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의 역사(10) - 물러나는 물, 드러나는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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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합심기도

정홍일 집사님과 가정을 위해서 (이주희 집사님, 시후, 예후, 윤후)
몸이 아픈 지체들의 회복과,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주시기
우리 교회의 다음 세대 아이들을 위해서
너무 귀한 믿음
그러나 믿음을 지키기 힘듬
아름다운 믿음을 지켜주시도록 중보
우리 교회가 함께 아이들의 믿음을 지켜주시도록 기도

성경본문

여호수아 3:15–17 NKRV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설교문

1. 예화 : 요리 실패

나는 대학시절 CCC 선후배들과 함께 사랑방이라는 곳에서 함께 생활했다.
CCC의 사랑방은 함께 생활하면서 믿음 훈련과 생활 훈련을 같이 하는 장소였다.
보통 5~6명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했는데 하루씩 돌아가면서 아침 저녁 식사를 담당하고는 했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마다 자신이 잘하는 요리 한 두가지씩을 정해서 당번 때마다 그 요리를 만들었다.
나는 보통 김치찌개와 두부 부침이 자신 있었다.
어느날 함께 살던 친구중에 현우라는 친구와 함께 아침 식사 당번이 되었는데, 그 친구는 다른 사람들처럼 메뉴를 정해놓고 만들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으로 좋아하는 친구였다.
성공률이 높지는 않았는데, 또 성공할 때는 꽤 맛이 괜찮아서 계속 도전하는 친구였다.
그날 현우는 어묵국을 끓이겠다고 했다.
사실 어묵국이 어려운 음식은 아니다. 어묵이랑 무와 파를 잘 넣고, 간장과 소금 정도로 간만 잘 맞추면 끝나는 음식이다.
그래서 현우는 어묵국을 만들고 나는 다른 반찬을 만들기로 하고 아침을 준비했다.
근데 이 녀석이 불안하게 자꾸 어묵국 간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고 묻자, 소금을 아무리 넣어도 간이 안맞고 밍밍하다는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간을 보는데, 어후.
도대체 왠 느끼하고 못먹겠는 국이 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소금 문제인가 싶어서 소금을 더 넣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현우는 알겠다고 하더니, 미원을 한 숟가락 더 넣으려는 것이다.
알고보니까 얘가 소금이나 미원이나 똑같은줄 알고 소금 대신 미원으로 계속 간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니 국물은 텁텁하고 느끼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를 알게되서 이 국물을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뒤늦게 국간장과 소금을 넣어보고 물을 더 넣어봐도 해결이 안되었다.
결국 국물을 완전히 다 버리고 어묵과 건더기만 건져서 새로운 물에 끓이니 그나마 먹을 수 있는 어묵국이 되었다.

새 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이것이 거룩의 원리이다.
이전 것과 잘 섞어가는 방식으로는 새로운 것이 세워질 수 없다.
이미 느끼하고 텁텁해진 미원 국은 버리고 새 국을 끓어야하는 것처럼,
오래된 것, 더러워진 것, 악하고 삿된 것이 물러가야 거룩하고 새롭게 임할 수 있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이 명하신 거룩의 원리였다.

본문 설명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요단강을 건너는데 그 방식 독특하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하다.
물이 물러나고 드러난 땅 위를 건너는 백성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홍해 바다를 건너는 출애굽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이스라엘을 홍해 바다를 갈라 구원하셨듯, 이제 요단강을 마르게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심으로, 여전히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는 이 말씀 속 장면은 단순히 가나안에 입성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단순히 홍해바다를 건넌 사건과 연결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물이 물러나고, 땅이 드러나는 장면은 홍해 바다 사건 뿐 아니라 성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이다.

태초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영이 수면과 땅이 뒤섞인 혼돈에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물을 물러나게 하시고, 땅을 드러내신다.

이 땅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을 인간이 살아갈 땅이었다.

노아의 홍수 사건에서는 약 1년만에 홍수가 끝나고 물이 말라 땅이 드러난다.

물로 완전히 정결하게 된 새로운 땅에서 노아 가족의 새로운 계보가 시작되니다.

출애굽 사건에서는 이스라엘 앞에 놓은 홍해 바다가 좌우로 물러나고 바닷길이 생겨난다.

홍해바다의 마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을 넘어 믿음으로 약속의 땅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이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다.

물이 물러나고 마른 땅이 드러난다.
얼마나 물이 많이 물러났는지, 본문에는 매우 멀리 있는 성읍에 멈춰섰다고 말한다.
즉, 요단을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의 눈에 그 물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을 것이다.
홍해에서 좌우에 서있는 물을 보며 두려움에 떨며 백성들이 건넜다면,
요단을 건널 때에는 완전히 말라버린 마른 땅, 물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물러난 땅 위를 건너간다.
마치 두 시점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 같다.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는 이제 더이상 불기둥과 구름기둥이 없이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 가운데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는 것이다.
이처럼 물이 물러나고, 땅이 드러나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백성을 거룩한 땅으로 인도하시는 방법이었다.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을 마른 땅으로 바꾸어 건너는 거대한 민족, 이스라엘의 행진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라합이 두 정탐꾼 앞에서 하는 고백이 가나안 땅 거주민들의 마음을 잘 대변해준다.
여호수아 2:9–11 NKRV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그 믿기 어려운 소식을 듣고 마음이 녹았는데, 이제 그 놀라운 일이 현실로 일어난 것을 보고 있다.
그들과 이스라엘을 가로막고 있던 강물은 말라버렸고, 이제 곧 그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던 강하고 단단하던 성벽도 무너지게 될 것이다.
물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온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나안을 침공하는 정복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가나안 정복전쟁

이처럼 물이 물러나고 드러난 땅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들어오는 반복적인 스토리는 이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가나안 전체로 확대된다.
가나안에 입성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하는데,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은 텅 비어있는 미답지가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민족들이 자리한 곳이었다.

