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너희니라
Notes
Transcript
<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2:14-18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너희니라”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2025. 10. 13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너희니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세 번째 고린도 방문 계획을 밝히면서,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것을 호소하는 내용의 단락입니다.
바울은 이미 두 번 고린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죠. 첫번째 방문은 처음 고린도에 가서 1년 6개월 동안 머물면서 교회를 개척했던 때를 말하고. 두번째 방문은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보내고도 교회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아서 급하게 방문했던 때를 말합니다. 이때 바울이 성도들하고 사이만 더 틀어져서 돌아왔죠. 바울은 이때 받은 상처가 너무 커서, 내가 다시는 근심 중에 찾아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시간이 몇 달이었는지, 아니면 몇 년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2년은 넘지 않았을 거예요. 아마도 1년에서 2년 사이, 그 정도의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 시간이 흘러서, 이제는 다시 고린도를 방문할 준비가 됐어요.
그런데 방문을 하기 전에, 먼저 고린도후서에 나의 진심을 좀 알아달라는 내용을 집어넣습니다. 오늘 본문이죠. 혹시라도 나의 방문을 오해할까봐, 오해하지 말라는 말을 넣는 겁니다.
자, 뭐라고 말을 합니까? 오늘 본문 14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보라 내가 이제 세 번째 너희에게 가기를 준비하였으나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하여 재물을 저축하는 것이 아니요 부모가 어린 아이를 위하여 하느니라” 아멘.
내가 구하는 것은 너희의 재물이 아니요 오직 너희니라. 오늘 말씀 제목이에요. 내가 구하는 것은 오직 너희니라. 바울에 대해서 가짜 뉴스를 퍼트리는 대적자들이 있는데, 바울이 재물을 탐한다는 그런 가짜 뉴스를 퍼트리고 있어요. 바울이 앞에서는 사례비를 안 받으면서, 뒤에서 몰래 빼돌리는 그런 사람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바울은 이 오해를 바로잡고 싶은 겁니다. 나는 너희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리라. 나는 내가 알아서 자비량으로 사역을 할 테니까, 너희들 부담 가지지 말라는 것이죠. 오히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주면 줬지, 받지 않을 것이다.
14절 후반절에 보면, 바울이 부모와 어린 아이 비유를 해요. 어린 아이가 부모를 위해서 재물을 저축하는 경우가 어디 있냐? 부모가 자기 아이를 위해서 저축을 하는 것이 아니냐? 이런 비유를 통해서 자신의 결백함을 표현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밑에 15절에, 직설적으로 이렇게 말을 합니다. 15절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아멘.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기꺼이 내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겠다는 겁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는 것은 너희 재물을 받으려고 가는 것이 아니고, 내 것을 너희에게 주려고 가는 것이라는 말이에요. 재물만이 아니라, 나 자신까지도 아낌없이 주기 위해서. 이 마음을 좀 알아달라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도들이 그 마음을 몰라줘요. 그래서 그게 서운해서 15절 끝에 바울이 이런 말을 덧붙였어요.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이게 무슨 말인지, 보다 쉽게 풀어서 하면 이런 말입니다. “나는 너희를 이토록이나 사랑을 하는데, 나는 이것밖에 사랑을 못 받아야겠느냐?” 바울이 서운해서 하는 말이에요.
내가 많이 사랑하면, 나도 그만큼 받고 싶거든요. 그런데 나만 사랑하고, 나는 못 받아요.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니고, 기브만 하고 있으니까 서운하죠. 뭐든지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돼요.
관계라는 게 그런 겁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만큼 우리도 부모님을 사랑해야 됩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한정없이 내려주기만 할 수는 없어요. 주고 받아야 돼요.
바울과 고린도교회 역시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관계여야 합니다. 일방적으로 한쪽만 사랑하고 희생해서는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이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나요. 왜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오해가 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것에 뭔가 흑심이 있지 않은가,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오해 때문에 문제들이 일어나요.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누군가가 그런 오해를 만들었어요. 16절에 보니까, “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교활한 자가 되어 너희를 속임수로 취하였다 하니”
어떤 이가 이런 거짓말을 하는 거죠. ‘바울이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않을지 몰라도, 교활하게 너희를 속여서 뺏어갈 거야.’ 이렇게 교묘하게 오해를 하게 만들어요. 사이를 이간질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서 어떤 이득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이 보낸 동역자들 역시도 어떤 이득을 취한 적이 없어요. 진짜로 뭘 받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받은 것도 없는데 오해를 하니까 바울도 마음이 안 좋죠.
그래도 바울은 여전히 고린도교회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방문할 준비를 마쳤어요. 비록 저들이 여전히 나를 오해하고, 나에게 사랑을 주지도 않지만, 그래도 부모가 자녀를 사랑함 같이 사랑해요.
나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들에게 뭔가 원하는 것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겠죠. 투자를 해도 수익이 안 나니까 금방 포기할 거예요. 하지만 바울은 원하는 것이 없어요. 바울은 오직 그들과 관계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내 진심을 알아주고, 내가 주는 사랑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주는 사랑의 반의 반 만큼만이라도. 서로 사랑을 주고받는 그런 사랑의 교제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오해의 장벽을 넘어서, 마음을 터놓고, 서로 사랑하고 사랑을 받는 그런 아름다운 관계가 될 때, 어떤 고난과 풍랑에도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을 주는 것에 인색하지 말고, 사랑을 받는 것에 부담스러워 말고. 마음껏 사랑을 주고 받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