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2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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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라

본문: 로마서 16:17-20
Romans 16:17–20 NKRV
17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20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서론: 너무 많은 정보, 너무 적은 분별

여러분, 우리는 역사상 가장 많은 정보에 노출된 세대입니다. 손안의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실시간으로 알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영상, 수천 개의 게시물, 수만 개의 메시지가 우리 눈앞을 지나갑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빠르게 알 수 있는 시대에, 정작 무엇이 옳은지 분별하지 못하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지식이 많다고 지혜로운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 정보에 익숙해질수록 마음은 더 혼란해지고, 하나님의 음성은 점점 작게 들립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마무리하면서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세 가지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선한 데 지혜롭다는 것은, 말씀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분별하라는 명령 (17-18절)

바울은 먼저 긴급한 경고로 시작합니다. "분쟁을 일으키고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여기서 '분쟁'으로 번역된 헬라어 '디코스타시아'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공동체를 갈라놓는 분열을 의미합니다.
당시 로마 교회에는 겉으로는 경건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두 가지 특징을 지적합니다.
첫째,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깁니다." 그들의 진짜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이득입니다. 여기서 '배'는 육체적 욕망과 물질적 이익을 상징합니다.
둘째,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합니다." 여기서 '교묘한 말'로 번역된 '크레스톨로기아'는 '부드럽고 매끄러운 말'을 의미하고, '아첨하는 말'인 '율로기아'는 '좋게 들리는 말, 칭찬의 말'을 뜻합니다. 그들은 듣기 좋은 말, 귀가 즐거운 말을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악은 항상 선한 것처럼 포장되어 옵니다

왜 우리는 선한 것에 지혜로워야 할까요? 그 이유는 악이 항상 선한 것처럼 포장되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을 보십시오. 뱀이 하와에게 다가올 때 어떻게 말했습니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창 3:1)
뱀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배신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창 3:4-5)
여기서 뱀이 한 말을 보십시오. "눈이 밝아진다", "하나님처럼 된다", "선악을 안다" - 다 좋은 말처럼 들립니다. 성장하고, 발전하고, 지혜로워지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이었습니다.
악은 절대 악한 모습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항상 선한 것처럼, 유익한 것처럼, 나를 성장시킬 것처럼 다가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분별력이 필요한 겁니다.

선한 데 지혜롭다는 것 (19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선한 데'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이스 토 아가톤'(εἰς τὸ ἀγαθόν)입니다. '아가톤'은 단순히 도덕적으로 좋은 것을 넘어서, 본질적으로 유익하고 가치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오는 선, 사람을 살리고 세우는 선입니다.
'선한 데 지혜롭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헬라어로 '소포스'(σοφός)는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 지혜를 의미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 적용할 줄 아는 능력입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분별력이죠.
아가톤, 즉 하나님의 선을 행하는 일에 있어서 창의적이고, 효과적이고, 능숙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이룰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이웃을 가장 잘 사랑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진리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지혜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죠. "좀 융통성 있게 살아. 너무 고지식하게 굴지 마. 적당히 타협할 줄도 알아야지." 하지만 바울은 경고합니다. "그 융통성 속에 타협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 타협이 결국 너를 무너뜨릴 수 있다."
진짜 지혜는 좋은 말을 구분하는 지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분하는 분별입니다.
SNS에서 어떤 인플루언서가 "네 느낌을 따르라, 그것이 진리다"라고 말할 때, 회사 선배가 "적당히 둘러대는 것도 능력이야"라고 말할 때, 친구가 "한 번쯤은 괜찮아"라고 유혹할 때,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하지?"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의 말로 분별하지 않습니다. 말씀으로 분별합니다. 선한 데 지혜롭다는 것은,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2. 악한 데 미련하다는 것은, 순전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악한 데 미련하라는 역설 (19절)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
이 부분이 참 독특합니다. 바울은 악한 데는 '미련하라'고 말합니다. '악한 데'로 번역된 '에이스 토 카콘'(εἰς τὸ κακόν)의 '카콘'은 해롭고 파괴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단지 범죄 행위만이 아니라, 사람을 속이고 이용하고 분열시키는 모든 악한 계략과 방법들을 포함합니다.
여기서 '미련하다'는 헬라어 '아케라이오스'(ἀκέραιος)인데, 이 단어는 '순전한', '섞이지 않은', '오염되지 않은'이라는 뜻입니다.
이 '아케라이오스'라는 단어는 성경에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됩니다. 마태복음 10장 16절에서 예수님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순결하라'가 바로 '아케라이오스'입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15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라고 말하는데, 여기서도 '흠 없는'이 '아케라이오스'입니다. 같은 단어가 '순결한', '흠 없는', '미련한'으로 다르게 번역되지만, 핵심 의미는 모두 '순수하게 섞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말하는 건 이겁니다. "악에 대해 영리하지 말고, 순전함을 지켜라." 왜냐하면 악은 알아야 이기는 것이 아니라, 멀리해야 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악을 경험해서는 안 되는 이유

