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타성과 배타주의

성경과 오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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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인 사랑

제가 어느덧 만안교회에 온지 1년이 더 지났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저와 이주혜 전도사님이 결혼한지도 1년이 더 지났다는 말이겠죠. 특히 결혼 1주년때가 안양지방 부흥성회 첫날, 주일에 1주년을 맞아서 결혼기념일 챙길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났던게 기억이 납니다.
결혼하고 1년이 지나서 지난 생활을 죽 돌아보니까, 또 주변에 저희 동기들 중에 결혼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돌아보니까, 저희 부부만큼 알콩달콩 지내는 커플이 또 없더라구요. 저희는 집에서 막 애교도 많이 부리고 하는데 다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신기하게 저희는 한번도 막 언성높이면서 싸운 적도 없구요.
그래서 결혼 1주년이 된 지금 어떻게 그렇게 1년 동안 서로 잘 지낼 수 있었을까, 돌이켜보는데 아마 그 비결이 저한테 이주혜전도사님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보이기 때문인것 같아요. 정말로요. 얼굴만 봐도 기분이 막 좋아지고, 바라만 봐도 예쁘고, 제가 또 예쁘다고 말로 많이 표현하고, 하는 것이 결혼 생활 1년을 잘 보낼 수 있던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네, 여기 깨 쏟아지고 있으니까 얼른 받아가세요
이러한 사랑의 말들, “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너가 세상에서 제일 잘생겼다” “너를 세상에서 가장 많이 사랑한다”라고 하는 말은 흔히 연인이나 커플들에게 많이 하는 말입니다. 오히려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쁘다”라고 하면 이상하죠. 정말로 사랑하니까, 다른 누구보다도 정말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 “세상에서 제일~” 어떻다, 라는 말로 사람들은 사랑을 표현하곤 합니다.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가가지고 “예쁘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됩니까? 관계가 깨지게 되는겁니다.
이처럼 연인간의, 부부간의 사랑은 배타성을 띄고 있습니다. 배타, 남을 밀어내고 배척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사람 말고는 예쁜 사람이 없는 겁니다. 오히려 배타적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가서 예쁘다, 잘생겼다, 라고 하면 안되는겁니다.

배타적인 믿음

하나님을 향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너무 배타적이다, 배타주의다 라고 하면서 다른 종교나 사람들을 핍박한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모든 사랑이 배타적인 것처럼 저희의 믿음도,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배타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본문말씀 6절 말씀이 바로 저희의 그런 배타적인 믿음에 대해서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말씀이죠. 함께 읽어볼까요?
John 14:6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맞습니다. 예수님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 말고는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받고,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갈 길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곧 저희의 배타적인 믿음입니다.
다른 사람, 다른 신, 다른 우상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면, 그건 외도입니다. 길 바깥에 있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진리, 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연인들이 사귀고 있는데, 부부가 결혼한 상태인데, 다른 사람보고 “예쁘다”라고 말하면 안되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외에 저희가 길과 진리와 생명을 찾으면 안되는 겁니다.

배타주의?

그런데 여러분, 문제가 여기서 발생합니다. 사랑은 배타적이지만, 배타주의와는 다릅니다. 배타주의는 나와 다른 것을 아예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이를테면 이겁니다. 배타성은 “나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너가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이라면, 배타주의는 다른 커플들한테 가서 “야, 니 와이프는 왜 이렇게 못생겼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 가서, “어디 이런 우상숭배를 하고 있어! 다 때려부숴!”라고 하는 것은 믿음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니라, 배타주의자인겁니다.

예수님은 길이다

오늘 본문말씀은 배타주의가 아니라, 배타적인 믿음, 곧 예수님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믿음에 대한 말씀입니다. 함께 1절부터 살펴보면요.
John 14:1 NKRV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예수님께서 너희는, 복수형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통해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시는가 보니,
John 14:2–3 NKRV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집에 제자들을 위해서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합니다. ‘가서’ 제자들이 있을 장소를 마련하러 가신다는 뜻이죠. 가서 거처를 예비하면 어떻게 하십니까?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영접, 곧 맞이하러 오셔서, 예수님께서 계신 아버지의 집에 제자들도 함께 있게 하겠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4절에
John 14:4 NKRV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제자들이 알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의 본문말씀을 보면 어떻습니까? 사실 성경 전체를 읽어본 저희들에게는 굉장히 이해하기 쉬운 이미지로 다가옵니다. 아주 명백하죠.
사실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에게 떡 한 조각을 주시면서 “네가 할 일을 해라”라고 말씀하시고, 가룟 유다가 떠난 다음에 제자들에게 하고 계신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과 만찬을 가지시고 발을 씻으시고 했던, 바로 그 장면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신다’라고 하는 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다는 말씀이고, ‘다시 오신다’라고 하는건 새 하늘과 새 땅, 모두가 부활하는 그날에 다시 오시는 것임을 나타내는 말씀이라고 저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의 제자들이 과연 이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예수님께서 이 계획을 말씀해주시긴 했습니다.
Matthew 16:21 NKRV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Matthew 16:27 NKRV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에 이런 말씀을 하셔서 베드로가 안됩니다, 죽으시면 안됩니다 라고 했다고 예수님께 혼나기도 했지요. 그래도 제자들은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확실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무슨 말슴하시는 거지? 싶었을 거예요.
John 14:5 NKRV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그때 도마가 묻습니다. “아니 예수님. 주님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저희가 도대체 알지 못하는데, 그 길을 저희가 어찌압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슴이 바로,
John 14:6–7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내가 곧 길이다”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길이죠? 아버지께로 향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 진리, 생명”이라고 말슴하신 건, 아버지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 예수님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나를 알았으면 내 아버지도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적어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압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수많은 표적들, 사람들을 살리시고, 죄를 용서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마음이 없이 율법만 지키는 자들을 꾸짖으시고, 귀신을 내쫓으시고 하는 그 모든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본 제자들이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바로 그런 일들, 사람을 살리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하시고 꾸짖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제자들을 알아야만 했다는 겁니다.
John 14:8–9 NKRV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근데 빌립이 이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주님. 그럼 아버지를 저희에게 직접 보여주세요. 그럼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 대해서 “너가 이렇게나 나와 오랜 기간 함께 있었는데. 아직도 ‘나’를 모르느냐? 너는 ‘나’를 보았다. 이미 나를 봤으면 아버지를 봤는데, 왜 아버지를 보이라고 말하느냐?”라고 말슴하십니다.
John 14:10 NKRV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내안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배타성은 아는 사람들에게

