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05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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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사랑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사랑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본문: 로마서 13:8-14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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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끝까지 져야 할 달콤한 빚 (8-10절)
1.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끝까지 져야 할 달콤한 빚 (8-10절)
본문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너희는 아무에게도 아무 것도 빚지지 마라, 다만 서로 사랑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바울은 사랑을 '빚'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다른 빚은 다 갚으면 끝나지만, 사랑의 빚은 끝까지 지고 살아야 할 빚입니다. 사랑은 한 번 하고 끝나는 감정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의 책임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바울은 9절과 10절에서 십계명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이 모든 계명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바울은 십계명 중 사람 사이의 계명들을 나열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계명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한 마디로 요약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랑의 구체적인 모습을 발견합니다.
첫째, 사랑은 상대의 생명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이것은 상대의 존재 자체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말로 상처 주지 않고, 무시하지 않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 사랑은 관계의 신실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부부 관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관계에서 신뢰를 깨트리지 않고, 약속을 지키고, 진실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셋째, 사랑은 남의 소유를 탐하지 않는 것입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단순히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시기하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그 사람의 것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넷째, 사랑은 비교와 경쟁이 아닌 존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듯이 다른 사람도 똑같이 소중히 여기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10절에서 핵심을 말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사랑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소극적 사랑과 적극적 사랑입니다. 소극적 사랑은 이웃을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상처 주지 않고, 실망시키지 않고, 손해 입히지 않는 것입니다. 적극적 사랑은 이웃의 유익을 구하는 것입니다. 도움을 주고, 위로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즉, 사랑은 단순히 따뜻한 감정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상대를 해하지 않고 선을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뜻을 이행하는 구체적 순종입니다.
그런데 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완성입니까? 그것은 결국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형제,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반드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웃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의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고, 둘째 되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 두 계명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조문들을 지켰는지 묻지 않습니다. 대신 "사랑이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오늘 우리는 내가 얼마나 바르고 정직하게 살았는지보다, 내 마음에 이웃을 향한 사랑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 없는 선행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자기만족에 그치기 쉽습니다. 교회 봉사도, 헌금도, 심지어 전도도 사랑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바울의 선언처럼 우리의 존재와 행동의 중심에 사랑이 자리 잡고 있는지, 주님 앞에 나를 비추어 봅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사랑입니다.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가정에서 배우자를 존중하고, 자녀의 말에 귀 기울이고,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 사랑입니다. 직장에서 동료를 시기하지 않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지 않고,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교회에서 형제자매의 약점을 들추지 않고, 비교하지 않고, 서로의 성장을 기뻐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2.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합니까: 빈 그릇의 문제
2.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합니까: 빈 그릇의 문제
이제 우리는 심각한 질문에 직면합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사랑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합니까?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빈 그릇에서는 아무것도 나올 수 없습니다. 물이 없는 샘에서 물을 끌어낼 수 없고, 돈이 없는 지갑에서 돈을 낼 수 없듯이,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사랑하지 못합니까? 우리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인색하고 냉정합니까?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짜증을 냅니까? 우리 마음에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피차 사랑의 빚을 지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빚은 먼저 받아야 생기는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빌려주지 않았는데 우리가 빚을 질 수 없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의 빚을 진 것입니다.
평생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제 남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것은 얼마나 가혹합니까? 상처만 받은 사람에게 "이제 용서하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무시당하고 학대받은 사람에게 "이제 섬기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불가능해 보입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랑이 넘쳐흘러 다른 사람들에게로 갈 수 있습니다.
3. 어떻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두 가지 통로
3. 어떻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두 가지 통로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서 사랑을 받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두 가지 통로로 우리에게 흘러옵니다.
첫 번째 통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사랑입니다.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착해서, 우리가 노력해서,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등을 돌리고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통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오는 사랑입니다.
바울이 "피차 사랑의 빚을 지라"고 말할 때, 이것은 단순히 우리가 남을 사랑하라는 명령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서로에게서 사랑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노예였습니다.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생 무시당하고, 학대받고,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왔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들은 복음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세상이 자신들을 쓰레기처럼 여겨도,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실 만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성도들이 그들을 환영했고, 포용했고, 섬겼습니다. 노예였던 그들을 형제라고 불렀고, 가난했던 그들과 물질을 나눴고, 외로웠던 그들의 곁에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교회는 단순히 일요일에 모여서 예배드리고 헤어지는 종교 집단이 아닙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이 서로 그 사랑을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이 오면 치유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외로운 사람이 오면 동행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낙심한 사람이 오면 격려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죄로 넘어진 사람이 오면 회복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 경험하고,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들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세상으로 나가서 그 사랑을 흘려보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
4. 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까: 세상을 향한 시선 (11-12절)
4. 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까: 세상을 향한 시선 (11-12절)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교회 공동체가 사랑을 나누는 곳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도 진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합니까?
바울은 11절과 12절에서 그 이유를 정확히 지적합니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잠든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눈이 감겨 있습니다. 주변을 보지 못합니다. 현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지금도 무엇을 하고 계신지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잠들어 있습니까?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까?