그런데 왜 바울은 악한 데 미련해야 한다고 명령할까요? 단순히 악을 '알기만' 하는 것도 안 된다는 말일까요? 여기에는 깊은 영적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악을 배우는 것 자체가 우리를 오염시키기 때문입니다. '아케라이오스'라는 단어가 '섞이지 않은'이라는 의미인 것처럼, 악의 방법을 배우고 연구하는 순간 우리 마음은 이미 그것과 섞이게 됩니다. 어떻게 사람을 속이는지, 어떻게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만드는지, 어떻게 남을 이용하는지를 알게 되면, 그 지식은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유혹의 순간이 왔을 때, 그 지식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도구가 됩니다.
둘째, 악의 효과를 알게 되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번 한 번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목적이 좋으면 수단도 정당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세상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가르치지만, 영적 전쟁에서는 다릅니다. 악의 무기를 손에 쥐는 순간, 그것이 우리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셋째, 순수함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보호 안에 거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어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시편 119:11)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 마음에 무엇을 채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의 지식으로 가득 찬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거할 자리가 좁아집니다. 반대로 선과 진리로 가득 찬 마음에는 악이 침투할 틈이 없습니다.
넷째, 이것이 예수님의 순결한 삶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예수님이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시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악을 행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셨습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유혹했을 때, 예수님은 악의 논리를 따라가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대응하셨습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두 가지 길

성경은 악을 경험한 사람들과 악을 피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줍니다.
다윗의 실패 - 악을 경험한 사람
다윗을 생각해보십시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용사였고, 시편을 쓴 예배자였습니다. 그런데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은 우연히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게 됩니다.
처음엔 그냥 한번 본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유혹을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밧세바를 불러들였고, 간음했고, 그녀가 임신하자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한번의 호기심이 간음이 되었고, 간음이 살인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나이다" (시 51:4)
다윗이 회개하고 용서받았지만, 그 죄의 결과는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그의 가정은 무너졌고, 그의 아들들 사이에 살인과 반역이 일어났습니다.
삼손의 비극 - 악에 점진적으로 빠진 사람
삼손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놀라운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삼손은 블레셋 여인 들릴라를 사랑하게 됩니다.
들릴라는 삼손에게 계속 물었습니다. "당신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말해주세요." 처음엔 삼손도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사사기 16장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결국 삼손은 자신의 비밀을 말했고, 그의 머리카락이 잘렸고, 그의 능력은 떠났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눈을 빼고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악은 처음엔 작게 시작됩니다. "한번만", "조금만", "이것쯤이야" -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끝은 파멸입니다.
세상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해봤는데 별거 아니야. 한번쯤 경험해봐야 알지." 하지만 그 '별거 아닌 것'을 한 번 경험하면, 그 악은 생각보다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게 만듭니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는데, 어느새 습관이 되고, 결국엔 중독이 됩니다.
요셉의 승리 - 악을 피한 사람
반대로 악을 피한 사람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요셉입니다.
창세기 39장에서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며 동침하기를 청하니" (창 39:7)
이 상황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요셉은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노예였고, 보디발의 아내는 주인의 아내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거절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창 39:9)
그리고 그녀가 날마다 요셉을 유혹했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기를 거절하고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창 39:10)
요셉은 악을 '경험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악을 피했습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는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은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을 '분석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피하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로마서 12장 9절도 이렇게 말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악을 경험하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 위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됩니다. 악한 데 미련하라는 말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순진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타협하지 않는 순전함을 말하는 겁니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유혹이 아무리 달콤하게 다가와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것은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순전함입니다. 그 순전함이 있을 때, 우리는 악의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3. 그 끝에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평강의 승리가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 (20절)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이 구절은 오늘 본문 전체의 결론이자, 우리 신앙의 방향을 보여줍니다. 이 표현은 창세기 3장 15절의 원시복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뱀에게 하신 말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는 약속이 여기서 다시 선포됩니다.
우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게 살아가면, 그 결과는 우리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시는 그 승리는 전쟁이 끝난 후의 평화, 평강의 승리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왜 '전능의 하나님'이나 '능력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사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탄의 본질은 분열입니다. 17절에서도 바울은 말했죠. "교훈을 거스르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살피라."
사탄은 언제나 공동체를 나누고, 관계를 깨고, 우리의 마음속에 불화를 심습니다. 의심하게 만들고, 서로를 판단하게 만들고, 미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평강으로 싸움을 끝내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평화는 단순한 감정의 고요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오는 질서의 회복입니다. 깨어진 관계가 회복되고, 흩어진 공동체가 다시 하나 되는 것, 그게 하나님의 평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사탄의 머리를 결정적으로 상하게 하셨고, 이제 그 승리가 성도들의 삶 속에서 완성되어 갈 것입니다. '속히'라는 말은 하나님의 시간표가 우리의 시간표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그 승리가 임박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싸움으로 평화를 얻는 분이 아니라, 평화로 싸움을 끝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악에 물들지 않고 순전함을 지킬 때, 하나님은 그 삶을 통해 사탄의 분열을 짓밟고 평화를 세우십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분별하며 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통해 그분의 평강을 드러내십니다.
순전함의 끝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평강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1.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리를 분별하라

