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이루었다.

나의 자랑, 십자가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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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30 NKRV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I. 본문 해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남기신 여섯 번째 말씀은 마지막으로 남기신 일곱 마디의 말씀들 가운데 당신의 사역(事役)과 관련된 가장 의미심장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가깝게는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완성(完成)을 가리키고, 더 멀게는 영원 전에 예정된 하나님의 인류 구원 완성(完成)을 보여준다.

II. 다 이루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生)과 공생애(公生涯), 그리고 죽음은 오직 하나의 목적(目的)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죄와 불순종(不順從)으로 타락한 인류를 다시 구원(救援)하여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구원 계획(計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를 지시고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으심으로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그러면 도대체 예수의 죽음으로써 무엇이 완성(完成)되었다는 것일까?

A. 영원한 구속 계획의 완성

- 첫째로,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계획(計劃)이 완성되었다.
구속의 정의
-원래 성경에 언급된 "구속"(救贖)이라는 용어(用語)는 신학에서 매우 중요(重要)하고 포괄적(包括的)인 개념이다.
-구속(救贖)은 "노예(奴隷)로 팔린 상태나 억압(抑壓)받는 상태에 있는 누군가마땅한 값을 지불(支拂)하고 해방(解放)시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은 다음과 같은 것들로부터의 구속(救贖)을 성취하였다.

1. 죄책과 형벌로부터

-첫째로는, 죄책(罪責)과 형벌(刑罰)로부터 구속(救贖)하셨다.
죄책과 형벌의 정의
-죄책(罪責)저지른 죄에 대한 사법적 책임(責任)이다.
-그리고 형벌(刑罰)은 이 책임에 대한 처벌(處罰)의 실제적 집행(執行)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를 지시고 대신 죽으심으로써, 구원(救援)받을 죄인(罪人)들이 지은 죄에 대한 법적 책임(責任)과 형벌(刑罰)로부터 구속해 주셨다.
적용
-따라서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自己)의 죄책과 형벌을 위해 십자가(十字架)에서 대신(代身) 죽고 살아나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 용서(容恕)받고 의(義)롭다 함을 얻게 해 주셨다.

2. 율법의 저주와 정죄로부터

-둘째로는, 율법(律法)의 저주(咀呪)와 정죄(定罪)로부터 구속하셨다.
내포적 대신의 방식으로 죽음
-엄밀하게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당신 홀로 죽으신 것이 아니다.
-내포적 대신(內包的 代身)의 방식으로 죽으신 것이다. 즉 구원(救援)받을 모든 인류를 당신 안에 끌어안으시고 그들의 죄(罪)를 자신에게 전가(轉嫁)하시는 방식(方式)으로 대신하여 죽으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죄에 대한 형벌(刑罰)은 예수 홀로 담당하시고, 구원(求援)받을 인류는 그 덕분에 의(義)롭다 함을 받게 해 주셨다.
-그래서 인간이 마땅히 받아야 할 율법(律法)의 저주(咀呪)와 정죄(定罪)를 면하게 해주셨다.
역사신학적 고찰
-이에 대하여 16세기 종교개혁가(宗敎改革家) 페트루스 베르미글리우스(Petrus Martyr Vermiglius, 1499~1562)는 자신의 책 『보편논제』(Loci Communes) 제2장 6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의 만족(滿足)을 이루셨으니, 이는 단지 율법(律法)에 순종함으로써 뿐만 아니라 율법(律法)의 형벌(刑罰)과 저주(咀呪)를 친히 담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율법의 정죄(定罪)로부터 해방을 시켜 주신 것입니다."(Christus igltur pronobis satisfecit, non tantum obediendo legi, sed etiam sustinendo poenam et maldeictionem legis, ut nos a dammatione illa liberaret).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인간의 범죄(犯罪)에 대한 율법(律法)의 저주(咀呪)와 정죄(定罪)를 예수께서 대신 담당(擔當)하신 결과(結果)였다.
-이로 말미암아 당신이 끌어안아 주셔서 그분의 품에 있는 우리는 예수께서 대리적(代理的)으로 형벌(刑罰)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죄(罪)의 값을 치룬 것으로 간주되었다.
적용
-그리하여 예수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이 자기의 죄(罪)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율법(律法)의 저주(咀呪)와 정죄(定罪)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롬 6:20-22).

