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방향을 바꾼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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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향을 바꾼 감사

본문: 누가복음 17:11–19
누가복음 17:11–19 NKSV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예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밖에 없느냐?”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감사는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응답이다”

인간은 ‘받은 것’을 잊어버리는 존재입니다.
현대 심리학은 이를 **‘쾌락적 적응(hedonic adaptation)’**이라고 부릅니다.
좋은 일이 생겨도 잠시 후 그 감정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기억하는 인간’으로 부르십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의 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로 응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라고 대답하면 100점 만점에 100점입니다.
시편 119:62 NKSV
62 한밤중에라도, 주님의 의로운 규례들이 생각나면, 벌떡 일어나서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C.S.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에 대해 찬양하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습니다.
예배란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 아니라, 이미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로 되돌아가는 시간입니다.

본론

사마리아인과 나병 환자의 사회적 배경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길,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변두리 지역에서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주님께 외칩니다.
“예수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눅 17:13)
이들은 이중적 소외자들이였습니다.
당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들에게 “민족적으로 부정한 자”로 여겨졌습니다.
기원전 722년 앗시리아의 혼혈 정책으로 인해 종교적 순수성을 잃었다고 비난받았지요.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거짓 형제”로 부르며 성전 출입조차 금했습니다.
게다가 나병(레위기 13–14장에 근거한) 환자는 사회로부터 철저히 격리되어야 했습니다.
즉, 사마리아인이면서 나병 환자라는 것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회적·영적 고립의 상태를 뜻합니다.
이들의 부르짖음은 단순한 치유 요청이 아니라, 관계 회복의 간절한 외침이었습니다.
“우리를 봐 주십시오” —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요청이었습니다.

② – “되돌아오다”의 헬라어: 삶의 방향 전환

예수님께서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하셨을 때(17:14),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가는 도중에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열 명 중 단 한 사람만이 “되돌아와”(17:15) 예수께 감사했습니다.
이때 누가가 사용한 헬라어 동사 **“ὑπέστρεψεν(hypestrepsen)”**은 단순히 “뒤돌아오다”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방향을 바꾸다, 회심하다”라는 뉘앙스를 지닙니다.
즉, 그는 단순히 발걸음을 되돌린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이 단어는 누가복음에서 자주 영적 전환점을 의미할 때 사용됩니다.
예:
사도행전 3:19 “회개하고 돌아오라”(epistrepsate)
사도행전 3:19 NKSV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회개하고 돌아와서, 죄 씻음을 받으십시오.
그의 ‘되돌아옴’은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신앙의 방향 전환, 곧 회심의 여정이었습니다.

③ – “감사하다”의 헬라어: 은혜를 기억하다

그는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17:16).
여기서 ‘감사하다’의 헬라어는 유카리스테오 εὐχαριστέω(eucharisteō) 입니다.
‘좋은(eu)’과 ‘은혜(charis)’가 결합된 말로,
직역하면 **“은혜를 잘 기억하다”**라는 뜻입니다.
성만찬의 말도 이 단어에서 나왔습니다. 성찬식은 예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의식이에요.
돌아온 나병환자의 감사는 단순한 예의가 아니라,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신 분이 누구인지 인식한 신앙적 응답”이었습니다.
그의 감사 속에는 신학이 있습니다 — 감사는 믿음의 언어입니다.
행함도 믿음의 언어입니다. 믿음은 행함과 감사로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7:19)
헬라어 원문으로는 “네 믿음이 너를 완전히 회복시켰다.” 구원이라는 의미가 구원하다 낫게하다라는 말로 완료형으로 쓰였다.
과거에 일어난 구원, 회복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영원한 구원, 영원한 회복이 일어났다라는 말인 것이다.
이 표현은 혈루증 여인(눅 8:48), 맹인(눅 18:42)에게도 쓰였습니다.
육체의 회복뿐 아니라 존재 전체의 구원, 삶의 방향이 새로워졌다는 뜻입니다.

5. 감사는 인간의 존재 방식이다

감사는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존재 방식’입니다.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은 ‘너’에게 응답할 때 비로소 인간이 된다.”
이 사마리아인은 ‘예수’라는 궁극의 너 앞에 응답한 사람입니다.
그의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첫 응답이었습니다.
또 제가 한번 사회학자료를 찾아봤어요. 칭찬, 감사하는 것이 현대 사회학 **‘상징적 상호작용론(Symbolic Interactionism)’**부분에서는
칭찬과 감사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핵심적 언어라고 설명합니다.
감사와 칭찬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강화시키고,
사람이 자신을 더 ‘가치 있는 존재’로 인식하게 만듭니다.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존재로 만들어가는 방법이 칭찬과 감사라는 것입니다.
칭찬과 감사가 인색한 이유가
1. 감정지능이 낮아서
2. 낮은 자존심 위협감때문에-상대를 높이고 칭찬하면 자신의 존재가 약해질것 같아서
3. 공감능력, 이타성이 부족 등등으로 나타났다. 
토다의숲을 하는 동안에 그 공간이 참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도움을 받고 혜택을 입은 사람들 중에 정말 그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을까요? 신앙과 전혀 상관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나서 함께 한 시간이 얼마 안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감사했던 것 좋았던 것을
말해주고 싶어 연락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결국, 아 이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었구나인것입니다.

결론 – 믿음과 감사는 하나이다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 명의 믿음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도 병은 고침을 받았지만, 삶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나 그 은혜를 ‘기억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한 사마리아인은 감사함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의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믿음의 행위였습니다.
믿음과 감사는 분리되지 않습니다.
감사 없는 믿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C.S. 루이스가 말했듯이,
“감사는 기쁨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믿음은 감사로 완성됩니다.

감사는 구원의 언어이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무언가 얻기 위해” 드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이미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되돌아오는 자리입니다.
감사는 현실의 조건을 넘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보는 눈입니다.
작가 앤 래못(Anne Lamott)의 기도처럼,
아침에 깨어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밤에 잠들기 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우리의 하루는 간구로 시작해 감사로 완성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신앙의 언어이고, 구원의 징표이며, 관계의 회복입니다.
“되돌아온 사마리아인”처럼,
오늘 우리의 예배가 감사의 회심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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