흔히 이 말씀을 읽고서, “그렇지.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원이 되시지. 이 말 들었지? 예수님 안 믿으면 지옥가!”라고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적어도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 천국, 불신 지옥”에 대한 내용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에게 말씀하고 계신게 아닙니다. 이미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하셔야합니다.
예수님의 배타성,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보고, 알고, 믿는 사람들한테 적용되는 겁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면서 예수님이 아닌 길을 찾고, 예수님이 아닌 진리를 따르고, 예수님이 아닌 것에서 생명을 찾으면 안된다는거예요.
John 14:11–12 NKRV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일, 가난한 이들을 먹이고, 죄인을 용서하며,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는 그 일을 보고 나를 믿으라. 그리고 나를 믿었으면, 내가 하는 일을 행하라,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길을 찾고, 다른 진리를 찾고, 다른 곳에서 생명을 찾으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하신일들을 따라서, 예수님을 우리의 삶의 이정표, 길로 삼고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예수님을 믿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은 다른 사람들을 밀어내는 배타주의가 아니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께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너 그렇게 살면 안돼. 너 예수님 안 믿어? 너 그럼 죽어”라고 협박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 당신만이 나의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십니다. 나도 예수님처럼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입니다. 내가 걷는 이 길 밖에 있는 사람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걷는 이 길이, 주님 걸어가신 길이 되기를 바라며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입니다.
오늘 함께 삶을 살아나가는 여러분과 저의 길이, 바로 예수님께서 걸으신 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다원주의가 아닌 배타성