3. 죄의 속박과 지배로부터

-셋째로는, 죄의 속박(束縛)과 지배(支配)로부터 구속(救贖)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은 단순히 죄책(罪責)과 율법(律法)의 정죄(定罪)로부터의 구속(救贖), 그 이상의 것을 가져왔다.
죄의 능력으로부터 해방
-그것은 죄인(罪人)들을 실효적으로 지배(支配)하고 속박(束縛)하고 있던 죄의 능력(能力)으로부터 구속(救贖)한 것이다.
-인간(人間)은 첫 조상(祖上)들의 타락(墮落)과 함께 죄의 노예(奴隸)가 되었고 죄의 궁극적 목표인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적용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심으로써 그분을 믿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죄의 속박(束縛)과 지배(支配)로부터 벗어나도록 구속(救贖)해 주셨다.
죄의 절대적 지배력 상실
-신자(信者) 안에도, 세상(世上) 안에도 여전히 어느 정도 죄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는 죄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절대적인 지배력(支配力)을 상실하였다.(롬 6:14).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공로를 믿는 모든 사람은 실제적으로 죄의 속박(束縛)과 지배(支配)로부터 구속 받게 되었다.
역사신학적 고찰
-아우렐리우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 354-430)은 자신의 책 「신국론』 (De Civitate Dei)에서 죄와 관련하여 인간의 상태(狀態)를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12권 22장, 14권 11장, 17장, 26장, 22권).
(1) 타락 전(墮落 前): 죄를 지을 수 있는 상태(posse peccare),
(2) 타락후(墮落 後):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non peccare),
(3)중생 후(重生 後):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상태(posse non peccare),
(4)영화 후(榮化後):죄를 지을 수 없는 상태(non posse peccare).
-따라서 구원(救援) 받은 우리는 세 번째 상태(狀態), 곧 죄를 짓지 않을 받은 수 있는 상태에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셨다.
적용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 안에 죄(罪)의 절대적 지배(支配)를 영원히 종식(終煌) 시키시고 성령(聖靈)께서 내주(內住)하게 하셨다.(롬 6:9, 고전 3:16).
-그래서 신자라면, 누구든지 믿음과 순종함으로, 각종 은혜(恩惠)의 수단(手段)에 참여(參與)할 때 얼마든지 우리 안에 있는 죄(罪)를 넉넉히 이길 수 있게 하셨다.

4. 사탄의 권세로부터

-넷째로는, 사탄(Satan)의 권세(權勢)로 구속(救贖)하셨다.
사탄의 죽음의 권세와 어둠의 지배
-최초의 인간들의 범죄(犯罪)는 그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後孫)들을 사탄의 지배(支配)아래 팔리게 만들었다.
-그 결과 인류는 그의 마지막 위협인 죽음(death)이 두려워서 죄에게 종노릇 하게 되었다. (히 2:15).
-또한 불신자(不信者)이던 때에 사탄의 지배(支配)로 말미암는 영적인 어둠(spitual darkness)이 우리를 지배(支配)했었다.(롬 13:12).
적용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신 죽음의 의미(意味)를 믿는 순간, 사탄의 지배(支配)와 영적 어둠의 권세(權勢)로부터 구속(救贖)해 주셨다.(골 1:13).
-그리하여 영적인 어둠을 물러가게 하시고 영적 총명(聰明)을 되찾게 하셨다. 이것이 바로 믿음(faith)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신령(神靈)한 세계를 알게 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구원(救援)받음으로써 미련함과 무지(無知)에서 벗어나 참으로 지혜(知慧)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魔鬼)와 귀신(鬼神)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위협(威脋) 따위에는 더욱 그러하다.
-왜냐하면 예수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으로 그것들은 머리와 등뼈가 짓이겨지도록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탄에 대한 최후의 승리를 믿는다.
-오늘 하루의 삶속에서 매일 같이 펼쳐지는 영적 전쟁 앞에서 승리를 확신한다.
-담대하게 마귀를 대적하며 살아갈 수 있는 힘으로 살라.

