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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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의 질문
제목: 구원의 질문
본문: 사도행전 16장 26-34절
본문: 사도행전 16장 26-34절
찬송: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찬송: 521장 구원으로 인도하는
말씀의 문을 열며
말씀의 문을 열며
지난주 우리는 사도행전 16장 26절 을 통해 기도와 찬송을 멈추지 않은 바울과 실라에 대해 함께 나누었습니다. 한밤중 감옥에서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고 모든 문이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능력으로, 완전하게 자유를 여신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수가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자결하려 했고, 바울이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외쳤습니다. 간수는 등불을 들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말씀입니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한밤중 감옥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목격한 간수가 바울과 실아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질문이 담고 있는 의미와 우리 자신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밤의 물음
밤의 물음
간수는 내면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간수가 어떻게 변화가 일어나 왜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까”라고 물었는지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잠시 25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한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말씀합니다.
간수 그날 밤 한 가지를 들었습니다. 한밤중이었고 가장 어두운 시간 이었으며 모두가 잠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깊은 감방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찬송이었습니다.
간수 낮에 그들을 직접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옷이 찢기도록 매를 맞은 그들을 보았고, 등에 선명한 채찍 자국과 흐르는 피을 보았습니다. 깊은 감방에 가두고 자신의 손으로 발에 차꼬를 채웠습니다.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찬송했습니다. 한밤중에 찬송했고 고난 속에서도 찬송했으며 속박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른 감방의 죄수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감옥을 지키고 있던 간수들도 분명히 들었을 것입니다.
간수의 마음에 그 순간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저들은 누구이고 저들의 하나님은 누구이며 어떻게 저런 평안이 가능한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찬송 소리가 간수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간수는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했습니다.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고 모든 문이 열렸으며 모든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간수는 자신의 눈으로 일어난 일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또한 그 간수는 놀라운 일도 경험했습니다. 그것은 원수의 사랑을 경험한 것입니다. 모든 죄수가 도망한줄로 알고 간수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로마의 형법은 만약 죄수가 도망하게 되면 간수가 대신해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고문당하고 수치스럽게 죽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바울이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라고 외쳤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도망갈 수 있었지만 머물러서 간수를 살렸습니다. 자기를 가둔 원수를 오히려 살린 것입니다.
바울의 소리를 들은 간수는 부하들에게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헬라어 성경에서는 양손에 등불을 들고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이 간수는 급했고 절박했습니다. 정말 방금 들은 소리가 환청인지 아닌지, 바울과 실라가 정말 거기 있는지 자신의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을 보았습니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쇠사슬에서 완전히 벗어난 바울과 실라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간수의 그 동안의 경험과 상식으로는 상상조차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를 본 간수가 무서워 떨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이며 두 사람 앞에 엎드렸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앞도당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간수의 마음속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찬송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하고, 원수가 베푼 사랑을 경험하면서 공포가 경외심으로, 경외심이 갈망으로 바뀌었습니다.3,4
간수는 이제 바울과 실라가 믿는 하나님을 알고 싶었고 그들이 받은 구원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우리의 물음
우리의 물음
간수가 한 질문을 주목해 보면 먼저 “내가 어떻게 하여야”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행위 중심적 질문입니다. 즉 내가 무엇을 하면 구원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보편적 질문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유사한 질문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0장 25절 에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사도행전 2장 37절 에서도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질문합니다.
이 모든 것이 행위 중심입니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능이며 종교의 특징입니다. 종교는 인간이 신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다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고 받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a절 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간수가 다음으로 물은 “구원을 받으리이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지금 이 사람은 방금 죽을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바울이 “네 몸을 상하지 말라”고 외쳤고 그래서 간수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능력을 목격한 간수에게 새로운 질문이 생겼습니다. “오늘의 위기를 넘기는 것으로 충분한가? 아니면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가?” 였습니다. 간수는 자신에게 영원한 구원이 필요함을 느꼈습니다. 물리적 위기가 영적인 기회가 되었고 생존의 질문이 존재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같은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성공하고, 행복해지고, 건강해질까 등을 질문합니다. 이같은 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 간수의 “어떻게 구원받을까”라는 질문을 보면 그는 행복보다 구원을 물었고, 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을 했습니다.
17세기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블레즈 파스칼은 “인간 내면에는 하나님 모양의 구멍이 있다. 이 구멍은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진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구멍은 돈, 명예, 쾌락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집니다. 간수는 그 구멍이 있음을 느꼈고 그래서 묻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우리는 참 많은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루어온 것도 많고 이룰 것도 많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의 확신입니다. “내가 잘 살았는가”보다 “내가 구원받았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의 자녀들도 “성공했는가”보다 “구원받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말씀의 문을 닫으며
질문하는 사람은 사람은 답을 얻습니다. 질문이 진지한 만큼 진지한 답을 얻습니다. 간수는 질문을 했기에 답을 얻었습니다. 그의 질문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도 진지하게 질문해야 합니다. 내가 무엇을 구하고 있느지, 내 삶의 우선수위는 무엇인지, 나는 정말 구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은 다음 주에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질문하게 그 답을 구하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질문하고 무엇을 위해 살고 무엇으로 우리의 빈 자리를 채워야 하는지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것을 이루었고, 또 앞으로도 많은 것들을 이루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간수의 변화와 그가 던진 질문을 보니 우리가 혹시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언가를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되어야 되고,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하고, 더 높은 곳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주님이 주신 진정한 자유를 잃어버리고 스스로 속박당해 살아 왔습니다. 분명 세상 속에서 많은 것을 이루고 그것 또한 하나님의 축복이지만, 이와같은 것들이 구원의 은혜보다 더 앞설 수 없으며 구원의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안에 하나님 모양의 구멍이 있습니다. 부족한 지혜로 그것을 스스로 매우려 했습니다. 모양이 맞지도 않는 것을 가져다가 억지고 끼워맞추려 하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우리의 심령에는 많은 상처가 생겼고, 그로 인해 우리의 삶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 모양의 구멍을 하나님으로만 채우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인생의 여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구원의 확신이오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수고하는 인생들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 하나님, 연약한 저희들을 늘 깨우쳐 주셔서. 주님의 말씀이 항상 생각나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그 말씀에 따르며 살 수 있는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항상 거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항상 전하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