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대의 사람인가?

누가복음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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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설교>
누가복음 7:29-35
“내가 이 세대의 사람인가?”
2025. 10. 1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내가 이 세대의 사람인가?”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과 자기 자신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비유로 설명하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말씀하시는 내용의 단락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이제 막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신 현장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세례 요한의 제자 두 사람이 와서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는 그 사람이 맞느냐는 질문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병자들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후에 너희가 방금 본 일들을 그대로 요한에게 가서 알리라고 하셨어요.
    그들이 떠난 후에는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대한 평가를 하셨습니다. “요한은 너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대단한 사람이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 이렇게 요한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뭐라고 하셨냐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요한보다 크다고 하셨어요. 요한처럼 대단한 사람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보다 작다는 겁니다. 
    이 말은 곧,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 사람보다 작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땅에는 요한보다 큰 자가 없으니까. 우리는 요한보다 못한데, 요한도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자보다 못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해야겠죠. 하나님의 나라에만 들어가면 우리가 요한보다 뛰어난 자가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첫걸음, 그것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 자, 오늘 본문 29절을 봐 볼까요? 29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바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아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를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그것을 요한의 세례라는 말로 표현을 했어요. 요한의 세례를 받는 것이 곧 회개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의 세례가 회개의 세례이기 때문에 그래요. 누가복음 3장 3절 봐 볼가요? 누가복음 3장 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아멘.
    요한의 세례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롑니다. 그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회개를 하게 돼요. 그런데 세례만 받는다고 회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실제적인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돼요. 
    요한이 세례를 베풀면서 백성들에게 회개의 열매를 맺도록 강조했습니다. 옷이 두 벌 있는 자는 옷이 없는 자에게 나눠주고, 먹을 것도 그렇게 나눠주라고 했죠. 또 세리들에게는 세금이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에게는 남에게서 강탈하지 말고 거짓으로 고발하지도 말고, 받는 급료에 만족하라 했어요. 세례만 받아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세례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삶 가운데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주님을 영접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주님을 영접해야 천국에 가니까. 
    요한의 사역은 결국에 주님을 맞이할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어요. 그가 세례를 베풀고 백성들을 가르친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운동을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준비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요. 오늘 본문 30절을 보면,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하지 않았죠. 자, 오늘 본문 30절을 같이 읽겠습니다. 30절 시작,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아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를 받지 않은 것이 단순히 세례를 받지 않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것은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었습니다. 
    금방도 말씀을 드렸지만,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세례만 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리라는 결단을 통해서 실제로 거룩한 삶을 살아내는 모든 과정이 포함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반대로 말하면, 이러한 세례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곧 어떠한 삶의 열매도 맺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당연히 주님을 영접할 준비도 되지 않겠죠. 
    아까 본문 29절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의롭다 하였다고 그랬어요. 하나님을 의롭다 하다.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겁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누굽니까? 병고침의 현장에서 병고침을 받은 사람들이고, 귀신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이고, 죄인들이고 세리들이에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았고, 여기까지 예수님을 따라 온 겁니다. 
    그들은 지금 이 현장에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인정했어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세례를 준 요한이 지극히 큰 자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리고 그 세례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어가다 보면, 장차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반면에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세례를 거부했어요. 이것은 단순히 세례만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말해요. 요한의 세례를 받고 회개하여 주님을 영접해야 하는데, 애초에 세례부터 거부했어요. 주님이 들어오실 대문을 닫아버린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스스로 저버리게 된 꼴이 됐어요.
    예수님의 입장에서는 이게 너무 안타까워요.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는데, 처음부터 예수님을 거부하는 자들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비유로 해서 그들의 잘못을 책망하십니다. 
    오늘 본문 31절 32절을 봐 볼까요? 31절 32절 다같이 읽습니다. 시작,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아멘.
    예수께서 이 세대의 사람을 장터에 앉아 있는 아이들에 비유하시는데요. 이 세대의 사람,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죠. 뿐만 아니라 요한의 세례를 거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 사람들이 마치 장터에 있는 아이들과 같다는 거예요.