B. 구약 예언과 모형의 완성

-둘째로, 구약의 예언(豫言)과 모형(模型)이 완전하게 성취(成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은 구약 성경(聖經)에서 그분에 대해 예언(豫言)한 바 모든 것을 성취(成就)하였다.
-또한 예수께서 메시아(Messiah)의 구속(救贖)을 미리 바라본 구약의 모형(樓型)들의 실체(實體)로 오심으로써 그 예언과 모형들을 성취하셨다.
-신자의 영혼의 생명(生命)을 풍성하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산성(神性)과 함께 성육신과 인성(人性)을 묵상하는 것이다.

1. 고난 받는 종의 예언

-첫째로는, 고난(苦難) 받는 종의 예언(豫言)이 성취되었다.
고난 받는 종 예언
-특별히 이사야 53장메시아의 고난(苦難)과 죽음, 그리고 영광(榮光)과 구속 사역(救贖事役)에 대한 가장 명백하고 완전한 예언(豫言)이다.
-이사야 53장에서 메시아의 고난(苦難)으로 많은 백성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한 명백한 예언이 예수께서 이 세상(世上)에 오심으로써 성취되었다. (사 53:10)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부분을 난제(難題)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메시아(Messiah)의 고난과 죽음을 예고(豫告)한 예언들을 이스라엘이라는 집단(集團)의 고난과 죽음으로 억지로 해석한다.
역사신학적 고찰
-그러나 지금도 이사야 53장을 읽다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回心)하는 유대인들이 여전히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그들 중 세 사람을 실례(實例)로 제시(提示)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는
-알프레드 에더샤임(Alfred Edersheim, 1825-1889)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히브리 언어(言語)와 유대교 경전(經典) 연구에 있어서 뛰어난 학자(學者)였다.
-빈(Vien) 대학에서 철학(哲學)을 전공한 그는 젊은 시절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교류하면서 구약 성경 나오는 메시아(Messiah) 예언(豫言)에 관심을 가지고 깊이 연구(硏究)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이사야 53장 곧 고난(苦難) 받는 메시아의 장(章)을 읽으면서 극적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回心)하게 되었다.
-그는 성경에 대한 방대한 연구(硏究)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이사야서 53장을 포함한 수많은 구약(舊約)의 메시아 예언(豫言)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들은 너무나 명백하여 그것들이 예수(Jesus)의 오심을 바라본 예언(豫言)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후일 개신교(改新敎)로 개종(改宗)하고 후일 스코틀랜드 장로교의 목사(牧師)가 되었다.
-그는 유대교와 구약 성경 대한 해박한 학문(學問)과 언어학적 지식(知識)으로써, 예수의 생애(生涯)를 깊이 있게 분석한 탁월한 걸작인, 두 권으로 된 「메시아 예수의 생애와 시대』 (The Life and Times of Jesus the Messiah)를 남겼다(한국어 번역본은 4권).
-그 책은 개신교(改新敎)뿐만 아니라 학계 전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에더샤임은 그 책 제 1권의 서문에서 예수의 예언(豫言)과 모형(模型), 그리고 성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모든 다양한 예언들은 겉으로 볼 때 아무리 모순되어 보인다고 할지라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 안에서 맞아 떨어지고 그 분 안에서만이 완전하고 조화로운 해결책을 찾는다."(All these various predictions, however apprently contradictory, meet the one person of Jesus the Christ, and in Him alone find their fulland harmonious solution).
두 번째로는
-레오폴드 콘(Leopold Cohn, 1862~1937)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헝가리서 태어난 정통파 유대교 랍비(Rabbi)이자 탈무드 학자였다. 그는 이사야 53장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께로 회심(回心)하였다.
-그는 후일에 "유대인 복음화를 위한 미국 선교위원회"(American Board of Mission to Jews)를 설립해 선교(宣敎)에 힘썼다.
세 번째로는
-정통파 유대인이었던 라흐미엘 프리이들란드(Rachmiel Frydland, 1916~1980)다. 그는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대인으로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계획대로 유대교의 랍비(Rabbi)가 되기 위해 교육(敎育)을 받던 중 이사야 53장을 접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전통적 유대인의 해석으로는 이사야 53장이 말하는 의미(意味)를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메시아를 이스라엘 집단으로 해석해서는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고난(苦難) 받는 종과 그의 영광(榮光)에 대한 예언을 이해받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홀로코스트에서 고난(苦難)을 겪으면서, 프라이들란드는 마침내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종”이 곧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보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설명(說明)될 수 없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는 비록 개신교(改新敎)로 개종(改宗)하지는 않았으나 "예수를 메시아로 믿는 유대인"(Messianic Jew)이 되었다.
-일평생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메시아임을 전하는 일에 헌신하였다.

