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사도의 표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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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2:11-14
“참된 사도의 표”
549장 ‘내 주여 뜻대로’
2025. 10. 10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자랑하면서, 교회가 본받아야 할 참된 사도의 표가 무엇인가를 말씀하는 내용의 단락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1절에서부터 스스로 어리석은 일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자신을 자랑하는 말들을 해왔는데요.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면서까지 자랑을 한 것은 너희가 억지로 시켜서 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본문 11절 봐 볼까요? 11절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아멘.
    내가 스스로 자랑을 한 것이 어리석은 일이긴 하지만, 이것은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나는 자랑을 안 하고 싶은데, 너희가 하도 말귀를 못알아들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나를 자랑해서라도 너희가 알아듣게 하려고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겁니다. 너희 때문에 어리석은 자가 되는 것을 무릅썼으니까, 이 수고를 칭찬해야죠. 
    자, 그러면서 바울이 뒤에 다시 한번 더 자신을 자랑합니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고린도후서 11장 5절에서 했던 말이죠. 이 말을 한번 더 했어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 거짓 사도들을 말합니다. 거짓 사도들이 자기들이 지극히 크다고 자랑을 하는데, 나는 그들에 비해서 부족한 것이 없다는 거예요. 
    바울이 비록 육신적으로는 그들에 비해서 건강하지도 않고, 언변이 뛰어나지도 않고, 추천서도 없지만, 그러나 영적인 면에 있어서는 오히려 그들을 압도적으로 능가합니다. 
    바울은 수많은 고난을 만나고도 좌절하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어요.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그 고난들 중에 하나만 당했어도 진작에 포기했을 건데, 바울은 셀 수 없이 많은 고난을 당하고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감히 누구도 상상도 하기 힘든 계시와 환상들을 보고 듣고 체험했어요. 그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들인지, 바울이 그것 때문에 혹시라도 자만하게 될까봐 하나님이 바울의 육체에 가시를 주실 정도였습니다. 이 가시의 고통으로 항상 정신 차리고 자만하지 말라고. 그 정도로 엄청난 영적 체험들을 했어요. 
    바울은 그야말로 그 어떤 사도들과도 비교가 안 되는 위대한 사돕니다. 그런 사람을 가짜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가짜예요. 본래 가짜는 진짜를 못 알아봅니다. 여러분, 명품백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잖아요. 그런데 진짜 명품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진짜랑 가짜가 있으면 알아봐요. 내꺼랑 차이가 나면 그게 가짜라는 거잖아요. 
    하지만 본래부터 가짜를 갖고 있는 사람은 알아보지 못해요. 차이가 나도, 저것도 혹시 가짜가 아닐까 의심을 해요. 진짜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이 없으니까. 
    바울은 진짭니다. 진짜가 보기에는 뭐가 가짠지 다 보여요. 내가 진짜니까, 나랑 다른 건 다 가짜죠. 하지만 거짓 교사들은 진짜를 보고도 진짠지 가짠지 몰라요. 그냥 다 가짜라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가짜니까 쟤도 가짜겠지. 이렇게 합리화를 하고, 무조건 가짜로 몰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참된 사도란 어떤 사람인가를 오늘 본문에서 설명합니다. 자, 오늘 본문 1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사도의 표가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아멘.
    사도에게는 사도의 표가 있습니다. 사도로서 보여주어야 할 증표가 있다는 겁니다. 말만 사도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표를 보여줘야 돼요. 바울은 그것을 보여줬죠. 그게 뭡니까?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에요. 
    자, 모든 참음은 뭡니까? 수많은 고난들을 참고 견뎌낸 것이죠. 그리고 표적과 기사와 능력, 이것들은 바울이 행한 놀라운 역사들이에요. 이것들을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세분화 시켰는데요. 각각 그 성격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결국에 이것들은 다 하나님의 역사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말한 내용들을 정리해보면, 사도는 곧 나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고, 표적과 기사와 능력도 역시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되는 거예요.
    거짓 사도들에게는 이것이 없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고, 그게 뭔지도 몰라요. 물론 바울처럼 꼭 놀라운 이적을 일으켜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이미 사도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기 때문에, 지금은 바울과 같은 그런 이적을 보여줄 수가 없죠. 
    그렇다면, 오늘날에는 우리가 무엇으로써 참된 사도의 표를 삼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까? 사실은 이것에 대해서 바울이 이미 말한 바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 2절에서 바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편지는 추천서를 말해요. 그러니까 바울의 말은, 우리가 사도가 되는 데는 추천서가 따로 필요 없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바로 우리의 추천서이기 때문에.
    사도의 자격은 결국에 그 사역의 열매에 있습니다. 어떤 사역의 열매를 맺었는가? 바울은 고린도교회라고 하는 열매를 맺었어요. 그것이 바울이 가진 사도의 표입니다.
    오늘날의 목회자들에게도 각각 사도의 표가 있습니다. 설교를 통하여 성도들에게 얼마나 은혜를 끼쳤는가? 얼마나 교회를 부흥시켰는가? 얼마나 많은 간증거리를 체험했는가? 이러한 표들이 있어요.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서, 목회자나 장로나 권사나, 오늘날의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표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아무리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이적을 행하고, 얼마나 많은 사역의 열매를 맺든지 간에,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닌 거예요.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 그 중심에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오늘날에 우리가 가져야 하는 사도의 표가 사랑이라고 확신합니다. 사랑이 없는 목회자는 삯꾼이 되고, 사랑이 없는 평신도는 종교인이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가져야 돼요. 사랑이 있는 참된 목회자, 사랑이 있는 참된 평신도. 그리고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세상을 위하여 사랑으로 헌신하는 참된 일꾼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으로 하나님의 일꾼임을 증명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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