우리는 매일 수많은 메시지에 노출됩니다. 어떤 유튜버는 성경을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면서 "하나님은 네가 부자 되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어떤 인플루언서는 "네 느낌을 따르라, 그것이 진리다"라고 가르칩니다. 어떤 친구는 "교회는 낡은 시스템이야, 이제는 영적이되 종교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야 해"라고 말합니다.
이런 메시지들은 듣기 좋습니다. 교묘합니다. 아첨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말을 해줍니다. 하지만 그 안에 진리가 있습니까? 그것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 더 가까이 인도합니까?
우리는 분별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그들의 삶이 그들의 말과 일치하는가? 그들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가?
그리고 만약 그것이 거짓이라면, 바울의 명령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에게서 떠나라." 구독 취소를 누르십시오. 언팔로우하십시오. 이것은 편협함이 아니라, 진리를 지키는 거룩한 선택입니다.

2. 선을 행하는 일에 전문가가 되라

우리 청년들은 악을 행하는 데 미련해야 하지만, 선을 행하는 데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직장에서 생각해봅시다. 어떤 동료는 상사 앞에서는 다르게 행동하고, 뒤에서는 다르게 말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 성과를 부풀리고, 남의 아이디어를 가로채는 기술을 익힙니다. 세상은 이것을 '처세술'이라고 부르며 가르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일에 미련해야 합니다. 서툴러야 합니다.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신, 어떻게 하면 정직하게 일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동료를 세워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회사에 진짜 유익을 끼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십시오. 거기에 여러분의 모든 지혜와 창의력을 쏟으십시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하면 새신자를 잘 환영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상처받은 사람을 위로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더 명확하게 전할 수 있을까? 이런 선한 일들에 전문가가 되십시오.

3. "한 번쯤"이라는 유혹을 거절하라

"한번만", "조금만", "이것쯤이야", "나도 해봤는데 별거 아니야" - 이런 말들을 조심하십시오. 악은 이렇게 작게 시작됩니다. 하지만 다윗과 삼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경고하듯, 그 끝은 파멸입니다.
요셉처럼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말할 수 있는 청년이 되십시오. 악을 경험해보는 것이 지혜가 아닙니다. 악을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4. 승리는 이미 확정되었음을 기억하라

청년 여러분, 때로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 보는 것 같고, 선하게 행동하면 바보 취급받는 것 같고, 진리를 말하면 외톨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평강의 하나님께서 이미 사탄을 발 아래 상하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승부는 이미 결정났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아직 완전히 드러나지 않았을 뿐입니다.
거짓이 판치는 것처럼 보여도, 진리는 결국 승리합니다. 악이 득세하는 것 같아도, 선은 마침내 이깁니다. 이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조급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타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기는 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 분별로 시작해 평강으로 끝나는 신앙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세상은 영리한 사람이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빠르게 판단하고, 재빠르게 움직이고, 남보다 한 발 앞서 가는 사람이 성공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다릅니다. 영리한 자가 아니라 순전한 자가 이깁니다. 경험 많은 자가 아니라 말씀에 순종한 자가 이깁니다.
오늘 우리가 나눈 세 가지를 기억하십시오.
첫째, 선한 데 지혜로우십시오. 말씀으로 분별하십시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묻는 청년이 되십시오.
둘째, 악한 데 미련하십시오. 순전함을 지키십시오. "한 번쯤"이라는 유혹을 거절하고, 요셉처럼 악을 피하는 청년이 되십시오.
셋째, 평강의 하나님이 이루실 승리를 확신하십시오. 우리가 순전함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사탄을 우리 발 아래 상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살아가며, 악의 유혹 앞에서도 순전함을 지킬 때, 그 길의 끝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승리는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말씀 앞에 순종하고, 순전함을 지키면 됩니다. 나머지는 평강의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내일 아침 일어나서 SNS를 볼 때, 회사에 출근해서 동료들을 만날 때, 친구들과 대화할 때,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라."
이것이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청년들에게 주시는 명령이고, 축복이며, 약속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평강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에게 분별력을 주시고, 선을 행하는 일에 지혜롭게 하시며, 악을 행하는 일에는 철저히 미련하게 하소서. 다윗과 삼손처럼 넘어지지 않고, 요셉처럼 악을 피하는 용기를 주소서. 이미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신뢰하며, 담대하게 순전함의 길을 걸어가게 하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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