2. 희생제사의 모형의 성취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모든 희생 제사(祭祀) 제도의 모형(模型)이 성취(成就)되었다.
희생제사 모형
-구약 성경 중 레위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主題)는 이것이다. "죄(罪)로 불결(不潔)해진 인간이 어떻게 거룩하신 하나님(God)께 나아갈 수 있는가?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첫 조상(祖上)이 범죄하자마자,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계시(啓示)해 주셨다.
-그것은 바로 짐승의 희생(犧牲)을 통한 제사 제도(祭祀 製度)의 계시였다.・
-그리하여 범죄(犯罪)함으로 불결(不潔)하게 된 죄인(罪人)임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나마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게시된 희생제사(犧牲祭祀) 제도 때문이었다.
-번죄, 속건제, 속죄제, 화목제 등은 모두 하나님의 공의로운 진노(震怒)를 유화(宥和)하고 헌제자의 죄(罪)를 속(贖)하기 위한 것이었다.
-흠이 없는 짐승에게 헌제자의 죄(罪)를 전가(轉嫁)시키고 죄를 짊어지게 된 희생(犧牲) 짐승이 대신 죽임을 당하게 하심으로써 헌제자가 죄의 용서(容恕)를 받게 해주셨다.
-이렇게 함으로써 제사를 드리는 죄인(罪人)은 일시적(一詩的)이나마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交通)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한시적(限時的)이고 불완전(不完全)한 제사였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 희생제사(犧牲祭祀)들은 모두 죄인(罪人)과 하나님 사이에 영원하고 완전한 교제(交際)의 길을 단번에 열어 주실 십자가 (十字架) 사건을 바라보는 예표(豫表)일 뿐이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스스로 단번에 완전한 속죄 제물(祭物)이 되심으로써 자기(自己)를 믿는 자를 위하여 영원(永遠)히 단번에 하나님과의 교제(交際)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로써 이 예표들은 모두 성취(成就)되었다.
기타 모형들
-그 외에도 유월절(逾越節)에 이스라엘 백성의 처음 난 것들, 즉 초태생(初胎生)을 위해 죽임을 당한 어린 양(羊)의 사건이나(출 12:21), 모세에 의해 장대에 매달려진 놋 뱀 사건(민 21:9)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죄인(罪人)들을 위해 대속(代贖)하시고 구원(救援)을 얻게 하실 예표였다.(요 3:16).
-그런데 이 모든 예표(豫表)와 모형(模型)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죽음으로써 완성(完成)되고 성취(成就)되었다.
-따라서 구약에 나오는 메시아(Messiah)에 관한 그 수많은 예언(豫言)과 모형(模型)을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을 통한 죄인(罪人)들의 구속(救贖)이라는 궁극적인 실체(實體)와 완성(完成)을 향해 달려가는 구속사의 이정표(里程標)에 따라 정해 진 때에 각각 나타난 것이었다.
역사신학적 고찰
-이에 대하여 사실상 동방교회(東方敎會)의 마지막 교부로 불리는 다마스쿠스의 요한(loannes Damascenus, c. 675~749)는 자신의 유명한 책 『정통 신앙에 관하여』 (De Fide Orthodoxa) 제 4권 4장 "율법에 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십자가는 생명(生命) 나무로서 낙원(樂園)한 가운데 심겨졌고, 거기로부터 우리에게 구원(救援)이 흘러나왔으니, 이는 마치 처음 낙원(樂園)의 나무로부터 죽음이 흘러나온 것과 같다"(Crux est lignumvitae, quod in medio paradisi plantatum est, et ex quonobis salus fluxit, sicut mors ex ligno in paradiso).
예언과 모형의 의미
-이러한 구약의 예언(豫言)과 모형(模型)의 성취(成就)는 인간 구원(救援)을 위하여 대신 형벌(刑罰)을 받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충분성(充分性, sufficiency)과 완전성(完全性, completeness)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구약성경의 메시아 예언(豫言)은 앞으로 오실 역사적(歴史的) 예수를 향해 달려 온 것이었고, 신약(新約) 성경의 메시아 증언(證言)은 이미 이 땅에 오신 역사적(歷史的) 예수를 증거하며 펼쳐져 나간 것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의 접힘(folding)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분의 펼침(unfolding)이 곧 신구약 성경(聖經)임을 깨닫게 된다.
적용
-지금도 하나님의 창조(創造)와 구원(救援)의 우주적 계획의 핵심이며 지혜(知慧)의 비밀은 모두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엡 3:9, 골 1:26, 2:2)
-우리는 복음(福音)을 믿음으로써 비로소 세상이 어떻게 창조(創造)되었으며, 인간(人間)은 무엇을 위하여 지은 바 되었으며, 한 인간이 세상(世上)에 태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허무(虛無)하게 살지 않고 영원(永遠)을 잇대어 살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되었다.
-인생에 진정한 이러한 놀라운 복음(福音)의 비밀(秘密)을 깨달은 우리에게는 그에 따르는 책임이 있다.
-그것은 우리 죄인(罪人)들을 위해 이토록 아름다운 구원(救援) 계획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찬양(讚揚)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쁜 구원의 소식을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전파(傳播) 하는 것이다.