    자, 이 아이들이 서로 이런 말을 해요. ‘야, 우리가 피리를 부는데 왜 너희들 춤을 안 춰? 그리고 우리가 곡을 하는데 왜 너희는 안 울어?’ 이런 말을 한다는 거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사람들이 마땅히 반응해야 할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요한이 세례를 베풀면 당연히 세례를 받아야 되는데, 안 받아야요. 마땅히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안 맺는단 말이죠. 메시야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데, 안 해요. 대문을 닫아걸고, 밖에서 아무리 불러도 반응을 하지 않는 겁니다. 
    부르면 반응을 해야지, 무슨 잡상인이 와서 부르는 것도 아니고. 반응을 해야죠. 피리를 불어도 춤을 안 추고, 곡을 해도 울지 않고. 정상적이지가 않죠. 누가 봐도 반응하지 않는 이 사람들이 잘못이에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반응하지 않는 이 세대의 사람들이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나온다는 겁니다. 자, 오늘 본문 33절 34절 봐 볼까요? 33절, 34절 다같이 일겠습니다. 시작,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아멘.
    이 세대의 사람들이 뭐라고 합니까? 세례 요한이 떡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는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것을 두고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을 해요. 그러면서 또 예수님이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두고 탐욕적인 사람이라고 비난을 합니다.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욕을 하고, 먹으면 먹는다고 욕을 하고. 어쩌라는 겁니까? 요한처럼 함께 금욕적인 생활에 동참을 하든지, 아니면 예수님처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든지 해야 되는데, 그것을 다 거부하고 무조건 욕을 해요. 금욕적인 생활도 싫고, 죄인들과 함께 먹는 것도 싫은 겁니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어요. 하나님의 의로우신 뜻을 저버리고, 자기들이 의롭다고 생각하는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의로움을 부르짖으면서 정작 의로운 삶을 살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잘 섬기지만, 이웃을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 책망하셨어요.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총 여섯 번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책망하셔요. 화면 한번 봐 볼까요? 13절부터 29절까지 여섯 번이나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시죠. 그리고 이 뒤에 33절에 가서는 더 심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니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사람을 뱀과 독사의 새끼에 비유를 해요. 너무나 심한 말씀인데, 그만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타락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척 외식을 하지만, 속에는 독을 품고 있어요. 그런데 자기들은 그것이 의로운 것인 줄로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타락한 세대를 책망하십니다. 말씀에 반응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가 옳고,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배척하는 세대. 
    그런데 이런 세대가 예수님 때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사실은 지금 이 세대도 똑같습니다. 2025년을 살아가는 이 세대도 똑같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어요. 세상 속에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 물질을 쫓고, 욕망을 쫓는 타락한 세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세상 사람들만 그런 게 아니에요.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도 그런 세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부르심에 반응하지 않는 세대가 교회 안에 있어요. 성령님은 날마다 우리를 불러서 선한 길로 인도하고 계신데, 거기에 반응하지 않고,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아가는 세대가 있습니다. 
    여러분, 세례만 받는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거듭났으면 거듭난 자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그냥 그대로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돼요. 우리 삶에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죠. 
    오늘 본문 밑에 36절부터 마지막 50절까지 단락을 보면, 향유 옥합을 깨트린 여인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어디에서 옥합을 깨트렸냐면,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깨트렸어요.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청했거든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집에 들어가서 앉으셨는데, 마침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찾아와서 옥합을 깨트렸어요. 그리고 울면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이죠.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 모습을 보면서 못마땅해 했어요. 여인이 죄인인데 자기를 만지는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는 예수님을 속으로 비난하고, 또 여인이 향유를 허비한 것도 속으로 비난했습니다. 모든 게 다 자기가 보기에 옳지가 않은 겁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수님을 내 마음에 초청하여 영접해놓고도, 너무나 냉정하게,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서, 살아가는 바리새인 크리스쳔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한 헌신을 보고도 거기에 동참하거나 긍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이상하게 여기고 거부합니다. ‘꼭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주일에 담임목사님 설교말씀처럼, ‘적당히 믿어야지, 자기가 믿는다는 걸 저렇게 티를 내야 되나?’ 이런 식으로 믿음의 형제들을 비난하는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내 의로움의 기준에 맞춰서 재단을 하고, 그 기준에 안 맞으면 무조건 잘못된 것으로 치부를 해요. 이게 바리새인이 아니면 뭐겠어요? 