여기까지 들으면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아니 그럼, 예수님이 온 우주의 유일한 길이 아니라, 우리의 유일한 길이라고 고백하는 거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다른 길도 있다는 뜻인가? 종교다원주의를 이야기하는 건가?”라고 오해하실 수도 있어요. “예수님을 연인과 부부로 비유했으면, 다른 커플들은 어떻게 되는건가?”하고 말이죠.
다시 연인과 부부로 이야기를 해보자면요,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내, 내 남편, 저 사람은 저 사람의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겠지, 라는 모습으로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는게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보는 세상은 각자가 다른 사랑, 다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세상이 아니라,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아버지를 향한 가장 선한 길, 진리의 길, 생명의 길이신 예수님을 “우리”는 아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거예요.
제가 장애인복지관에서 공익으로 대체복무를 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제 선임이 되는 공익 형이 굉장히 잘생기고 인기도 많은, 소위 젊은 사람들이 말하는 인싸라고 하는 사람이었어요. 저는 깜짝놀란게 세상에 여자친구가 2달에 한번씩 바뀌는 사람을 그때 처음봤어요. 제가 어느날 한번 물었는데, “아니 형, 왜이렇게 연애를 짧게짧게 해요?”라고 하니까 그 선임 형이 슬픈 이별노래를 딱 틀더니 “상우야, 나는 오늘 이 좋은 이별 노래를 듣기 위해서 연애를 하는거야”라고 무슨 우수에 젖은 드라마 주인공 마냥 그러고 있더라구요.
저도 어렸을 때니까, 그 때는 막 잘생기고 인기도 많아서 여자친구도 많이 생기고 하는 그 형이 참 부러웠어요. 그런데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나니까, 신기하게 그런 삶이 하나도 부럽지가 않습니다. 연애는 아는데, 사랑은 모르는 구나, 싶은 거예요. 오히려 저나 이주혜 전도사님이나 아직 제 주변에 결혼이나 연애를 안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얼마나 “사랑하는 삶”이 좋은 삶인지 막 전도를 하고 있더라구요.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한테 “너 왜 그런식으로 살아?”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나는 이 사랑하는 삶이 너무 좋다, 너도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방식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Acts 17:22–23 NKRV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아덴 사람들! 제가 당신들을 보니, 참 범사에 신앙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섬기는 것을 보니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제가 보았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말씀드리는 것은 바로 그 알지도 못하면서 예배하는 그 신에 대해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버지로 향하는 길, 하나님을 향하는 길로 가려고는 하는데, 알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이라는 확실한 길을 알려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Acts 17:27 NKRV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아 발견할 수도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을 몰라도 조금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몰라도 길을 몰라도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마따나 아버지를 아는 길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저희가 예언자들 시리즈로 살펴봤을 때, 살펴본 이사야, 예레미야, 호세아, 에스겔 등등 예언자들도 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어요. 다만 아버지로 향하는 길은 희미하게나마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Isaiah 53:5 NKRV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도 보세요, 누군지는 몰라도, 정확히 어느 시대에 어떤 이름으로 태어날 누구인지는 몰라도 우리의 허물과 죄악때문에 찔리고 상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평화를 누리게하고, 나음을 받게하시는 ‘누군가,’ 예수님인건 모르는데, 희미한 아버지로 향하는 길은 알 수도 있습니다.
Acts 14:16–17 NKRV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민족으로 자기들의 길들을 가게 방임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언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여러분에게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만족하게 하셨느니라 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이전에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안주신 것이 아닙니다. 비를 내리시고 농사를 지으면 결실이 나는 선한 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선한 마음과 행실로 나아갈 길을 주셨다는 겁니다.
John 1:9–10 NKRV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런데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알려주셔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겁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세상을 “빛이 있으라”라고 하시는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여전히 세상에 어둠이 많이 있지만, 꼭 예수님이 아니더라도 빛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할 거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쫓아가기 바빴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11-12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John 1:11–12 NKRV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사람들이 더듬더듬 찾아서야 아버지로 향할 수 있던 시대는 갔고, 빛을 간신히 찾아야 했던 시대는 갔고, 그 아버지, 그 빛,
John 14:6 NKRV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 길과 진리와 생명이 직접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은 다른 길을 완전히 다 부정하는 배타주의가 아닙니다. 대신에 다른 종교도 다 좋은 길이다, 다른 종교도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라고 하는 다원주의도 아닙니다.
가장 좋은 길, 다른 길로는 떠듬떠듬 가거나 이리저리 헤매야 간신히 도착할 수 있지만, 가장 진리의 길이고, 생명의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초청하는 것입니다. 서울을 가야하는데, 부산 가는 지도보고 있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도를 보여주는 것, 바로 이 올바른 지도이자 아버지로 향하는 올바른 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드리는 여러분과 제가, 바로 이 가장 좋은 길을 세상 가운데 전하며,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길로 사람들을 초청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포용성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은 어둠 속에서 비록 혼자일 지라도 빛을 발하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John 14:12 NKRV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로 향하는 가장 올바르고 선한 길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바로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을 걸으므로, 예수님으로 향하는 길이 되어야만 합니다.
Matthew 5:46–48 NKRV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예수님께서도 남들 다하는 것을 하면 무엇이 더 낫겠느냐? 자기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잘 대해주면, 세상의 어둠과 똑같이 어둡기만 하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온전하심과 같이, 먼저는 예수님께서 온전하셨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저희 또한 세상 속에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야합니다. 세상이 따르는 것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만을 따라가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세상이 따르는 것을 따르지 않겠다고, 깊숙한 동굴에 들어가서 틀어박혀 있는 것은 배타주의입니다. 내가 거룩해지려면 더러운 세상과 마주치면 안돼, 하고 숨어버리는건 거룩도 아니고 사랑도 아닙니다. 세상 삶은 다 싫어!라고 하는 건 배타주의입니다.
마태복음 5:16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Matthew 5:16 NKRV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은 꽁꽁 숨어버리는 배타주의가 아니라, 어둠같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홀로 비추는, 여전히 거룩하지만 사랑으로 사람들에게 나아가는 배타성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길이 되신다면, 저희는 사람들이 예수님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길입니다.
그렇게 어두운 방안을 홀로 환하게 비추는 촛불처럼,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십자가와 부활의 길을 함께 걸으며, 어둠에 삼켜지지 않는 배타성을 가지고, 저희의 믿음의 역사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결론

오늘 저희가 기억해야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은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고백하는 배타성입니다. 그렇지 못한 이들을 욕하는 배타주의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예수님께 촛점을 맞추도록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은 다른 길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장 좋은 길이 되심을 믿는 배타성입니다. 지도가 없어도 어떻게든 길을 갈 수는 있겠지만 가장 좋은 지도가 있을 때 헤메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갈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선한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세상에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의 배타성은 어둔 세상 속에서 똑같이 어둠이 되기를 거부하고 사람 앞에 비추는 빛이 되어서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배타성입니다. 혼자 꽁꽁 숨어버리는 배타주의가 아니라, 당당하게 악한 일을 거부하고, 밀어내고, 거룩하지만, 사랑으로 세상 가운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만이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심을 고백하며, 가장 좋은 길이 되시는 예수님을 전하고, 빛으로 세상 가운데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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