C. 신적 공의와 율법의 완성

-셋째로, 예수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은 신적 공의(公義)와 율법(律法)을 완성(完成)하였다.
하나님의 공의의 정의
-하나님의 속성으로서 공의란하나님의 거룩함을 침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그것을 보호(保護)하는 하나님의 성품”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상(償) 주시는 공의 벌(罰)주시는 공의로 구분이 된다.
-그런데 첫 조상(祖上)으로부터 모든 인류(人類)는 스스로 행사한 자유의지(自由意志)의 선택으로 타락(墮落)하였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 세계(創造 世界)를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명(生命)이신 하나님의 영광(榮光)에 이르지 못하게 하였다.(롬 3:23).
-따라서 이에 대해서 인간은 마땅히 공의(公義)의 형벌(刑罰)을 받아야 했다.
-인간은 범죄(犯罪)함으로써 손해를 입힌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배상(賠償)을 해야 했으나 인간에게는 그것을 감당할 능력(能力)이 없었다.
-왜냐하면 죄(罪)를 범한 인간(人間)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한의 것을 내놓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죽음(death) 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가치는 너무나 미미(微徹)하여 결코 자신이 지은 무한(無限)한 크기의 죄에 대한 배상(賠償)이 될 수가 없었다.
십자가는 공의와 사랑의 속성 모두 만족 시킴
-하나님의 사랑(love)의 속성(屬性)은, 어찌하든지 인간의 죄를 용서(容恕)하고 다시 당신과 화목(和睦)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公義)의 속성(屬性)은, 어찌하든지 인간의 죄에 대한 정당(正當)한 징벌(懲罰)을 당신께서 내려야 했다.
-따라서 두 속성을 함께 만족시키는 것은 논리적(論理的)으로 불가능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智慧)가 나타났다.
-그것은 하나님(God)께서 구원받을 인간(人間)의 모든 죄(罪)를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轉嫁)시키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들의 죄(罪)가 예수께 전가된 죄인(罪人)들을 대신해서, 그리스도께서 형벌(刑罰)을 담당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써, 한편으로는 죄인(罪人)을 살려 사랑(love)의 속성을 만족시키시고, 또 한편으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으심으로써 공의(公儀)의 속성도 만족(滿足)시키셨다.
-뿐만 아니라, 율법(律法)의 요구(要求), 곧 마땅히 죄를 지은 당사자에 대해 정죄(定罪)하고 형벌(刑罰)을 내려야 한다는 신적 요구(要求)도 예수 십자가의 대리적(代理的) 죽음으로써 완전히 만족(滿足)시키셨다.
-이는 율법(律法)의 형벌(刑罰)이 되는 조문들이 모두 죄인(罪人)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公儀)의 표현(表現)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오실 메시아(Messiah)를 바라보며 달려온 모든 율법(律法)의 요구(要求)를 예수께서 완전히 성취하심으로써 우리에게는 구속(救贖)의 은혜(恩惠)만 전달되게 하신 것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자랑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世上)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를 자랑하는 이유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틈틈이 기회를 엿보며 우리의 죄(罪)에 대하여 끊임없이 공격하는 양심(良心)의 송사(訟事)와 율법(律法)의 정죄(定罪)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싸워 이길 수 있게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를 믿는 믿음으로써, 율법(律法)의 송사(訟事)와 정죄를 무효(無效)가 되어 버리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고 도피성이 되어 언제든지 양심의 송사(訟事)와 율법의 정죄(定罪)를 십자가의 공로(功勞)로 대적할 수 있게 하셨다.
로마서 8:1–2 NKRV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적용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는 아무런 공로(功勞)가 없으나, 하나님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혜(恩惠)로써 우리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公義)와 율법(律法)을 완성하셨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자신의 구원(救援)을 위해 보탤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직 그 크신 구원의 은혜(恩惠)를 일평생 동안 잊지 않고 살아가며, 찬양하고 우리를 구원하신 계획(計劃)을 따라 살아갈 뿐이다.
-그리하여 예수를 믿은 이후 우리의 남은 인생(人生)을 오직 하나님의 은혜(恩惠)로 주어져 덤으로 사는 것이라고 여기면서 하나님(God)을 섬기는 데 이바지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D.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이김