    요한계시록 2장을 보면, 바리새인 같은 교회가 하나 나옵니다. 그 교회가 말씀을 지키고, 이단을 쫓아내는 데는 탁월했지만, 사랑이 부족한 교회였어요. 그 교회가 무슨 교횔까요? 에베소 교회죠. 요한계시록 2장 4절에, 주님이 에베소 교회를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4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아멘.
    에베소 교회가 말씀을 지키고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 노력한 것을 가상하지만, 그러다보니까 너무나 엄격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보듬기보다는 비판과 책망으로 훈계하고 지적질을 해요. ‘너 그래가지고 되겠어? 그렇게 하다가는 이단에 넘어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신앙생활 해.’ 이렇게 너무나 무섭게 성도들을 다그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조금만 풍랑이 불어도 흔들리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는 사랑이 있어야 됩니다. 엄격한 기준을 버리고, 사랑으로 감싸고 품어줘야 돼요. 우리 중에 죄인 아닌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다 죄인이에요. 내가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 할 때, 나도 누군가에게 손가락질을 당할 수 있습니다.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찾아내려 하지 말고, 먼저 내 눈 속의 들보를 보고, 나 자신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감히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가 없어요. 내 안에 사람을 죽이는 독니가 있음을 알면, 함부로 사람을 향해서 입을 열 수가 없죠. 입을 잘못 놀리다가 이빨에 스치기라도 하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요. 독사의 독은 사람의 육신을 죽이지만, 사람의 독은 사람의 영을 병들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사에 조심해야 됩니다. 말 조심, 행동 조심. 그러면서 우리는 오로지 말씀과 기도에 힘쓰면서 하나님의 뜻에 반응해야 돼요.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산 것처럼, 우리들도 회개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러면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말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의 주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서 산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당연히 내 삶의 가치관이나 인생의 기준이 모두 그리스도에 맞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5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마지막 말씀을 하셔요. 오늘 본문 35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아멘.
    여기서 지혜는 하나님의 인격적인 속성을 의미합니다. 지혜를 마치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인 것처럼 의인화를 한 거예요. 구약에서는 종종 지혜를 인격화합니다. 잠언 8장 12절을 보면, 지혜가 말을 해요. 잠언 8장 12절에 보니까,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이렇게 지혜가 말을 합니다. 
    이 지혜는 하나님의 속성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신약에 와서 그리스도와 연결됩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봐 볼까요? 고린도전서 1장 24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아멘.
    그러니까 하나님의 지혜는 곧 그리스도인 거예요. 그래서 이것을 염두에 두고 다시 오늘 본문 35절을 번역하면 이런 말이 됩니다. “그리스도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아멘.
    그리스도가 자기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그리스도의 모든 자녀는 누구일까요? 이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따라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자, 그런데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인들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는대요. 이 옳다 함을 얻는다는 말이, 아까 29절에 ‘하나님을 의롭다 하다’, 라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의롭다 하다, 옳다 함을 얻다. 둘 모두 헬라어로 “디카이오오” 라는 말이에요. 이 말은 ‘의롭다 함을 받다’ 라는 뜻인데요. 오늘 본문에서는 조금 다른 뜻으로 해석이 됩니다. ‘옳다고 입증되다’ 이렇게 해석을 해야 돼요. 
    그래서 정리하면, “그리스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인하여 옳다고 입증되느니라” 이렇게 35절이 번역이 되는 겁니다. 
    이 말을 조금 더 쉽게 하면, 이런 거예요.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변화와 회개의 열매로 인하여 옳다고 입증된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행한 모든 일들은, 만약에 한 사람도 회개하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겠죠. 3년 반 동안의 사역이 그냥 헛수고로 끝나는 거예요. 심지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도 헛된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라도 삶이 변화되고, 회개의 열매를 맺는 구원을 얻는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통하여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의미 있는 사역을 하였노라고 입증될 수 있도록, 변화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나를 통하여서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도록, 타락한 이 세대의 사람들이 나를 통해 주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여러분의 인생 가운데 회개의 열매를 맺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혹시라도 내가 이 세대의 사람이 아닌가’ 돌아보고, 말과 행동, 생각까지 조심하고 주의하여서, 사람에게 상처 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를 감싸며, 성령의 인도하심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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