 옮기는 일에 대해
이스라엘의 모든 지휘관들과 의논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말해 동참을 호소한다.
이에 온 백성이 이 일에 동참한다.
5절은 이렇게 말한다.
5 이에 다윗이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온 이스라엘을 불러모으고 기럇여아림에서부터 하나님의 궤를 메어오고자 할새
여기서 ‘애굽의 시홀 시내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라는 표현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남쪽 한라산부터 북쪽 백두산까지’라는 뜻이다.
이스라엘 온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일에 함께 하였다는 뜻이다.
정말 국가적인 행사가 된 것이다.
분명 다윗은 자신의 모든 정성과 힘을 쏟아 부었을 것이다.
8절은 무엇이라 말씀하는가?
8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하니라
‘힘을 다하였다’고 말한다.
다윗을 비롯한 이스라엘 온 무리가
힘을 다하여 춤을 추며
모든 악기를 총동원해서 기쁨을 표현했다.
정말 엄청난 축제의 자리이고 기쁨의 자리이다.
그런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고 만다.
사람이 죽고 만 것이다.
기쁨의 축제가 갑자기 비극의 무대가 되고 만다.
9-10절이다.
9 기돈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더니
10 웃사가 손을 펴서 궤를 붙듦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치시매 그가 거기 하나님 앞에서 죽으니라
언약궤를 옮기기 위해 수레를 사용했다.
이 행사를 위해 특별히 새로 제작한 수레이다.
그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소들이 그 수레를 끌고 간 것이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 소들이 갑자기 난폭하게 움직이는 바람에
수레에 실린 언약궤가 바닥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곁에 있던 웃사라는 사람이 손으로 그것을 막았다.
그런데 그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만 것이다.
분명 웃사는 잘못한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그를 치셨다.
11절은 이렇게 말한다.
11 여호와께서 웃사의 몸을 찢으셨으므로 다윗이 노하여 그 곳을 베레스 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
다윗은 노했다.
분노했다는 말이다.
다윗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언약궤를 자신이 있는 곳으로 가져오는 것을 포기하고 만다.
그래서 그 근처에 있는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다 그 언약궤를 두게 된다.
그런데 13장의 이야기는 묘한 여운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14절이다.
14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의 가족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여호와께서 복을 내리셨더라
무슨 뜻인가?
웃사가 죽은 일만 놓고 보면
언약궤는 재앙처럼 느껴진다.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언약궤는 복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은 복이다.
결론
결론
역대상 13 장의 이야기는 실패에 대한 기록이다.
어찌보면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이다.
앞으로 나오지만 다윗은 15장에서 언약궤를 성공적으로 예루살렘으로 옮긴다.
그 이야기만 다루어도 될텐데
역대기 기자는 왜 이 사건은 굳이 다시 기록하였을까?
그것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는 분이 아니시다.
그 반대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과 우상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44장에서
우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9 우상을 만드는 자는 다 허망하도다 그들이 원하는 것들은 무익한 것이거늘 그것들의 증인들은 보지도 못하며 알지도 못하니 그러므로 수치를 당하리라
10 신상을 만들며 무익한 우상을 부어 만든 자가 누구냐
12 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13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14 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15 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 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우상이 무엇인가?
사람이 자신의 뜻과 바램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 낸 허상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켜 주는 대상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시다.
여호와 하나님은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창조의 목적을 따라 행해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싶어 했다.
어찌보면 그 마음은 참 귀하다.
하지만 다윗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한 것이다.
나중에 15장에 나오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궤는 그렇게 다루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정한 방식이 있다.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 따라
하나님이 거룩히 구별한 레위인들이 옮겨야 한다.
다윗은 그 사실을 간과했다.
역대기 기자는 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바로 자신들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은 복이시다.
하지만 하나님은 경외받으실 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