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구원하는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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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하는 믿음
제목: 구원하는 믿음
본문: 요한복음 3장 1-18절, 144쪽
본문: 요한복음 3장 1-18절, 144쪽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은
찬송: 563장 예수 사랑하심은
오늘은 요한복음 3장 1-18절 말씀을 가지고 구원하는 믿음'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 유대인의 지도자였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영적 갈급함이 있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구원은 우리의 종교적 열심이나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는 것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1-10절은 '니고데모의 여정'을 말한다.
1-10절은 '니고데모의 여정'을 말한다.
니고데모는 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진실한 영적 갈급함이 있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께 정중하게 인사했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그가 기대한 것이 아니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원한 것은 종교적 대화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것은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였다.
"거듭나다"는 단어의 본래 뜻은 '위로부터 나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만들어내는 변화가 아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완전히 새로운 출생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성령님의 역사로 완전히 새로워지는 것을 말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우리의 육신적 노력으로는 영적 생명을 얻을 수 없다.
니고데모는 혼란스러웠다.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그의 질문은 우리의 질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우리가 거듭남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괜찮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주시는 역사는 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거듭남이 필요하다. 오랜 교회 생활, 많은 성경 지식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종교 생활과 거듭난 삶은 다르다. 우리의 노력으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가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11-15절은 '십자가를 볼 것'을 말한다.
11-15절은 '십자가를 볼 것'을 말한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신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원망했다. 불뱀들이 백성을 물어 많은 사람이 죽었다. 백성이 회개하며 기도를 요청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셨다.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놋뱀을 쳐다보기만 하면 살았다. 복잡한 의식도 없었다. 단순히 믿음으로 쳐다보는 것, 그것이 구원이었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모세가...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들림 받다"는 표현은 십자가에 높이 달리심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부활하여 승천하심까지 포함하는 말씀이다. 광야에서 놋뱀이 장대에 달렸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는 자마다 살 것이다.
그때 광야에서 뱀을 본 자가 살았듯이, 지금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우리의 의, 우리의 노력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믿는다"는 것은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광야 백성이 계속 놋뱀을 바라보았듯이, 우리도 지속적으로 십자가를 신뢰해야 한다. 우리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한다.
16-18절은 '하나님의 심장'을 말한다.
16-18절은 '하나님의 심장'을 말한다.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을 만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이처럼"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극한의 사랑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그리고 나를 사랑하셨다.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다. 그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사랑 때문이다.
그 사랑의 증거가 무엇인가. 독생자를 주신 것이다. "독생자"는 '유일하게 태어난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 가장 소중한 분, 하나님의 전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다. 이것이 사랑이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주신 목적이 무엇인가.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영생"은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질적으로 풍요로운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지금 이 순간부터 시작되어 영원히 계속되는 새로운 차원의 삶이다. 이 영생을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믿음이다.
17절은 더욱 놀랍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목적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다.
그러나 18절은 엄숙한 진리를 선포한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심판받은"이라는 표현은 이미 결정된 상태를 말한다. 믿는 자는 심판에서 완전히 자유하다.
우리는 오늘 하루를 구원의 확신 속에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이미 심판에서 벗어났다.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었다. 오늘 하루도 이 사랑을 붙들고 살아가자.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독생자를 믿는 믿음으로 온다. 이 믿음은 머리의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인격적 신뢰다.
오늘 아침, 구원받은 확신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자. 우리는 심판에서 자유한 자들이다. 우리는 영생을 얻은 자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다. 이 은혜를 누리며, 이 복음을 전하며, 이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아침 우리에게 복음의 핵심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을 고백합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니고데모처럼 혼란스러운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확신을 주옵소서. 거듭남의 은혜를 경험하게 하시고, 십자가를 바라보는 믿음을 주옵소서. 구원의 확신 가운데 기쁨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 복음을 우리 가족에게, 이웃에게, 세상에 전하는 사명자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을 지켜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건강을 지켜주시고,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드리는 모든 기도에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