헤렘전쟁

하나님은 이 전쟁에 대하여 이해하기 힘든 명령을 내리신다.
신명기 7:2 NKRV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께 정복한 땅의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는 전쟁, 헤렘 전쟁이다.
이스라엘이 입성한 가나안을 마치 물이 바다 덮음 같이 뒤덮고 있는 것은 우상숭배와, 영적, 성적, 문화적 타락이었다.
그들의 장신구는 우상을 숭배하는 토템이었고, 그들의 종교활동이란 성적 문란과 방종이었다.
연약한 이웃은 착취의 대상이었으며, 강한 힘과 무기가 덕목인 세상이었다.
철저히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율법과는 무관한 죄악의 온상이 바로 가나안 땅이었다.
이 죄악의 물 속으로 들어간다면 이스라엘은 죄와 뒤섞여 범벅이 될 것이고, 40년의 광야 훈련은 물거품이 되어버릴 것이다.
따라서 이 전쟁은 이 죄악의 물이 완전히 마르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가 임하는 요단강 사건의 재현으로 이루어져가는 것이다.

실패한 헤렘

그러나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은 결국 7년간의 싸움 끝에 절반 뿐인 승리만을 남기고 실패하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일부와 화친 계약을 맺었고, 일부는 정복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일부는 그들 민족의 노동자로 삼았다. 마치 그들이 애굽에서 애굽사람들의 종살이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멸절시키지 못했고, 오랜 기간 불편한 동거를 하게 되었다.
그 동거가 이스라엘을 얼마나 타락의 길로 이끌었는지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잇다.
믿지 않는 자들, 불신자들과 함께하며 거룩을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함께하지 말라는 고린도후서의 말씀을 주로 불신자와의 연애/결혼에 적용하고는 한다.
틀린 적용은 아니다.
불신자와 함께 생활할 때 그들의 영향을 받지 않는 않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불신자들 없이도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이미 옛 사람과 새사람의 영적 전쟁을 치루는 중이기 때문이다.
로마서 7:21–24 NKRV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조차도 자신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에 대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라며 한탄했다.
이 자리에 있는 분들중 대부분은 새벽 에배를 사수하실 정도로 아마 인생의 많은 순간에서 하나님의 법이 이기시는 분들일 것이다.
이 하나님이냐 죄냐의 전쟁의 투표권이 나 혼자에게 있다면 믿음이 이길 때, 우리는 손 쉽게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것이다.
그런데 부부로 함께 가정의 대소사를 결정해 나갈 때, 불신자인 배우자와 함께 결정해야한다면?
하나님의 법을 따를 필요 없는, 100% 세상의 법에 속한 배우자의 표 더하기, 내 안에 있는 세상의 법을 따르려는 마음이 합쳐져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는 나의 마음과 싸우는 것이다.
한 두 번 승리할지 몰라도,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내 안의 두 마음의 지분이 반반이라면, 50%의 믿음이 150%의 불신과 싸워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사기에서 가나안 민족들과 뒤섞인 이스라엘이 금새 하나님을 잊고 이방신을 따르게 된 이유였다.
거룩한 전쟁, 영적 전쟁에서 절반의 성공, 적절한 타협은 결국 철저한 실패와 같은 말이다.
물이 완전히 물러나고, 마른 땅이 드러나야한다. 하나님은 그 마른 땅 위에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 영원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쟁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 하나님 나라의 정복전쟁을 완전히 끝내시기 위해 다시 수행하셨다.
특히 누가복음은 예수님을 마치 영적 전쟁의 선봉에 선 사령관으로 묘사하고는 한다.
거라사의 군대 귀신을 내쫓는 장면이나, 제자들을 파송하여 귀신을 내쫓는 장면도 그렇다.
예수님의 귀신을 쫓는 사역을 보고 바알세불의 능력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명백히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영적 전쟁임을 드러낸다.
누가복음 11:20 NKRV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귀신을 내쫓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다.

너무 익숙한 이미지다. 물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백성이 마른 땅 위를 걷는다.
귀신이 떠나가고, 하나님의 나라가 그의 백성들에게 임한다.
예수께서 다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정복 전쟁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땅의 끝까지 확장된다.
세대에서 세대로, 각 개인의 마음에서 교회로, 지역으로, 열방의 선교로 확장된다.
예수께서 다시 시작하신 이 전쟁은 실패한 이스라엘처럼 어설픈 타협, 절반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는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완전히 승리하셨고,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세상을 뒤덮은 모든 죄악의 바다는 소멸되고, 새하늘과 새땅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곳에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가 세워질 것이다.

우리의 전쟁

두 영적 나라는 세상과 우리를 전쟁터로 삼아 여전히 격전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이 전쟁의 방관자이거나 중립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사탄의 세력에 뒤섞여 살아가거나, 하나님이 편에 서거나 선택해야한다.
죄의 바다에 떠서 허우적 거리거나, 아니면 내 삶의 요단을 마르게 하실 하나님을 신뢰해야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우리는 이 시간 이렇게 고백하길 원한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아멘
하나님 나라의 정복전쟁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대장으로 삼아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함께 주신 말씀을 놓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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