-넷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 죽음으로 사탄(Satan)과 죽음의 권세(權勢)를 모두 이기셨다.
사탄의 궁극 무기:죽음
-성경(聖經)에 따르면, 인간(人間)이 죄를 지음으로써 창조(創造) 세계(世界)는 사탄의 지배(支配)를 받게 되었다.(행 26:18. 롬 16:20).
-그리고 세상을 지배(支配)하는 사탄의 가장 중요한 궁극(窮極)의 무기(武器)는 죽음(death)이었다.
-원래 처음 창조된 인류의 첫 조상들은 영혼(靈魂)과 함께 육체(肉體)까지도 영원히 불사(不死)하도록 하나님에 의해 지정(指定)되었다.
인간 범죄로 인한 죽음의 시작과 특별 은총
-그러나 인간의 범죄(犯罪)로 말미암아 타락하자 하나님의 경고(警告)대로 죽음(death)이 찾아왔다.
-그리하여 영혼(靈魂)은 즉시 하나님과의 생명(生命)의 교제(交際)가 단절되어 죽음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었고, 육체(肉體)는 얼마 후에 죽어서 원재료(原材料)인 흙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죄인들의 육체(肉體)에 대한 죽음의 심판을 유보(留保)하신 것은 특별한 은총(恩寵)이었다.
-그 사이에 인간들은 자손(子孫)을 번식하게 하셔서 천지 창조(創造)의 계획을 이어가게 하신 것이다.
영혼의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
-이처럼 죄를 범한 인간의 영혼(靈魂)은 범죄(犯罪) 하자마자 즉시 하나님과의 영적 생명(生命)의 관계가 끊어져서 비록 살아 있으나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영혼의 하등(下等)한 기능은 남아 있으나, 인간을 빛나게 했던 고등(高等)한 기능, 곧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천상(天上)의 것들을 이해(理解)하는 능력은 상실한 상태가 되었다. (엡 4:18).
-이것을 가리켜서 성경(聖經)은 영혼(靈魂)이 “허물과 죄로 죽은 상태(狀態)"에 있는 것이라 부르게 되었다.(엡 2:1).
-그때 우리는 허물과 죄(罪) 가운데서 행하여, 우리의 육체는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하나님을 거슬러 살고, 우리 영혼(靈魂)은 "공중권세 잡은 자" 곧 사탄(Satan)을 따랐다.(엡 2:2).
-그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도 하나님께 불순종(不順從)하며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 안에서 역사하는 영이다.
-그때 우리는 영혼(靈魂)이 눈멀어서 하나님을 알아보지도 못한 채,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肉體)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행했는데 그것이 사탄(Satan)이 기뻐하는 삶이었다.(엡 2:3).
-그래서 우리는 본질상(本質上) 하나님께 진노(震怒)를 받아 마땅한 죄인(罪人)들이었다.(엡 5:6).
-그런 우리를 “긍휼(矜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엡 2:3-4).
사탄에게 굴복한 이유, 두 가지를 헛되게 함
-그런 절망적인 상태에서도 우리가 사탄(Satan)에게 굴복하며 살았던 것은 두 가지 이유(理由) 때문이었다.
-하나는, 그에게 복종할 때 얻게 되는 세상 정욕(情慾)의 기쁨 때문이었고, 또 하나는, 죽음(death)에 대한 두려움(fear) 때문이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시고 부활(復活)하심으로써 사탄(Salan)의 마지막 궁극(窮極)의 카드인 죽음(death)의 위협을 헛되게 하셨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을 믿는 자는 또한 자신이 죽어도 부활(復活)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비록 구원(救援)받은 인간도 똑같이 육체(肉體)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지만, 그것은 영원히 죽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는 하나님과 생명적인 연합(聯合)속에서 천국(天國)에 들어가고, 마지막 날에는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활(復活)할 것이라는 소망(所望)을 갖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실(事實) 때문에, 인간은 더 이상 죽음으로써 자기를 위협(威脅)하는 마귀(魔鬼)에게 굴복할 필요(必要)가 없게 되었다.
역사신학적 고찰
-이러한 복음적 사실에 대하여 16세기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루스(Henricus Bullingerus)는 자신의 책 『기독교 신앙의 50개 중요한 주제에 관한 논총』 (Decades Quinque de Praecipuis Christianae Religionis Capilibus)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된 대제사장(大祭司長)이며 흠 없는 어린 양(羊)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受難)과 죽음을 통해 죄를 이기셨고, 마귀(魔鬼)를 내동댕이치셨으며, 그리하여 우리의 사망(死亡)을 종식시키셨다"(Christus verus Pontifex et Agnus immaculatus, per suam passionemet mortem peccatum vicit, diabolum delecit, et mortem abolevit).
