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를 얻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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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를 얻음
제목: 자유를 얻음
본문: 사도행전 16장 26-34절
본문: 사도행전 16장 26-34절
찬송: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찬송: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우리는 한밤중의 깊은 감옥으로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곳에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입니다. 그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매를 맞았습니다. 옷은 찢기고 등에는 피가 흐릅니다. 깊은 감방에 갇혀 발에는 차꼬가 채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25절을 보면, 그들은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감옥은 그들의 몸을 가두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이미 자유로웠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와 그 자유를 나누는 삶에 대해 함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은총의 자유
은총의 자유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여기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갑자기"입니다. 본문은 한밤중이었고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으며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갑자기 역사하셨습니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동트기 직전입니다. 그러나 해는 언제나 갑자기 떠오릅니다. 우리의 삶에도 한밤중 같은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오랜 기도에도 응답이 없는 것 같고, 아무리 기다려도 변화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까?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갑자기 일하십니다. 시편 121편 4절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우리 삶의 한밤중에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떻게 일하십니까? 본문은 말합니다. "큰 지진이 나서" 이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일반적인 지진이었다면 감방 바닥이 갈라지고 벽이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 차꼬에 채워진 바울과 실라는 중상을 입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옥터가 요동쳤지만 감방 바닥이 갈라지거나 벽이 무너져 내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오직 문만 열리고, 쇠사슬만 풀렸습니다. 이것은 정확하고 치밀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입니다. 우리 중앙교회의 올해 목표는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로 하고 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계획이나 방법으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우리가 살아날 수 있으며 주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로 얻게 된 자유는 놀라웠습니다. 26절에서 반복되는 "다", "모든"이라는 단어를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부분적이 아니라 완전합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 은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는 완전하고 참된 자유입니다.
자유는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능력으로, 완전하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고 받는 것뿐입니다.
십자가의 자유
십자가의 자유
그런데 26절에는 놀라운 역설이 숨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왜 감옥에 갇혔는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울이 귀신 들린 여인을 자유롭게 해주었더니, 그 여인으로 돈을 벌던 악한 사람들이 바울과 실라를 고발했고, 결국 그들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놀라운 원리를 발견합니다. 누군가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속박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요, 십자가의 신학입니다.
이 원리의 먼저 보여준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빌립보서 2장은 말합니다. "자기를 비워...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8)
예수님께서는 자발적으로 속박당하셨습니다.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요 10:18) 예수님의 속박은 억지로 당한 것이 아니라 자원하여 당하신 것입니다. 손에 못이 박혔습니다. 발에 못이 박혔습니다.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움직일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완전한 속박이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속박당하신 이유를 이사야 53장 5절 은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속박 → 우리의 자유. 예수님의 고난 → 우리의 구원. 예수님의 죽음 → 우리의 생명. 이것이 복음이며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자유도 없습니다. 속박 없이는 해방도 없습니다. 때문에 희생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원리가 오늘 본문에도 나타납니다. 간수가 자살하려 할 때 28절에서 바울이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바울과 실라는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문이 열렸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머물렀습니다. 자신들을 억울하게 가둔 간수를 오히려 살렸습니다. 자발적으로 속박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30-34절에서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때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날 밤, 그 시각에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34절은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과 실라의 속박 → 간수 가족의 자유. 두 사람의 고난 → 한 가정의 구원.
127년 전 선교사들이 헌신의 속박을 당했기에, 오늘 우리가 복음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차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선교사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누군가를 자유롭게 할 차례입니다.
우리의 헌신과 희생이 다른 이의 영혼을 살립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 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우리가 자유를 얻은 목적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시간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는 것, 구역예배에 참석하는 것, 이것은 시간의 속박입니다. 그러나 이 시간의 헌신이 누군가에게는 복음을 들을 기회가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므로, 우리가 예배를 통해 믿음을 키워갈 때, 그 믿음이 다른 이에게 전해집니다.
사랑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 이것은 자존심의 속박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의 비전이 무엇입니까? "예수의 마음을 품는 교회"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 은 말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바울이 자기를 가둔 간수를 살린 것처럼, 우리도 원수까지 사랑하는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 사랑의 헌신이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키고, 우리 교회를 하나 되게 합니다.
사명의 헌신이 필요합니다. 우리 가족과 이웃의 영혼을 위해 중보기도하는 것입니다. 아직 믿지 않는 가족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전도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편안함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무시당하고 거절당합니다. 그러나 이 사명의 헌신이 영혼을 살립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 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진정한 자유는 자발적으로 속박당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십자가를 본받는 삶입니다. 우리가 받은 자유를 다른 사람과 나누는 삶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자유란 무엇입니까?
자유는 우리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는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자유는 십자가를 통해 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속박당하심으로 우리가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는 나눔을 통해 완성됩니다. 우리가 받은 자유를 다른 사람과 나눌 때, 그 자유는 더욱 풍성해집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지금 한밤중 같은 어둠 속에 있는 분이 계십니까? 속박 가운데 있습니까?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한밤중에도 일하십니다. 갑자기, 능력으로, 완전하게 우리를 자유케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유를 받은 우리가 이제 누군가를 자유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간을 드리고, 사랑으로 섬기고,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작은 속박이 누군가에게는 큰 자유가 될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고, 자유를 나누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이 시간, 우리에게 자유의 복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속박당하심으로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자유를 얻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그러나 우리는 이 자유를 받고도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만을 위해 자유를 사용했습니다. 헌신과 희생 없이 살았습니다. 용서하시옵소서.
이제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시간을 드리고, 사랑으로 섬기고,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헌신과 희생으로 다른 이의 영혼이 살아나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 교회를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시켜 주옵소서. 한밤중에도 일하시는 하나님, 우리 교회의 기초를 흔들어 주옵소서. 막힌 문을 여시고, 모든 속박을 풀어 주옵소서.
아직 믿지 않는 우리 가족들과 이웃들이 복음을 듣고 자유를 얻게 하옵소서. 간수 가족처럼, 한 영혼이 구원받아 온 집안이 기뻐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침체와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과 실라처럼 찬송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갑자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예수의 마음을 품고, 자유를 누리고, 자유를 나누는, 참된 자유인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