바울은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은 밤과 같습니다. 어둠으로 가득한 곳입니다. 그리고 이 어둠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세상의 것들이 우리 눈을 가립니다. 세상의 소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우리의 시선을 가립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보지 못하게 합니까?
바울은 13절과 14절에서 정확히 지적합니다.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 그리고 정욕을 위한 육신의 일입니다. 이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모두 세상을 향한 것들입니다. 모두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잡히는 것, 지금 당장 만족을 주는 것들입니다.
방탕과 술 취함을 보십시오. 사람들은 왜 과도하게 먹고 마십니까? 그 순간의 쾌락, 그 순간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나면 공허함만 남습니다. 그래서 다시 찾게 됩니다. 중독이 됩니다.
음란과 호색을 보십시오. 이 시대는 성적 유혹으로 가득합니다. 인터넷, 스마트폰, 미디어가 끊임없이 우리의 욕망을 자극합니다. 사람들은 클릭 한 번으로 순간적인 쾌락을 얻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진정한 사랑과 친밀감을 파괴합니다.
다툼과 시기를 보십시오. SNS 시대에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비교합니다. 누구는 더 예쁘고, 누구는 더 성공했고, 누구는 더 행복해 보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부러워하고, 시기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다툽니다. 우리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정욕을 위한 육신의 일을 보십시오. 물질에 대한 욕심, 성공에 대한 갈망, 인정받고자 하는 열망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더 많이 벌고, 더 높이 올라가고,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 모든 것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것들이 우리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세상으로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세상을 향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의 것들로 가득 차면,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로마 제국의 수도에 살았습니다. 세상의 중심, 문화의 중심, 욕망의 중심에 살았습니다. 로마의 화려함, 로마의 풍요, 로마의 쾌락이 그들을 유혹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외칩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돌려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것들로부터 비워내야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우리의 보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의 것들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5. 사랑을 받는 길: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13-14절)
5. 사랑을 받는 길: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13-14절)
바울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본문 마지막절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이것이 모든 것의 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옷은 우리를 덮고 보호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덮고 보호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세상의 유혹이 우리를 해할 수 없습니다.
옷은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고, 의사는 가운을 입습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경험한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을 묵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능력 있는지 경험합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것들로부터 비워내고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넘쳐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갑니다. 우리는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바울은 마지막으로 경고합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도모한다'는 것은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은 죄를 짓는 것만이 아닙니다. 더 위험한 것은 죄를 위해 미리 준비하고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매일 아침 말씀을 읽을 시간을 확보하고, 기도할 공간을 만들고, 신앙의 동역자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예배를 최우선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결론: 사랑받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결론: 사랑받으십시오, 그리고 사랑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첫째,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인 행동입니다. 상대의 생명을 존중하고, 관계의 신실함을 지키고, 남의 소유를 탐하지 않고, 비교와 경쟁이 아닌 존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선을 선택하는 태도입니다.
둘째, 왜 우리는 사랑하지 못합니까? 우리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빈 그릇에서 물을 퍼낼 수 없듯이,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먼저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셋째, 어떻게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두 가지 통로로 흘러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오는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먼저 경험한 사람들을 통해 오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야 하고, 동시에 교회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들의 사랑도 받아야 합니다.
넷째, 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까?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 세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방탕, 술 취함, 음란, 호색, 다툼, 시기, 물질에 대한 욕심이 우리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다섯째,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그리스도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것들로부터 비워내고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이것은 단순한 도덕적 권면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기 위한 길입니다.
우리의 시선을 세상에서 돌려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의 마음을 세상의 것들로부터 비워내고 그리스도로 채우십시오. 그리스도 안에 거하십시오. 그리스도와 연합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이 우리를 채울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받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십시오. 그러면 그 사랑이 넘쳐흘러 가족에게, 이웃에게, 교회 공동체에게, 이 세상에게로 흘러갈 것입니다.
이번 주간, 구체적으로 실천합시다.
첫째, 매일 아침 그리스도로 옷 입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둘째, 우리의 시선을 세상으로 향하게 하는 것들을 정리하십시오. 휴대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불필요한 앱을 삭제하고, 영혼을 해치는 콘텐츠를 끊어내십시오. 환경을 정리하십시오.
셋째, 교회 공동체 안에서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으십시오. 혹시 상처받고 외로운 분이 계십니까? 용기를 내어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저 지금 힘듭니다. 기도해 주세요." 이 한마디가 얼마나 귀한지 아십니까? 반대로 누군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인다면, 다가가십시오. 함께 기도하고, 위로하고, 사랑을 나누십시오.
넷째,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면, 그 사랑을 세상으로 흘려보내십시오. 한 사람을 정하여, 그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십시오. 전화 한 통,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도움이라도 실천하십시오.
로마 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을 듣고 변화되었습니다. 타락한 로마 사회 한복판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고, 서로 사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예와 주인이 형제가 되었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놀랐습니다. "보라, 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얼마나 사랑하는가!"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이곳에서 얼마나 목이 터져라 기도하는지 그것을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얼마나 찬양을 열정적으로 하는지 그것을 보지 않는다.
세상은 우리가 얼마나 이웃을 사랑하는지 그것을 본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사랑받으십시오.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날마다 경험하십시오. 그리스도로 옷 입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충만해져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복된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