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하노라

고린도후서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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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
고린도후서 12:19-21
“두려워하노라”
549장, 내 주여 뜻대로
2025. 10. 17
조 정 수
    할렐루야. 오늘 본문을 놓고 “두려워하노라” 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이제 고린도를 방문할 준비를 마치고, 고린도후서에 내가 곧 방문하겠다는 뜻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문할 준비를 마쳤음에도 여전히 바울에게 두려움이 있어요.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 받은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혹시 이번에도 그런 상처를 받게 될까봐 두렵습니다. 또 내가 방문한 것으로 인해서 교회가 더 문제가 커질까봐, 이것 역시도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문을 미룰 수도 없습니다. 이대로 교회를 계속 방치할 수가 없어요. 두렵더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방문하기 전에 나의 방문을 교회에 미리 알려주고, 나를 맞이할 준비를 시킬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지난 시간에 바울이 나의 진심을 알아달라고 말을 했죠. ‘내가 너희에게 가는 것은 너희의 재물을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너희를 속이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오직 부모가 자녀를 사랑함 같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에 가려는 것이다. 그러니 내 마음을 좀 알아주라.’ 이렇게 자신의 진심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다시 한번, 내 모든 말이 진실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자, 오늘 본문 19절 다같이 읽어볼까요? 19절 시작, “너희는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사랑하는 자들아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아멘.
    바울은 먼저 교회가 자신의 말을 변명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너희가 이 때까지 우리가 자기 변명을 하는 줄로 생각하는구나. 나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는데, 거짓으로 변명을 하고 있다고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서운해서 하는 말이에요. 
    그러면서 바울이 이렇게 덧붙였어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노라” 이 말은 한 치의 거짓이 없이 진실만을 말한다는 표현입니다. 하나님 앞에 말을 하는데 감히 거짓을 말할 수가 없죠. 하나님 앞에 말하듯이, 진실을 말해요. 뭘 말합니까? “이 모든 것은 너희의 덕을 세우기 위함이니라” 
    교회는 바울이 한 말이며 행동이 변명으로 한 것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 모든 말과 행동은 다 교회를 더욱 굳건히 세우기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특별히 덕을 세운다고 돼 있는데, 이 “덕”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오이코도메” 라는 말이에요. 오이코도메. 이 말은 “건물” 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건물에 비유를 하거든요.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집이다. 이렇게 교회를 비유합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에요. 교회는 계속 지어져 가는 겁니다. 날마다 조금씩 조금씩 벽돌 한 장 올리고, 기둥 하나 세우고, 이렇게 건물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우리가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거예요. 
    덕을 세운다는 말이 바로 그 말입니다. 오이코도메. 건물을 세우듯이, 교회를 더욱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가는 겁니다. 성품을 변화시키고, 인격을 변화시키고, 행실을 변화시키는 겁니다. 
    바울은 오직 이것을 위해서 말을 하고 행동해 왔어요. 그리고 이번에 고린도에 방문하려는 이유도 그겁니다. 고린도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까지 말을 해도 성도들이 제대로 믿지를 않아요.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줘야 되는데, 의심만 합니다. 그래서 두려운 거예요. 혹시라도 또 이번에 상처만 받고, 문제만 생길까봐.
    오늘 본문 20절 21절에 보면, 두려워한다는 말이 총 네 번 나옵니다. 실제 헬라어 원문에는 두 번밖에 안 나와 있는데요. 하지만 문맥상 네 번 사용한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두려워하는 이유가 네 가지가 나오기 때문에. 
    네 가지의 두려움을 말함으로써, 바울은 고린도에 방문하는 것이 얼마나 부담스러운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가고 싶으면서도 가는 것이 망설여져요. 두려워서.
    그 네 가지의 두려움을 각각 20절에 두 개, 21절에 두 개 기록했어요. 먼저 20절에 있는 두 개를 보겠습니다. 자, 2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내가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가 원하지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있을까 두려워하고” 
    바울이 두려워하는 첫번째는 내가 원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것과 너희가 원하지 않는 모습을 내가 보여주는 것입니다. 서로간에 기대하는 모습이 있는데, 그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기대 이하의 모습을 서로 보여줄까봐, 그게 두려워요. 성도들이 말씀에서 떠나 있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 두렵고, 또 그것 때문에 화가 나서 성도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 두려운 겁니다. 이것이 첫번째 두려움이에요.
    이어서 두번째는, 교회에 여전히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비방과 수군거림과 거만함과 혼란이 여전히 교회 안에 그대로 있을까봐. 그것이 두려워요. 
    그런데 두려움이 여기서 끝이 아니죠. 밑에 21절에 또 다른 두 가지 두려움이 나옵니다. 21절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또 내가 다시 갈 때에 내 하나님이 나를 너희 앞에서 낮추실까 두려워하고 또 내가 전에 죄를 지은 여러 사람의 그 행한 바 더러움과 음란함과 호색함을 회개하지 아니함 때문에 슬퍼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의 두려움 세번째는 바울이 지난번에 방문했을 때처럼, 나를 성도들 앞에서 낮추시는 것입니다. 나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수치를 당하고,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도 없는 그런 꼴을 또 당할까봐, 그것이 두려운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는요, 여전히 교회 안에 성적인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는 것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이와 같은 네 가지의 두려움이 바울에게 있어요. 그래서 교회를 정말 가고 싶으면서도 망설여지는 겁니다. 내가 정말 가도 될까? 가면 어떻게 될까? 교회가 더 어려워지면 어떻게 할까?
    이러한 염려 속에서 바울이 얼마나 많이 고민했을까요? 기도도 많이 했을 겁니다. 그런데 결국에 바울은 가기로 결단을 합니다. 세 번째 너희에게 가리라.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실제로 세번째 방문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절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에 석 달 동안 머물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고린도에 머물렀다고 구체적으로 쓰여있지는 않고, 헬라 지방에 석 달 동안 있었다고만 돼있습니다. 마게도냐 지방을 지나서 헬라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었다. 
    헬라는 그리스 남부 아가야 지방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이 됐는데요. 그리스 남부에 고린도가 있죠. 그래서 아마도 이때 고린도에 방문했을 것으로 봅니다. 어쩌면 석 달 내내 고린도에 있었을 수도 있고, 그보다 덜 있었을 수도 있는데, 어쨌거나 고린도에 방문을 했다는 겁니다. 
    바울은 이처럼 수많은 두려움 속에서도 교회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행동했습니다. 두렵다고해서 멈춰버린다면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무리 두렵고 슬프고 힘들더라도, 행동해야 돼요. 말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그 말은 변명밖에 되지 않아요. 사랑한다면 실행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를 위해서 또 가정을 위해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 일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로 인하여 내가 어떤 불이익을 얻게 될까 두려울 수 있겠지만, 그 일이 정말로 교회를 바로세우고 가정을 바로세우는 일이라고 한다면, 용기를 가지고 행동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일이 올바르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고, 해야 될 말이 있으면 하고, 오해가 있으면 풀고.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돼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앞에 말하듯이, 어떠한 거짓도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교회를 위해서 또 여러분의 가정을 위해서 지혜롭고 담대하게 행동함으로 말미암아 선한 역사를 이루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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