마귀를 이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와 부활(復活) 사건은 단지 마귀(魔鬼)에게 예수의 생명(生命)으로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시범적으로만 보여 준 사건(事件)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적인 효능(效能)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즉 예수의 부활(復活)사건은 공중권세를 잡고 세상을 지배(支配)하던 사탄의 힘의 근간(根幹)이 되는 등뼈와 허리를 부수어버린 사건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치명적(致命的)인 일격(一擊)이어서, 마귀(魔鬼)는 예전의 왕성한 활동력(活動力)을 상실하고, 설설 기어 다니면서 겨우 목숨이 붙어 있는 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요일 3:8).
- 따라서 이제는 누구든지 이미 그를 물리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能力)을 의지하기만 하면 결코 마귀(魔鬼)에게 지배(支配)를 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약 4:7).
-그러나 마귀(魔鬼)는 온 힘을 다하여 신자(信者)에게 영향 미치려고 한다.(벧전 5:8). 그것은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신세(身世)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죄(罪)를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악으로 향하게끔 조종(操縱)할 정도의 능력(力)은 남아 있다. (엡 4:27. 6:11).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세상(世上)을 향한 마귀의 지배권(支配權)은 무너졌고,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결코 그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벧전 5:8).
-오히려 신자(信者)는 구원 받을 때 주시는 성령(聖靈) 때문에 예수와 함께 동행(同行)하면서 그분과 함께 사탄(Satan)을 짓밟아 버릴 권세(權勢)까지 얻게 된 것이다.
-잊지 말자! 가장 강력(强力)한 사탄의 권세도 성령(聖靈)과 함께 하는 가장 연약한 신자(信者)를 이길 수 없다.
죽음을 이김
-죽음은 죄의 삯이자 죄(罪)의 궁극적인 결과(結果)이다. (롬 6: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十字架)의 죽음을 통하여 단지 죽음을 이기는 보다 더욱 놀라운 일을 이루셨으니, 우리의 영혼(靈魂)에 새로운 하늘의 생명(生命)을 주신 것이다.
-즉,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육체의 죽음이 생명의 종결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영원한 연합(合)을 누리는 또 다른 영적 생명(生命)의 시작이 되게 하셨다.
-그리하여 세상(世上) 끝 날에는 모든 믿는 자들이, 다시 육체(肉體)와 영혼(靈魂)이 만나 하나님의 생명(生命) 안에서 영생 불사(不死)를 누릴 수 있게 하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救援)은 인간(人間)과 세계(世界)를 단지 타락(墮落) 이전의 상태(狀態)로 돌려놓으시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때와 동일하게 선(善)한 상태로 돌려놓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때보다 더 완전(完)하고 영광스러운 상태(狀態)가 될 수 있도록 불가역적으로 바꾸어 놓으신 것이다.
-이 모든 일들이 예수께서 십자가(十字架)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가능(可能)하게 된 것이다.
적용, 우리의 자랑, 십자가
-또한 이것이 바로 십자가(十字架)가 기독교 신앙의 중심(中心)에 있는 이유(理由)이며, 우리가 십자가를 자랑하는 이유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 세상의 어느 종교(宗敎)든지 중심인물(中心人物)이 있게 마련이지만 기독교(基督敎)만큼 오직 한 인물(人物),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존(依存)하는 종교는 없다.
-석가모니 없는 불교(佛敎)도, 마호메트가 없는 이슬람교도, 공자(孔子)가 없는 유교(儒敎)도 가능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基督敎)는 존립(存立)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기독교(基督敎)는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을 믿는 종교(宗敎)지만, 그 삼위일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incarnation)을 통하여 계시되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비록 천사(天使)라고 할지라도 그리스도(Christ)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알 수도 없기 때문이다. (요 14:6).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復活)을 통해 우리의 영혼(靈魂)을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적으로 접붙이시는 관계(關係)를 맺으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믿음의 선진(先進)들이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讚揚)했던 이유다.
-또한, 오늘날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지금 이 세상(世上)에 살아 있는 목적(目的)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다. 그것들을 무장해제 시키시고 짓밟아 버리셨다.
-그리고 우리도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며 사탄의 권세(權勢)를 짓밟는다.
-영생(永生)의 소망(所望)으로 오늘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으로 살든지 죽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同行)하자.

