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가시 (2)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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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2:7-10
“육체의 가시”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2025. 10. 3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육체의 가시”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바울이 자신이 주의 환상과 계시를 체험한 일을 자랑을 했는데요. 그보다 더 많은 체험들이 있지만, 혹시라도 이것을 왜곡해서 듣거나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더 자랑하지 않고 그만뒀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본문에서는 자신이 육체에 가시를 가졌다고 고백을 해요. 육체에 가시가 있다는 겁니다. 자, 오늘 본문 7절을 읽어볼까요? 7절 시작,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바울의 육체에 있는 가시가 저절로 생겨난 게 아니죠. 하나님께서 주신 겁니다. 왜요? 바울이 계시를 많이 받고 영적인 체험을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자만할까봐,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가시를 주신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라는 말을 두 번 해요.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내가 육체의 가시를 받은 이유가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육신이 약했죠. 언변도 약하고, 생긴 것도 별로 호감형은 아니었던 것 같애요. 고린도는 육체의 아름다움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기골이 장대했다면, 얕잡아보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대적자들이 계속 외모를 가지고 공격을 한 것을 보면, 생긴 것도 그닥 잘생기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얼굴이나 키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목소리나 음색, 발성, 체형, 자세, 걸음걸이, 시력, 이러한 모든 외모적인 조건이 포함됩니다. 뿐만 아니라, 추천서와 같은 사회적 조건도 포함이 됩니다. 이 사람이 추천서가 있느냐, 자격이 있느냐, 그리고 자신 있게 돈을 받을 만큼 지식이 있느냐. 이런 모든 조건들을 다 포함하는 겁니다.
    그런 면에 있어서 바울은 내세울 것이 없죠. 영적으로야 환상과 계시를 수도 없이 체험했지만, 외모적으로는 많이 약합니다. 그런데 거기다 한술 더 떠서, 육체에 가시까지 있어요. 여러분, 육체의 가시가 뭘까요? 학자들은 이 육체의 가시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굉장히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질병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눈 질환이나 시력이 약한 것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심리적 고통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또는 바울의 대적자들의 공격이나 박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심지어 고린도교회 자체가 가시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 힘들게 하니까. 
    뭐,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는데,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아요. 그래서 결국에 결론이 뭐냐면, 가시가 뭔지 정확히 모른다는 거예요. 바울이 가시가 뭔지 안 써놨기 때문에 알 수가 없죠. 그냥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어쨌거나 바울의 육체에 고통스러운 뭔가가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만큼 바울의 육신이 약했어요. 영적인 체험이나 지식이야 차고 넘치지만, 육신이 약해요. 그도 그럴 것이, 바울이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매도 많이 맞고, 감옥에도 많이 갇히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느라 무릎도 다 닳아졌어요. 몸이 골병이 들어서 너덜너덜합니다. 의사 누가가 옆에서 돌봐주니까 겨우 왔다갔다 하는 거지, 아마 오십견이며 관절염이며, 몸이 말이 아니었을 거예요. 
    바울이 오죽 힘들었으면, 이 가시를 사탄의 사자라고 표현을 합니다. 사탄의 사자. 사자가 뭡니까? 엔젤. 사탄이 보낸 천사라는 소리에요.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마친 사탄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기 위해서 자기가 부리는 악한 천사를 보내서 나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여길 정도로, 그 정도로 너무 고통스러웠던 겁니다. 
    그래서 바울이 하나님께 간구했어요. 이 가시를 없애달라고. 한번도 아니고, 두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간구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 있죠?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너무 고통스러워서 세 번이나 기도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 기도를 들어주셨죠. 들어는 주셨어요. 자, 오늘 본문 9절 전반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9절 시작,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여기까지요.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긴 들으셨어요. 그리고 응답도 해주셨어요. 다만 그 응답이 내가 원하는 응답이 아니었습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이렇게 응답을 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육체의 가시를 안 없애준다는 말이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미 내가 너에게 준 은혜가 충분하다. 그런데 무슨 은혜를 또 주냐?” 이런 말이에요. 이미 충분해요. 그래서 육체의 가시를 없애주는 은혜까지는 필요하지 않은 겁니다. 이미 아구까지 찼기 때문에.
    우리가 이 말을 뒤집어서 생각해보면요. 육체의 가시를 갖게 하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예요. 안 그랬으면 바울이 너무 많은 계시와 체험으로 인해서 자만하게 됐을 텐데, 내가 가시를 줘서 자만하지 않게 됐어요.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만하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데, 바울은 가시 때문에 자만하지 않고 계속 하나님과 함께할 수가 있어요.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 있습니까? 바울은 정말 큰 은혜를 받은 겁니다. 비록 육체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이 계속해서 바울을 정신 차리게 만들고, 계속 겸손한 자로 있게 만들고, 내가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만들어요.
    그것을 바울이 깨달았습니다. 세번째 간구할 때까지만 해도 깨닫지 못했었는데, 세번째 간구하고 나서 하나님의 응답을 들었어요. 그리고 그 응답을 통해서 깨달은 겁니다. 아, 이 가시가 나를 죽이면 죽일수록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시는 바가 되는 구나. 
    여러분,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지배하시고, 내 모든 인생을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풀어놓은 양처럼 마음대로 뛰어다니던 나를 목줄을 메어서 주님이 끌고 가시대로 이끌려가는 존재가 되는 거예요. 이것이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서 이것을 다시 한번 깨달은 거예요. 너무나 많은 계시로 인해 자만하여질 뻔했던 내가 다시 한번 내 목줄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주님 앞에 겸손히 그 분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그 때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온전히 내 자리를 주님께 내어드릴 때, 주님이 일하십니다. 이것을 바울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9절 후반절에 바울이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자, 9절, 그러므로부터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이 이제는 더이상 가시를 없애달라고 간구하지 않아요.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자랑합니다. 무엇을요? 나의 여러 약한 것들을. 나의 가시, 나의 질병, 나의 고난, 나의 모자란 모든 것들을 기쁨으로 자랑해요.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내가 더욱 주님만을 붙들고 의지하도록 밀어붙여서 나에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만들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은 더욱 그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하여 기꺼이 육체의 가시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가시여 오라, 고난이여 오라. 너희가 나에게 오면 올수록, 나는 더욱 주님과 가까워지고, 더욱 주님의 능력이 나에게 나타나노니. 나에게 오라’ 이러한 고백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까? 고통스럽게 하고, 힘들게 하고, 낙심하게 하는 약함이 있습니까? 그것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고, 질병, 암세포, 사업의 어려움, 사람과의 갈등,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을 더욱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가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에 바울이 이렇게 선언합니다. 10절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난에 원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그 사탄의 사자를 웃음으로 대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하는 한, 네깟 놈이 나를 해칠 수 없다. 나를 낙망하여 넘어지게 할 수 없다.” 이러한 담대함으로 질병이며 암세포며 대적하여서 마침내 극복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누구에게나 가시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뻐하고 그 약함을 나의 강함으로 변화시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 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육체의 가시가 나의 기쁨이 되고 나의 강함이 되고, 그리스도의 능력을 덧입게 만드는 은혜로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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