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50) 내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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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시작

미칠 정도로 멋진 복음이라는 제목으로 요한복음을 나누게 된 것은 올해 2월입니다.
그리고 제가 기획해서 분량을 정한 것이 아니라 기도하며 한주 한주 말씀을 나누다보니 이렇게 50회로 딱 마무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음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고,
이것이 정말 좋은 것이라고 하는데 무엇이 좋고, 또 누구에게 필요한가?
복음의 핵심 그리고 결론은 무엇일까?
제가 본 요한복음의 결론과 핵심은 마지막 장에 쓰여진 내용입니다.

내 양을 먹이라

우리가 1장부터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서 쭉 살펴본 결과 제 눈에 들어온 장면들은 탁월한 예수님과 그 주변에 탁월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무언가 부족한 사람들, 무언가 바라는 사람들,
무지하고, 가난하고, 불의하고,
질병과 트라우마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예수님 주변에 계속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잡고 있던 제자들
포도주가 떨어진 결혼식장
밤에 찾아온 산헤드린 공회의 관원 니고데모
사마리아에 사는 결혼 5번 한 여인
베데스다 연못의 38년된 병자
예수님을 따르던 5천명의 사람들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던 대제사장과 유대인들
그리고 예수님을 배신하고 떠나버린 제자들입니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의 무너진 자기 통제력

베드로는 확실히 리더였다.
Matthew 16:15–18 NKRV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는 열정이 있었고, 영적인 감각도 있었다.
예수님은 그에게 ‘반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시면서 그 위에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이 목숨을 잃는 일이 생기더라도 예수님을 죽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래던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John 18:25–27 NKRV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런 큰 실패를 경험한 베드로. 자신이 생각해도 자신은 자격이 없다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에 부끄럽기도 하고, 예수님을 볼 낯도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중에 내면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익힙니다.
우리 내면에 ‘쓴물’ 또는 ‘더러운 물’이 계속 올라오는데 이것이 넘쳐나면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하고 기도하며 내면에 큰 댐을 만듭니다.
내 안에 계속해서 올라오는 그 쓴 물을 가두는 역할을 합니다.
베드로는 비겁하고, 충동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성향의 쓴물이 계속 올라오고 있었는데 예수님과 동행할 때는 그것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의 댐이 외부의 충격에 의해 금이 가거나 심지어 무너져버릴 때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분노나 회피, 냉소적인 태도로 자신을 밀어 넣습니다.
이것은 일종에 ‘생존을 위한 회피’입니다.
베드로에게 도마가 아무말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래도 예수님을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해야지요”
“당신이나 가시게 나는 더 이상 예수님을 따르지 않을걸세. “
John 6:66–68 NKRV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분명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다. 영생하는 말씀이 있다면 세상에 그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는가?
그러나 힘들게 쌓은 자기 통제력이 무너져 버린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이나 올바른 말과 행동을 할 수 없다.
그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겠다고 했다.
완벽하게 이전의 삶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베드로를 만나신 예수님

이런 베드로는 자신있었던 일마저 실패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밤새 그물질에도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좌절감과 실패에 기억만이 자신을 짓누르는 고통스러운 밤을 지새웁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났고 엄청난 양의 물고기를 잡았을 때 그는 바다로 뛰어 내렸습니다.
이 타이밍에 다시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돌아와서 다행입니다.
큰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 크게 실패한 사람들, 배신자, 낙오자, 가난한 자, 병든 자들이 예수님께로 다시 돌아오는 시점입니다.
여기서 만약 내가 예수님이었다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정말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이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배신하고 나를 외면했을 때,
감당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이 다시 돌아왔을 때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까요??
어떻게 행동해야할까요??
베드로는 어떠한 수모나 질책도 달게 받겠다고 다짐하고 예수님 앞으로 갔을 것입니다.
머리를 쥐어 박거나 귓방망이를 한대 맞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입니다.
귀에 대고 막말을 퍼부어도 다 들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이 어떻게 행동하셨을까요??
예수님은 베드로를 때리지 않으셨습니다.
소리치거나 화를 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네가 나를 배신할 수 있냐며 꾸짖지도 않으셨다.
육지로 와서 제자들과 둘러 앉아있는데 한동안 침묵했을 지도 모른다.
그들 가운데는 숯불만 타고 있었다. 정적가운데 숯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을 것이다.
그때 그 온기에 베드로는 예전의 기억을 떠올린다.
추운 날 밤에 예수님이 억울하게 심문당하실 때 자신은 무의식적으로 본능을 쫓아 불 가운데로 걸어갔다.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예수님과 함께 고난에 참여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따뜻한 온기에 마음을 빼앗겨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
예수님이 무엇이라고 나무라도 다 들어야지...혹시 한대 때리시더라도 달게 맞아야겠다고 다짐했을지도..
드디어 침묵을 깨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제자들은 얼른 큰 생선을 골라 예수님께 가져옵니다.
예수님은 그 생선을 숯불에 구워 제자들에게 나누어줍니다.
밤새 그물질에 많이 허기졌을 제자들을 위해 물고기를 건낸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에 예수님께 반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이렇게 할 생각도 못한다.
나를 죽게만든 사람...
누구보다 믿었는데 누구보다 쌔게 내 뒤통수를 쳐버린 사람...
그리고 찌질하게 살아가고 있는 그 사람에게 찾아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라고 물고기를 건낼 수 있는 사람...
그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그에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럼 내 양을 먹이라...”
이것은 내가 너를 사랑하기때문에 너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이야 라는 고백을 포함하고 있다.
베드로는 이 날 눈물에 젖은 물고기를 먹었을 것이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후회와 기쁨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을 것이다.

복음은 양들을 먹이는 것

복음은 이와 같다.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죽어가는 인생을 생명력 넘치는 인생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우리 아이들이 수족구에 걸려서 입이 아프다고 울면서 아무것도 못먹는다.
너무 괴롭다고 하소연을 하는데 해줄 것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마음의 병도 똑같다.
마음이 아프고 병든 사람은 교회에서 말씀을 마음 껏 먹을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볼 때에도 똑같이 마음이 아프다.
예수님은 세 번 베드로에게 물으시는데
첫번째는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앙생활도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아직 자라지못하여 미숙한 대상에게 가르침이나 꾸지람이나 질책은 독이 될 때가 많이있다.
일단은 먹이는 것이다.
베드로는 스스로 다 자랐다고 생각하고 리더이며 어른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은 별 말씀 없이 그에게 ‘조반을 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덩치만 큰 어린 양과 같았다.
이후에 조금 성숙해진 대상에게 비로소 질책이나 꾸지람, 책망이 필요하다.
들을 귀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것은 밥도다 훨씬 더 좋은 영양분이 된다.
그리고 돌봄과 양육의 결론은 먹이는 것이다.
우리가 같이 식사를 하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 그리고 예배 후 나눔을 하는 것이 다 먹는 것이다.
그것은 화를 내거나 호통치거나 지식으로 가르쳐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해주며,
가난한 자들에게는 필요를 채워주며,
삶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삶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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