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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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잃은 카카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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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이어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오늘 함께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너희는 (‘이미’)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먼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한다.’라고 하시거나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 있다.’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너희가 조금만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될 수 있어.’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소금과 빛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지, 소금과 빛이 되려고 애쓰는 게 아닙니다. 소금과 빛이 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미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므로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착각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소금과 빛입니다.”라고 합니다.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지, 신자의 소금과 빛이 아닙니다. 주님의 소금과 빛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런데 실수해서 “우리는 주님의 소금과 빛입니다.”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은 너무나 더러워졌고, 너무나 어둡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더럽고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쓰임 받는 사람들입니다.
 
소금과 빛은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둘 다 다른 이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됩니다. 소금은 물에 녹아야만 짠맛을 냅니다. 등불도 기름이 불에 탈 때 빛을 냅니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는 더러워지고 어두워진 세상, 그러나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원하시는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람이 바로 크리스천, 주님의 제자입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 왜 빛을 비춥니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입니다. 만일 우리 때문에 세상이 복을 받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뭔가 잘못된 신앙생활입니다.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복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모여서 웃고 떠들고 재미있게 지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광채가 나는 모습으로 변화하셨습니다. 그때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니까, 흥분한 베드로가 “여기가 좋사오니 움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삽시다.”라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끼리만 좋은 “여기가 좋사오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여기가 좋기는 좋지만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때문에 이 세상이 유익을 얻어야 하고, 주변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거기 있는 사람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특히 주님을 모르던 사람들이 우리 때문에 구원의 선물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구원의 복음이 우리 가정, 우리 주변, 이 사회, 이 나라, 더 나아가 땅끝까지 전파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부르셨습니다.

1. 세상의 소금(13절)

먼저 소금에 대해 생각해 보면, 소금은 어떤 기능을 합니까? 무엇보다도 음식이 썩는 것을 방지해 줍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때에는 당연히 냉장고가 없었습니다. 그러한 때에 소금은 음식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되었고, 아직도 소금을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소금은 음식 맛을 좋게 하기 위해서도 사용됩니다. 그뿐 아니라 성경에서도 소금이 사용된 것에 대해서 여러 군데에 나옵니다.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출 30:35)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레 2:13)
 
“나 여호와 앞에 받들어다가 제사장은 그 위에 소금을 쳐서 나 여호와께 번제로 드릴 것이며” (겔 43:24)
 
그러니까 제물에 소금을 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소금을 안 치면 싱거워서 드실 수 없으니까 먹기 좋게 소금을 치라는 게 당연히 아닙니다. 이것은 정결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향과 제물을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소금이 사용됐습니다. 소금은 이처럼 다양하게 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13절에서 약간 이상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3절)
 
여러분, 짜지 않은 소금을 드셔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게 무슨 소금입니까? 그러니까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소금이 짜지 않으면 그것은 소금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버려져 밟힙니다. 설탕은 달아야 하고, 소금은 짜야 합니다. 그러니까 소금에게 짠맛은 있어도 그만이거나 없어도 그만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필수 조건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도대체 무슨 뜻이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소금이 짠맛을 잃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사시던 당시 고대 시대에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이 말씀이 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 당시 소금은 소금인데 짜지 않은 소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소금을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물질들이 들어와 섞였습니다. 그렇게 이물질이 들어왔을 때 소금이 만들어져도 짠맛이 나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예수님은 소금이 다른 물질들과 섞임으로써 소금 특유의 짠맛이 나지 않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은 소금인 우리가 세상에 있는 온갖 것들과 너무나 섞여 버리고 세상의 온갖 더러운 것이 우리 안에 들어올 때 우리는 섞여 버려서 짠맛을 잃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되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바닷물 맛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정말 짭니다. 바닷물에 포함된 소금의 양이 얼마나 되기에 바닷물이 그렇게 짭니까? 몇 % 정도 되는 것 같으십니까? 50% 30%? 20%? 그렇지 않습니다. 단 3.5%입니다. 바닷물에서 평균적으로 염분이 3.5%밖에 안 되는대도 그렇게 짭니다.
초기 로마의 기독교비율은 250년경 2% 후에는 절반 정도인 3천만명으로 증가합니다. 
현재 한국의 기독교인 비율은 16%입니다. 2025년에는 11%로 하락할 것이라 전망합니다. 
분명한 것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세상의 소금으로서 이 세상의 타락에 대해 책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이 타락한 모습을 보면서 뭐라고 합니까? “아, 큰일 났다.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나? 말세야, 말세.”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죄를 지을 때 큰일이라고 하거나 말세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는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니 화가 난다는 태도가 대부분 아닙니까? 이것은 아주 무서운 교만입니다. 주님은 교만을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금인 우리에게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합니까? 다른 사람들의 죄와 실수를 지적하고 비난하기 이전에, “어떻게 저 사람이 그럴 수가?”, “우째 이런 일이?”라고 하기 전에, 이 세상이 이토록 타락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내가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반성과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호수나 바다에 가보면 배들이 물 위에 떠 있습니다. 물 위에 배가 떠 있는데, 배는 분명히 물 안에 있지만 물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배가 물에 속하면 어떻게 됩니까? 즉, 배에 물이 들어오면, 물과 하나가 되면 가라앉습니다. 배는 물 위에 떠 있어야 그 역할을 감당합니다. 그러니까 물 안에 있지만 물에 속한 것은 아닙니다. 물이 들어와 합쳐져서 가라앉아 버리면, 모양은 분명히 배이지만 더 이상 배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소금이 다른 물질들과 섞이면 짠맛을 내지 못합니다. 이 세상의 기준대로 살면 소금의 짠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짜지 않으면 사용될 수가 없습니다. 소금의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버려져 밟힐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짜야 합니다. 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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