III. 적용과 결론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서도 기독교 신앙(信仰)에서 십자가(十字架)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意味)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교인(校人)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도 한때는 그런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동안 주신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복음(福音)의 원시림(原始林)을 경험했다.
-나무 한 그루 보다 짧은 때를 살다 가는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세월은 궁사(弓師)의 시위를 떠난 화살 같이 빨리 흐르고, 우리는 폭풍(暴風)속을 지나가는 것과 같은 인생(人生)의 바닷길을 여전히 홀로 항해해야 한다.
-그때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나와 함께하시는 분은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十字架)에 못 박혀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홀로 이 세상에 한 번 왔다가 또 다시 돌아갈 때도 홀로 사라져가는 인생이지만,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유일(唯一)한 분이 계시기에 외롭지 않다. 아니 외로워도 괜찮다.
-비록 세상에서 고통(苦痛)을 겪고 시련(試鍊)을 만나도, 이 세상에 내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욱 아름답기에 하나님은 나를 이 세상(世上)에 태어나게 하시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십자가로 구원(救援)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罪人)을 구원하신 우주적 계획(計劃)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救援)에 담긴 우주적(宇宙的)인 계획을 바라보면서 그 틀 안에서 인생(人生)의 목표(目標)를 올바르게 설정(設定)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헌신을 통하여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인류 구원의 경륜(經綸)이 역사(歷史) 속에서 찬란하게 전개(展開)되기를 기대하면서, 거기에 티끌만큼이라도 기여(寄與)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삶이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삶이며, 우리 또한 최고(最高)의 행복(幸福)을 누리며 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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