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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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8편의 모티브는 구원 입니다. 본 시의 저자가 누구인지, 저작 배경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누구든지 시편의 저자는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신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하는 찬양시 입니다.
이 시의 특징은 시의 시작과 끝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로 반복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인의 구원의 은혜를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시인이 체험한 구원의 하나님을 온 회중이 결단하고 고백하고 감사하며 찬양할 것을 촉구 하고 있는 시 입니다.
먼저 1절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두 가지 이유를 제시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선하다 라는 것은 단순히 도덕적 선함만 말하지 않습니다. 도덕적 선함과 함께 감정적인 만족과 어떤 물건이나 결과물의 모습에 대한 만족 등의 모든 면에 있어서 최상의 상태에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특히 선하다 라는 표현은 하나님과 그 백성 간의 언약적 관계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그 백성들에게 한결같이 선함으로 인도하시고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함을 받은 백성들은 모든 면에 있어서 항상 최상의 상태가 되어 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최상의 상태로 보호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항상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이 잘 풀린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늘 이 시인의 고백의 주제는 구원 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이 임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 우선적으로 고난과 환난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형통하심은 꼭 이 세상에서 아무일이 없고 잘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부르짖어도 실패할 수 있고, 넘어질 수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어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은 자들은 시인의 고백과 같이 고난과 환난을 겪었던 자들입니다.
요셉은 어떤 삶을 살았습니까? 형제들에게 애굽으로 팔려 갔습니다. 그것도 겨우 목숨을 건져서 팔려 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 감옥에 갖혔습니다.
그런 요셉의 불쌍하고도 이해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서 요셉을 지킨 것은 선하신 하나님의 은혜 였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 다시 자신의 형들을 만나서는 당신들은 나를 헤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고백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인생을 망칠 뻔하게 한 형들이나 상황을 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신실하심, 선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였습니다.
오늘 이 시편의 저자로 예상되는 다윗의 삶도 그렇습니다. 억울하게 미움을 받고 광야로 내쫓겨 목숨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다윗은 신실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다윗을 하나님은 사랑하셨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통하여 시편의 수 많은 찬양의 고백을 우리에게 들려 주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선하신 뜻과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고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큰 고난과 역경 가운데 있을 때에든지, 아니면 영광과 은혜의 삶을 살아가든지 그 모든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고 확신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음을 기억하고 언제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앞에 절대적인 순종의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삶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발견하며 이루어 가는 은혜가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를 하나님은 인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세드 라고 합니다.
헤세드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의 언약안에 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하나님의 언약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헤세드 입니다.
하나님은 이 헤세드를 지키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전하며 지키며 살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특히나 룻기는 헤세드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록 모압여인이며 이방인인 룻은 시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어려움에 처한 나오미를 떠나지 않습니다.
나오미에 대한 헤세드를 지킨 룻에게 하나님은 보아스 라는 기업 무르는 자를 만나게 하셔서 보아스의 헤세드를 누리게 하십니다.
또한 보아스와 룻을 통해 다윗의 혈통을 이어 나가시며 다윗의 혈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언약적 사랑 안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감사하며 그 언약에 기초하여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크고 광대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의 보호와 은혜를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계속해서 본문 2절에서 4절 말씀을 보시면 이스라엘과 아론의 집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하심을 찬양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세 부류의 대상은 서로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도 아론의 집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도 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아론의 집은 예배를 집례하며 여호와를 섬기는 거룩한 직무를 감당하는 자들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도 혈통이나 신분을 떠나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고 그 구원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시인은 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함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까지 계속되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인의 이러한 권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소유로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큰 감사의 제목인데 더 나아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백성으로 삼아주시며 사랑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받은 자격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 자격을 부여 하시며 큰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어디서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하며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하는 자로 부르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영과 진리로 서서 그 분을 높여 드린다면 하나님은 그 은혜와 사랑과 돌보심으로 영원토록 형통의 삶을 살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고 있습니까? 우리의 구원자 이시며 왕이신 하나님을 감사와 기쁨으로 만나는 예배의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가 회복될 때 우리의 예배가 회복 됩니다. 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서 구원과 인애를 경험할 때 우리의 예배에 감격과 기쁨이 넘칠 것입니다.
오늘 이 시편의 고백이 우리의 예배와 삶 속에서 올려지는 거룩한 찬양의 고백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매일의 삶 속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라 는 이 고백이 기쁨으로 차고 흘러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