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Notes
Transcript
#서론
오늘 비유에서 등장하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죽은 사람 취급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어야 상속 받을 수 있는 유산을 미리 받아내고 외국으로 나가 다 탕진했습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아들은 돼지 우리에서 뒹굴며 지내다가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발걸음을 옮깁니다.
#본론
아버지는 쩌어어기 멀리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둘째아들을 발견합니다. 이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둘째아들을 향해 전_속력으로 달려가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마 둘째아들은 헐레벌떡 뛰어오는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울음이 터졌을 겁니다. 그런데다가 아버지가 달려와서 자기를 와락 끌어안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장면은 하나님 아버지가 죄인들을 환영하시는 모습을 묘사한 겁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어떻게 환영하십니까?
돌아올 때까지 매일매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면, 전_속력으로 달려오셔서 끌어안아주십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이야기하실 때 누가 듣고 있었습니까?
15장 1절을 보면,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듣고 있었다고 나옵니다. 공식적으로 죄인이라고 표기한 건, 누가 봐도 죄가 드러나는 사람들이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신 거예요.
그럼 그들 귀엔 어떻게 들렸을까요?
“나도 너희를 이렇게 환대한다. 내가 너희를 만나기 위해 하늘에서부터 전속력으로 달려왔어. 남들이 다 너희를 더럽다 하지만, 나는 너희를 꽉 끌어안아줄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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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도 예수님이 전속력으로 달려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릴 용서해주시고 안아주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 사랑을 늘 기억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둘째 아들은 돼지 우리에서 뒹굴다가 왔습니다. 그래서 옷에 돼지 똥냄새가 진동을 했겠죠.
하지만 아버지에겐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겐 아들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 하나만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꽉 끌어안습니다.
빨리 들어가서 먼저 씻고 나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가 만약 그렇게 말했으면,, 둘째 아들이 뭐라고 생각했겠습니까? ‘역시 아버지는 이제 날 더이상 아들로 여기지 않으시구나. 씻고 나가서 무슨 일부터 시작할지 여쭤보자. 품꾼 중 하나로 여겨지더라도 감지덕지야.’ 이렇게 생각했겠죠?
하지만 아버지에게 그는 여전히 사랑스런 아들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냄새 나는 자기를 꽉 끌어안아주는 아버지의 사랑 때문에 마음이 녹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럴 때가 있습니다. ‘내가 또 죄를 짓다니… 늘 반복해서 짓는 죄에 또 넘어졌어. 또 다시 죄로 뒤덤벅되어 버렸어. 이제 더 이상 하나님이 날 자녀로 생각하지 않으실거야.’
그런데 그 때마다 어김없이 하나님 아버지께선 우리를 꽉 끌어안아주십니다.
더러운 우리를 안아주시면 어떻게 됩니까? 아버지도 더러워지는 겁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더러워지는 것을 조금도 거리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더러운 죄를 다 뒤집어쓰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씻어주십니다. 그리고 거룩한 의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셨습니다.
우리 손에 가락지를 끼워주셨습니다. 자녀라는 증표를 주시는 겁니다.
우리 발에 신을 신겨주셨습니다. 이제 정말, 자녀답게 살아가라고 응원해주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시 오늘 이 시간 둘째 아들처럼 하나님 아버지께 전심으로 나아오는 것을 갈팡질팡하고 계시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향해 환한 미소로 달려오고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품에 안겨 엉엉 우셔도 좋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만끽하십쇼. 그리고 오늘 하루,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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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둘째 아들을 다시 찾아서 너무 기뻐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큰아들이 그걸 탐탁치 않게 여깁니다.
왜 탐탁치 않아할까요?
큰아들은 하루종일 일하다 왔습니다. 그럼 편안하게 쉬고 싶잖아요? 그런데 잔치가 벌어지니까 너무 시끄러운 거예요. 게다가 잔치의 주인공은 이 집에 다시는 들어와선 안 되는 둘째아들이었어요.
그러니까 마음에 안 드는겁니다.
여러분. 큰아들은요. 둘째 아들이 유산을 들고 외국에 나갈 때도 일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돈을 탕진할 때도 일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일했습니다. 이렇게만 보면 큰아들이 제일 불쌍해요.
하지만 큰아들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요.
큰아들이 열심히 일했던 건 아버지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인정 받으려고 일했던 겁니다. 뭔가 보상을 바라고 일했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 잔치날에 뿔이 난 거겠죠.
아버지한테 이렇게 말하죠? “아버지는 내가 열심히 일할 때는 염소 한 마리도 안 잡아주시더니, 이 파렴치한 놈을 위해선 살진 송아지를 잡아주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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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태도는요. 바리새인들이랑 똑같은 태도예요.
바리새인들이 어떤 자들입니까? 사람들이 보는 데에서만 기도하고, 항상 남들이랑 비교하면서 자기가 더 우월하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고 다니는 사람들이죠.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일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께 보상만을 바랬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어쩌면 우리도 바리새인과 큰아들과 닮아있을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의 동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는 겁니까? 아니면, 사람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 하는 겁니까? 아니면 하나님께 뭔가를 얻어내려고 하는 겁니까?그 둘은 정말 종이 한장 차이입니다. 그래서 간혹 자기 스스로도 헷갈립니다.
그렇게 헷갈릴 때는 일하던거 다 내려놓고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 눈물 흘리면서 기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나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을 다시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나의 첫사랑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 큰아들의 아버지는 그에게 염소를 잡아준 적은 없지만, 매일매일 밥을 차려줬습니다. 일할 수 있는 땅도 제공해줬습니다. 방값도 받지 않고 묵을 곳을 매일 제공해줬습니다.
말그대로, 아버지의 모든 것이 큰아들 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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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 다 우리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뭔가를 얻어내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께 다 내껀데 얻어내려 할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자녀답게 살아가는 데에 집중하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겠다는 마음으로 살면 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