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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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백성이여!

본문: 예레미야 9장 7-16절

찬송: 253장

임재의 기도

말씀을 통해서 오늘도 말씀하시는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을 통해 저희에게 말씀해 주옵소서.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게 하시고, 이 말씀이 우리 삶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이기게 하는 뜨거운 능력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문을 열며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집을 떠난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소식도 없이 지냅니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날마다 대문 앞에서 나가 먼 길을 바라봅니다. 혹시 저 길 모퉁이에서 아들이 나타나지는 않을까. “언젠가는 돌아오겠지…” 아버지는 그렇게 믿으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아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대문을 열어 놓고 혹시 아들이 돌아올까봐. 혹시 뉘우치고 돌아올까 봐 지금도 기다립니다.
이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사랑하기에 더 아프고, 아끼기에 더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만나는 것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릇된 길로 가는 유다 백성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애통함이 나옵니다. “내 백성이여!”라는 부르짖음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본문이 말씀이 선포될 때 남유다는 영적으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거짓을 일삼으며, 이웃을 속이는 일이 만연했습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심판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슬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 가지 메시지를 통해 “내 백성이여!”하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하시기에 연단하시는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9:7 NKRV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본문에 “어떻게 처치할꼬”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유다를 보시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하나…”하는 하나님의 깊은 고뇌가 담긴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내리시는 심판은 마치 수술대에 자녀를 눞히는 아버지의 심정과 같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자녀가 죽습니다. 그러나 이 수술은 마치를 하지 않고 해야 하는 수술입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의 마음이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유다 백성을 “내 딸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심판을 선언하는 그 순간에도 “내 딸”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닙니다. 이것은 애정 어린 사랑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자녀들을 혼낼 때를 생각해보면 “너 이놈아!”라고 화를 내지만, 혼이나서 울고 있는 자녀를 뒤에서 보면 “우리 아들… 우리 딸…”하며 마음 아파하며 보게 됩니다. 하나님도 똑같았습니다. 심판 중에도 포기하지 않으시는 관계, 그것이 “내 딸 백성”이란 부름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금을 연단할 때는 금을 뜨거운 불 속에 넣어 녹입니다. 그러면 불순물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불순물을 걷어내고 다시 불 속에 넣는 이 과정을 반복합니다.
언제까지 이 과정을 반복하냐면 금 표면에 금을 세공하는 세공장이 자신의 얼굴이 비춰질 때까지입다. 그리고 우리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금덩이나 장신구로 만들어 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르리를 연단하시는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파괴가 아니며 정화입니다. 버림이 아니라 회복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십니다.
연단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하나님은 “슬퍼하시면서 심판하시는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9:10 NKRV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라
하나님은 “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는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재판정의 제일 높은 곳에 앉아 기계처럼 판결을 내리는 냉혹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자녀들의 안타까움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보통 슬프면 눈물을 흘리는데, 그 마음이 애통하고 짠하게 되면 울부짖게 됩니다.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강렬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던 이유는 남유다의 영적인 타락과 그로 인한 사회적 부패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산들이 황폐해졌고 들판이 불에 탔으며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가축도 새도 어떤 짐승의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은 한때 영광의 성이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이 있었고 거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예루살렘이 승냥이의 굴이 되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가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이 선포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하나님의 애통 가운데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9절을 보면 “내가 이 일들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이 말씀은 반문입니다. “내가 어찌 벌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공의의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기실 수 없었습니다. 벌하고 싶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벌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사랑과 공의 사이에서 고민하시는 하나님의 참 모습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같은 마음이셨습니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셨을 때 그 성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이다.”(눅 23:34b)라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심판 중에도, 고통 중에도, 죽음 앞에서도 용서를 구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바로 오늘 본문의 하나님 마음입니다.
우리의 죄가 하나님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형식적인 신앙이, 우리의 이중적인 삶이, 우리의 불순종이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만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내 백성”이라 부르십니다. 세상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드려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심판하시면서도 슬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하나님께 다시 다가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십자가로 회복하시는 분”이라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9:13–14 NKRV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2절에서 하나님이 물으셨습니다.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
왜 이렇게 되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리도 하나님 대답하십니다. “그들이 나의 율법을 버렸기 때문이다.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버린 것은 하나님의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버렸다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하나님을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로 15-16절에서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쑥을 먹고 독한 물을 마시고, 흩어지게 되고 칼을 받게 되는 것은 이제 유다에는 어떤 희망도 남지 않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이야기가 끝이 났다면 하나님은 냉혹한 하나님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예레미야 9장은 비록 절망으로 이야기가 끝나지만 하나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내 백성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직접 찾아오시기로 결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우리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오늘 하나님처럼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태복음 23:37 에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몇 번이냐…”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몇 번이고 모으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답입니다. 사랑과 공의 사이에서 고민하시던 하나님, 연단하시면서 아파하시던 하나님, 심판하시면서 우시던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대가가 치러졌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를 누가 치렀습니까? 우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치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자비가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용서받았습니다.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고 베드로도 증언합니다.
예레미야 9장에서 하나님이 고민하셨던 그 문제,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것입니다.
"내 백성"을 살리기 위해, "내 백성"을 회복하기 위해, "내 백성"을 다시 품기 위해,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정죄 받을 자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예레미야 9장에서는 "내 딸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신약에서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롬 8:15) 하셨습니다.
깨어진 관계가 완전회 회복되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내 백성”이 “내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레미야 시대보다 더 큰 소망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돌렸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을 버리고 진실한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중적인 삶을 버리고 정직한 삶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가 다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십자가를 통해 "내 백성"이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됨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를 "내 백성"이라 부르시며, 사랑하시기에 연단하시고, 슬퍼하시면서도 심판하시며, 끝까지 관계 회복을 갈망하시는 아버지의 그 깊고 넓은 사랑 앞에 고개 숙입니다.
주님, 고백합니다. 우리도 유다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로, 이중적인 삶으로, 세상의 우상들을 따르며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시간, 우리를 다시 한번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형식이 아닌 진실한 믿음으로, 습관이 아닌 뜨거운 열정으로 아버지를 예배하게 하옵소서.
우리 도초중앙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부흥하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성령 충만, 믿음 충만, 말씀 충만한 교회로 세워지게 하옵소서.
한 주간도 아버지와 동행하며, "내 백성"이라 불리는 그 이름을 기쁨으로 간직하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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